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서클 2
매기 십스테드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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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서 매기 십스테드의 <그레이드 서클> 2권을 이야기해줄게. 메리언에게는 늘 비행사라는 꿈이 늘 있었고, 다른 것들은 뒷전이었단다. 그래서 결혼한 후에도(사실 사랑이 있는 결혼인지는 모르겠지만) 비행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었지. 그런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임신하고 말았단다. 그리 사랑하지 않는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가는 꼼짝없이 아이를 낳으라고 할 테니 메리언은 고향 미줄리를 떠나 무작정 도망을 갔단다. 제이미(기억나지? 쌍둥이 동생)의 도움으로 중절 수술을 하고 알래스카로 갔단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행사로 취직을 했는데, 본명으로 일을 하면 자신을 추적할 남편에게까지 알려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제인 스미스라는 가명으로 일하게 되었단다.

알래스카에서 비행사로 취직한 메리언은 비행기로 배달할 수 있는 것은 모든지 다 배달을 했단다.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도 실어날랐어. 몇 년 뒤, 남편 버클리의 밀주 사업이 들통나서 감옥에 가게 되었고, 다시 출옥을 하고 총격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단다. 메리언은 그제서야 다시 이름을 메리언으로 바꾸었어. 알래스카에서 일하다가 가끔 고향 미줄리에 오기도 했어. 고향 미줄리에서 지내는 어릴 적 단짝 케일럽을 만나기 위함이었어.

한편, 제이미는 화가로서 성공을 거두어 시애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어. 제이미는 여전히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냈는데, 아마 첫사랑 세라를 잊지 못해서인 것 같았어. 시애틀 전시회에서 그 세라와 1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어. 세라는 이미 결혼하여 아이도 둘이나 된다고 했어. 문득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노래 가사가 생각나는구나. “그렇듯 더디던 시간이 우리를 스쳐 지난 지금 너는 두 아이의 엄마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지하지만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처럼 순수한 만남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어. 세라가 제이미를 집으로 초대해서 둘은 과거를 회상하다가 다시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말다툼으로 안 좋게 끝내고 제이미는 집으로 돌아왔단다. 하지만 둘의 마음에는 아직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이 있었고, 세라와 다시 만나 결국 10년 전 미완의 사랑을 이루었단다. 하지만 세라가 아직 결혼 중이라서 그들은 사랑은 여전히 위험하고 불안한 사랑이구나.

 

1.

메리언은 알래스카에서 비행시간을 늘려서 좀더 큰 비행사에 취직할 수 있는 경력이 쌓였어. 메리언은 뉴욕에 와서 ATA를 지원했단다. ATA가 무엇인지 아빠도 자세히 몰라서 찾아왔더니, 2차 세계 대전 때 있었던 수송 보조 부대로 전투기와 달리 여성 조종사도 일할 수 있었어. 주로 전쟁 물자를 나르는 일을 했대. ATA Air Transport Auxiliary의 약자였단다. 메리언은 ATA에 합격을 하여 영국으로 가게 되었단다. 한편 고향 절친인 케일럽도 전쟁에 참여한다고 했어. 제이미도 해군종군화가로 참전하게 되었단다. 어째, 좀 불안하구나. 전쟁터에 따라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직접 총을 들도 다니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 같지 않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위험상 상황도 왔어. 일본군과 맞닥뜨리기도 해서 제이미도 총을 써서 적군을 쓰러뜨렸어. 1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동물도 못 죽이고, 심지어 남이 죽인 고기도 먹지 못했던 제이미인데하지만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제이미가 타고 가던 수송선이 폭격을 맞아 그만 죽고 말았단다.

ATA에 있으면서 메리언은 여성 동료 비행사 루스와 친해졌단다. 처음에는 동료로서 친하게 지낸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묘한 감정이 일기도 했어. 그러나 루스는 에디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단다. 메리언은 루스를 통해 에디를 알게 되었어 셋이 만나는 경우도 많았어. 에디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비행사였어. 그런데 루스는 에디가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했어. 에디도 성소수자였고, 루스 자신도 그렇다고 했어. 메리언은 그제서야 자신의 감정이 끌리듯 루스를 사랑했고 둘은 사랑에 빠졌단다.

