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간주되는 능력과 특징-언어, 이성, 복합적 감정, 효율성, 자립성-이 결여되었다는 이유로 동물의 고통은 삭제 또는 왜곡된다. 어떤 능력을 갖추거나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차별받는다는 점에서 동물은 비장애중심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P10

서울우유의 유기농 우유 광고는 공개된 지 단 열흘 만에 철회되었는데, 당시 주된 비판으로 제기되었고 많은 이들이 동의하였던 지적 중 하나는 서울우유가 여성을 "젖소"에 비유하였다는 것, 즉 여성을 동물화하였다는 점이었다. 이는 여성을 동물화하는 남성 중심주의의 상징체계와 그 폭력성에 대한 반발이지만, "여성은 젖소가 아니다"라는 말 속에 "‘비참한 삶‘의 대명사로 쓰이는 동물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은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마땅히 인간 대우를 받아야 할 여성들이 동물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만이 문제 삼아질 뿐(...) "동물이 처한 삶의 곤경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물이 처한 삶의 곤경을 알기에 자신과 동물을 차별화하려는 적극적인 인식이 가동되는 것이다." - P21

영성이란 다른 존재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자 보이지 않는 것을 응시하는 상상력이다. - P35

비거니즘을 개인의 미각을 조절하면 되는 문제거나, 착한 소비의 문제인 양 호소하는 방식은 20년째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P40

우리가 비거니즘을 개인의 의지와 선택으로만 볼 때, 어떤 현실을 구체적으로 뚜렷하게 지우게 되는지도 질문해야 한다. 비인간 동물과의 연결성은 강조하면서, 인종 간 계층이나 빈곤에 대해 외면하는 태도가 재생산하는 현실은 무엇인가.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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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는 무엇일까? 민주주의는 정해진 한 가지 모습일까, 아니면 하나 이상의 무엇일까? 선거를 치른다면, 또는 언론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이 있다면 일단 민주주의일까? 아니면 이보다 막연한 집단의 태도, 예를 들면 서로를 존중하며 정중하게 대하는 구성원 같은 것이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일까?

민주주의의 모든 부품에 적용되어야 할 협상 불가한 원칙이 하나 있다. 모든 시민이 정치 체제의 자유롭고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입지를 누려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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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다가 중턱에 차를 세웠다. 희끄무레한 구름이 안개처럼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팔뚝에 와 닿는 물방울이 시원했다. 깊은 계곡 아래서부터 실을 꼬아 만든 것처럼 가느다란 수증기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등을 대고 누운 차의 보닛이 보송보송했다. 한껏 뻗은 손이 닿는 데가 없었다. 비는 끊임없이 내리고 산맥은 푸르게 젖었다. 분홍색으로 노란색으로 물든 빗방울이 파도치는 안개 속으로 낙화했다. 어디선가 미지의 생물의 부상하는 소리가 들렸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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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상실을 두려워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것 외에는 두려울 게 없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겁에 질려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 P199

유령이 되는 건 외로움에 대한 저항이 실패하는 과정이었다. - P218

저마다의 이유로 뛰쳐나왔을 사람들이 피켓을 들어 올릴 때마다 도로가 한 가지 색으로 물들었다.

가끔 사진을 확대해볼 때가 있어. 점으로 존재하던 픽셀이 커다란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확대하면 사진은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변해. 거친 사막은 부드러운 뺨이 되고, 시멘트 길의 물웅덩이는 잔잔한 호수가 되고, 시퍼런 곰팡이는 넓은 녹차밭이 되는 거야. 원본보다 흐릿하지만 덜 역겹고 추해지지. 그걸 또 확대하면 마지막에 라벤더나 올리브처럼 한 가지 색만 남아. 어디선가 한 칸의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작은 픽셀이 모니터를 꽉 채우는 걸 보면 위안이 돼.

언젠가 혜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지금 눈에 비치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확대하고 또 확대하면 과연 무슨 색이 남을까. 나는 무심코 혜를 찾았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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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유령이 되었군요.
가만히 나를 보던 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쌓아온 것들을 전부 무너뜨린 경험이 나에게도 있었다. 숨 쉬는 법을 모르던 물고기는 숨 쉬는 법을 잊은 물고기가 되었다.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거대했다. 끝났다거나, 실패했다거나, 돌이킬 수 없다는 말보다는 유령이 되었다고 하는 편이 나았다. - P146

습관적으로 손을 내밀자 조가 복숭아 맛 젤리를 손바닥 위에 툭툭 쌓아주었다. 언제부터 베팅에서의 승패와 상관없이 주전부리를 사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더불어 거절할 타이밍 또한 모르는 새에 놓치고 말았다. 나는 반투명한 분홍색 젤리를 하나 입에 넣었다. 약의 목적이 치료에 있다면 젤리도 일종의 약이랄 수 있었다. 쓴맛이 감돌던 입 안에 복숭아 향이 퍼지면서 답답하던 속이 편해졌다. - P150

무엇을 믿어야 할지 선택하는 과정은 젖은 운동화를 신고 돌아다니는 일과 비슷했다. 멈추기 전에는 발을 말릴 수 없었다. - P163

나는 진통제를 복용하듯이 덕질을 했다. 아이돌, 배우, 유튜버, 캐릭터 상품 등등 좋아하는 감정에 한 발이라도 걸치면 전부 덕질의 계기가 되었다. 돈이 들기는 했지만, 원래 사원이 있던 시절부터 치료에는 대가가 필요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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