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이유로 뛰쳐나왔을 사람들이 피켓을 들어 올릴 때마다 도로가 한 가지 색으로 물들었다.
가끔 사진을 확대해볼 때가 있어. 점으로 존재하던 픽셀이 커다란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확대하면 사진은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변해. 거친 사막은 부드러운 뺨이 되고, 시멘트 길의 물웅덩이는 잔잔한 호수가 되고, 시퍼런 곰팡이는 넓은 녹차밭이 되는 거야. 원본보다 흐릿하지만 덜 역겹고 추해지지. 그걸 또 확대하면 마지막에 라벤더나 올리브처럼 한 가지 색만 남아. 어디선가 한 칸의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작은 픽셀이 모니터를 꽉 채우는 걸 보면 위안이 돼.
언젠가 혜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지금 눈에 비치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확대하고 또 확대하면 과연 무슨 색이 남을까. 나는 무심코 혜를 찾았다. - P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