메리언은 스스로 생각하길 자신은 남자도 사랑하고 여자도 사랑하는 양성애자로 생각했어. 에디는 17번째 비행기 때 격추되었단다. 모두 에디가 죽은 줄 알았는데,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수용소에 감금되고 말았어.

군복무 중인 케일럽이 메리언을 찾아와서, 어렸을 때부터 품고 있었던 마음속 이야기를 꺼냈단다. 메리언을 사랑한다고 말아야. 메리언은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거절했지만, 케일럽을 다시 만나고 자신이 케일럽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정말 사랑은 어렵구나. 메리언은 결국 루스와 케일럽 사이를 오가는 소위 양다리를 걸쳤어. 그 즈음 메리언은 제이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단다. 큰 충격에 빠졌어. 슬픔을 이겨보려고 비행을 했지만, 오히려 죽으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케일럽도 제이미의 절친이라서 충격을 받았지만 메리언의 충격이 훨씬 컸고, 케일럽은 메리언을 위로해 주었어. 둘이 있는 장면을 우연히 루스가 목격하게 되고, 루스는 둘 사이를 짐작하고 떠났단다. 루스가 편지를 보냈지만, 메리언은 답장조차 보내지 않았어. 그런데 얼마 후 루스가 비행기 이륙할 때 폭발로 죽고 말았단다. 메리언은 다시 한번 충격에 빠졌고, 루스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자책을 했단다. 하지만 루스가 다시 돌아올 수는 없는 일

 

2.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났어. 루스가 죽은 이후 메리언은 한동안 방황을 했단다. 1947년이 되어서야 고향 미줄리로 돌아왔어. 메리언 앞으로 편지들이 많이 와 있었어. 세라로부터 온 편지가 있었는데, 그 편지를 통해 제이미의 생물학적 딸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제이미가 더 불쌍해지는구나. 그리고 마틸다라는 사람으로 온 편지들이 많이 있었어. 마틸다는 누구냐면…. 1권에서 메리언의 아버지가 큰 여객회사의 사장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다고 했잖아. 그 큰 여객회사의 사장의 아내가 바로 마틸다였단다. 그 사람의 편지를 수차례 보낸 이유는 이렇단다. 메리언의 아버지 애디슨이 운행하던 여객선이 폭발하여 메리언의 엄마는 실종되고, 그 사고의 책임으로 메리언의 아버지 애디슨은 10년 동안에서 감옥에서 지냈잖아. 그런데 그 여객선의 폭발이 사실은 그 여객회사 사장이 화물칸에 실은 폭탄 때문이었던 거야. 당시 사장은 사고가 난 이후 그 사실을 쉬쉬했고, 여객선 선장이었던 애디슨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자신이 10년형을 받은 것이란다. 마틸다는 지금이라도 보상하고 싶다면서 편지를 보내온 것이야.

메리언은 마틸다를 만났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말하라고 해서, 메리언은 자신의 꿈인 비행기로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고 했고, 마틸다는 흔쾌히 그 비용을 지원해 주기로 했단다. 그러면서 마틸다는 한 가지 제안을 했어. 비행을 하면서 있었던 일이나 생각들을 일기 또는 일지 쓰듯 적어보라고 했어. 그것은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어. 그렇게 메리언은 세계일주의 모험이 시작되었단다. 세계 일주를 하려면 혼자는 어렵고 유능한 항법사가 필요했는데, 에디가 떠올라 메리언은 에디에게 이 모험을 제안했고, 에디는 흔쾌히 하겠다고 했단다. 둘은 오랜만에 다시 만나 비행 준비를 했단다.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그들은 비행기를 몰고 첫 출발지인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갔어. 쿡제도 아이투타키 섬으로 갔고, 하와이를 거쳐 알래스카 배로로 갔어. 당시 비행기로는 한번에 세계 일주를 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고, 당연히 중간에 내려서 기름도 보충하고 비행기도 정비하고 그들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비행하는 것이었단다. 알래스카 배로를 떠나 스발바르 롱위에아르뷔엔로 갔는데, 스발바르는 북극 인근의 섬이란다. 메리언과 에디가 지나는 곳을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면, 뉴질랜드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계속 올라와서 북극 지역을 지나고 있는 거야. 스발바르 다음에는 스웨덴 말뫼로 왔고, 다시 남아프리카 케이프다운에 도착했단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코스인 남극대륙 퀸모드랜드 모드하임을 거쳐 남극대륙의 의 로스빙붕 리틀아메리카 III 기지에 도착하게 된단다.

