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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퇴보하는 기업, 조직, 국가에 대한 반응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강명구 옮김 / 나무연필 / 2016년 7월
평점 :
[책 자체에 대한 글쓰기는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극우화에 기독교가 땔감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한 탄핵반대 집회를 전광훈 목사와 손현보 목사가 각각 주도하고 있고,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대한민국에 혐오와 반헌법적 가치를 퍼트리고 있다. 물론 이들이 기독교를 ‘과잉대표‘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앨버트 허시먼의 이 책을 읽으면서 퇴보해가는 기독교가 보여주는 행동방식의 대표적인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앨버트 허시먼은 퇴보해가는 조직에서 보이는 행동유형을 ‘이탈‘, ‘항의‘ 그리고 ‘충성심‘ 등의 개념들을 통해 설명한다. 교회의 ‘품질‘이 저하될 때, 구성원들의 이탈과 항의가 작동된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극우화되는 것이 불편한 경우 가장 쉬운 방법은 교회를 떠나서 자신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극우화라는 방식으로 퇴보화된 ‘일부‘ 교회를 떠나면 그만이다. 허시먼은 교회를 기초적인 사회조직이라고 보았으나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통계적으로 교회가 편의점의 숫자가 비슷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다니던 교회를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이는 퇴보에 대한 치유책이 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교회는 충성스러운 노인층에 의해 지탱되고 있으며, 이탈을 감행한 이들은 한동안 이상적인 교회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만 대부분의 교회의 질이 동시다발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현실만 파악하게 될 것이다. 허시먼이 이 책의 5장에서 논의하고 있는 ‘게으른 독점‘과 같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부는 대형교회로 이동을 하고 일부는 교회 조직 밖에서 비판자로 남게 된다. 극우화되는 경향이 노인층에서 보다 급격히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영세한 교회(새로운 구성원이 유입되지 않고, 이탈만 이루어지는 교회)는 전광훈과 손현보로 대표되는 기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손현보가 주도하는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에는 이러한 영세한 교회들이 상당히 호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의 전체 수는 적을지 몰라도 교회수는 상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항의‘의 방식이 교회에서 그렇게 유용한 반응양식인 것도 아니다. 항의의 방식은 퇴보의 치유책으로는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에 남아있는, 즉 충성스러운 고객이 생각하는 교회의 품질의 종류는 상당히 반문화적이다. 다양성을 포용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해석하려는 모습은 지양되고. 축출된다. 특히 한국교회가 민감한 동성애 등에 조금이라도 반대되는 이들은 낙인찍히고 출교된다. 이런한 태도는 정치적인 극우화로 쉽게 외연이 확장될 수 있음이 작금의 사태를 통해 어느정도 실증되었다. 그리고 전광훈 목사가 정신적 스승으로 삼은 고 김홍도 목사는 감리교에서 가장 큰 교회인 금란교회 담임이었으며, 그의 가족들이 현재도 감리교의 메가처치의 담임이다. 극우성향의 목사들이 교단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다른 교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탈은 가능하지만 항의는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한 대형교회에서 이탈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교회의 품질에 만족하지는 않지만, 공공악을 만들어 내는 교회를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신앙의 문제는 다른 차원이라, 허시먼의 책을 읽고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결정하는 기독교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극우적인 태도가 기독교 주류의 목소리는 아니라고 하려면, 즉 기독교가 퇴보하는 조직이 아니려고 하려면, 이탈과 항의의 방식이 교회 내에 건강한 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최적의 혼합형태를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조직에 잘 정착했다고 실증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