라쇼몽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50년대 영화로 1910년대에 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이 원작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나는 딱 두 편을 봤는데 라쇼몽과 7인의 사무라이다. 영화배우들이 요즘만큼 없어서 여기저기에 같은 배우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4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에 50년대 일본의 산속에서 한마을을 지키는 이야기지만 보다 보면 빠져서 보게된다. 최근에 이병헌과 스타 로드의 서부극으로 리메이크 되었다. 라쇼몽 역시 보다 보면 인간 내면에 대해서 흑백의 영상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라쇼몽의 이야기는 대부분 알고 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쓴 원작 나생문, 즉 라쇼몽의 한 구절을 읽어보면 이후에 아쿠타가와 상이 탄생된 것에 고개를 끄덕하게 된다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아서 가발을 만들 거야.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는 것은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내가 방금 머리카락을 뽑은 이 계집은 토막 낸 뱀을 마른 생선이라고 팔았어. 염병에 걸려 죽지 않았다면 지금도 팔고 다니겠지. 나는 이 여자가 한 일을 나쁘다고 생각지 않아.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굶어 죽었을 테니까. 그러니 내가 한 일도 나쁘지 않아. 이 노릇도 안 하면 굶어 죽게 생겼거든. 이 여자도 아마 내가 하는 짓을 너그럽게 보아줄 거야.

노파의 말을 듣고 있던 사내의 마음에는 차차 어떤 용기가 솟았다.

정말 그래? 그럼 내가 네 껍질을 벗겨가도 날 원망하지 않겠지? 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판이란 말이야.

사내는 재빨리 노파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는 다리에 매달리는 노파를 거칠게 시체 위로 걷어차 버렸다-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몽 중

 

아쿠타가와는 병약한 체질과 고질적인 정신병에 시달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라는 구절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자살을 했다. 이후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을 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예술가들의 자살을 경멸보다는 숭고에 가깝게 대했다. 인간생활에 개신교가 들어옴으로 자살이라는 것은 죄악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심각한 고뇌가 있었지만 집안사람들, 가족이나 일하는 사람들과는 돈독했다. 하지만 자신과 가장 친했던 셋째 형이 병으로 죽고 나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직소’라는 소설에서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 유다에 관한 이야기를 다자이의 관점에서 썼다. 개인적으로는 어려워서 읽고 나서도 나는 누구? 같은 느낌이었지만 다자이는 그만큼 개신교에 대해서 깊게 들어가 있었다. 예술가들이 자살이 오래전만큼 숭고하게 받아들여지진 않지만 얼마 전 마광수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좀 벗어난 이야기로 메탈리카의 제임스 해필드의 엄마는 절실한 개신교 신자였는데 병을 기도로 치유하려 하다가 죽고 만 것에 대해서 제임스는 굉장히 과격해지고 개신교에 대한 불신이 들기 시작했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우리의 몸과 아이는 신이 주신 것이라는 전제가 붙어서 우리 몸이지만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살은 물론 당사자나 사랑했던 주위의 사람들에게 아픔을 준다. 해서는 안 되지만 자살이 죄악이고 나쁜 것의 범주에 함축하고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다. 이제 낙태죄도 사라지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에 (지금은 아마 없어졌을) 라쇼몽이라는 술집에 갔을 때 어느 손님이 주인에게 라쇼묭이 뭡니까,라고 물었을 때 쥔장이 그거 일본 영화 같은데요?라고 해 버려서 에이 뭐야 싱겁게.라는 생각을 했다. 손님들이 라쇼몽에 대해서 꽤 궁금해할 텐데, 그러면 라쇼몽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해주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과 그의 짧은 이력(요컨대 아쿠타가와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생으로 있었다는 둥)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면 손님들이 더 재미있어 할 텐데. 어차피 일본 이름으로 된 술집에서 일본 안주와 일본 술을 파는데 그 정도 서비스는 괜찮을 것 같은데

 

아쿠타가와 상을 노리는 고마쓰의 목적은 문단을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어둠침침한 동굴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서로 칭찬하고 핥아주는 한심한 자들을 조롱하기 위해서 덴고를 끌어들이고 이렇게 해서 두 개의 달이 있는 거대한 일큐팔사의 서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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