이 기지는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비어 있는 기지였단다. 마지막 코스는 남극 로스빙붕에서 첫출발지인 뉴질랜드로 가는 길인데, 이 길이 만만치 않고 당시 남극의 환경이 만만치 않았어. 그렇다고 그곳에 남아 있는 식량도 많지 않아 오래 머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단다. 에디는 남극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 부렸어. 그들은 비행을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바다에 빠져 죽을 것이라고 했어. 그뿐만 아니라 그는 남극에서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했어(아빠의 기억력이 정확하지 않지만) 메리언은 끝까지 에디를 설득했지만, 에디의 뜻은 바위보다 완고했고, 실랑이 끝에 메리언은 혼자 떠나기로 했단다. 메리언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꿈을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메리언은 혹시 자신이 바다에 빠져 죽을 수 있으니, 그 동안 남긴 기록은 남극 리틀아메리카 III 기지에 남기기로 했단다. 메리언은 마지막 비행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이룬 다음 자신을 생각해 보았어. 이제 자신의 마지막 꿈을 이루었으니 조용히 은둔하면서 지내기로 마음먹었단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위기가 찾아왔어. 생각보다 비행기가 연료가 급격히 떨어지고 비행기를 탈출해야 했어. 오히려 이 상황이 자신이 은둔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 메리언은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하게 하고 자신은 낙하산으로 탈출하였고, 인근에 이름 모를 섬에 내려앉았단다

그곳은 알고 보니 캠벨이라고 하는 외딴 섬이었단다. 다행히 그곳에는 기후를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머물고 있었어. 그 연구원들은 메리언을 도와주었고, 나중에 뉴질랜드 본토로 가는 것도 도와주었단다. 뉴질랜드에 도착을 한 메리언은 남장을 하며 양치기 생활을 했어. 그리고 케일럽에게 암호와 같은 편지를 보냈는데, 눈치 빠른 케일럽은 그것이 메리언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곧바로 뉴질랜드로 날아왔단다. 그 이후로 케일럽은 주기적으로 뉴질랜드로 왔고, 75살 케일럽이 죽기 전까지 그들의 만남을 이어갔단다. 그리고 메리언은 세계 일주를 성공 46년 후 조용히 눈을 감았단다. 그리고 남극 기지에 남겼던 메리언의 일지는 58년이 지난 후 발견되었고, 큰 화제를 일으키며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단다. 사람들은 그 기록 이후 메리언의 흔적이 사라졌기 때문에 결국 세계 일주를 성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알려졌단다.

….

이 소설은 1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거 메리언의 이야기와 현재 메리언을 연기하게 된 해들리라는 영화배우의 이야기도 교차하면서 진행된다고 했잖아. 그런데 사실 해들리의 이야기를 비중이 아주 적더구나. 그래서 아빠도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한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해들리가 메리언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어찌 저찌하여 메리언의 생물학적 조카분을 만나게 되고, 그 조카분을 통해서 메리언이 당시 죽지 않고 뉴질랜드에서 지내셨다는 것을 추리하게 되었단다. 그렇게 새롭게 알게 된 사실로 해들리가 출연한 영화의 마지막은 더욱 극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구나.

….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났단다. 이 소설 속에서 메리언의 삶을 영화로 만드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소설 자체가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빠의 머릿속에서 세계일주를 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영화로 만든다면 영상미가 멋진 영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가상의 인물의 이야기였지만, 실재했을 것만 같은 이야기였단다.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조감독이 모두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책의 끝 문장: 송어와 함께 처음 하늘에 올랐을 때처럼, 순수한 가능성의 힘으로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이제 모든 걸 보게 될 것처럼, 그렇게 육신에서 빠져나가 승천하기를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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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글은 지난 700년 동안 한민족의 정체성이고, 분단 70년이 되는 지금 남북 겨레의 공통점이다. 남북 8천 만 겨레와 해외 교포 교민 800만의 원형질이다. 이 원형질은 한국어(조선어)를 통해 공유된다. 세계 200여 국가 중에서 우리가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한 언어는 한국어뿐이다.


