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시대의 전 세계적 위기 상황에 대한 교회의 해답이 한마디로 ‘하나님 나라‘라고 믿는다. 교회의 메시지와 사명은 하나님이 왕이시고, 하나님이 예수를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로 임명하셨으며, 교회의 소명은 하나님 나라 건설에 기여하는(for) 것이라고정리할 수 있다. "우리의 작업가설은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from) 것은 아니지만, 단연코 이 세상을 위한(for) 나라라는 것이다. 교회가 받은 하나님 나라의 소명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말하는 내용만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해 행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 P36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언약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창조세계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이고, 예수의 인격과 사역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는 시대를 초월한 추상적 이상이나 시공간의 해체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는 "언약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일하셔서 이스라엘의 운명을 회복하시고, 쓰라린 유배의시기를 끝내시고, 온 세상을 지배했던 악을 이스라엘을 통해 물리치시는 것"을 가리킨다." - P37

초대 교회가 볼 때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결코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배아의 형태로 이루신 일과, 하나님의 영이 그분의 백성 가운데서 주도적으로 행하시는 역사와, 때가 차면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었다. 이처럼 이미 선취되었고 지금 진전되고 있지만 여전히 소망의 대상이라는 의미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면, 초대 교회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지상의 제국이나 일시적인 영적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측면에 하나님의 왕권이 임하게 하려는 신실한 행동을 위한 비전과 소명이다. - P38

따라서 예수께서는 갈릴리의 반란이 실패하고 십자가 처형과 같은 로마 제국의 폭력의 흔적과 충격적인 기억이 도처에 남아 있는 곳에서 성장하신 셈이었다. 로마 군대는 그 지역을 휩쓸며 유혈사태와 파괴, 살인, 강간, 약탈을 일삼았고,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사역을 시작하셨다. - P54

바울이 네로를 몰아내고 기독교를 합법화하거나 심지어 제국 내에서 특권적 지위를 가진 종교로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원로원 의원을 대신 세우려는 궁정 쿠데타를 계획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지상의 권위에 복종하라고 촉구하는 로마서 13장 1-7절만 읽어보아도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예수께서주시다‘라는 선포가 중심에 놓인 바울의 복음에는 여러 사회정치적 함의가 있었다. 성경에 깊이 뿌리 내리고 부활하신 예수와의 만남으로 불붙게 된 바울은 세상의 주인이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이 아니라 다윗의 아들임을 마음으로 굳게 믿었다. 그런 바울이 이사야의 언어를 사용해 예수께서 "일어나 민족들을 다스리시고 민족들은 그에게 희망을 둘 것"이라고 선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님 나라로 가득 찬 바울의 복음은 야훼께서 이교 세계의 권세와 만신전(神)에 맞서 싸우신다고 가르치는 유대 전통에 내재되어있던 것이었다. 예수께서 주님이시라는 선언은 곧 카이사르는 주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 P57

