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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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이 낸 책들을 훑어보다 들렀더니 어쩜 서평이 하나도 없을 수가! 몽실언니나 강아지 똥과 같은 동화는 많이들 알아도 의외로 '권정생'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아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내 또래는 교과서를 통해 작가를 만난 적도 없어 더욱 생소한 이름이긴 하다.(몇 년 전부터 강아지 똥이 교과서에 실렸다고 들었다.) 게다가 동화작가라면 신작도 으레 동화려니 여기지, 소설이나 산문집을 낼 거라는 생각도 잘 하지 않을 뿐더러 나온다고 해도 여간해선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나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진 그저 몽실언니로만 기억하는 작가였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어르신들이 읽으면 참 좋아하시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린이 책이라는 소리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하지만 어린이 책이라고 보니 아이들에게도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녹색평론사의 책을 처음 만날 때면, 일명 똥종이라 불리는 종이질이 가져다 주는 웬지 모를 부실함과 표지의 빈약한 컬러(2색 이상이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다.)에 책의 수준을 한번쯤은 의심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한번 읽게 되면 다들 극찬을 아끼지 않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거칠은 종이결에 정감을 느끼고 부담없는 책가격에 횡재한 기분도 들게한다.

이런 녹색평론사에 가장 어울리는 작가가 권정생씨가 아닌가 한다. 또한 녹색평론사의 거칠은 종이결이 그의 책에 가장 잘 어울린다. 소박하고, 담백하게 하늘의 마음, 땅의 마음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살이의 고됨을 아는 그의 글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은 군더더기가 되어버릴 테니까.

난 이 책의 작가, 권정생씨를 무척이나 좋아하다 못해 존경한다. 가식과 허식은 물론 화려한 장식조차 하지 않는 그의 글에는 시골 할아버지의 흙내 묻어나는 인자함으로 가득하면서도, 허투른 삶의 모습은 결코 용납지 않을 듯한 깐깐함이 있다. 아이들의 투정이나 어리광을 다 받아주면서도 늘 옳고 바른 길만을 보여주며, 헛된 욕심에 눈돌리는 것조차 죄스러운 마음이 들게하는 '어르신'의 모습같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언제나 내가 바로 살고 있는지, 헛되고 부질없는 허망함에 휘둘려 다녔던 건 아닌지, 내 사는 모양을 되짚어 보며 올바르게 살고 있는지 되새김질 하게끔 만든다.

그런데 서평을 한답시고 지금껏 끄적거렸는데, 말을 하면 할 수록 책의 내용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저 읽어보면 안다고 우격다짐으로 이 책을 쥐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하는 생각만 든다. 이 책은 그저 산문집일 뿐이다. 당연한 듯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범상한 작가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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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이승환 옮김 / 김영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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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봤을 땐 경제'학'이 아닌 경제학자들을 둘러싼 미스테리 혹은 숨겨진 비화, 혹은 그 때 당시 유행하던 패러독스류의-경제학에 숨겨진 재미있는 논리이야기같은 책인 줄 알았었다. --;;; 조금 우습지만,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 학교운동장에서 책을 엄청 싼값에 판매한 적이 있었는데, 싼 게 비지떡이라고 정말이지 거저 줘도 안받을 후줄근한 책들 중에 그나마 부티나는 표지에 뭔가 있어보이는 제목만을 보고 샀었으니... 솔직히 제목만 보면(상상력 조금만 보태면) 죽은 사람(경제학자)들이 남겨 놓은 수수께기를 후세의 사람들이 풀어가는 미스테리물 냄새가 나지 않은가!

