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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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애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랬던 내가 그 불쌍한 장애인들 속으로 떨어졌으니 인생이 비참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 태수가 왔지. 그런데 그 장애인이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 태수는 나한테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줬지, 충격적으로.”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 박경석씨가 당신에게 정태수는 왜 그토록 소중한가요라는 질문에 답한 것이다. 박경석씨는 친구(정태수씨)를 통해 그냥 사람을 직접 경험했고, 나는 그냥, 사람의 저자 홍은전 작가를 통해 간접 경험했다. 그말인즉슨, 이 책이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주었기에 소중하다는 뜻이다.

 

그냥, 사람은 상처 입고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 자녀를 특수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릎 꿇은 사람,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라며 시위하는 사람, 그들은 무정한 세상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불편함을 감각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이런 글을 보고 구질구질하다고, 병신이라고 가볍게 모욕을 던질 수 있겠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2013년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가 보도되었을 때, 나는 태평하게 거실 소파에 앉아서 저게 그렇게 슬퍼할 일인가? 그냥 죽을 때 됐으니 죽은 거지라고 말했다가 부모님께 크게 혼이 났던 적이 있다.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가 있냐고, 그런 생각은 뜯어고치라는 훈계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때부터 , 남의 일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나는 그제서야 그 충격과 슬픔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거짓 보도에 분노하고, 다음에는 사망자와 실종자수에 놀라고, 마지막엔 유가족들의 슬픔을 글로 배웠다. 일 년 전 부모님께 혼나고 곱씹어보지 않았더라면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충격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함께 울지 못하는 게 창피한 일임을 이제는 안다.

 

그냥, 사람의 첫 번째 글은 단원고 이야기이다. 잘 읽혔고, 슬펐고,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글은 탈시설에 관한 것이었다. 애송이 같은 비장애인으로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여서 단번에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계속해서 읽었다. 책을 덮을 즈음에야 탈시설 운동을, 자립을 응원하고 연대해야겠구나 라는 일차원적인 감상을 뱉었다. 부끄럽게도 여지껏 장애인과 사회문제에 대해 무심해서, 이 분야에 대해서는 느릿느릿 사유할 수밖에 없었다.

 

(79)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장이 아니다. 가장 아픈 곳이다. 이 사회가 이토록 형편없이 망가진 이유, 장애인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버리고, 병든 노인들을 버려서가 아닌가. 그들은 가장 먼저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 이 세상의 브레이크 같은 존재들이다. 속도를 낮추고 상처를 돌보았어야 한다. 가장 아픈 곳으로부터 연결된 근육들의 연쇄적인 강화만이 우리를 함께 강하게 만들 것이다. 생명을 포기하는 곳, 연대가 끊어지는 그 모든 곳이 시설이다. 그러니 모두들, 탈시설에 연대하라.

 

늦었지만 새로운 세계관이 열렸으니 내 우물을 벗어나 다른 우물에도 뛰어들어야겠다. 탈시설과 관련해서는 시설사회(와온, 2020)나 다큐 <어른이 되면>을 통해 더 공부해보려고 한다.

 

어쩌다보니 세월호와 탈시설 이야기를 좀 많이 했는데, 그냥 사람의 후반부에는 동물도 등장한다. 저자는 반려묘 카라와 홍시를 입양하며, 인간 약자에게 향하던 공감을 동물에게도 돌리기 시작하고 더 나아가 탈육식을 결심한다.

 

(220)

명색이 고통을 기록하는 활동가인데, 두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후에야 내가 듣고자 했던 고통엔 오직 인간의 자리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28)

인간은 어디까지 공감할 수 있고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까. 삼시 세끼 고기나 달걀, 우유를 먹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내가 숨 쉬는 모든 자리가 최전선처럼 느껴진다.

 

비록 반쪽짜리이긴 하지만3년차 채식주의자로서 저자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점점 약해지던 다짐을 다시 굳혔다. 여러모로 유익한 책이었다.

"나는 장애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랬던 내가 그 불쌍한 장애인들 속으로 떨어졌으니 인생이 비참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 태수가 왔지. 그런데 그 장애인이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 태수는 나한테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줬지, 충격적으로."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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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재난 국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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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라벨 정리 작업을 하다가 왜 저 사람은 나보다 출세가 빠를까라는 책을 발견했다. 일본인 저자가 쓴 것이지만,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질문이다.