요한은 동료 신자들에게 자신이 본것을 보라고 촉구했다. 곧 로마의 권력이 비록 그 위대함과 영광을 뽐내지만, 사실 그것은 탐욕과 오만, 폭력이 뒤섞인 약탈적이고 우상숭배적인 혼합물에 불과할 뿐, 수확을 앞둔 포도처럼 심판의 시기가 무르익었음을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로마는 심판을 받을 것이고 멸망할 것이다. 주 하나님과 그분의 메시아를 대적하는 모든제국이 그렇게 될 것이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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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퇴보하는 기업, 조직, 국가에 대한 반응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강명구 옮김 / 나무연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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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체에 대한 글쓰기는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극우화에 기독교가 땔감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한 탄핵반대 집회를 전광훈 목사와 손현보 목사가 각각 주도하고 있고,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대한민국에 혐오와 반헌법적 가치를 퍼트리고 있다. 물론 이들이 기독교를 ‘과잉대표‘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앨버트 허시먼의 이 책을 읽으면서 퇴보해가는 기독교가 보여주는 행동방식의 대표적인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앨버트 허시먼은 퇴보해가는 조직에서 보이는 행동유형을 ‘이탈‘, ‘항의‘ 그리고 ‘충성심‘ 등의 개념들을 통해 설명한다. 교회의 ‘품질‘이 저하될 때, 구성원들의 이탈과 항의가 작동된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극우화되는 것이 불편한 경우 가장 쉬운 방법은 교회를 떠나서 자신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극우화라는 방식으로 퇴보화된 ‘일부‘ 교회를 떠나면 그만이다. 허시먼은 교회를 기초적인 사회조직이라고 보았으나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통계적으로 교회가 편의점의 숫자가 비슷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다니던 교회를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이는 퇴보에 대한 치유책이 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교회는 충성스러운 노인층에 의해 지탱되고 있으며, 이탈을 감행한 이들은 한동안 이상적인 교회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만 대부분의 교회의 질이 동시다발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현실만 파악하게 될 것이다. 허시먼이 이 책의 5장에서 논의하고 있는 ‘게으른 독점‘과 같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부는 대형교회로 이동을 하고 일부는 교회 조직 밖에서 비판자로 남게 된다. 극우화되는 경향이 노인층에서 보다 급격히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영세한 교회(새로운 구성원이 유입되지 않고, 이탈만 이루어지는 교회)는 전광훈과 손현보로 대표되는 기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손현보가 주도하는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에는 이러한 영세한 교회들이 상당히 호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의 전체 수는 적을지 몰라도 교회수는 상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항의‘의 방식이 교회에서 그렇게 유용한 반응양식인 것도 아니다. 항의의 방식은 퇴보의 치유책으로는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에 남아있는, 즉 충성스러운 고객이 생각하는 교회의 품질의 종류는 상당히 반문화적이다. 다양성을 포용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해석하려는 모습은 지양되고. 축출된다. 특히 한국교회가 민감한 동성애 등에 조금이라도 반대되는 이들은 낙인찍히고 출교된다. 이런한 태도는 정치적인 극우화로 쉽게 외연이 확장될 수 있음이 작금의 사태를 통해 어느정도 실증되었다. 그리고 전광훈 목사가 정신적 스승으로 삼은 고 김홍도 목사는 감리교에서 가장 큰 교회인 금란교회 담임이었으며, 그의 가족들이 현재도 감리교의 메가처치의 담임이다. 극우성향의 목사들이 교단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다른 교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탈은 가능하지만 항의는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한 대형교회에서 이탈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교회의 품질에 만족하지는 않지만, 공공악을 만들어 내는 교회를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신앙의 문제는 다른 차원이라, 허시먼의 책을 읽고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결정하는 기독교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극우적인 태도가 기독교 주류의 목소리는 아니라고 하려면, 즉 기독교가 퇴보하는 조직이 아니려고 하려면, 이탈과 항의의 방식이 교회 내에 건강한 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최적의 혼합형태를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조직에 잘 정착했다고 실증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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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개념에 따르면 소비자의 힘이란 소비자가 다른 기업을 선택함으로써 소비자의 취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기업을 ‘벌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제 다른 종류의 소비자의 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 새로운 힘은 다른 곳에서 거래 상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이 자신의 욕구와 취향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유혹하고 협박하고 유도하는 소비자들로부터 나온다. - P136

달리 말하면 제시된 정강이나 정책이 ‘어중간해서‘ 불만이 쌓인 당원들이 정당을 포위해버리면 정당은 당원들의 불만에 굴복하게 된다. 불만의 목소리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반면 어중간한 정강이나 정책에 따르는 편익은 상당 부분 불분명한 추측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 P142

정치적 운동의 일상적 정책들은 특히 이러한 정치적 운동이 권력을 잡고 있지 못할 경우에는) 일반회원(혹은 유권자) 모두를 대상으로 해서 그들의 지지를 잃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활동적 운동가들에 의해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조직이 중간 지점으로 옮겨가면 다른 급진적 변화가 있을 때보다 붙잡혀 있는 회원들이 격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비록 후자(즉 급진적 변화)가 붙잡혀 있지 않은 다른 회원이나 유권자의 이탈로 이어지더라도 말이다. 이 모델에서 예상되는 정치적 급진화 경향은 선거 주기가 길수록 더욱 강력하다. 왜냐하면 선거를 고려하여 붙잡혀 있는 정당 활동가들이 어느 정도 억지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 P147

충성심은 이탈을 지연시키는 동시에 이탈 가능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 심지어 가장 충성스러운 구성원마저도 이탈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간혹 구성원과 조직의 대립에서 가장 중요한 협상력이 되어준다. 원상회복 메커니즘으로서 항의방식의 성공률은 이탈의 위협이 뒷받침되어야 높아진다. 물론 이 위협은 공개적일 수도 있고, 관련자가 단지 상황을 보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 - P161

