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현의 푸른 죽창
자신이 읽은 소설, 특히 역사소설에서 감동적인 세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책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책을 찾지 못했다면 토지를 자신있게 권한다.박경리는 25년 동안 밭을 갈 듯 토지를 썼다.
그녀에게 토지는 자신의 삶의 전부였다. 그의 삶 속에는 미망인작가로서의 외로움과 삶의 고단함이 토지속에서 승화되었다.아니 토지 속 인물들속에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지 않았을까?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한국최고의 대하소설인 토지는 하동의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한 평사리의 풍성한 타작마당으로 시작된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영화로움을 지속시키기 위해 같은 인간을 차별하고 제도화하고 일상화했다.
차별받은 계층은 매번 그 차별에 혁명을 꿈꾸고 세상을 뒤엎는 반란을 시도해왔다
평사리의 실질적인 실권자인 최참판댁이 소작인들에게 아무리 관대했어도 斥洋斥倭의 기치 외에
실질적으로 양반의 횡포를 못 이겨 봉기한 동학농민군에게는 최참판댁이라 할지라도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하지만 하동을 장악한 살인귀라 불린 김개주는 절에 공양드리러 와있던 최참판댁의 며느리 윤씨 부인을 겁탈하게 되고 김개주가 이끈 동학군은 하동악양땅의 최참판댁의 쌀한톨도 건드리지 않는다.
이어 동학농민군의 푸른 죽창은 일본군의 현대식 총칼앞에 꺾이게 되는데 전봉준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고 동학전쟁이후 다급하지도 않은 살생을 이끈 태인의 접주 김개주는 그 자리에서 목이 잘린다.
윤씨부인은 김환이라는 동학잔당의 거두를 낳게 된다. 그는 구천이라는 이름으로 최참판댁에서 하인으로 일하게 되고 최치수의 아내 혈연상으로 형이 되는 그의 아내(별당아씨)를 데리고 달아난다.
농민전쟁의 거두인 김개주는 양반댁 규수 윤씨부인을 겁탈하여 김환을 낳는다.
그리고 김환은 양반댁 며느리를 데리고 달아난다.
그리고 훗날 서희는 자신의 하인이었던 길상과 결혼하게 된다.
최참판댁과 동학농민전쟁은 이렇게 미묘하게 결합되었고 조선시대가 근대로 가는 길목에서 사상과 신분제의 혼란속에 초월적인 사랑은 계속된다.동학잔여세력의 거두인 김환은 항일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한때 동학잔여세력은 동학세력의 확대냐 아님 다른 항일운동세력과의 동일행보냐를 두고 격론을 벌이게 되는데 김환의 주도세력은 후자를 택하게 되고 3.1운동의 조직적 구심역할을 한다.
서희의 먼 친척 조준구는 서희의 아버지 최치수가 살해되고 윤씨부인이 괴질로 죽자 평사리로 들어와 최참판댁의 모든 땅을 수중에 넣게 된다. 서희를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조준구를 습격했지만 결국 조준구를 죽이지 못하고 간도로 떠나게 된다.서희는 자신의 땅과 집을 되찾기 위해 간도에서 매점매석과 친일행각까지 벌인다.땅을 찾기 위한 서희의 일념 또한 최참판댁의 그늘에 살던 사람들의 염원과 함께 하고 일본에게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한 사람들의 투쟁속에 용해된다.평사리의 타작마당으로 시작된 토지속 첫 장면은 동학농민전쟁이 끝난 후의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갑오농민전쟁이 평사리 사람들의 입에는 자랑스러움으로 회자된다.
양반보수세력인 김훈장은 상것들이 나라 체면살렸다라고 했고 서희의 아버지 최치수는 일본은 동학농민군에게 엎드려 절 할 일이다라고 했다.외세에 무기력하고 백성에게 잔혹한 양반들에 대항하여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은 이렇게 반외세 전쟁으로 승화되었지만 결국은 미완의 혁명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아쉽게도 역량부족을 교훈으로 남기며 끝이 났다.역사교과서에 배웠듯 이 미완의 혁명은 길상을 비롯한 동학잔여세력에게 의식적 고취를 받은 사람들의 치열한 독립운동으로 이어진다
“ 토지속의 봄” 나날이 짙푸르게 달라져 갔다 그새 찔끔찔금 비가 내리더니 그러나 그 정도의 비는 갈증이나 면했지 흡족하지 못했다. 농부들은 이 고비만 넘기면 그럭저럭 평작은 될터인데하고 근심들했다. 마을의 인심은 하느님 마음씨하고 통한다 후하고 박한 것은 노상일기에 좌우되는 것이다. 아직은 논바닥에 물이 질척히 괴어 있었는데 마을을 찾아드는 방물장수 도분꾼들은 곡식을 바꾸기가 어렵게 되었고 요기를 청하기에도 눈치를 보게 되었다. 조급한 농가에서는 아낙들 아이들이 들판을 쏘다니며 벌써 쇠어버린 비름을 뜯고, 나물밥, 시래기죽을 쑤었다. 칡뿌리를 캐어다 칡가루를 만들어 저장하기도 했다
당신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들어와 당신은 나랑 급이 다르니 나랑 같은 주점에서 술을 마실 수 없으며 마시더라도 바닥에 내려가 술을 마셔야 한다고 지껄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또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할 때 주변사람들의 멸시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면 당신은 어떡 할 것인가 세상을 향해 주먹질하며 억울함과 분함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어떤것인가를 당신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있는가? 평등과 박애를 이념으로 기독교가 들어오던 시기, 노비제도가 폐지되고 반상의 구별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그때에도 백정은 인간대접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사내는 기꺼이 백정의 사위가 되며 역사와 운명 앞에 당당히 자신을 드러낸다.
