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핵심 주제어인 책의 제목을 아이러니하게도 ‘동물 너머‘로 지은 이유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동물이 종종 동물권의 ‘동물‘을‘넘어’서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련 담론의 지형 ‘너머‘ 산적한사회적 문제를 드러내고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 너머‘의 ‘너머‘로 강조하고자 한것은 어떤 거창한 윤리적 전환이라기보다는 시선의 이동이다. 동물과 관련해 우리의 시선이 집중돼 있었던 그곳 너머에 다른 많은 문제가 존재하며 이것들은 다른 방식의 질문과 사유를 요구한다. - P8

지배와 소유에서 애정, 친밀감, 돌봄을 강조하는 것은 펫과의 관계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책임을 만든다. 그리고 이 책임은 자본주의 사회의 많은 것이 그렇듯, 관련시장이 형성되는 일과 밀접히 맞물려 있다. 바로 이 맥락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돌볼 것인가‘는 윤리적 질문인 동시에 경제적 질문이 된다. 펫과 우리의 관계는 다른 무수한 관계와 마찬가지로 사회문화적·윤리적·의료기술적 실천인 만큼이나 경제적 실천인 것이다. - P25

그리고 그 일상의 경험은 이렇게 두서없이 산만한 대화처럼 일어나며, 그 속에는 자본과 비자본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 P37

여기서 우리는 동물에 대한 돌봄 문제를 넘어 시야를 조금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 둔촌 주공에 남겨진 길고양이들을 돌보기 위해 사람들을 모이게 한 더 큰 맥락은 바로 1990년대 이후 도시의 일상 풍경이 되어 버린 재개발·재건축이다. 둔촌 주공과 같은 대단지 아파트는 현대 한국의 경제성장과 도시화, 중산층의 형성 그리고 그들의 계급적 욕망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공간으로, 1970년대 강남에서 시작한 신도시 개발 속에서 서울 밖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 P61

축산 현장에서 개별 노동자가 감수하는고통은 신체적·정신적·도덕적 차원에서 복잡하게 얽혀 생산 및 재생산된다. 여기서 고통은 작업 자체의 고된 성격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동물복지의 차원에서 개별 동물들을 감정을가진 존재인 동시에 결국은 몇 킬로그램의 고기로 접근해야하는 모순된 상황으로부터 기인하기도 한다. 특히 도살 행위를 통해 동물들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느끼는 정서적 고통은 노동자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이 같은 차원의 고통, 즉 노동자와 동물을 묶는 복잡한 행위와 관계로서의 고통은 축산동물의개별화된 고통이나 신체적 통증을 감소시키는 데 초점을 두는동물복지 제도에서는 온전히 파악될 수 없다. - P74

따라서 인간동물 관계는 동시에 인간-인간 관계를 뜻하기도 한다. 순수하게 동물만의 문제, 순수하게 인간만의 문제란 없다. 하지만 분리의 관점에서 인간-동물 관계를 바라보고그 사이를 조정하려는 노력은 불가피하게 다양한 인간 집단들사이의 역사적 얽힘을 배제할 뿐 아니라 동물에 대한 배려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사회적 통제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 P89

HSI의 캠페인은 복날이라는 ‘잘못된 문화’에 대한 분노와 혐오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양이 된개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자극하고, 이 문화를 시급히 중단시켜야 한다는 서구의 식민주의 후) 식민주의적 감수성에 호소한다. 그럼으로써 마치 이 상황은 억압적인 유색인종 남성으로부터 희생되는 유색인종 여성을 구해야 한다는 19세기 서구의 식민주의·제국주의적 권력 담론을 전 지구화된 현세상의 인간-동물 종간inter-species 관계 안에서 재재생한다. 다시 말해 이 맥락에서 비서구의 동물은 식민주의적 구원의 대상인 유색인종 여성으로 인종화된다. - P122