옆집 민수는 수학 백점 맞았다던데라든가, “네 사촌 도연이는 서울대 갔는데 너는 인하대구나?” 같은듣기만 해도 피곤한 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낀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철승 교수님은 두 나라 모두 동아시아의 벼농사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이며 그밖에 여러 사회문제들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쌀 재난 국가를 통해 말한다.

 

(48)

나는 쌀 이론을 통해 위계구조와 불평등, 불평등에 대한 인식, 급속한 경제 발전, 협력과 경쟁의 공존, 행복과 질시, 교육열과 사회이동, 노동시장 구조, 성차별, 연공 문화의 존속 그리고 소통의 문화까지 포괄한다. 이 모두는 종속변수에 대해 나는 벼농사 경작 시스템이라는 단 하나의 독립변수를 제시할 것이다.

 

초반엔 이렇게 폭 넓은 이야기를 로만 설명하는 게 가능한가? 싶었지만 본문을 읽으며 저자가 깊이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 등장하는 통계분석 자료들이 신뢰도를 더한다.)


 

-

본격적으로 서평을 쓰기 전 보도자료를 검색해보았다. “50대가 포기하자, 한국사회 불평등 없애려면이라는 꽤나 자극적인 표제가 상단에 노출되었다. 쌀 재난 국가의 핵심을 뽑아낸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쌀 재난 국가에서 1~4장은 우리(동아시아)벼농사를 지으며 어떤 방향으로 진화했는지, 5~6장은 연공제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한국의 오늘을 보여준다. (이 서평에서는 5~6장에 집중했다.)

 


연공제(年功制)근무연한에 따라 임금과 직급이 상승하는 임금제도를 뜻한다. 전세계에서 연공제를 고집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저자는 바로 이 연공제가 우리 사회를 녹슬게 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이 농사를 짓던 조선시대에는 연공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했겠지만(2장의 평수리예시 참고) 지금은 아니다. 연공제는 청년과 중장년 세대간 갈등, 남녀(또는 여남) 갈등을 영속화하고 있다.


(318)

벼농사 체제의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제도적 기제는 앞서 분석한 연공-세대-인구의 중심축인 연공제. 연공제를 강하게 고수하는 기업일수록 남성과 여성 간 임금 차별이 심하다.

 

(344)

혁명적 수준의 제도 개혁 외에는 답이 없다. 가장 좋은, 가장 빠르고 확실한 대안은 모든 조직의 의사결정기구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여성을 평등하게 대우하면, 저항은 남성 위주 지배 구조에 진입하지 못한 채 긴 실업과 구직의 대열에 서 있는 청년 남성들에게서 가장 높을 것이다.

 

(345)

2010년대 이후 악화된 청년 세대의 젠더 간 혐오 문화의 기저에는 주어든 정규직 일자리를 둘러싸고 극심한 경쟁을 조장하는 연공-세대-인구의 착종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저자의 진단을 읽자, 가려웠던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성 신입사원 선호 경향,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과 승진 한계 등의 현상을 단순히 성차별이라고 뭉뚱그리지 않고 날카롭게 분석해냈기 때문이다.

 

나는 곧 취준생 단계에 진입할 청년 여성이기도 해서 이런 갈등과 불평등을 (알고 싶지 않아도) 소름끼치게 체감하고 있다. 아직은 연공제를 고집하는 기업이 전체의 2/3에 달한다고 한다. 구직자인 나에게는 당장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 그래서 더욱, 저자의 주장에 목소리를 보태고 싶어졌다. 그동안 연공제의 덕을 톡톡히 본 이들에게,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 조금만 나누어달라고 말이다. 쉽지 않겠지만, 이 책이 강한 메시지를 담고 세상에 나온 만큼 세상도 답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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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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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이 좀 넘게 여러 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을 하면서 서평에 대해 고민했다. 이번 학기를 마치고 졸업하면 출판업계에 지원할 예정이라 서평을 더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서평 쓰는 법』을 찾아 읽게 되었다.