(25)

국난기에 인재가 많이 나타나듯이, 같은 해에 황해도 해주에서 백범 김구가 출생하였다. 김구와 주시경은 걷는 길이 달랐으나 목표는 다르지 않았다.

김구는 동학에 들어가 소년접주가 되고 신민회 참가, 105인 사건, 투옥, 해외망명, 임시정부 주석 등을 지내며 항일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쳤다. 주시경은 서재필이 발행한 <독립신문>에 참여한 이후 국내에서 한글과 국문의 연구와 후진 양성에 짧은 생애를 바쳤다. 독립협회 등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만났을 지도 모른다.


(78)

조선 글자가 페니키아에서 만든 글자보다 더 유조하고 규모가 있게 된 것은, 자모음을 아주 합하여 만들었고, 단지 받침만 때에 따라 넣고 아니 넣기를 음의 돌아가는 대로 쓰나니, 페니키아 글자 모양으로 자모음을 옳게 모아 쓰려는 수고가 없고, 또 글자의 자모음을 합하여 만든 것이 격식과 문리를 더 있어 배우기가 더욱 쉬우니, 우리 생각에는 조선 글자가 세계에서 제일 좋고 학문이 있는 글자로 여겨지노라.


(81)

이렇게 규모가 있고 좋은 글자는 천히 여겨 내버리고, 그렇게 문리가 없고 어려운 그림을 애 쓰고 배우는 것은 글자 만드신 큰 은혜를 잊어버릴 뿐더러 우리나라와 자기 몸에 큰 해와 폐가 되는 것이 있으니, 배우기와 쓰기 쉬운 글자가 없으면 모르되, 어렵고 어려운 그 몹쓸 그림을 배우자고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 하고 다른 재주는 하나도 못 배우고, 십여 년을 허비하여 공부하고서도 성취하지 못하고 사람이 반이 넘으며, 또 십여 년을 허비하여 잘 공부하고 난대고 그 선비의 아는 것이 무엇이뇨. 글자만 배우기도 이렇게 어렵고 더딘데, 인생 칠 팔십 년 동안에 어렸을 때와 늙을 때를 빼어 놓고, 어느 겨를에 직업상 일을 배워 가지고 또 어느 겨를에 직업상 실상으로 하여 붙는지 틈이 있을까 만무한 일이로다. 부모 앞에서 밥술이나 얻어먹을 때에는, 이것을 공부하노라고, 공연히 인생이 두 번 오지 아니하는 청년을 다 허비하여 버리고, 삼사십 지경에 이르도록 자시 일신 보조할 작업도 이루지 못하고 어느 때나 배우려 하느뇨.


(151-152)

가령 동서양 사기(史記)라든지 성경현전(聖經賢傳)이라든지 법을 규칙 같은 천만사를 모두 국문으로 번역하고 아무쪼록 국문을 연구하여 남이 알기 쉽도록 만들겠더면 사람마다 세계 형편도 알기 쉬울 것이요, 성경현전의 좋은 말과 좋은 행실을 보아서 모두 지식도 늘도 행실도 점잖아질 터이요, 내 나라 일과 남의 나라 일을 보아 분변하는 애국성(愛國性)도 생길 터이거늘, 한문으로 기록한 책만 보아야 하겠고 수 십 년을 공부하여야 성공할는지 말는지 한 한문 공부만 하여야 될 줄만 아나니, 어느 겨를에 다른 것은 아니로되 국문을 등한히 여기고 힘쓰지 아니할 것이 아니기로 두어 마디 설명 하거니와 국문이 발달되는 날에야 우리 대한이 세계에 독립부강국이 될 줄로 짐작하노라.


