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국민작가 아지즈 네신의 자전적 체험 소설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아지즈 네신, 유배 복권에 당첨되다?
이 책은 작가 아지즈 네신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소도시 부르사로 유배 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네신이 유배형을 선고받은 상황은 다음과 같다.〈마르코파샤〉라는 풍자잡지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해오던 네신은 원조라는 미명하에 미국이 터키를 잠식하던 상황을 비판하는 글을 써서 팸플릿으로 제작하게 된다. 그가 쓴 글이 인쇄를 채 마치기도 전에 경찰이 인쇄소를 급습해 그를 체포한다. 그리고 네신이 유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경찰은 형법조문을 모조리 뒤져 죄목을 붙인다. 그리하여 찾아낸 것이 ‘출판을 통해 국가 이익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터키 형법 제161조항. 이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이어진다. 출판 활동이 성립되려면 최소한 두 명 이상이 글을 읽어야 하는데 인쇄 중인 상태로 수거된 팸플릿을 읽은 사람이 없었던 것. 인쇄소 주인 및 글을 조판한 식자공, 그리고 인쇄 기술자가 소환된다. “당신 읽었지? 분명 읽었을 거야.”라는 말이 반복되는 심문, “증인이 읽지 않았다고 극구 부인하나……”로 시작되는 판결문, 비밀리에 진행된 재판, 그리고 기자들에 대한 협박(“이 재판에 대해 한 줄이라도 쓰면 당신들은 끝장이야!”) 과정을 거쳐 아지즈 네신은 10개월 징역형과 부르사 유배형을 선고받는다. 그가 쓴 팸플릿의 제목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였다.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았던 터키의 상황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당시 일당제인 공화인민당(CHP) 정권하에서 터키 이스탄불은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였고, 정부의 심기를 거스른 사람은 누구라도 유배지로 보내지던 상황이었다. 네신은 이를 ‘불행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절묘하게 비유하기도 하고,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터키 사회에 장티푸스나 흑사병처럼 일종의 ‘정치 병’이 널리 퍼져 있다고 꼬집기도 한다.
계엄을 선포한 정부는 그동안 별다른 재판도 없이, 죄목이 무엇인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무고한 사람들을 좌익 ‘사회주의자’로 몰아 아나톨리아 고원 곳곳으로 유배를 보냈다.(...) 왜 유배당하는지 명확한 이유나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한번 목덜미를 잡힌 사람은 다시 벗어나지 못했다. 이름이 당첨되면 무조건 어이 없이 당해야 하는 불행 복권과 비슷했다. (본문 119-120쪽)
터키의 모든 사람이 자기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나라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상한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불완전한 모든 것을 개선시킬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는 양의 품종을 개량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빈 들판에 소나무 씨앗을 심어 숲을 조성하는 것으로, 누군가는 거짓말쟁이의 혀와 도둑의 팔을 자르는 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본문 140쪽)
유배지 부르사에서 만난 소심하고 비굴한 인간 군상
그렇게 해서 도착한 유배지 부르사의 생활은 첫날부터 만만치 않다. 네신을 넘겨받은 파출소의 소장들은 하나같이 그를 탁구공을 쳐내듯 다른 파출소로 보낸다. ‘책임’이란 불덩이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관료주의 세계에 대한 묘사는 흡사 시트콤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부르사로 유배된 상황에는 무엇 때문이라고 딱히 갖다 붙일 이유가 없다. 물론 세상의 모든 일에는 때때로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경우가 있다. 비록 말이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꼭 설명을 해야 한다면 억지 춘향으로라도 우리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관공서는 단지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던 거다. ‘저 골치 아픈 놈을 멀리 보낼 수만 있다면 지옥에 가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일단 나에게 수갑을 채워 멀리 보내기만 하면 ‘골치 아픈 일’에서 벗어나는 셈이고, 그다음은 내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상관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본문 24쪽)
저자가 유배지 부르사에서 맞닥뜨린 인간 군상은 하나같이 우스꽝스럽고 비굴하며, 시대의 폭력 앞에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에 급급한 소시민들이다. ‘원칙’ 운운하면서 주인공의 돈을 가로채는 교활한 화가, 저자가 유배되어 왔다는 소식에 안면 몰수하고 사라지는 지인들, 유배된 이들을 사회주의자 취급하며 보드카를 먹이고 낄낄대는 여자, 유배된 친구를 돕는 남편과 이혼도 불사하겠다는 아내 등……. 그러나 이들을 보는 작가의 시선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으며,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고 같이 껴안고 가려 하는 의지가 배어 있다.
유배 생활을 하면서 네신은 자신을 유배지로 보낸 당시 정권이나 세태를 비난하거나 저주하기보다는, 진심으로 안타깝게 여기며 용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글로써 타인과 소통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_옮긴이의 말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아지즈 네신은 현대 터키 문학에 유례없이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작가이다. 포복절도할 웃음과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로 성대한 만찬을 연상케 하는 그의 작품들은 항상 분노하는 동시에 미소를 짓는다. _ 오르한 파묵(소설가)
아지즈 네신이 창조한 풍자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저 아지즈 네신의 작품에 투항하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을 겁니다. _쉠넴 이쉬규젤(소설가)
비상약품 상자처럼 보이는 나의 남루한 책장에는 날 위로하는 책들이 있다. 그것들 중 가장 강력한 진통제는 아지즈 네신이다. _〈라디칼〉, 터키
아지즈 네신은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풍자 작가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당신은 작품을 펼치자마자 5초마다 터져 나오는 웃음에 정신이 없어 날카로운 메시지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치겠지만 이후 오랫동안 당신 머릿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뭔가가 깊이 남아 있을 것이다._〈가디언〉, 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