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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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어느멋진날에 #조선희 #자음과모음 #네오픽션 #서평단

예순다섯 살, 생의 황혼기에 행운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의사의 운동처방에 따라 이틀에 한 번씩 봉산을 산책 삼아 오르내린다. 지난주, 해발고도 200여 미터의 전망대에 도착해 멍을 때리려고 애 쓰다 내려오면서, 충동적으로 산 복권이 당첨되었다. 아직 아무에게도 당첨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지진 발생 재난문자가 울린다. 딸 이레의 전화 안부다. 세상이 쪼개지는 소리에 눈앞이 아득해지는데 전망대로 다시 오른다. 세상이 파괴되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 빠져든다. 요란한 빗소리에 깨고보니 갈증이 난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비는 계속되고 닷새째 되는 날은 완전히 지친다.

전망대에 나가 서니 물은 거짓말처럼 빠졌지만 내려다본 광경은 엉망이다. 잔해 사이를 신중하게 통과해 큰 도로를 찾아 내려간다.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며칠간 내린 비가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을 몽땅 쓸어 넣었을까. 까마득한 균열을 향해 외쳐 보지만 아무도 없다. 뭐야, 유일한 생존자인가?

허기를 채우고, 잠을 자고, 열흘째 눈을 떴을 때 이대로 있으면 서서히 죽게 될 것을 예감한다. 이레와 나눴던 소소한 대화와 웃음소리가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몹시 불안하고 우울해진다. 내가 알던 진입로는 다 끊겼고, 다른 길도 찾을 수 없다. 이 상황이 바뀌지 않을 테니 아침에 부디 죽어 있기를.

숨이 붙어있는 한, 살아야 한다. 폐허의 잔해 속에서 물건들을 뒤지는 자신이 의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마트와 다이소를 돌며 물건들을 카트에 싣고 전망대 화장실로 옮긴다. 나름 꾸며놓으니 보금자리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 문득 의아해진다. 산에서 주운 소형 라디오는 카세트테이프가 들어간 구형이다.

안에 든 테이프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였다. 인류 마지막 생존자일지도, 머잖아 죽음을 앞뒀을지도 모르는 내 마음은 눈부신 선율과 가사에 사무치게 담겼다.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 세상에서 이레를 생각한다. 그렇게 3년이 흘러 예순여덟이 된다. 산자락 텃밭은 이제 모두 내 것이고 내 책임이다. 잘해낼 수 있을까.

텃밭에서 뭘 길러 먹어본 적도 없고, 생존에 딱히 적극적으로 임할 것 같지도 않은 나라면..혼자 먹고, 자고, 생존하기가 가능키나 할까. 김치를 찾아 절을 떠올리고 길을 나서는데 손바닥만 한 크기의 먹바퀴벌레 뭐니..손잡이가 달린 바닥문을 열고 김치를 발견한다.

처마 아래 거미줄이 보인다. 거미는 또 얼마나 커졌으려나. 지렁이는 뱀만 하고, 뱀은 새끼 악어만 하다. 이런저런 생명체들이 돌아오고 있다. 2년이 더 지나자 독수리만한 잠자리들이 돌아다닌다. 송충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툭툭 떨어진다. 지구 멸망후 아마존의 탄생인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처럼 산을 돌아본다. 그날의 재난에서 7년을 살게 한 산을 내려와 집을 찾아낸다. 그렇게 매년 산을 오가며 유목 생활을 한다. 일흔네 살이 되어 밭일보다 벌레들을 싸질러 치우는 일에 더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 이제는 여든두 살이다. 이레는 쉰두 살이다. 먹바퀴벌레는 팔뚝만큼 커졌다.

자연인만 찍는 줄 알았더니 아니다. 드디어 고구마밭에서 노바가 등장한다. 여전히 문명인의 삶을 누리고 있는 캠핑카의 주인 노바는 전기과를 졸업하고 태양광 배터리 회사를 다녔다고 한다. 생존 게임에서 유리한 노바의 등장에 삶이 풍족하고 따뜻해진다. 그것도 잠시 안하무인 빌런이 등장한다.