공공재 혹은 공공악을 만들어내는 조직이나 기업의 환경은 충성파의 행동(즉 불만과 양심의 가책에도 불구하고 이탈을 지연하는 것)을 더욱 번성하게 만들고 더불어 몇 가지 특성을 갖게 된다. 그란 특성 중 하나는 이 장의 서두에서 묘사한 가능성이다. ‘옳으나 그르나 내 조국‘이라는 마음은 언뜻 보면 이와는 반대되는 ‘그르면그를수록 내 조국‘으로 바뀌게 된다. 더욱이 이탈이 있더라도 그 - P191

뉴욕에 오랫동안 거주하다가 처음으로 독일인의 집회에서 만난 두 이민자의 예를 들어보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여기에서 행복합니까?" 대답은 "나는 행복하지만 (독일어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I am happy. aber glücklich bin ich nicht " 였다. - P207

두 가지의 반응 방식 가운데 주로 하나에만 의존하는 조직이 퇴보하는 경우, 이를 타파하는 능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다른 쪽의 반응 방식을 주입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은 조직들은 이탈과 항의 방식이 교대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규칙적인 순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도를 개선하려면 항의와 이탈 방식 모두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하고, 바로 이러한 제도 개선에서 항의와 이탈의 그 어떤 최적 혼합도 불안정해지려는 본래적인 경향성이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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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소유자를 잔학함이나 나약함에 빠져들게 한다는 점에서 정치 권력은 시장 권력과 매우 유사하다. 여기에서도 문제시되어 집중 조명을 받은 것은 관료의 무능과 부실 행정보다는 (물론 충분한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개인 권리의 침해 같은 권력 남용의 위험이었다. 당연한 귀결로 현재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있는 옴부즈맨제도의 본래 목적은 헌법이 부여한 이상의 권한을 행사한 관료층에 대항하여 시민들의 불만을 교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 제도는 ‘주목적이 변화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행정 개선‘, 부정행위 교정 등의 목적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 제도의 원래 의도는 과도한 횡포를 부리는 관료의 권력 남용을 억제하는 것이었지만, 이제 그 쓰임새가 넓어져 관료적인 나태를 바로잡고 징계하는 데도 쓰이게 되었다. - P123

경쟁 체제는 흔히 예상하듯 독점을 억제하기보다는 말썽많은 고객들을 제거함으로써 부담을 덜어주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매우 중요하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전제적專制的 독점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는 무능한 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게으른 자가 가난한자를 착취하는, 즉 독점에 대한 야심은 없지만 동시에 독점으로부터 탈출이 가능한 까닭에 더욱 견고하고 억압적이다. 이 유형은 그동안 불공평하게 많은 관심을 받았던 전체주의적이고 확장주의적인 독점 형태 혹은 이윤 극대화와 축적 지향적인 독점 형태와 극명한대비를 이룬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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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가 정확히 인식했듯이, 불로소득자의 불로소득은 생산자들이 스스로 소비하는 물자의 양을 초과해 생산하는 잉여에서 나온다.
불로소득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에 무임승차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지대로 100만 파운드를 받는다고 하면, 그 돈은 그것으로 살 수 있는재화와 서비스가 존재해야만 가치를 갖는다. 이 재화와 서비스는 다른사람들이 어디에선가 생산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건강한 성인이 불로소득을 얻는다면 그건 정당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 맞서야만 한다. - P86

세계은행WorldBank 수석 경제학자였던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부자들이 얻는 수익은 상당 부분 지대 추구가 활발해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금융 부문에서 행해진 지대 추구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지대 추구는 소득을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이전할 뿐만 아니라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부를 창출하는 생산적인 용도에서 단순히부를 추출하는 용도로 자원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지대 추구에서 생기는 돈은 생산에 재투자되지 않은 채 비생산적인 불로소득자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간다. - P89

지대와 마찬가지로 이자는 자산을 기반으로 한 불로소득이다. 어떤 노력도 필요 없다. 대출 제공에 약간의 행정 비용이 들 수도 있지만, 금액이 얼마 안 될뿐더러 차입자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 지대와 마찬가지로 이자는 소득을 얻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잉여를 생산하는 것을 전제한다. 그래야 대출자들이 불로소득으로 구입할 물자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대와 마찬가지로, 이자는 생산자들에게 기생충과 같다. 마이클 허드슨의 표현에 따르면, 이자는 경제에 ‘사중적 비용‘ [dead-weight cost: 사회 전체의 후생이 감소해서 생기는 비용]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단순한 이전transfer, 즉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네거티브섬 게임negative-sum game이다. 다시 말해 이자는 다른 요인들이 일정하다면 경제를 악화시킨다. - P102