주연을 빛내주는 조연들이 있다. 난 그를 생각한다.
토지의 등장인물은 무려 700여명에 달하지만 서희와 길상외의 주연급 조연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송관수란 인물을 꼽는다.사랑에 눈이 멀어 별당아씨를 업고 달아나 끝내 묘향산자락에 임을 묻고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김환의 뒤를 이어 동학잔당의 조직을 튼튼하게 묶어세워 온 송관수 그는 형평사 운동에 관여하면서독립운동과도 인연을 만들어간다. 형평사운동이란 1923년부터 일어난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이며 계급적인 해방운동과 민족적인 해방운동의 두 가지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 백정들의 신분에 대한 불만은 형평사 운동을 통하여 구체화 되었지만 불과 1년만에 분열되고 말았다. 백정에 대한 차별은 모든 사람은 천주앞에 평등하다는 소위 서학을 공부하고 조상을 버렸던 천주학쟁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배당에 모인 백정들과는 함께 예배를 볼 수 없다는 그들은 결국 백정들을 예배당에서 쫒아 내기도 했다. 세상은 변하고 있었지만 송관수 그에게는 아니었다 수 백년동안 어떤 사람한테는 특권을 주고
어떤 사람에겐 억압과 차별의 굴레를 씌웠던 신분의 질곡에 정면으로,운명적으로 맞서 신분해방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백정의 사위가 되어 온갖 천대를 받으면서도 독립운동조직을 목숨을 걸어 지켜내는 보기 드문 의지형 인간이었다.
자신의 운명의 선택으로 인하여 자식까지도 굴곡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송관수 그가 나중에야 깨달은 세상은 어떤 의미였을까? 나라는 자신에게 신분의 억압과 굴레를 지워주었지만 송관수 자신은 인간의 존엄함으로 살 수 있는 숭고한 삶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시대 친일주의자들과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조선비판론 혹은 조선인의 야만성에 대하여 통렬히 반박하는 코스모폴리탄 일본인 오가다지로의 생각을 펴고자한다. 그는 조선인유인실을 사랑한다. 유인실도 오가다를 사랑한다. 하지만 조국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오가다와의 결합을 거부한다.
오가다는 "전 일본인이지만 악행을 저지르는 일본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와 일본인들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제국주의 투쟁에 맞서서 싸우며 제 민족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집념의 여인 유인실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큰아버지가 말하는 조선인의 야만성에 대하여 통렬하게 반박한다.
그 전에 그의 단편적인 행적을 살펴보면,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은 광적으로 일본에 체류한 유학생들을 비롯하여 조선인들이라면 다 죽이는 잔인한 행각을 벌이는데 오가다 지로, 그는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유학생들을 목숨을 걸고 숨겨주고 구해준다.영혼이 투명한 오가다 지로의 대화 속 관점을 소개하고자한다.
토지 속에서 닮고 싶은 사람중의 한사람...일본인 오가다 지로를 닮고싶다.
그의 큰아버지가 조선인의 야만성에 대해 이야기하자 오가다는 이렇게 반박한다.
문화적인 부분이지만 편견없이 혹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사물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오가다 겐사쿠(지로의 큰아버지);
"지능이 문제로구나. 바보 같은 놈. 인고라고? 그런 의식이라도 있는
민족이면 제 나라를 왜 뺐겨. 희망없는 인종이야.
비틀어지고 구부러지고 그런 소나무나마 방치한다면 남아나기나 할 것 같으냐?
온돌인가 뭔가 하는 그놈의 야만적인 아궁이가 산을 다 잡아 먹고 해마다 홍수, 자멸할밖에 없는 백성이다"
오가다 지로;
"편견입니다. 대단한 편견이지요. 일본이 먹기 전에도 조선은
수 천년을 자멸하지 않고 그들 특유의 문화를 형성하며 존재해왔습니다.
