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초 교황의 집무실에 이 이교도 철학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일이다. 이 작품뿐 아니라 시학, 철학, 법학, 신학을 의인화한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은 교황청 스스로가 ‘신학‘의 전일적인 지배를 부분적으로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학은 신성한 것에 대한 지식이요, 철학은 이 세상 것에 대한 지식이다.˝라는 말은 세계관의 변화를 분명히 보여 준다.
지난 날의 붕괴된 문명으로부터 우리가 미래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교훈을 주는 책. 중간에 약간의 무리한 주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책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에는 동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좀 안타까운 점은 뒤의 참고도서는 번역이 안되어 있어 관련된 내용을 좀 더 깊게 파고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돔의 건설 기간동안 브루넬레스키는 ‘선원근법‘의 원리를 발견했고, 그의 친구인 마사초는 이 원리를 이용해서 최초로 원근법을 적용한 그림인 <신성한 삼위일체>를 완성했다. 일점 소실점을 기준으로 모든 사물이 수학적 비례에 맞게 축소되는 원근법은 르네상스 이후 500여 년간 서양 회화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시각적·철학적 원리가 되었다.
연 판에이크가 1434년에 그린 <아르놀피니의 결혼>은 최초의 시민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 중세 시대 그림의 주인공은 당연히 기독교 성인이나 귀족이었다. 그러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을 다룬 그림과 조반니 아르놀피니의 다른 초상화가 더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인 계층이 성장했다는 의미다.
"살해된 사람들은 모두 토지 소유자이며, 그중에는 소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 이 토지와 소를 가져야 했기에 그 임자를 죽인 것이다. 빈곤과 인구 과잉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이것은 무시할 수 없는 동기를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