🔖(26쪽)
성공한 서평은 어떤 것일까요? 서평을 쓴 사람이 의도한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보통 의도하는 반응은 서평의 독자가 책을 읽는 겁니다. …혹은 읽지 않게 하기를 목적으로 삼기도 합니다. 너도나도 좋은 책이라고 할 때 그 책을 읽지 않을 이유를 납득시킨다면, 그 서평은 성공한 서평입니다. …서평을 읽은 독자가 해당 책을 읽거나 읽지 않는 구체적인 반응으로 화답해주어야 서평은 제 구실을 다한 것이 되며, 이로써 서평을 통한 대화가 완성됩니다.

서평은 설득과 대화를 상정하는 글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보고 책을 읽거나 읽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인스타그램 @bellorum_civilium 님의 서평을 읽은 뒤 『아주 오래된 유죄』를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고, (누구 글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구매하지 않았다.

🤷🏻‍
이쯤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대화하기 위한 서평을 쓰고 있는가?

나는 출판사 서포터즈(한길사, 두란노, 동아시아 등)로서 인스타그램에 서평을 올렸고, 올리고 있다. 목적은 독자에게 특정 출판사의 책을 홍보하는 편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설득과 대화하는 글을 쓰는 것은 맞다.

서평단 활동은 장단점이 명확하다. 책값을 지불하지 않고도 마음껏 밑줄을 치며 읽을 수 있는 게 최대 장점이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저자와 책의 내용을 홍보(또는 옹호)하는 성격의 서평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게 단점이다. 장기 활동하는 서평단을 꾸릴 정도로 여유 있는 출판사는 대부분 양질의 책을 제공하지만, 사회과학 계열이나 신앙서적의 경우 몇몇은 내 생각과 달라서 애를 먹은 적도 있다.

(활동이 끝났으니 말하는 건데, 두란노에서 받은 활동도서 중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 책들은 곤욕이었다🤦🏻‍♀️ 눈치가 좀 보여서 대놓고 비판은 못하지만 솔직하게 쓰려고 애썼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서평 쓰는 법』을 읽으며 찔렸던 부분이 있다. 바로 메모와 퇴고이다.

🔖(87쪽)
각 장을 읽고 난 후에는 생각으로 혹은 기록으로 핵심을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독서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평을 작성하려면 그렇게 하는 편이 유익합니다.

나는 책에 적극적으로 밑줄을 치거나 인덱스 표시를 해두지만, 읽는 도중에 요약이나 감상은 잘 기록하지 않는다.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한 권을 끝내거나 반절 이상 읽는 빠른 독서에 익숙하기도 하거니와 메모하는 습관이 없다. 사실 그 때문에 완독 후 감상이 정리되지 않아서 서평이 논리적으로 써지지 않은 적이 많긴 했다. 반성했다.

🔖(160쪽)
초고를 계속 퇴고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갈수록 더 향상됩니다. 명사와 형용사가 분명하게 선택되고, 적합한 위치에 놓게 됩니다. 각 문장의 구조가 정교해지고,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단단한 문장이 됩니다. 각 문단의 내적 응집력도 강화되고, 각 문단의 외적 정합성도 증대됩니다. …수정을 반복하는 가운데 등장하는 것은 독창적 서평이 아니라 훌륭한 서평입니다.

부끄럽게도 마감 전날, 혹은 당일에 부랴부랴 책을 읽기 시작하고 23시 58분에 서평 등록을 완료한 적이 적지 않다. 궁지에 몰렸을 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핑계로 서평 쓰기를 미뤘는데, 자연히 다듬어지지 않은 초고가 결과물로 남았고 그걸 돌아볼 때마다 스스로의 작문 실력을 한탄했다.

