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이승우의 『고요한 읽기』를 펼쳐 들며 그의 문장 속에서 밀란 쿤데라의 소설 『향수』를 마주했다. 쿤데라뿐 아니라 보르헤스, 바르가스 요사 등 다른 위대한 작가들의 글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의 방식은 읽는 내내 나를 자극했다. 책장을 넘기며 나도 문득, 쿤데라에 대해 내 나름의 글을 쓰고 싶어졌다. 쿤데라는 나에게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었다. 그는 철학자이자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인과도 같은 작가였다. 그의 글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한번 그가 던지는 질문에 빠져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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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그는 인간 존재의 독특한 특징을 깊이 탐구한다.
"인간은 오직 한 번만 살기 때문에, 마치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고 있는 셈이다."라는 그의 문장은 단순한 진술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본질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이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존재의 무게와 가벼움의 간극을 진지하게 숙고하게 만든다. 인간이 단 한 번의 삶을 살고, 그로 인해 경험하는 모든 선택과 후회는 우리의 존재를 더욱 복잡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쿤데라의 작품은 삶의 유일성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의 경계를 탐구한다. 그는 독자에게 선택의 모호성과 그 선택이 가져오는 책임을 상기시킴으로써,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형성하는 데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제약이 없는 삶의 경로를 제시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후회의 부담과 불안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쿤데라는 이러한 가벼움과 무거움을 통해 인생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무의미해 보이는 순간들을 숱하게 경험하지만, 그러한 순간들이 단순한 낭비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과 통찰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일깨운다. 결국, 쿤데라는 세상과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멈추지 않는 태도를 강조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과 선택을 되돌아보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사유는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부조리와의 화해를 강조한 철학과 흥미롭게 맞닿는다. 카뮈는 시지프가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행위를 통해 삶의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스스로 의미를 창조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쿤데라는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대조를 통해 인간의 의지가 이러한 부조리에 맞서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를 펼친다.
쿤데라의 존재론적 탐구는 보르헤스의 작품에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반향을 찾는다.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서 그는 인간이 무한한 지식과 선택의 가능성 앞에서 느끼는 공포를 다룬다. 보르헤스의 세계가 무한과 반복의 공포라면, 쿤데라의 세계는 유일성과 비가역성의 가벼움이 주는 고통이다. 이 두 작가는 서로 상반된 철학적 배경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지만, 그들의 글은 독자에게 인간 존재의 역설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 또한 쿤데라와의 흥미로운 비교를 가능하게 한다. 마르케스는 인간의 삶을 순환적이고 마법적으로 묘사하며, 존재의 중량감을 신화적 서사로 풀어낸다. 쿤데라의 존재는 순환 대신 유일성을 강조하고, 무게보다는 가벼움의 불안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두 작가는 모두 인간 존재의 모순과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
한편, 비르지니 데팡트는 쿤데라의 철학적 관점과 사회적 맥락의 상반된 면을 보여준다. 비르지니 데팡트는 그녀의 소설 『베즈 무아』에서 여성성과 권력, 그리고 억압의 구조를 탐구하며, 인간 존재의 고통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한다. 데팡트는 여성성과 권력, 억압의 구조를 탐구하며, 인간 존재의 고통을 사회적 구조 속에서 재구성한다. 쿤데라가 인간의 존재를 철학적이고 보편적으로 다룬다면, 데팡트는 날카롭고 직설적으로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개인의 고통과 억압을 드러낸다.
조지 오웰의 『1984』와 『동물농장』 또한 쿤데라와 흥미로운 비교를 제공한다. 오웰은 권력과 전체주의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탐구하며, 개인의 선택과 정체성을 다룬다. 쿤데라가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개인적 존재의 딜레마를 다룬다면, 오웰은 이 딜레마가 전체주의와 권력의 틀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억압되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는 쿤데라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과 기억, 그리고 정체성을 탐구한다. 모리슨은 개인과 공동체, 역사적 억압의 무게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며, 쿤데라의 유일성과 가벼움이라는 관점과는 대조적으로, 기억과 역사의 무게가 개인의 존재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묘사한다. 두 작가는 모두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심도 있게 탐구하지만, 쿤데라가 철학적 추상성에 가까운 글을 쓰는 반면, 모리슨은 역사적 맥락과 감정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쿤데라의 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매혹하며, 삶의 본질에 대해 묻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던져진 그 질문은, 그의 다른 작품들 속에서 더욱 다양하고 깊이 있는 변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농담』에서는 사소한 장난으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주인공 루드비크를 통해, 개인의 삶을 옭아매는 정치적 억압과 우연성의 굴레를 조명한다.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사소한 사건이 개인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무게가 어떻게 개인을 짓누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불멸』에서는 유명인사들의 불멸에 대한 욕망과 그 이면에 숨겨진 허망함을 탐구하며, 존재의 유한함과 무한함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펼쳐 보인다. 나아가, 『무의미의 축제』에서는 현대 사회의 가벼움과 무의미함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면서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처럼 쿤데라는 각 작품을 통해, 특유의 통찰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여정을 이어 나갔다. 그 여정의 길목마다, 우리는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자유와 억압, 기억과 망각 등 삶에 대한 깊은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역시 고흐와 함께 새해 찾아보고 다시 읽어볼 만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 시작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