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인지적인 변화, 인식의 경계를 넓혀가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경이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이전까지는 경이감이라고 하면 과학을 통해 인간이 우주와 세계를 보며 느끼는 감정을 주로 표현했는데, 이제는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게 될 때 경이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완전히 다른 존재와의 접촉이나,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거나, 혹은 타인이 나를 이해하게 될 때 느끼는 인식의 전환, 인식의 확장이 있잖아요. 거기에 관심이 있어요. 우주를 보며 느끼는 경이감도 물론 좋아요. 그래서 과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도 있으니까요. 저는 과학 소설 역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할 수 있는 문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SF는 세상을 넓히는 장르 같아요.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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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일 오후 6시, 박자혜는 함께 근무하는 조선인 간호사들을 옥상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만세운동에 동참하자고 제안하였다.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 같은 여자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고 주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자혜는 사람을 살리는 우리가 나라 살리는 일을 왜 못하겠느냐고 역설했다. 간호사 네 명이 그와 뜻을 같이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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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으면 다 언니 - 좋아하는 마음의 힘을 믿는 9명의 이야기 : 황선우 인터뷰집
황선우 지음 / 이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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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초, 비슷한 시기에 여성 직업인 인터뷰집이 세 권이나 출간되었다. 바로 『내일을 위한 내 일』(창비),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한겨레출판), 『멋있으면 다 언니』(이봄)였다. 세 권의 인터뷰이 라인업이 약간씩 겹쳐서 어느 책부터 읽을지 행복한 고민을 했는데, 『멋있으면 다 언니』를 가장 먼저 손에 넣었다. 장애인의 가족이며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장혜영 의원의 인터뷰는 이 책에만 실렸기 때문이다.

국회는 거드름 피우는 아저씨들만 가는 곳인 줄 알았는데 장혜영 의원 덕분에 진짜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젊은 여성 의원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후원회장은 <일간 이슬아>로 유명한 이슬아 작가이다. 특히 이 책에는 두 사람의 인터뷰가 연달아 실려 있는데, 연대하는 ‘멋진 언니들’의 관계성이 돋보인다.

『멋있으면 다 언니』는 90년대생부터 60년대생까지, 치열하게 삶을 살아낸 언니들을 만나며 롤모델 삼을 기회를 선물하는 책이라서 좋았다. 지금 멈추지 말자, 계속 가보자, 신념대로 하다보면 언젠가는 된다. 그런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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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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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시반까지 투표결과를 지켜보다 잤다. 5년간 겨울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치달았지만 애석하게도 아침 아홉 시에 눈이 떠졌다. 햇빛이 눈치 없이 따뜻했다. 기왕 일어난 김에 조용히 분노를 글로 옮기기로 했다.

아, 참고로 나는 당신이 1번을 뽑았거나 또는 2번을 뽑았다는 이유만으로 적대하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건 ‘혐오‘이고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은 그와 별개다.

tmi지만 내 가족들이 날마다 여성혐오,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으며 나를 빡치게 해도 함께 저녁밥을 차려 먹으며 살아간다. 좀 더 과격(?)하고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죄‘와 ‘죄인‘을 구별해서 생각하는 거다. 미리 일러두자면 그게 이 리뷰의 결론이다.

이번 대선을 리뷰하는 기사들 중에 ˝혐오가 이겼다˝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띄었다. 적확한 단어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곧바로 <타인에 대한 연민>이 떠올랐다.

이 책은 법철학, 여성학 등을 연구하는 마사 누스바움이 2016년 미국 대선 결과를 듣고 충격을 받아 쓴 것이다. 누스바움은 과도한 두려움과 혐오를 경계했으나 결국 혐오 발언을 일삼는 트럼프를 선택하고야 말았던 미국을 안타까워했다.

🔖(30쪽)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퇴임 연설에서 ˝민주주의는 우리가 두려움에 굴복할 때 무너진다˝라고 말했다(...) 두려움에 굴복하는 것, 즉 그 흐름에 휩쓸리는 것, 회의적 사고를 거부하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다.

🔖(40쪽)인종 혐오, 여성 멸시, 이민자들에 대한 두려움, 장애인을 혐오하는 감정들 중 불가피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은 결코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왔을 수 있으나 앞으로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러지 않을 수 있다.

🔖(147-149쪽)특정 집단을 우리보다 더 동물적이라고,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냄새가 나고 성적이며 죽음의 악취가 풍기는 집단이라고 규정하면 어떨까? 그런 집단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지배하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닌 그들이 동물이고 더럽고 냄새가 나는 대신 우리는 순수하고 깨끗하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발밑에 있다. 우리가 그들을 지배한다. 이와 같은 모순적 사고가 골치 아픈 동물성과 자신과의 거리를 창조하는 방법으로 인간 사회에 만연해 있다(...) 말도 안 되는 암울한 생각 같지 않은가? 인간은 누구나 유사한데 어떻게 이런 분리가 가능하단 말인가? 지배당하는 집단이 자신들도 비슷한 인간임을 증명하면 이는 스스로 무너질 개념이다.

