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꾸란에서는 여성들에게 꼭 히잡을 쓰라고 강요하고 있을까?>
나는 그런 식으로는 ‘종교적’이지 않다. 머리에 뭔가를 덮어 썼다고 ‘정신적’으로 더 신과 가까워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적인 힘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 이슬람 옷가게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나는 종교적 형식주의에 관심이 없다. 내가 보기에 질밥을 쓰는 것은 딱 형식주의에 해당된다. 요즘 들어 그걸 쓰게 하느냐 마느냐가 정치적인 쟁점이 되고 있지만, 정치가 됐든 패션이 됐든 종교의 문제든 우리 정신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게 아님은 분명하다.
(중략) 옷차림은 맥락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것이지, 종교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내 어머니 연배인 나니는 메카 순례를 다녀온 여성인 하자다. 신실한 나니는 이 문제를 다르게 해석한다. “큰 길에서 발가벗고 기도를 한다 해도 신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신은 오로지 우리 영혼과 정신, 마음, 말과 행동, 열정과 자비심을 보실 뿐이지 머리와 몸에 뭘 덮어 썼는지 보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p. 72-73
<종교를 두고 벌어지는 극단적 갈등이 과연 이슬람만의 문제일까?>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랑해온 종교가 바로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는 가장 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중략) 어떤 면에서 그런 현상들은 참 당혹스럽다. 진지하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위협이나 모욕을 당했다고 해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중략)
우리는 자주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공격한다. (중략)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세속주의’나 무신론을 종교인 듯 떠받들며, 합리성을 들먹일 때 ‘표현의 자유’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자신을 표현할 권리와 종교적 자유를 지킬 권리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과, 우리가 어릴 때 친구들을 괴롭혔던 것처럼,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괴롭히게끔 교묘하게 선동하는 것은 분명 다르지 않은가? 그런 선동은 자유주의자 혹은 진보주의자들이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폭력과 비합리성을 오히려 증식시킨다는 점에서, 자기모순적이다. p. 45-46
*푸른숲의 자회사 [아시아네트워크]의 다른 책들도 눈여겨봐 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