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미술관에 소장된 물리적 현실의 총체가 아니라 그 대상들 위에 유령처럼 덧붙여지는 해석들, 비평들, 이론들의 총체라고 한다. 저자는 이것이 허구가 아니라 말하지만 시중에서 파는 변기하나 갖다놓고, 입 좀 털면서 이것이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을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보드리야르는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현대 예술은 무가치하다˝고 말했다.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장의 뜻 그대로 해석한다면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진과 더불어 복제기술은 발전의 ‘새로운 수준‘에 도달한다. 복제가 원작을 베끼는 데서 벗어나 거꾸로 창작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것이다. 드가는 화폭에 카메라워크를 도입했고, 뒤샹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그릴 때 당시 유행하던 크로노포토그래피를 본떴다. 여기서 원작과 복제의 관계는 뒤집힌다. 과거에는 복제가 원작을 베꼈다면, 이제는 거꾸로 원작이 복제를 베낀다. 베냐민이 현대를 ‘기술복제 시대‘라 규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 P273
오래전부터 예술은 세계상을 반영했다. 세계가 필연적 법칙에 따라 구조화된 우주로 여겨지던 시대에, 예술 역시 질서와 조화를 구현한 작은 우주로 간주되었다. 현대에 들어와 이 코스모스로서의 우주라는 관념이 무너진 뒤, 예술 역시 더 이상 아름다운 ‘조화‘를 추구하는 대신에 매우 난해하고 혼돈스런 모습을 띠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예술은 현대 세계상의 그림인 셈이다. - P258
자연에서 정신만을 보는 헤겔처럼, 근대 자연과학자들도 자연에서 거대한 수학책을 보았다. 그리고 수로 파악되지 않는 자연의 질적 측면은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하지만 자연이 법칙의 총합인가? 겨우 방정식의 체계에 불과한가? 그럴 리 없다. 자연의 정말 자연다운 부분은 수식으로 씌어질 수 없다. 빛이 ‘룩스‘로 표기될 때 빛남은 사라진다. 소리가 ‘헤르츠‘로 측정될 때 울림은 사라진다. 무게가 ‘킬로그램‘으로 계산될 때 묵직함은 사라진다. 이렇게 자연의 고유한 질적 측면은 결코 정신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 P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