과정이야 어찌됐든 진흙 속에서 보석을 건진 기분으로 집어든 책인데... 기대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보석은 보석이었다. 경제학에 대한 책인 줄 알았더라면 못봤을 테고, 다행히 고등학생이 읽어도 최소한 경제학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알 수 있을 만큼 쉬운 책이기도 했다. 경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만 지금껏 경제에 관련된 내용을 하나도 모르는데 어떡하나 엄두가 안난다면 적극 추천할만한 책이다. 경제학 입문서로는 제격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주류경제학의 관점만을 취하고 있으며, 경제학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말하고 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과학발전이 야기시키는 핵무기나 유전공학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언급은 없는 과학이야기 같다. 경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더 없이 좋은 책이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경제학이 경제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은 알고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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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도시 야이누
프란시스코 카란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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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신화에 대한 책들은, 신화의 이야기 구조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이론에 관련된 내용이 많아 이 책도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어떤 이론이나 분석 따위는 간데 없고, 남미의 케추아 족에게 전해내려오는 수많은 옛날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었다.

아이들은 모르는 옛날을 살아온 이웃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던 이야기.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고, 해는 또 어찌 생겨났는지. 사람이 왜 지금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지. 어찌보면 하는 짓이 우리나라의 도깨비와도 닮았고, 어찌보면 저승사자보다 무섭기도 한 악마(?) 수파이에 대한 이야기. 나쁜 짓을 하다 저주를 받아 귀신이 된 사내 이야기...

릴 적에 너무도 재미나게 읽었던 한국의 전래동화 시리즈와 다를바 없었다. 다만 한민족이 아닌 케추아족에게 전해내려오는 옛날 이야기라는 것이 다를 뿐... 그래도 옛날 이야기라는 건 어느나라나 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면서도 조금은 교훈적인 모양인지...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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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그늘 아래
이혜경 지음 / 창비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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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씨와의 첫만남부터가 그래서였을까, 오랫만에 신작이 나와도 마치 오래전부터 서점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듯 태연스런 익숙함으로 맞이한다. 서점을 뒤지다 무심결에 발견하게 되는 그런 자연스러움 말이다.

그렇게 의뭉스럽게 재회한 이혜경씨는 말이 줄어있었다. 글자수와 무관하게,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가 남은 듯한 미진함을 남겨둔채 돌아서 버렸다. 10권이 넘어가는 대하소설을 읽고도 이거 이렇게 끝나도 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데, 단편이야 으레 그런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조금 다르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다먹고도 성에 차지 않은 데서 오는 아쉬움이 아니라, 한가운데까지 뭉턱 베어먹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어든 휑함에 어리둥절한 느낌이랄까.

첫 단편을 읽고나니, 읽은 것도 없는 데 끝나버린 황망함에 다시 한번 확인해도 다음편 제목만 나온다. 그래서 아쉬움을 채울 심산으로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2~3편을 보고나니, 그제서야 그녀가 말이 있어야 할 자리에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의 그늘이라기보다 빛이 있음 당연히 그늘 또한 지듯, 바람에 날리는 아름다운 여인의 사진 너머엔 분명히 선풍기를 돌려주는 일꾼이 있듯, 읽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이야기의 그늘말이다. 그 그늘이 깊어진만큼 내뱉지 못하는 말들을 그냥 그렇게 머금어 버린 모양이었다.

아름다움이 눈부신 햇빛이 아닌 어둑신한 그늘 아래서는 제 색깔을 다 드러내지 못하듯, 추악함 또한 그렇듯 순화시켜버리는 짙은 그늘 덕분일까. 그녀가 그려내는 현실은 전작 '그집앞'에 비해 더욱 강팍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보여주던 삶의 신산스러움과 처연함이 뿜어내던 서늘한 기운은 한결 수그러들어 있다.대신 그보다 더한 아픔을 담아내면서도 그것들을 감싸안는 온화함이 훈기를 더한다. 그늘이 이렇게 훈훈했었고, 햇살은 그토록 서늘했는지... 그 역설에 그만 어리둥절해져버린다.

사실 작가가 자카르타-인도네시아에 다녀온 뒤에 쓴 글이라기에 그녀의 눈에 비친 이국의 풍경은 어떨까 내심 기대했었다. 그러나-바뜨, 그녀의 눈에는 한국이나 인도네이사아나 거기서 거기였나부다. 이국의 화려함도 뜨거운 열기도 서늘한 햇살 속에 밀어버린채, 훌쩍 떠나고도 끝끝내 버려지지 않는 아픔으로 어딜가나 다를바 없는 삶의 모습만 바라보다 온 모양이다. 그녀가 간 곳이 자카르타였는지 이어도 같은 전설이 남아있는 남해의 어느 섬이었는지.