윤주의 등장으로 뭔가 더 재밌어지긴 했다. 생존자가 늘고, 시간은 흐르고, 치아대신 뭔가 다른 것이 생기고..248세가 된 혜령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레를 만나러가기 위한 선택을 하기까지 200년이 걸린다. 세상은 멸망했지만, 꿈과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는 한 움직이게 한다. 태어나 처음 사본 복권이 당첨될 확률과 당첨되고 지구가 멸망할 확률..그 어떤 것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삶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럼 어쩌겠나, 살아갈 이유가 있다면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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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 예고 살인 사건
오카모토 요시키 지음, 김은모 옮김 / 톰캣 / 202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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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예고살인사건 #오카모토요시키 #톰캣 #서평단

예전에 18세기 말 영국 해군 군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범선 군함의 살인>을 통해 알게 된 작가님이다. 이번 소설 무대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으로 옮겨 또 어떤 미스터리를 풀어낼지..더욱이 김은모 번역가님이라 믿음이 간다.

열아홉 살에 전신의 세계에 발을 들인 지 어언 10년인 로라는 처치게이트 전신국에서 실력을 갈고닦아, 입으로 말하는 것만큼 유창하게 손끝으로 모스 부호를 칠 수 있다. 당장 할 일을 끝내고, 전건을 조작해 에마와 수다를 떤다. 문득 모욕적이 말이 들려온다.

로라 옆 책상의 대프니 커틴은 신입 전신수다. 업무가 아니라 신입의 우선 제압을 우선하는 남자 전신수. 이렇게 못돼먹은 인간은 따끔한 맛을 보여 주어야 한다. 상대는 빅토리아 로드 전신국의 빌이다. 로라는 두 배 가까이 빠르게 실수도 클리핑도 없이 송신한다.

남존여비 사상에 찌든 빌의 반응은 빨랐다. 열받은 빌은재송신을 부탁하며 완전히 항복한 듯했다. 필립 록퍼드는 깐족거리고 로라가 남몰래 존경하는 세라피나 솔로몬의 한마디에 조용해진다. 여기에 소동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묵묵히 일하는 사이먼 브라운이 있다.

로라는 자리로 복귀해 에마와 수다를 재개한다. 결혼한다는 에마의 말에 로라의 손가락이 굳어 버린다. 그동안 자신보다 어린 동료들이 결횬을 계기로 퇴직하자 질투심이 불끈불끈 고개를 쳐들곤 했다. 2년 전에 전신 사업이 국영화되자, 우정부가 인사이동에 착수했다.

일개 전신수에 불과했던 액턴이 국장이 되었다. 액턴이 로라를 불러 하버츠 로드 전신국의 후임자로 추천한다. 여성 주임 전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로라는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듯한 기분이다. 일보다 결혼을 택하겠다고 결심한 직후에 승진 이야기가 나오니 갈림길이다.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언제까지 일을 할 셈이냐고 염장을 지른다. 로라는 가정을 꾸리고, 일도 그만두고 싶지 않다. 2주후, 액턴에게 제안을 수락할지, 말지 국장실로 찾아간 로라. 잠긴 국장실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액턴이 숨져있다.

의사 헤이스턴이 도착하고, 그는 병으로 죽은 게 아니라
독으로 죽은 거라고 한다. 할로 경찰서의 해먼드 경감이 나타나 유일한 상속자인 네이트를 의심한다. 터무니없는 소리에 로라가 반박하고 그때 상황을 설명한다. 아마도 네이트에게 호감이 있는 게 아닌가 본다.

전신국에서 벌어진 첫 번째 밀실사건을 시작으로 경찰서로 의문의 전보가 날아든다. 입이 가벼운 와일드를 통해 정보를 알아낸 로라. 전보를 추적하기 위해 런던으로 함께 간 네이트와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 그곳에서 둘은 탐정이 되어 사건의 실마리를 쫓는다.