(155-156)

우리 반도에 태고 적부터 우리 반도 인종이 따로 있고 말이 따로 있으나 글은 없었다. 중국을 통한 후로 한문을 쓰다가 세종대왕이 지극히 밝아서, 각국이 다 그 나라글이 있어 그 말을 기록하여 쓰되 홀로 우리나라는 글이 완전히 못함을 개탄하고, 국문을 창제하여 중외(中外)에 반포하였으니 참 거룩한 일이다. 그러나 후손들이 그 뜻을 본받지 못하고 오히려 한문만 숭상하여, 어릴 때부터 이삼십까지 아무 일도 아니하고 한문만 공부로 삼되 능히 글을 알아보고 능히 글로 그 뜻을 짓는 자가 백에 하나가 못 된다. 이는 다름 아니라 한문은 형상을 표하는 글일 뿐더러 본래 타국 글이므로 이 같이 어려운 것이다.


(166)

다시 해가 바뀐 1909 2 23일 통감부는 출판물의 원고 검열과 배일 항일 출판물의 압수를 합법화하는 출판법을 공포했다. 이 조처로 연말까지 5,767권의 민족운동 관련 책이 압수되어 소각되거나 일본으로 실려갔다. 9 2일을 기해 일본군이 남한의병 대학살작전을 전개하여 의병의 씨를 말렸다. 영국 기자 F.A. 맥켄지는 일본군의 잔학상을 전하며, 번잡하고 유복했던 마을 제천이 온전한 벽도 대들보도, 파손되지 않은 그릇도 하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지도상에서 사라졌다고 보도하였다. 일본군은 의병학살에 이른바 삼광작전(三光作戰)’이라 하여 모두 죽이고 모두 탈취하고 모두 불태우는야만성을 드러냈다.


(173-174)

이 마음이 없으면 몸이 있어도 그 몸이 아니요, 터가 있어도 터가 아니니, 그 국가의 성쇄도 언어의 성쇄에 있고, 국가의 존부도 언어의 존부에 있는 것이니, 그 국가의 존부에 있는 것이니, 그 국가의 존부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금의 세계 열국이 각각 제 언어를 존숭하여, 그 언어를 기록하여 그 문자를 각각 자음이 다 이를 위한 것이다.


(194)

한글이란 이름은 주시경 님이 지어 쓰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나, 현재 남아 있는 최초의 기록으로는 신문관 발행의 어린이 잡지 <아이들 보이>의 끝에 가로글씨 제목으로 한글이라 한 것이 있다. 이 이름이 일반화하게 된 것은 한글학회전신인 조선어연구회’(1921 12 3일 창립)에서 1927 2 8일 창간한 기관지 <한글>을 발행한데 이어 또 훈민정음 반포 8주갑 병인면(1926) 음력 9 29일을 반포기념일로 정하여 가갸날로 명명한 뒤, 1928년에는 가갸날한글날로 고쳐 부르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는 1946 10 9한글날이 공휴일로 제정되면서부터라 하겠다. 그런데 이 한글이란 이름을 제일 먼저 지은 분은 신명균(1889~1941) 님이라고도 하고, 최남선(1890~1957) 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믿을 만한 말이 못된다.


(200)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리어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리어지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를 나아가게 하고자 하면 나라 사람을 열어야 되고, 나라 사람을 열고자 하면 먼저 그 말과 글을 다스린 뒤에야 되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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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서클 1
매기 십스테드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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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인터넷 서점에서 우연히 알게 된 <그레이트 서클>이라는 소설의 1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책소개를 대충 봤을 때는 실존 인물을 소설로 각색한 것인 줄 알았는데, 소설 속 인물들은 지은이가 만든 허구의 인물들이란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큰 꿈을 꾸며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겠지. 판타지 소설이 아닌 이상 소설은 우리 삶 속에, 지나간 시간 속에 있었을지도 모를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지은이는 미국 작가인 매기 십스테드라는 사람인데, 아빠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란다. 책 제목 그레이트 서클이 무슨 뜻일까? 하면서 책을 펼쳤는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 의미가 적혀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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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구든 정확히 반으로 갈랐을 때 나오는 두 반구의 절단면을 대원(great circle)이라고 한다. 즉 대원은 구 위에서 그을 수 있는 가장 넓은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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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정확히 반으로 가른 원을 따라 세계 일주를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의 책을 통해 그를 알게 되었고,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된 사람의 이야기.... 그것이 이 소설의 큰 줄기란다.

 

1.