오랫만에 만나봤으니, 이제 다른 데로 눈을 돌려야겠다. 그녀의 길고 차분한 호흡을 미뤄볼 때, 당분간 그녀를 다시 만나기는 힘들테니 다른 데 정신 파는 것이 현명하다.(오랫동안 각종 신간을 기다리다 터득한 방법이다.) 기다리는 것보다야 잊고 있다가, 다시금 만날 때면 천연덕스럽게 반가워하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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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비행기 1
박인식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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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 박인식씨는 나그네다. 다른 책에서 읽은 그(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나그네는 길 위에서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길 위에서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를 존중해 준다 한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그는 그의 또래보다는 현실에서의 나이가 어리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일까,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의 구성은 마치 어린 시절 상상으로 놀던 공상의 세계와 닮았다. 너무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만화 혹은 책을 읽고 나면, 자기 마음대로 그 이야기의 뒷편을 상상해 보거나, 주인공들만 데려와 다른 환경 속에서 움직거려 보는,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이 그 작품의 세계에 뛰어들어 주인공의 역할을 맡거나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그런 공상말이다.

어린 날의 상상처럼 그럴 듯하게 바꾸어놓은 주인공들도 그러하거니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자의성과 우연성도 그렇다. 게다가 마치 신탁처럼 초현실적인 무언가가 주인공을 이끌어 주기도, 외면하기도 하는 듯한 비현실성까지.

유치하다(생각이나 하는 짓이 어리다)라는 단어를 굳이 상대방을 비하시키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말하자면, 그의 플롯은 유치하다. 하지만 그 유치함 속에는, 어느샌가 오랜 삶의 노정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노회함이 배어든다. 그래서 어릴 적의 일기에 휘갈겨놓은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한마디에도 기어코 떠올라버리는 착잡함과 서글픔이 묻어나, 어릴 때의 일기임에도 더이상 어릴 때처럼 읽어낼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듯, 어린날의 공상이 더이상 어린날의 공상일 수 없게 만든다.

박인식씨의 글은 언제나 여정이다. 그래서 현실 속에 밀어넣은 작가와 닮은 사내(이 책의 주인공-고독)역시 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마치 기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설 자리를 잘못찾은 것은 아닌지, 잘못 찾은 것이라면 반드시 바로 찾아 떠나야 할것처럼... 그리고는 기어이 다른 플랫폼을 찾아 떠난다. 고갱과 고호와 고야의 고씨를 이은, 특히 고갱을 이은 그는 언제나 남태평양의 어느 외딴 섬을 꿈꾸며 버리지 못한 화가를 이루기 위해 떠난다. 비록 어린날에 꿈꾸던 이상향은 더이상 없음을, 그가 기어이 발을 내디딘 화가의 세계가 얼마나 지독한 현실이 되어 돌아올 지도 모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러다 종국에는 그의 삶이, 종이비행기에 담은 그의 꿈인지, 종이비행기에 담긴 그의 염(念)이 그려내는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함만을 남긴채 종이비행기처럼 산화해버리고 만다.

어릴적에 하늘을 향해, 바다를 향해 그리고 잃어버린 어머니나 누이 또는 벗을 향해 쏘아올린 종이비행기. 수많은 꿈과 그리움을 접어 날린 종이비행기. 하지만 기어이 떨어지고야 마는 서글픔 또한 놓을 수 없는 종이비행기. 그리고 작가가 어른이 되어 다시금 접어 보내는 종이비행기. 이 책은 장난스럽게, 조심스럽게, 무심하게, 간절하게 접어 날린 종이비행기를 땅에 닿기 전에 집어낸 것 같다. 본의아니게 비행기의 항로를 훼방놓아버린 미안함과 서글프게 땅에 떨어지기 전에 종이비행기에 담은 마음을 받아낸 뿌듯함이 동시에 떠오르는 그런 종이비행기를 받아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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