전신국 인근 마을에서 새로운 시신이 발견되고, 로라는 국장의 사건과 얽혀 있을 가능성을 느낀다. 경찰서에는 또다시 의문의 전보가 도착하고 긴장감은 배가 된다.
연쇄살인으로 이어진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보다, 사람들은 전보라는 말을 알기나 할까..하는 의문점이 든다.

40년 전쯤에 생일 때마다, 언니가 생일 축하 전보를 보내 직장 지인들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카톡에 뜨면 축하 선물을 보내거나, 문자로 대신하지만..역시 편지를 주고받던 아날로그 시절이 낭만적이고, 인간적이었던 시대가 아닌가 싶다.

보이스 피싱 이전에 전신은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경이로운 기술이지만 동시에 범죄의 온상이기도 했다. 전보로 범행을 예고하고, 사기 피해자들을 알려주는 범인이 그럼 전신수 일까? 아빠와의 약속으로 범인을 잡기 위해 뛰어든 로라는 위험에 닥친다.

19세기 영국을 무대로 150년 전 전신을 소재로 한 소설은 오직 마지막 반전을 위해 쓰여진 것처럼 수수께끼 가득하고, 추리하게 만든다. 주인공 로라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범선 군함의 살인>처럼 읽으면서 빠져들게 하는 가독성 좋은 미스터리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작가님 명단에 올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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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 씨는 혼자 있고 싶었는데 ㅣ 이야기친구
곽유진 지음, 김민우 그림 / 창비교육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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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씨는혼자있고싶었는데 #곽유진 #이야기친구 #창비교육 #창비어린이동화

창비교육 어린이 동화 서포터즈를 하면서 느낀점은 책이 정말 재밌다는 것이다. 어릴 적 전래동화만 읽고 자란 세대이다보니 요즘 동화책은 그야말로 별천지다. 내용도 알찬 예쁜 책들은 독서활동지를 통해 생각하는 힘도 길러주고, 만들고, 느끼고, 오롯이 내 것이 되게 만든다. 이번 동화는 또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하다.

숲속 행성에 사는 예의 바르고 친절한 곰돌 씨, 주말 저녁 따뜻한 라면을 먹으려던 참에 노크 소리를 듣는다. 정체 모를 우주복 속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도움을 청한다.
곰돌 씨는 우주 비행사와 로켓을 아주 좋아한다. 마침 라면을 먹으면서 보려던 만화도 우주 비행사였다.

헬멧을 벗기고 정체를 드러낸 햄스터를 보자, 곰돌 씨는 놀라서 기침이 나온다. 햄스터가 내민 명함은 달토끼 쇼핑이라고 유명한 온라인 쇼핑몰이다. 달콩 씨는 희귀 제품을 보여 주려 왔다고 한다. 곰돌 씨는 낯선 동물이 싫다. 라면이 불기전에 가 주었으면 한다.

곰돌 씨는 생각해낸다. 잡동사니 하나를 다른 물건과 바꿔 준다는 이벤트. 달콩 씨가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스페이스 제트가 보인다. 팝콘 행성을 다녀온 진짜 스페이스 제트가 맞단다. 곰돌 씨가 이벤트에 응모할 때 올린 사진을 보여준다. 삼촌이 준 오래된 우표다.

곰돌 씨는 우표를 주고, 꿈에 그리던 스페이스 제트를 얻을까? 곰돌 씨 마음속에 고든 박사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위험한 순간에는 모든 걸 의심하시오. 나 자신 마저도!" 눈물짓는 곰돌 씨의 다른 이야기는 어떨지..

햄스터가 다녀간 후 너구리 자매 구구와 리리가 찾아온다. 동네에 책방이 문을 열었다고. 사실 만화책을 파는 곳이라면 모를까, 곰돌 씨는 책방에 관심 없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도 좋아하지 않는다. 조용한 바닷가 행성에 놀러 갈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누군가 노크를 한다.

이쯤되면 곰돌 씨가 걱정된다. 고든 박사의 목소리가 위험을 감지해 줄까. 곰돌 씨를 찾아온 방문객은 누굴까. <곰돌 씨는 혼자있고 싶었는데>는 소심한 곰돌 씨에게 불쑥 찾아오는 이웃들로 인해 갑작스레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뜻밖의 변화하는 곰돌 씨를 보여준다.

