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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권세 - 전체주의 공포와 기능장애에 빠진 민주국가들에서 기독교의 정치적 증언
톰 라이트.마이클 F. 버드 지음, 홍종락 옮김 / 야다북스 / 2025년 1월
평점 :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첫 공적인 발언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저자에 따르면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배아의 형태로 이루신 일과, 하나님의 영이 그분의 백성 가운데서 주도적으로 행하시는 역사와, 때가 차면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사후에 구원받은 일부가 가는 ‘천국‘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인들의 수와 교회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늘어난 상태를 의미하는 것과도 별로 상관이 없다. 복음서는 이를 현재의 권력구조를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설명하고, 바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믿음을 통해 새 창조를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희미하게나마 표출되는 어떤 상태라고 생각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든,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에게는 자신의 자리에서 소위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들을 정치적 차원에서 실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셈이다. 이 책에서는 이를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다루면 좋을 것인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요한복음과 골로새서를 통해서, 성서에는 국가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관점과 전복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관점이 공존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긴장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며, 따라서 기독교인에게는 정치적 민감성이라는 덕목이 필요하다고 본다. 단순한 종교적 소비자로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정부의 권위는 존중하고, 다른 정부의 권위에는 대항할지 판단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제시한 불의한 정부에는 파시스트와 공산주의 같은 정체주의 정권, 기독교 민족주의, 탈자유주의적 시민 전체주의 등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당당한 다원주의라는 정치 절학을 근거로 한 정부 하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저자들은 성서학자이며 목회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데 주로 자신들의 성서 해석, 기독교 역사를 디딤돌로 사용한다. ‘탈자유쥬의적 시민 전체주의‘나 ‘당당한 다원주의‘ 같은 개념을 통해 다소 불필요한 논증을 구성하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피상적인 이해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단언하는 면이 있지만, 학술적인 책이 아니라 기독교가 전 세계적인 사회적, 경제적 혼란의 중심에 있는 상황에서, 경종을 울리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책이라는 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이 책의 몇몇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에 유의미한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와 푸틴의 미국와 러시아를 주로 염두에 둔 것 같지만,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국에 가장 시의적절한 책이 되었다. 현재 광장에 뛰져나온 기독교가 보여주는 모습은 진정한 신앙 감정이 아니라, 공포와 뒤틀린 애국심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간간이 보이는 호교론적인 발언은 힘이 없는데, 이는 상당히 많은 개신교인들이 광장의 기독교와 결을 같이 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답답한 이들은 이 책을 담론형성의 출발점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