복리 이자는 일반적으로 일정 기간 금액이 고정되는 지대와 달리, 또 생산에서 생기는 이윤과도 달리, 대출자에게 계속 증가하는 불로소득 안겨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지속 불가능한 일이다. 이자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지 않은 한, 부채는 결국 상환 불가능한 수준까지 늘어날 것이다. 어떤 물건이라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 마지막에는 위기가 찾아온다. 자연을 보면, 어떤 개체는 일정 기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지만, 나중에는 증가세가 둔화하다가 마침내 멈추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암세포의 증식처럼 예외도 있다. - P105

사적인 신용화폐가 지배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채에 관한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다. 그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은 힘들여 벌어들인 돈을 다른 이들에게 빌려주는 데 대한 보상이 바로 이자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대출자는 검소하고 신중한 반면 차입자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이자지불은 대출자의 미덕에 대한 보상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따뜻하고 도덕적인 이야기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엄격하게 말해서 화폐 대출의 행정 비용을 초과하는 이자는 불로소득이다. 게다가 그렇게 ‘훌륭한‘ 기원을 가진 신용은 거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신용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 P120

신용은 유용할뿐더러 효율적인 현대 경제에 정말 필수적인 요소지만,
이자는 불로소득이자 경제에 사중적 비용으로 작용하며 부를 위쪽으로 재분배하고 미래 세대에게 막대한 부담을 안겨준다. 윤리적 의문이 제기되고 역기능을 일으키는 이자에 대해서는 이자율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다. 신용을 배분하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저축예금을 이용하든 신용화폐를 창조하든 신용의 배분을 통제하는 사람은 상당한 힘을 갖는다. ‘경제의 지휘부‘를 통제하면서 경제발전의 양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은행에 이러한 권한을 허용하는 경우, 권한에 따르는 책임은 예금자(채권자)와 주주에게 돌아간다. 민간은행은 이익이 나고 주식 가치가 계속 상승하는 한 대출이 어디로 가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건 상관하지 않는다. 금융‘투자‘는 실물‘투자‘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놀랍게도 오늘날 금융 엘리트들은 개인·기업·정부를 대상으로 이자를 추출하는 것이 부를 창출하는 한 형태라고 여긴다. - P130

지난 30년 사이에 신자유주의가 부상하면서, 젊은이들은 자신을 시장에서 거래되어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고용주를 설득하기 위해 취업용 이력서를 잘 작성하라는 충고를 받게 되었다. 한편, 교육기관은 학생들이 노동시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게 되었다. 고용주에 대한 노동자의 의존성이 문화적으로 강화된 것이다. - P135

순수 자본가, 즉 기업을 소유만 하고 경영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자본가는 부의 창출에 기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피고용인보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노동자(관리자 포함)가 만드는 생산물의 가치와 생산비의 차액을 전유할 뿐이다." 따라서 그들의 소득은 불로소득이다. 그것은 임대료와 마찬가지로 생산적인 기여가 아니라 기존 자산에 대한 사적 통제에의존한다. - P135

우리는 왜 소유주, 특히 자신의 주식이 가져다줄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주주가 기업에 대해 배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피고용인은 아무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계속 질문해야 한다. 노골적으로 불공정한 이 제도는 합리적 논쟁이 아닌 힘이 승리한 역사적 투쟁의 산물임에도, 우리는 마치 ‘원래 그런 것‘인 양 그것을 당연시한다. 자본가는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어서 노동자가 생산하는 생산물과 수입을 소유한다. - P148

주택 소유자들은 자기 집을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투자‘로 간주하도록 권유받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모기지 부채를 ‘투자‘로 여기기까지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자기 힘으로 불로소득자가 되기 위해 밟아야 하는 한 단계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고 자동차나 중고 자전거를 살 때는 원래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낼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가? 왜 주택은 그렇지 않을까? 혹자는 집값 상승 덕분에 보통의 주택 소유자가 국가의 경제성장에 동참할 수 있다는 말로 이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가끔은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필요에 기반을 둔 이전지출처럼 민주적 의사결정에 따라 이뤄진 잉여의 분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부를 일부 계층이 사유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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