끔찍한 살인사건이나 미스터리 공포소설만 읽다가 이렇게 한번씩 만나는 동화는 힐링이다. 삽입된 예쁜 그림들이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해주고,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독서 활동지의 나를 동물에 비유한다면, 많은 어린이들이 자신에 대해 더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시도 만들고, 곰돌 씨처럼 낭독해 보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것이다. 얼마전에 시니어 글쓰기 수업을 5주간 받고, 시화전을 열고, 시를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생각이 나면서 동화가 꼭 어린이들에게만 국한된 장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동화는 곰돌 씨와 닮은 나를 느끼며 곰돌 씨처럼 색다른 도전에 기쁨을 느끼게 되는 과정을 독자들도 누리기 바란다. 새로운 도전 앞에 두려움보다는 기대감과 모험심을 품게 되고, 낯선 환경에 설렘과 유쾌함으로 채워줄 곰돌 씨를 아이들이 기억하는 필독서가 되길 바란다.

삽화가 글과 찰떡이라 동화책의 매력을 어린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추천한다. <꽝 없는 뽑기 기계>처럼 이번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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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밈학과 같은 건 없습니다
QNTM 지음, XCninety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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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밈학과같은건없습니다 #QNTM #황금가지 #서평단

항밈학과는 뭐고, SCP 재단은 뭘까? 이미 읽었지만 기억하지 못할 뿐이라니..저자 QNTM은 영국 소프트웨어 개발자 샘 휴즈의 필명이다. 괴이물, 격리물의 원조 SCP 재단..비밀 정부 기관이 하는 일이 뭘지 궁금하다.

말로 이사관을 기다리는 퀸, 안내원은 C레벨 회의는 오래 걸린다고 한다. 드디어 마리를 들어오라 한다. 말로는 대뜸 첩자냐고 묻는다. 비서의 총부리가 머리를 겨누고 있다. 마리 퀸은 항밈학과 과장이라 한다. 레빈은 항밈학과 같은 건 없다고 한다.

붙잡지 못하는 꿈, 공유하지 못할 비밀, 거짓말, 생명력을 얻은 음모론이 항밈이고, 항밈은 개념의 생태계다. 다른 관념을 잡아먹는 관념, 그래서 항밈은 위험하다. 항밈성 개체는 위험하고 인류의 이해를 넘어서는 존재. 그런 존재를 관할하는 기구가 항밈학과다.

말로는 항밈 미지체 중에서 하나만 말해 보라 한다. 퀸은 U-0055를 말하고 레빈은 없다고 한다. 생성일자가 2005년 7월로 암호화 서명까지 정확한 파일은 진짜다.
파일을 쓴 사람은 에드워드 힉스 박사고, 항밈학과에서 근무했는데 지금은 죽었다고.

말로는 조심스레 묻는다.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면..퀸은 이사관님도 똑같은 일을 겪을 테고, 힉스 박사가 어떻게 죽었는지 조사는 종결되었다고 한다. 퀸은 알람을 끄고 한 알을 뜯어 꺼낸다. 그때 말로의 얼굴이 기억의 조각을 꿰맞추고 있어 안도한다.

이사관이 약을 먹으면 지금 나눈 대화를 전부 기억하고, 되풀이하지 않아도 된다. 말로가 약을 삼긴다. 퀸과 레빈의 시선이 거세게 맞부딪친다. 격리되지 않은 미지체가 최소한 두 개가 방에 있다고 하자 말로는 시선을 퀸에게 고정하고, 레빈은 구석구석을 더듬어 본다.

퀸은 보이지 않는 괴물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기억을 주워 먹고 있다고 한다. 그 다음 총을 꺼내 레빈의 심장에 두 번 쏜다. 세 번째로 머리를 쏜다. 이사관은 이유를 묻는다. W급 기억제 복용을 방해하는 자는 비서뿐이라고. 더욱이 비서를 두지 않았다고.