인간 가족과 달리 동물 가족은 분리되면 안 된다고 주장하며 야생동물을 위한 생태 통로의 설치에 큰 역할을 했던 이스라엘의 생태학자들에게 고향을 잃은 팔레스타인인의 사회적 고통은 왜 불가피하다고 여겨지는가? 터키 해안가에서 발견된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의 모습은 세계 시민의 심금을 울리지만 매일 세계곳곳에서 국경을 넘다가 부상당하거나 죽는 수많은 난민과 이주민의 존재는 왜 동정은커녕 혐오의 대상이 되는가? - P1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적 그리스도와 신학적 예수 - 역사적 예수 탐구에 대한 성찰 비아 시선들
데일 C. 앨리슨 지음, 김선용 옮김 / 비아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일 앨리슨은 듀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약성서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신약성서를 가르치고 있는 상당수의 학자가 자신을 역사가라고 칭하고 있는데, 데일 앨리슨도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신앙 때문에 학문적인 양심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 같아 보입니다. 복음서와 역사적 예수를 주로 연구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부제가 ‘역사적 예수 탐구에 대한 성찰‘인데, 데일 앨리슨 자신의 역사적 연구에 대한 입장을 무겁지 않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학문적인 글은 아니라서 개인적인 체험과 단상 등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라고 하면, 여전히 유럽 합리주의 영향 아래의 예수 연구나, 미국의 예수 세미나를 우선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데, 최근에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비교적 보수적인 학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이 연구에 열을 올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데일 앨리슨은 톰 라이트 처럼 ‘모든 것을 다 믿는‘ 학자는 아니고, 비교적 중도적인 입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부분이, 복음서에서 예수가 직접 한 말을 가려내는 것인데, 크로산이나 보그와 같은 미니멀리스트들은 상당히 이를 최소한도로 봅니다. 이것은 비유사성, 다중 증거, 일관성 및 당혹감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그런데 데일 앨리슨은 이 방법을 비판합니다. 같은 기준을 가지고 완전히 다른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자신의 기대와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할 때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는 상태고, 근거들은 여기에 끼워 맞추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 자신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런 경향 때문에 예전에 슈바이처는 역사적 예수는 그 연구자들의 수만큼 다양하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데일 앨리슨은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성서에서 예수의 말의 진위를 가리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정경복음서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예수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예수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데일 앨리슨은 인간기억에 대한 과학연구를 자신의 작업에 많이 도입하려고 합니다. 이런 작업을 하다보면 세부적인 차이를 아우르는 일반적인 예수의 모습을 도출해 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예언자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데일 앨리슨의 작업은 실제로 역사가가 예수의 언명의 진위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가 종말론적인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뭐 대수로운 일이냐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예수가 바라던 종말은 오지 않았고, 이런 곤란함을 어떻게든 해석해내야 하는 것이 후대 그리스도인의 과제였다는 점에서 예수를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결론이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데일 앨리슨은 길들여진 예수는 결코 예수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역사적 예수가 어떤 합의에 도달할 일은 없을 겁니다. 어떤 단체의 순수한 기대와는 반대로 그리스도교는 학계의 지형과는 달리 대다수의 교인들이 교리적인 믿음을 지키는 것을 순전한 믿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슬아슬 줄타기 하는 기분으로 신앙을 지켜가는 분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이야기와 기억의 관계, 기억과 해석의 관계, 해석과 잘못된 해석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해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나를 포함한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이 예수를 그의 해석자들에게서 깔끔하게 분리해 낼 수 있는지 의심이 커짐을 고백해야겠다. - P64

‘신학은 얼마나 역사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개인의 가정, 세계관, 신학에 따라 다르다고 말이다. - P101

세계 문명과 종교에서 예수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하면, 예수에 대해 당혹스러울 만큼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혜를 가르쳤던 비종교적 예수, 종말론적 예언자 예수,
사회 개혁자 예수 등 예수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있는 것은랍비, 그리스도교를 헬라화한 인물, 묵시종말론자 등 바울에대한 다양한 이해가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 P116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학계에서 주관성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 고안한, 전통적인 진정성 판별 기준이 기대만큼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폭이 크다는 사실은 우리가 여전히 주관성에 뿌리 박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많은 학자가 끊임없이 방법론을 좀 더 조밀하게 만들고,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진정성 판별 기준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 질서를 부여하지는 못했다. 거의 비슷한 방법론을 사용하더라도 그 방법론을 통해 드러난 예수의 모습은 책마다 다르다. 비유사성, 다중 증거, 일관성 및 당혹감이라는 기준을 전혀 들이밀지 않는다 해도 오늘날 연구들이 균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 P141