퇴고를 거듭할수록 글이 매끄러워지는 걸 알지만, 간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졸업과 취업 때문이라도 서평을 더 잘 쓸 필요가 생겼다. 메모하고 퇴고하는 습관에 더 공들여야겠다고 다짐했다😭

🙋🏻‍♀️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서평의 영향력을 역설하며 적극적으로 읽고 쓰기를 장려한다. 서평 쓰기를 부지런히 연마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168쪽)
서평 쓰기는 단순한 개인적 도락을 넘어서서 강력한 정치적 행위로 이어집니다. 여러분이 좋은 책을 읽고, 멋진 서평을 쓰는 것은 우리 사회를 변혁시키는 교양 혁명의 첫 걸음입니다. …우리가 쓰는 오늘의 서평에 우리가 사는 사회의 내일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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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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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띠지 맛집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나온 책 답게, <이상한 정상 가족>의 표지에도 주제를 관통하는 의미가 숨어있다. 이 책의 표지에는 회초리로 자녀를 체벌하는 부모, 가부장적인 아버지, 육아에 지친 어머니 등이 그려져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상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가족들이 크고 작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한 정상 가족>은 이처럼 우리가 예민하게 포착하지 못했던 가족의 이면과 폭력, 그리고 사회적 인식을 드러내는 책이다.

-
요즘 아동학대가 큰 이슈다. 많은 사람들이 학대 당한 아이의 소식을 듣고 눈물 흘리며 분노한다. 사실 그동안 뉴스로 보도된 아동학대 사건은 많았지만 사건이 되풀이 될 때마다 가해자를 악마라고 부르며 비난할뿐, 제도적인 차원에서 눈에 띄는 성과는 듣지 못한 것 같다.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변하지 않아서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26쪽)
아이를 훈육하기 위해 때린다는 주장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을 괴롭히는 항변 1순위다. 상담원들이 신고를 받고 현장 조사를 나가면 "내 자식 내가 가르치는데 웬 참견이냐"라며 상담과 조사를 거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극히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고의적 폭력이라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우발적 체벌이 통제력을 잃고 치달은 결과라는 것이 그간 숱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아동학대 가해자를 옹호하는 게 아니라, 체벌이 일상화된 가정이라면 언제든지 학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논지이다. <이상한 정상 가족>은 이처럼 아동인권과 관련한 문제를 언급하고 한국사회의 실상을 파헤친다. 과거에는 여성이 폭력을 당하는 걸 문제삼지 않았지만 현재는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현재는 폭력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아동학대도 미래에는 잘못이라 말하고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와닿았다.

-
이 책을 읽으면서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적으로 새로 알게된 사실이 많았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을 그 예시로 들 수 있겠다. 흔히들 '동반자살'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을 발음하면, 생활고 때문에 목숨을 끊은 가장과 자녀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압축적 근대화가 낳은 부작용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동반자살'은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므로 부적절한 용어이다.

🔖(79-80쪽)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은 ...부모가 자기 뜻대로 자녀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퍼뜨립니다.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라는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비극으로 잘못 인식하도록 만듭니다.

저자는 이러한 표현의 위험성을 제고하고자 25개 언론사 사회부에 의견서를 보내고 기자들과 씨름했다고 한다. 견고한 사회의 인식에 맞서 행동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
저자는 궁극적으로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보다 '행복하고 안전한 가족'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정에 대한 사회(정부)의 개입이 사생활을 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과정의 일환이며, 예시로 든 스웨덴의 경우가 인상적이었다.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부모의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나라다.

🔖(218-219쪽)
스웨덴이 법으로 부모의 체벌을 금지한 정책에는 취약한 개인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강자인 부모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가치관이 배어 있다. 그럼 이는 국가가 가족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전체주의적 방식일까? 스웨덴인들은 정반대로 이를 지극히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진정한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이지 않는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도 서로 의존적이고 굴욕을 강요하는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한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바라본다. 국가는 이런 굴욕감에서 개인을 해방시킬 의무가 있다.

🔖(239쪽)
돌봄은 공적 가치를 지닌 공공재다. 특정한 성, 계급에게 일임해서 해치울 일이 아니라 민주적 정부와 시민 모두가 책임져야 하는 과제다.


스웨덴이 법으로 부모의 체벌을 금지한 정책에는 취약한 개인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강자인 부모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가치관이 배어 있다. 그럼 이는 국가가 가족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전체주의적 방식일까? 스웨덴인들은 정반대로 이를 지극히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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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습니까? 믿습니다! - 별자리부터 가짜 뉴스까지 인류와 함께해온 미신의 역사
오후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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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별자리 같은 거 믿지 않아. 왜냐하면, 논리적인 INTP니까!"

