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뜻밖의 보물에 숨겨진 놀라운 과학 Philos 시리즈 31
브린 넬슨 지음, 고현석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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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침에 무엇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하는가? 잠시 자신의 아침 풍경을 떠올려 보자. 커피 한 잔의 여유, 가벼운 명상이 주는 평온함, 달리고 난 후의 상쾌함,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다정한 대화나 고요한 침묵 속의 사색 같은 것들 말이다. 이처럼 각자의 아침은 저마다 다른 모습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사의 마음은 우리의 하루를 더욱 빛나게 한다. 털어놓자면, 나에게 있어 아침  감사의 시작은 조금 남다르다. 바로 매일 아침 마주하는 '똥', 나의 배설물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나와 비슷한 아침 루틴을 가진 분은 없으신가?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계기가 있다. 작년에 읽은 책 한 권이 최근에 한글 번역본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바로 『Flush: The Remarkable Science of an Unlikely Treasure』(이하 『Flush』 로 표기).


하루의 첫 순간, 내가 하는 일은 소리 없이 작은 감사를 하는 것이다. 화장실에 앉아 대변의 색상, 형태, 크기와 질감을 살펴보며 오늘도 내 몸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묘한 안도감과 감사함을 느낀다. 2025년의 첫날 아침에도 황금빛 소시지 형태로 생긴 변을 누며 올해는 운이 따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지나치게 소소한 기쁨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브린 넬슨의 책 『Flush』는 내 이러한 일상적 행동의 가치에 놀라운 무게를 실어주었다.


브린 넬슨은 『Flush』에서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똥이라는 주제에 대해 과학적이고도 유머러스한 시각을 제시한다. 이 책은 똥을 단순히 배설물로 치부하지 않고, 우리의 건강, 환경, 그리고 사회적 편견까지 아우르는 중요한 주제로 끌어올린다. 넬슨은 똥이 인간의 소화기 건강을 반영하는 생체 지표임을 강조하며, 대변의 모양, 색상, 질감을 통해 개인의 건강 상태를 추적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브리스톨 대변 척도를 활용해 대변의 형태를 분석하는 방법과, 대변 미생물총이식(FMT) 같은 혁신적인 의학적 접근이 질병 치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똥이 건강의 중요한 지표임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Flush』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대변의 색상이 간이나 담도계의 문제를 알려주거나, 대변의 형태가 장내 건강 상태를 암시할 수 있다는 내용은 매우 유익하다. 예를 들어, 브리스톨 대변 척도를 통해 딱딱한 변은 변비를, 묽은 변은 설사를 나타내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특히, 건강한 대변의 기준으로 제시되는 소시지 형태의 변은 단순한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신체가 균형 잡힌 상태에 있다는 중요한 증거다.


넬슨은 또한 똥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폐수 처리장에서 발생하는 바이오가스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거나, 대변을 비료로 전환해 황폐화된 토양을 복구하는 사례를 제시하며 똥의 재활용 가능성을 탐구한다. 빌 게이츠가 참여한 물 재활용 프로젝트나 폐수 기반 역학(WBE) 연구는 똥이 환경과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똥이 단순히 폐기물이 아니라, 자원으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새롭게 깨달았다.


넬슨은 똥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편견을 지적하며, 이러한 감정이 단순히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학습과 개인적 관계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신의 아이의 기저귀 냄새를 덜 역겹게 느낀다는 연구는 혐오감이 단순히 본능적 반응이 아니라, 맥락과 관계성에 따라 조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통찰은 우리가 무엇을 더럽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얼마나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넬슨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똥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아니지만, 똥은 변화의 시작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의 말처럼, 똥은 단순히 우리의 몸에서 나오는 부산물이 아니라, 환경과 건강, 그리고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열쇠다. 똥은 내 몸이 나와 대화하는 방식이며, 동시에 우리가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Flush』는 똥이라는 다소 쉽지 않은 주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며, 우리가 이를 통해 건강과 환경,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 책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독자들에게 똥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 2025년 첫날 아침에 느낀 감사함이 이 책을 통해 더욱 깊어졌다. 똥은 단순히 뒤처리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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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01-06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과 똥은 불가분의 관계지요. ㅎㅎ 또한 내 자신을 돌아 보는 것도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루틴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 dbTlla님의 말에 공감합니다. 감사 합니다.

맥락없는데이터 2025-01-06 16:00   좋아요 0 | URL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라는 표현이 님께도 공감이 되었다니 저도 기쁩니다. 마힐 님과 함께 좋은 에너지를 나눌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