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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평점 :

“나는 장애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랬던 내가 그 불쌍한 장애인들 속으로 떨어졌으니 인생이 비참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 태수가 왔지. 그런데 그 장애인이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 태수는 나한테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줬지, 충격적으로.”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 박경석씨가 “당신에게 정태수는 왜 그토록 소중한가요”라는 질문에 답한 것이다. 박경석씨는 친구(정태수씨)를 통해 ‘그냥 사람’을 직접 경험했고, 나는 『그냥, 사람』의 저자 홍은전 작가를 통해 간접 경험했다. 그말인즉슨, 이 책이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주었기에 소중하다는 뜻이다.
『그냥, 사람』은 상처 입고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 자녀를 특수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릎 꿇은 사람,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라며 시위하는 사람, 그들은 무정한 세상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불편함을 감각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이런 글을 보고 구질구질하다고, 병신이라고 가볍게 모욕을 던질 수 있겠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2013년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가 보도되었을 때, 나는 태평하게 거실 소파에 앉아서 ‘저게 그렇게 슬퍼할 일인가? 그냥 죽을 때 됐으니 죽은 거지’라고 말했다가 부모님께 크게 혼이 났던 적이 있다.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가 있냐고, 그런 생각은 뜯어고치라는 훈계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때부터 ‘아, 남의 일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나는 그제서야 그 충격과 슬픔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거짓 보도에 분노하고, 다음에는 사망자와 실종자수에 놀라고, 마지막엔 유가족들의 슬픔을 글로 배웠다. 일 년 전 부모님께 혼나고 곱씹어보지 않았더라면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충격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함께 울지 못하는 게 창피한 일임을 이제는 안다.
『그냥, 사람』의 첫 번째 글은 단원고 이야기이다. 잘 읽혔고, 슬펐고,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글은 탈시설에 관한 것이었다. 애송이 같은 비장애인으로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여서 단번에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계속해서 읽었다. 책을 덮을 즈음에야 탈시설 운동을, 자립을 응원하고 연대해야겠구나 라는 일차원적인 감상을 뱉었다. 부끄럽게도 여지껏 장애인과 사회문제에 대해 무심해서, 이 분야에 대해서는 느릿느릿 사유할 수밖에 없었다.
(79쪽)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장이 아니다. 가장 아픈 곳이다. 이 사회가 이토록 형편없이 망가진 이유, …장애인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버리고, 병든 노인들을 버려서가 아닌가. 그들은 가장 먼저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 이 세상의 브레이크 같은 존재들이다. 속도를 낮추고 상처를 돌보았어야 한다. …가장 아픈 곳으로부터 연결된 근육들의 연쇄적인 강화만이 우리를 함께 강하게 만들 것이다. 생명을 포기하는 곳, 연대가 끊어지는 그 모든 곳이 시설이다. 그러니 모두들, 탈시설에 연대하라.
늦었지만 새로운 세계관이 열렸으니 내 우물을 벗어나 다른 우물에도 뛰어들어야겠다. 탈시설과 관련해서는 『시설사회』(와온, 2020)나 다큐 <어른이 되면>을 통해 더 공부해보려고 한다.
어쩌다보니 세월호와 탈시설 이야기를 좀 많이 했는데, 『그냥 사람』의 후반부에는 동물도 등장한다. 저자는 반려묘 카라와 홍시를 입양하며, 인간 약자에게 향하던 공감을 동물에게도 돌리기 시작하고 더 나아가 ‘탈육식’을 결심한다.
(220쪽)
명색이 고통을 기록하는 활동가인데, 두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후에야 내가 듣고자 했던 고통엔 오직 인간의 자리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28쪽)
인간은 어디까지 공감할 수 있고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까. 삼시 세끼 고기나 달걀, 우유를 먹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내가 숨 쉬는 모든 자리가 최전선처럼 느껴진다.
비록 반쪽짜리이긴 하지만… 3년차 채식주의자로서 저자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점점 약해지던 다짐을 다시 굳혔다. 여러모로 유익한 책이었다.
"나는 장애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랬던 내가 그 불쌍한 장애인들 속으로 떨어졌으니 인생이 비참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 태수가 왔지. 그런데 그 장애인이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 태수는 나한테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줬지, 충격적으로."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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