이처럼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 대화에 대해 세세한 부분보다는 그 일의 윤곽, 혹은 대략적인 취지를 기억하며 그기억에서 일정한 흐름과 의미를 추출한다. 이를 고려하면, 일부 자료에 때묻지 않은 기억이 보존되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진정성 판별 기준으로 개별 항목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보다는 반복되는 흐름을 찾고 전체 그림big picture을 찾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믿으려면, 가장 믿을 만한 것을 먼저 신뢰해야 한다. - P150

내가 말하려는 요지는, 체험 증언restimony과 체험에 관한 설명 explanation은 별개이며 예수와 관련된 기적 이야기들을 꼭 순전히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 혹은 모세 전승 같은 기존의 이야기를 재창작한 것으로 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기적 이야기 상당수가 예수 운동 초기에서 유래했고 일부는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우리가 이것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 P182

이들은 니케아 공의회를 이끌었고 그 공의회에서 흘러나온 주류 그리스도론을 대표한다. 비교적 최근까지 이들은예수에게 그리스도론이라는 구속복straitjacker을 입혀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예수의 인성을 가장 큰 철학적 문제로 여겼던 가현설주의자들을 비판했지만, 사실상 그들의 이야기는가현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 P203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같은 시대와 장소에 살았던 많은 사람처럼 예수는 고통과 박해 후에 커다란 심판이 도래하고 그 후에 초자연적인 유토피아, 죽은자들이 되살아나 거주하는 하느님 나라, 즉 영원히 악이 제거되고 전적으로 하느님의 통치를 받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밤이 지났고 낮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했다. - P227

종말론은 너무나 어려운 주제이며 손쉬운 정답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현대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이 문제를 두고 우리가 고민해 보도록 종용한다. 역사적 예수 탐구가 임박한 종말을 기대한 묵시적인 예수를 결론으로 내놓았다면, 예수와 진리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그러한 종말에 대한 기대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정교하거나 매력적인 설명이 있더라도 이를 직면하지 않는 설명은 현실 도피다. - P239

복음서의 문학적 먹락과는 다른 상황, 예수가 말을 했던 실제 삶의 배경을 알 수 없는 오늘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본문의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건설적인 논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의 의도는 훨씬 더 파악하기 어렵다. - P244

이렇게 예수 전승은 함박웃음을 짓기도 하고 고통스럽게 통곡하기도 하는 예수, 하느님의 임재와 부재를 아는 예수, 우리 중 일부가 죽기 훨씬 전에 경험하는 ‘천국과지옥‘을 삶에서 체험한 예수를 보여준다. - P2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른이 되면 -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보낸 시설 밖 400일의 일상
장혜영 지음 / 시월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은 정의당 국회의원인 장혜영씨가 발달 장애인인 동생인 장혜정씨와 시설 밖에서 보낸 400일의 일상을 담은 책이다.
여기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발달장애인의 일상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일상의 회복을 어떤 효능감의 입장에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다움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었다.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인 볼살빵빵티비도, 그런 의도에서 발달장애인인 동생과의 일상을 올리는구나 싶었다.

두 자매 모두 무사히 할머니가 될 때까지 좌충우돌하며 잘 살길, 그리고 장애인들이 격리되지 않고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을 누리며 사는 사회가 조금씩 현실화 되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 - 남북한은 동맹의 체인에 연루될 것인가
길윤형.장영희.정욱식 지음 / 갈마바람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대만해협 위기에 대한 분석과 실제로 유사시가 되었을 경우 동아시아 국가들이 취할 수 있는 군사적 대응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3명의 저자가 이 책을 썼으며, 각각의 저자들은 앞의 큰 주제 아래에서 대만해협의 전쟁 위기가 어떤 과정을 통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으며, 이를 둘러싼 일본과 남북한의 구체적인 대응 움직임 등에 대해서 분석합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비교적 우리나라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면,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우리나라에 좀 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한국의 전쟁에의 연루 가능성 때문이다.

중국의 군사력이 미국과 거의 비견될 정도로 성장했고 어느 부문에서는 뛰어넘었을 것이라는 분석에 놀랐다. 미국의 군사력이 압도적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내게는 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일본이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는 점이 대만해협을 둘러싼 위기를 좀 더 현실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드를 둘러싼 논쟁도 그동안 잘 따라가지 못했는데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연루 가능성에 대해 분석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주한미군의 유사시 차출가능성이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의 전쟁 연루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외교적인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