🔖(152쪽)혐오는 사회적으로 건설적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이 혐오를 느낄 때 원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회피이기 때문이다.

K-트럼프 보유국이 된 우리나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 <타인을 위한 연민>은 특히 사회에 ‘두려움‘이 과도해지며 ‘분노, 혐오, 시기‘를 증폭시킬 때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편가르기, 배제의 정치가 일상이 되어버린 미국의 현실을 비판하고,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희망, 사랑‘을 제시한다.

솔직히 희망과 사랑은 너무 부드러운 말이라 두려움과 혐오에 비해 약하다고 느껴진다. 정말 그걸로 지금 득세한 사람들과 손잡을 수 있을지 의심된다. 그러나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때라야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에 묵묵히 누스바움의 말을 경청하고 믿을 뿐이다.

🔖(264쪽)킹이 실제로 우리에게 상상해보라고 한 것은 이것뿐이다. 조지아에서 ‘노예의 자손과 노예 주인의 자손이 형제애로 한 테이블에 함께 앉는 것‘ 말이다. 모든 의견이 일치할 필요도 없고 만연한 인종 차별주의가 완전히 과거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지금은 이미 실현되었다.

🔖(266쪽)사랑은 바로 타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최소한의 선을 행하고 또 변할 수 있는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129쪽)킹이 그랬던 것처럼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하는 것(...) 타인의 인간성을 포용하면서 그들이 저질렀을지 모르는 잘못된 행동만을 반대해야 한다. 그래야 동료 시민들의 말과 행동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친구로 여길 수 있다.

당장 5월부터 시작될 새 정부,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는 사람들과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협력해야 한다니 존나 암울하다... 그치만 살아야지 어떻게든 같이 살아야지 그러니까 더 공부해야지 하면서 멘탈을 부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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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형제들 - 친일과 항일, 좌익과 우익을 넘나드는 근현대 형제 열전
정종현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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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말 첫줄부터 강렬하다. 한국 근현대사의 ‘특별한 형제들‘ 중에 김일성종합대 교수와 서울대 교수 형제가 있었다니;; 누군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피곤한 인생을 살았을 듯싶다. 나도 가족들과 정치성향이 정반대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닌데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경우는 처음 봐서 자세한 내막이 궁금해졌다🤔

책을 펼쳐보니 이 이야기는 평양 출신 정두현, 정광현 형제에 관한 것이었다. 개화기에 태어나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출세보다 학문연구와 사회공헌에 더 관심을 가졌던 이들의 행보는 동생 정광현이 윤치호의 사위가 되면서 갈리기 시작했고(윤치호는 <애국가> 작사가, 식민권력에 협력함) 결국 각자의 진영으로 나아갔다.

첫장부터 스케일이 굉장한데 다음 장도 검찰총장 형 vs. 남로당원 동생 이야기라 만만치 않다;; 물론 책 내용이 전부 이런 식으로 대립하는 형제들만 나오는 건 아니고,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형제(근데 이제 친일을 곁들인?)라든가,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삼남매가 투옥하는 경우라든가, 의형제를 맺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큰 흐름 위주로만 쓰인 교과서에서는 생략되었을 법한 이야기들이라 새롭고 신선했다.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그리고 이렇게 평가 받았구나- 하는 것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어조는 차분하지만 분명하다. 끊임없이 독자에게 권하고 묻는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다르게 생각해보자.

우리는 여태 월북한 시인, 소설가, 예술가를 빨갱이라며 매도하기만 하고, 그들의 작품에 귀기울인 적이 없지 않았나?

항일운동과 독립투쟁에 인생을 다 바친 사람들을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삶을 진지하게 연구해볼 기회를 차단해버리지는 않았나?

친일 매국노 또는 종북 공산주의자라는 프레임만으로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사람들을 단정했던 걸 멈추고 다른 방향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깨뜨리고 유연하게 그리고 세심하게 다시 짚어보자.

그동안 역사를 서술형이 아니라 객관식으로, 단 하나의 정답만 존재한다고 배웠던 사람들은 『특별한 형제들』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모든 사람의 정치 성향을 친일 아니면 종북(요즘엔 친중이라고 말하던가?)이라고 이분법으로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평가도 하나의 프레임으로 굳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긋기와 축출로 무장한 정신은 잠시 내려놓은 채 일단 책을 펼치고, 각자의 형제를 떠올리며 읽어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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