일찍이 나무를 땔감으로 삼지 않았던 민족이 있었습니까?
야만적인 온돌이라 하셨는데 저는 일본의 다다미야말로 야만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건초더미에서 자던 습성이 약간 정리된 것 아니겠습니까?
온갖 먼지를 흡수하고 벼룩이 들끓는 다다미,
일년에 한두 번씩 걷어서 일광욕이나 하고 두드려서 먼지를 털고, 비오는 날엔 무릎이 끈적끈적할 만큼 습기가 차고,물걸레질을 매일 했다간 썩지요. 저는 온돌이야말로 가장 정결한 거처라 생각합니다.
의자나 침대 같은 것도 매일매일 걸레질하며 사용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설령 커버나 시트로 덮는다 하더라도 안엔 먼지가 쌓이지요.
경험에서 알았습니다만 온돌이란 맨발로 밟으면 모래 알갱이 하나까지 발바닥에 느껴지니까요.
거울같이 매끄럽고 딱딱하여 차게 보이지만 여름 한 철만 기분 좋은 냉기를 가질 뿐,
앉으면 따뜻하고 아무리 비가 와도, 오히려 비오는 날의 실내가 더 쾌적합니다."
토지를 읽을 기회가 생긴다면 이 사내를 주목하라
또 이 사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관심을 기울여 보라.
물론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순정파, 더더욱 찾기 힘든 친구,아버지의모습을 찾게될지도 모른다.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뤄지지 않는 사랑이다.
오가다와 인실의 절박하지만 이뤄지지 않는 사랑을 보면서 첫사랑이후의 스스로의 궤적을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한번쯤 책 속에 나오는 악인(惡人)이 어떠한 처벌을 받는지 혹은 어떠한 식으로든지 응당한 대가를 받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책을 한번씩은 읽어 본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토지속에 나오는 악인(惡人)중에 유심히 지켜 볼 만한 사람을 나는 첫 번째로 최참판댁의 집과땅 모든 재산을 어린 서희에게서 강탈하여 다시 날리는 조준구,두 번째로는 서희의 아버지 최치수를 살해한 아버지가 처형당한 후 마을사람들과 조선에 대한 원한을 품고 밀정노릇을 하며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살해, 투옥시키는 김거복(후에 김두수),세 번째로는 일본순사의 정부(情婦)로서 마찬가지로 독립운동가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배설자로 꼽는다. 그들의 말로가 많이 궁금했었고 책을 놓지 못한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주인공들의 마지막보다 어쩌면 더 기대됐는지 모른다.기본적인 나의 심성이 "원수조차 사랑하는" 너그러운 심성을 가지지 못하기에 소설 속에서라도 이들은 마땅히 단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고 한번도 제대로 된 역사청산을 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바램이었는지 모른다.
그 중에서도 난 두 번째 김두수(김거복)의 악행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하던 시점에서는 아주 중죄인(?)이기 때문이다. 김거복을 이야기한다 김거복(김두수)은 몰락양반인 김평산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동네에서 생긴 것 만큼이나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자란다.
남의 밭 콩을 훔쳐 구워먹는 것은 예사이며 지나가는 처녀 희롱하다가 때리기등등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했던가 옛날 놀부에 다음가라면 서러워할 지경이었다.
아버지 김평산이 최치수 살해사건 공모자로 처형이 된 후 어머니 함안댁이 목을 매달아 자결 후
김거복(김두수)은 나무에 머리를 피가나도록 짓찧으며 다짐한다. 그 다짐이 후일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유추해보건대 최참판댁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저주였을 것이며 후일 일본을 등지고 밀정노릇을 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동생 한복은 살인에 가담한 아버지의 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장사지내준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자신이 평생동안 갚아야 할 짐이라고 생각한 반면 거복은 자신의 아버지, 결국 어머니를 앗아간 세상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어이없는 결론을 내었다.
"흥! 의병장? 독립운동? 개나발 같은 소리 작작해.
왜놈이 임금이건 조선 놈이 임금이건 나한테 무슨 상관이야?
어느 놈이 잘살든 못살든 내 알 바 아니고
내가 근심할 일은 내 일신하나 뿐이야
언제 어떤 놈이 나를 대신해 주었던란 말인가?
천대와 구박.... 천대와 구박, 내가 받은 건 그것밖에 없었다.
나라가 망했다구 울어? 우는 눈구멍에 오줌을 깔기지.
나라가 뭐야? 망해라! 망해!
