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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평점 :
어떤 책은 그 자체로 질문이 된다. "자연은 언제부터 이토록 파편화되었을까?" "여성은 언제부터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나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 두 문제는 왜 이리 닮아 있는 것일까?" 마리아 미즈와 반다나 시바의 저서, 『에코페미니즘』은 바로 이러한 질문들을 우리 앞에 선명하게 제시한다. 이 책은 단순한 환경론을 넘어, 자연과 여성, 이 둘을 억압하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논리를 심층적으로 해부하는 혁신적인 시도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발전'이라는 개념이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 탐구하며, 현 시대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가부장제는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오래된 관습 속에서 착취의 구조를 공고히 해왔다. 마르크스주의적 분석틀로 보면, 여성과 자연은 자본주의 발전의 그늘 속에서 희생양이 되어왔다. 여성의 노동은 생산 과정에서 보이지 않게 지워졌고, 자연 역시 자본 축적의 도구로만 취급되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피해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자연을 소외시키고 통제하려는 태도 자체가, 곧 여성에 대한 억압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성과 자연의 착취는 동일한 논리로 작동해 왔다.
반다나 시바는 산업화된 농업과 '녹색 혁명'이 제3세계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황폐하게 만들었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른바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들은 농업 생태계에서 밀려나고, 그들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지혜마저 사라졌다. 산업화된 농업이 여성들의 전통적 역할을 배제하고, 기업 중심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더욱 단절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제3세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과 거리를 둔 채 살아가고 있으며, 환경 위기의 본질을 ‘기술적 문제’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에코페미니즘은 이러한 관점을 뒤집고, 자연과 여성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마리아 미즈와 반다나 시바는 과학이 남성 중심의 시각 속에서 발전해왔음을 지적한다. 전통적으로 여성과 지역 공동체가 보유한 지식은 억압되거나 배제되어 왔다. 한때 여성 치료사들이 축적한 경험적 지식은 '미신'으로 치부되었지만, 서구 과학이 동일한 성분을 분석하고 상품화하는 순간 ‘합리적 지식’으로 변모했다. 결국, 과학적 진보는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권력 관계 속에서 선택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사례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지식의 배타성이 유지되는 방식은 유사하다. 기업이 특허를 내세워 토착 종자를 소유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오랜 세월 동안 공동체가 축적해 온 농업 지식이 사라지고,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자연이 독점되는 현실 속에서, 과학은 과연 누구를 위해 발전하는가? 에코페미니즘은 과학을 포함한 모든 지식 체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배제된 목소리를 회복하려는 시도를 지속한다.
『에코페미니즘』은 "쓰는 행위"가 단순한 표현 수단을 넘어, 저항과 혁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지배적인 담론에 균열을 내고 억압받아 온 목소리를 복원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힘을 지닌다. 저자들은 ‘여성과 자연에 대한 폭력’이 동일한 뿌리에서 비롯되었음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이 구조적 억압을 전복할 방법을 모색한다. 이는 단순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사고의 전환을 촉구하고,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는 실천적 행위로서의 글쓰기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하나의 실천적 대안은 소비의 감축이다. 자본주의적 소비 패턴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삶을 선택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 결단이 아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어떠한 사회를 원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된다. "당신은 어떤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개인의 윤리적 선택을 넘어, 사회적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된다.
기존의 경제 시스템은 성장과 소비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우리는 이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자원을 소모하며 살아간다.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파괴된 환경, 그리고 이에 따른 불평등의 심화는 단순한 부작용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시스템의 본질적인 문제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 책은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천적 변화를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오늘날 기후 변화, 생태 위기, 젠더 불평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 책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시스템 전체의 혁신을 요구하는 강력한 외침을 던진다. "자연은 언제부터 이토록 조각나기 시작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우리가 가진 가치관 자체를 재검토하게 만든다. 우리는 더 이상 획일적인 경제 논리에 휘둘리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자연과 관계 맺는 삶을 모색할 것인가?
답을 찾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정해진 답이 아니라, 다시 묻는 행위 자체일지도 모른다. 질문을 붙들고 한 걸음 멈춰 서서, 우리가 놓쳐온 것들을 바라보는 일. 그런 순간들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과연 더 나은 세계를 꿈꿀 수 있을까.
그 답은, 어쩌면 이 질문을 다시 던지는 순간 이미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그 과정 속에서, 생태적 정의와 여성의 권리가 함께 어우러진 세상에 대한 희망은 조용히 싹틀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질문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날이 올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다시 던져지게 될까.
『에코페미니즘』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쯤에서 멈춰 서야 하는지를,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걸어갈지를 조용히 짚어주는 나침반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