인간형 항밈 미지체라고. 레빈이 원래 어떤 존재였는지는 모르나 인간의 신체를 지녔다는 점만으로도 굉장히 기이한 개체다. 초급 연구원 사이먼 리는 기억을 지우는 미지체로 퀸을 알아보느데 시간이 걸린다. 새로 채용된 항밈학자들을 지도한다.

항밈학과의 창시자 앤드루 힐튼 박사는 아흔 살이 넘었고, 인간의 노화 과정을 강제로 역행시키는 혈청을 맞는다. 생애 마지막 열두 시간은 특별한 임무를 위해서다. 퀸이 기억을 꺼낼 거고, 그 일이 끝나면 힐튼 박사는 죽을 것이다. 그의 기억은 무엇인가?

그날 힐튼은 반나절 뒤에야 자리에서 깨어났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 루프를 열댓 번이나 반복하다가 그 상황을 겨우 벗어났다. 파일은 존재하지만 후반부는 항밈 효과 때문에 가려졌다. 그것만 읽을 수 있다면 이 모든 게 순식간에 끝난다.

그러나 기억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두 번째 X급 기억제가 투입된다. 힐튼은 가능할 리 없는 말들을 한다. 그리고 모두 기억한다. 힐튼은 자신이 그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퀸은 그 자료 때문에 박사님을 죽이러 왔다고 한다. 도대체 그 놈은 뭘까.

퀸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은 털로 수북이 덮인 촉수가 꿈틀거리며 힐튼의 눈을 뚫고 나온다. 뭐지? 공포 소설이었나..호수 인근에서 구조된 퀸의 기억이 사라진다. 모건이 볼 수 있었던 정체는 뭘까. 보기만 했을 뿐인데 죽었다. 그 놈은 퀸에게 호수에서 진 빚을 갚아 주겠단다.

기수가 뭐라는지 퀸은 모른다. 마리가 애덤 퀸에게 하는 짓은 정말..이 부부를 어쩔 것인가. 항밈은 위험하다. 항밈학과 같은 건 있는데 없다는 건지, 있지만 뇌리에 남아 있는 게 없으니까 없는 게 맞는건지. 마리 셰리던이 마리 퀸이 된 걸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첨단 비변칙 생화학적 기억 강화제 Y급 기억제는 뭐랄까? 끔찍하다. 차라리 망각의 강을 건너는 편을 택하겠다. 자전거 타는 법을 잊을지라도 U-2200은 맘에 든다. U-3125는 정말 난해하다. 때론 모르는 편이 낫다. 그저 눈으로 보이는 것만 믿으며 살아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관념은 소시민이 신경쓸 일이 아니다. 항밈학과가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우린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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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사과해드립니다 ㅣ 새소설 24
고요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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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사과해드립니다 #고요한 #자음과모음 #서평단

고요한 작가님의 신간 <대신 사과해드립니다>..제목만 보면 대신 사과해주는 대행업체가 떠오르는데, 소심해서, 부끄러워서, 아님 시간이 안돼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이보다 편리한 게 없으리라 본다. 다 읽고 나면 여운이 남는 글을 쓰시는 작가님이라 기대가 된다. 마침 오늘이 10월 24일..사과데이라고 한다. 일부러 날짜를 맞추려던 건 아니지만, 사과데이에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이혼한 아내에게 사과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나간 자리, 교통사고를 당한 의뢰인이 써준 사과문을 읽는다. 로또 당첨되고 튄 남편이나, 무릎 꿇고 하라는 여자나. 왜 이혼했는지는 알겠는데 뭔 사과를 자기식으로 받으려 하는거지? 우리나라 사람은 무릎 꿇은 거 참 좋아하는 듯. 일본 사람들 봐봐..뻑하면 스미마셍, 무릎 꿇잖아 상대가 아무리 어려도. 초반부터 이리 몰입이 되서야.