살인 죄인의 자식인 이 김두수 조선 백성 되길 버얼써 십여년 전에 사양해온 터라 조선백성? 개되지 취급이라도 조선 만세를 부를까? 발붙일 곳이 없어도 내나라 내 강산이라며 울까? ....." 그는 밀정,순사부장을 하는 동안 만주,용정,하얼빈에서 독립운동조직의 핵심인물을 살해하고 검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본 고위급관료조차도 무시못할정도로...하지만 일본의 패망은 예정처럼 다가오고 동생 한복이 그를 찾아 갔을 때 그는 이런 악다구니를 하지만, 벌써 말속엔 힘이 사라지고 없다
"단 한번도 일본에는 전쟁에 진 역사가 없어 아암 그건 사실이야!
만의 일이라도 그렇게 될 경우에는 국민모두가 옥쇄를 했음 했지 절대로 항복은 안한다!
그래 그 마당에 조선놈들만 고스란히 살려놓고 갈성 싶어?
그런 꿈은 꾸지 않는 게 좋아 모조리 저승길에 앞세우고 갈걸?
그런 달콤한 꿈은 꾸지도 말라고 해! 으하하하핫 하하핫...."
나라가 어려움에, 혼란에 처할 때 대개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뉘어진다. 나라의 어려움을 내일처럼 여기고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 토지 속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독립운동가들을 들 수 있겠다. 두 번째 부류는 전면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이라도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하고 기회가 있을 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 번째, 이 부류의 사람들은 극히 소수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면수심(人面獸心)으로 많은 사람들의 꿈과 바램을 짓밟는 사람들이다.
앞서 말한 악인이 이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일신의 안락과 영화를 위해 다른 이들의 꿈을 앗아가는 혹은 나라와 민족의 앞길을 막는 사람들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청산되어야 하고,
목숨 바쳐 싸운 사람들의 명예회복과 더불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서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희를 말한다
주인공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정작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혹은 공유하고자 하는 느낌을 놓칠 것 같아 늦었지만 서희를 말하고자 한다.
토지 전권 속에서 서희가 나에게 주는 이미지는 "서늘함"이다. 그리고 서늘함 속에 숨겨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여림"이다. 서희의 서늘함 속에는 성격상 지기 싫어하는 이악스러움과 사나움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조준구에게 빼앗긴 최참판댁을 되찾아와야 하는 혼자만의 힘겨움이 또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장년이 된 어느 날 서희는 길상의 어깨에 기대에 흐느낀다. 클로즈업된 서희의 여린 모습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어느 의사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다.
소녀시절의 서희는 고집센, 악받친 얼굴을 항상 하고 있는 부잣집 딸이었고, 청춘시절 그녀는 무표정의 강인함이 돋보이는 최씨 일가의 마지막 자손의 모습을 지키고자 하였다.
장년의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외에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는 풍족한 대가의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 속에서도 여전히 서늘하였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속에서 군자금을 요구하는 독립운동가들의 무언의 요청을 거절하고 최씨 일가의 복원을 위해 친일도 서슴지 않았고, 뙈약볕처럼 쏟아지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탄압을 당산나무 그늘처럼 막아주고, 가려주는 서늘함도 있었다.
그 느낌이외에...
서희의 사랑을 본다면...
길상과의 결혼을 시도한다. 그녀의 맘속에 숨겨있는 길상에 대한 사랑은 이십 여년을 주인과 종으로 지내온 관계의 변화를 넘어 자신이 얻어야하고 찾아야 할 것은 신분의 엄격한 차이가 아니라 한 사람에 대한 사랑임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 속에는 자신이 의지해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의지할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다. 토지속 서희의 외모와 표정에 대한 묘사로만 본다면 한국의 어느 여배우도 쉽게 소화해내지 못하는 역할임에 틀림없지만, 내가 느낀 서늘함, 혹은 여림, 사랑을 이야기 한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의 공통적인 모습으로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서희와 관련된 인상적인 한 장면: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서희를 사랑한 어느 의사의 죽음을 듣고 난 뒤 탱화를 완성한 길상을 만나러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길상과 나란히 앉아 흐느끼는 서희의 모습은 전권에 걸친 의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 앞에서 자신을 사랑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남편인 길상에게 사랑을 사랑답게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의 못남을 안타까워하고 힘겨워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관동대지진, 만주사변을 거치면서 일본제국주의의 잔학성은 끝이 없음을 보여준다. 밤이 깊어질수록 새벽이 더 가까워옴을 세상의 진리는 지금까지 말해왔다. 독립운동을 음지에서, 양지에서, 수세적으로, 공세적으로 해왔던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더불어 고민과 분열의 씨앗이 돋아나고 있다. 조선민족의 해방을 예상할수록 이후의 민족의 삶에 대한 각각의 고민이 깊어지면서 마지막 결정적 장면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