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죔레는 거기에 ㅣ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30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김보국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2월
평점 :
#죔레는거기에 #크러스너호르커이라슬로 #노벨문학상 #은행잎3기 #은행잎서재
은행잎 3기의 희망도서는 <죔레는 거기에>를 선택했다. 사실 <노바디스 걸>도 궁금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이 더 끌렸다고나 할까. 그럼
"크러스너호르커이의 가장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소설"속으로 들어가 보겠다.
어느 날 문득 산꼭대기에서 노견 죔레와 살고 있는 카다 요제프에게 손님이 방문한다. 그들은 그를 찾아다니며 도서관과 문서보관소, 중고서적상들을 뒤졌고, 가계도와 문장을 샅샅이 훑고 추적하며 사냥하듯 탐색해 결국 찾아낸 것이라 한다. 이제 부터 섬길 것이라는 말에 그는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각자 누군지 묻자 한 사람은 전기 관련 기술자라 하고, 다른 이는 기타를 치는 유랑 가수였으며, 세 번째는 자동차 도장공, 네 번째는 토종 종마의 사육사였으며, 그밖에도 말단 경찰 한 명, 고문 회계사 한 명, 퇴역 원사 한 명과 전직 교사 한 명도 있었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그를 위해 무언가를 행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은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그들은 잡초가 남아있다는 말에 네 귀퉁이의 잡초를 말끔히 정리하고 그들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세번째 방문에서 그는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고 느껴 솔직해지기로 한다. 올해 아흔두 살이 된 그는 열두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도 사실을 몰랐다며 자신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지금까지 그 결정을 지켜왔다고 전한다.
신분을 숨기고 전기 기술과 농업 기계 기술을 익혀 기술자로서 신성한 헝가리 조국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폐하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요지 아저씨라고 하라며 네 귀퉁이들을 정리해준 데 대한 감사표시를 한다. 또한 당신들이 발견한 사실은 일곱 겹으로 봉인된 비밀로 남아야 하고, 부탁한 것을 받아들이고 반드시 지켜달라고 한다.
요지 아저씨의 더 이상 불을 때지 않겠다는 말에 이해는 하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고 하자, 이때 요지 아저씨는 더 이상 오지말라고 소리친다. 그날 그들은 그렇게 돌아간다. 그들은 매주 한 번씩 찾아왔고, 그는 서서히 그들의 이름을 연결하여 누가 누군지 알기 시작했는데, 덩치 큰 청년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맨 처음이었다.
요지는 사실 칭키즈 칸의 손자의 손자다. 750년 동안 자신들이 누군지 철저히 숨긴 채로 아버지들은 아들들에게 오직 죽는 순간에만 그 비밀을 전해주었고, 이 모든 일이 이렇게 모든 사람으로부터 숨겨진 채 이루어진 것은 필요한 경우 왕위 계승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더러운 합스부르크 사람들 때문에 그리고 조국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제는 분명히 정리해야 할 때이기에 청원서를 통해 실제로 실행에 옮겼고 지금은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번 방문에 역사학자 두 사람도 합류했는데 요지 아저씨를 2년 뒤가 아니라 즉시 합당한 자리에 모셔야 하기 때문이라 한다.
요지 아저씨는 750여 년 동안 비밀리에 이어진 헝가리 왕가의 혈통을 가진 자라고 여기지만, 어쩌면 순수하다고도 할 수 있는 여염집 노인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딸 아그네시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만 분노만 남은 고독한 노인네다. 오직 노견 죔레에 이어 영원한 죔레가 곁에 있을 뿐이다.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집단들이 그를 찾으면서 지금까지 전혀 다른 삶이 전개되는 이야기는 신랄하고 농익은 유머가 숨어있다. 요지 아저씨는 왕좌에 앉을수 있을까. 열정은 가득하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딸리는 것 같은데..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느끼는 모욕은 두개골의 상처를 악화시킨다.
요지 아저씨의 에텔커 사랑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주변 인물 예뇌, 히르냐크를 보는 것은 즐겁다. 7인의 의인들에게 닥친 가혹한 처벌과 반란의 수괴가 된
노인, 강제 이별하게된 죔레의 이야기에서 다카 요제프가 가상의 인물이 아닌 점, 98세에 생을 마감한 점으로 소설속 마지막 장면이 마지막이 아니길..
작가의 책이 난해하다는 평가라 진도빼기 힘들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헝가리어를 사랑하는 번역가님의 힘이 아닌가 본다. 희망도서의 선택에 만족하며 이 작품이 전통적인 의미로 소설로서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언급된 적도 있다니 부디 작품활동을 계속 하시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