하필 커피 쏟은 자리에 무릎을 꿇고..이건 아니지. 안 들린다며 크게 읽으라는 소리에 마저 읽는데, 주변의 시선이 몰린 가운데 여자는 밀크티를 머리에 쏟아붇..이런 드라마를 찍고 있다. 사과를 받았다는 서명을 받아 의뢰인에게 보내고 십오만 원을 입금받는다. 세탁 값에 목욕값, 아니 모욕 값까지 싸다 싸.

남의 돈 먹기가 쉽진 않지만, 자존심은 개나 줘버린 마당에 대수냐. 만약 나라면 할 수 있을까? 무릎 관절이 안좋아 무리다. 어머니가 남겨준 이층집 거기에 차린 사무실로 들어가 인스타에 사과 내용을 올린다. 일일이 댓글을 달고 났을 때 신부님에게 전화가 온다. 친구를 죽이고 구치소에 들어간 수용자를 대신해 사과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수락하고 쏘냐에게 통화 내용을 전한다. 소냐는 이 건은 반대다. 하지만 어머니가 생과 사를 오갈 때 병자성사를 준 신부님에게 이참에 빚을 갚으려한다. 죽은 남자의 할아버지에게 사과를 해야한다. 우선 구치소의 남자를 만나러 간다. 남자는 고의로 친구를 죽이지 않았다고, 브레이크 고장이란다. 경찰은 믿지 않았지만 신부님은 믿어줬다고.

합의서를 받아달라는 남자에게 대신 사과해주는 일을 한다고 하자, 남자는 욕설을 한다. 이런 사람을 위해 사과를 해달라는 신부님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사과가 아닌, 사죄를, 그냥 죗값을 치르도록 둬야 한다는 쏘냐. 신부님이 직접 하면 안되나? 그 사과. 하지만 어쩌냐, 호수가 하는 일이 대신 사과해주고 돈을 버는 일인데.

노인네가 전화를 안 받자, 쏘냐가 맡기로 한다. 작전명은 '섹시 스파이'로 쏘냐가 노인을 설득하겠다고 한다. 본드걸 작전이 먹힐까. 음..실패다. 다음은 눈물 연기로동정심 유발 작전도. 하여간 노인은 쏘냐가 맡고, 구치소는 호수가 맡기로 한다. 쏘냐의 연기는 노인에게 접근까지만 허용하고 사과는 차단한다.

호수가 사과 대행 사무실을 차린 건 일 년 전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다. 웃음 전도사로 성도들을 웃기는 동안 어머니는 누군가 놓아둔 옥수수를 밟고 실족사하셨다. 사무실을 오픈하고 세 가지 원칙도 만들고, 쏘냐의 조언으로 인스타에 광고를 올리고 파트 타임으로 도움도 받게 되었다.

쏘냐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기는 하지만 구치소의 그 인간에게 믿음이 안 가니, 진도가 안 나간다. 쏘냐는 자신의 작전이 다 수포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물질 공세 작전을 펼치겠다고 한다. 이쯤되면 파트 타임용이 아니라 정식 직원으로 기용해야 한다. 그리고 의뢰비 받는 것보다 투자비가 곱절 드는 것 같다.

사과를 하지 받지는 않는 콤비는 이번 건을 무사히 성공할 수 있을까? 호수는 옥수수를 두고 간 범인을 찾을 수 있을까? 진지하지만 코믹하고, 엉뚱하면서도 미스터리
한, 사과 대행업체에 하다하다 개한테 사과해 달라는 의뢰까지 들어온다. 호수는 호수처렁 넓은 마음을 가져서 그런걸까? 거절을 못한다.

호수의 경영철학을 다룬 인간극장 한 편을 보는듯하다. 그속에 감동을 함께 주는 고요한 작가님만의 용서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드라마다. 작가의 말에서 끝내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대신 사과해드립니다>를 읽고나면 사과하고 싶어진다. 못되게 굴었던 못난 마음을 사과 하나 내밀며 넌지시 내밀고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용서하는 법을 저절로 터득하게 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대신 사과해드립니다>를 내돈내산 했어야 하는데, 출판사를 통해 읽게 되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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