-
사실 나는 INTP가 맞다(!) 그리고 별자리 운세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위의 문장은 딱히 설득력이 없다. “나는 INTP”라고 소개하는 건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MBTI 밈에 기반하며, 과학이라기보단 미신에 가깝기 때문이다. MBTI 과몰입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근거 없는 믿음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식 검사 결과는 정확하다!라고 따질 수 있겠지만 이게 요지는 아니니까 넘어가자.)

📗 『믿습니까? 믿습니다!』는 이처럼 크고 작은 ‘미신에 대한 썰’을 풀어놓는다. 저자인 오후 작가님의 글이 쉽게 잘 읽혀서 (어투도 그렇고) 책 깨나 읽어서 똑똑한 형이 술자리에서 꺼낸 얘길 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형이 없지만 아무튼) 인류사에서 큰 역할을 담당한 가부장제나 종교, 각종 사상들을 ‘미신’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낸 관점이 흥미로웠다.

-
#미신 의 사전적 정의는 “과학적ㆍ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음. 또는 그런 일.
”이다. 앞서 말했듯이 별자리나 MBTI처럼 우리 주변에는 미신이 많다. 운동선수의 징크스나 손금, 사주는 대표적이고 인기 있는(?) 미신이다.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인이 많을 텐데, 우리는 왜 미신을 믿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341쪽) 특정한 행동이나 사물이 어떤 초자연적인 힘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을 지킴으로써 행운이 온다고 믿으면, 우리는 미래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인생은 한치 앞도 알 수 없지만 안정적인 미래를 살고 싶다는 욕망이 미신을 만들고 발전시킨 것이다. 저자는 심지어 ‘농사’도 미신이라고 주장하며 미신 덕분에 문명이 탄생했다고 덧붙였다.

🔖(39쪽) 나는 농경을 실수나 사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농경을 ‘인류 최대의 미신’이라 생각한다. …농경을 한 이들은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아는 것은 콩 심으면 콩이 난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믿었다. 농경이 더 풍요로운 삶을 선사해줄 것을.

『총, 균, 쇠』나 『사피엔스』 같은 인류학 책에서 농사를 ‘실수’나 ‘사기’라고 표현한 건 들어봤지만, 농사가 ‘미신’이라는 워딩은 처음 봐서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
오후 작가님은 흥미로우면서도 뼈때리는 문장을 짓는 데 재능이 있는 것 같다.

🔖(54쪽) 신화를 보다 보면 신의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그건 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 신으로 상징되는 당시 사회규범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161쪽) 과거 씨족 사회에서는 보통 조상신을 모셨다. 하지만 농촌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이제 조상신을 모시는 무당은 찾아보기 힘들다. 역사는 흘러가니 새로운 신도 등장한다. 심지어 맥아더를 모시는 무당도 있다.

🔖(173쪽) 종교는 미신의 프랜차이즈를 고심한 결과다.

🔖(189쪽) 만약 누군가 종교를 이유로 인권이나 가치를 무시하려든다면, 그는 종교를 지키는 게 아니라 그냥 소수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262-263쪽) 『공산당 선언』은 복잡한 이론서가 아니라 종교 교리에 가깝다. …자본주의는 더욱더 종교에 가깝다.

🔖(335쪽) 지금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가짜 뉴스가 아니다. 진짜 위기는 더 이상 우리에게 권위를 주는 뉴스가 없다는 것이다.

🔖(376-367쪽) 사람들이 상상을 진지하게 믿으면 그것은 실현 가능한 것이 된다. …미신은 인류와 함께 존재해왔고, 세상을 바꿔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아마 둘 다겠지.

-
결국 저자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인간은 늘 불안하고 미신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현실은 여전히 예측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믿습니까? 믿습니다!』 덕분에 세상을 보는 관점이 조금이나마 넓어진 것 같고 지루하지 않게 완독할 수 있어서 좋았다!

PS. 4는 재수가 없다는 미신이 있지만 작가님의 네 번째 책은 흥할 것 같습니다ㅋㅋ


신화를 보다 보면 신의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그건 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 신으로 상징되는 당시 사회규범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 P54

미신은 인류와 함께 존재해왔고, 세상을 바꿔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아마 둘 다겠지.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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