그러면 <그레이트 서클> 1권의 이야기를 해볼게. 첫 번째 주인공 메리언 그레이브스. 1914년생. 두 번째 주인공 해들리 백스터. 21세기 유명한 영화배우. 해들리의 부모님은 해들리가 어렸을 때 경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시고, 해들리는 삼촌 미치가 해들리를 어렸을 때부터 키웠고, 해들리는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었단다. 해들리가 유명한 여배우였기 때문에 파파라치가 뒤따랐고, 사생활 보호가 거의 되지 않았어. 거기에 해들리는 사랑에 좀 개방적이다 보니,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단다. 이번에 새로 준비하는 영화는 여자 비행사 메리언의 삶을 다룬 영화인데, 해들리는 오디션에 참가하여 주인공 메리언의 역을 맡게 되었어. 어렸을 때 책으로 알고 있던 메리언인데, 당시에도 메리언도 삼촌이 키웠다는 자신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서 관심 있던 사람이었는데, 자신이 그 사람을 연기한다고 하니 더욱 특별하게 생각했어.

, 그러면 메리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보자. 메리언의 아버지는 애디슨 그레이브스로 선장이었단다. 그는 큰 여객회사의 사장 로이드의 목숨을 구해준 인연으로 그 여객회사의 여객선을 운전할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내 애너벨을 만났단다. 애너벨이 바로 메리언의 어머니였어. 애너벨은 쌍둥이를 낳게 되었는데, 메리언과 제이미가 그들이었어. 출산을 하고 애너벨은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고, 애디슨은 아내의 기분을 풀어줄 겸 자신이 항해하는 여객선에 태우고 바다로 향했어. 그런데 그 배에서 원인 모를 폭발이 일어나서 침몰했단다. 애너벨은 실종되었고, 애디슨은 두 어린 아기들을 구조선에 맡기려고 했어. 하지만 자신마저 죽고 나면 저 아기들은 누가 보호해주냐는 생각에 두 아기들을 데리고 구명보트에 탑승했단다.

선장에 승객과 배를 버리고 먼저 구명보트에 탑승했다는 일로 애디슨은 온갖 비난을 받았고, 과실치사로 10년형을 받았단다. 그는 항변을 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감옥에 들어갔단다. 그리고 아기들은 삼촌 윌리스가 기르게 되었어. 9년 반 후 애디슨이 출소하고 윌리스 집에 찾아왔어. 아기들은 쑥쑥 자라 아이들이 되었고, 감격의 해후를 가졌단다. 하지만 하루 만에 애디슨은 몰래 다시 집을 떠났단다. 하룻밤의 꿈이었을까. 아직 어린 메리언과 제이미는 다시 삼촌과 지냈어. 메리언은 오두막에 남겨진 아버지가 남긴 책들을 읽는 것을 좋아했어. 메리언에게는 친구이자 쌍둥이 동생인 제이미와 이웃에 살고 있는 케일럽과 절친이었단다.

또 시간이 흘러 12살이 된 메리언은 자신의 마을에 온 비행기 조종사 부부를 만나게 되었고, 처음으로 그 비행기에 타보게 되었어. 그 이후에는 조종사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단다.

 

2.

메리언은 비행 수업을 받기 위해 온갖 굳은 일들을 하면서 돈을 모았단다. 당시 미국에는 술이 불법이어서 밀주 사업이 성행했단다. 메리언은 스텐리라는 사람의 밀주 사업의 운반책을 했는데, 그것이 주된 수입원이었단다. 한편 삼촌 윌리스가 도박에 점점 빠지면서 차까지 잃고 빚까지 지게 되었어. 메리언은 비행 수업을 위해 모든 돈으로 삼촌의 빚을 갚아주었어. 비행 수업 계획은 다소 지연되었단다. 메리언이 비행장으로 밀주 배달을 갔다가 비행사 송어을 만나게 되고, 비행기에 관심 있어 하는 메리언에 비행기를 태워주고 조작법도 가르쳐 주었단다.

운행을 마치고, 송어가 이야기하길, 익명이 후원자가 메리언의 비행 교습비를 대신 내준다고 했대.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 와서 비행 수업을 들으라고 했어. 메리언은 그 후원자가 누구인지 짐작이 되어 거절했단다. 목장주이자 또 다른 밀주업자인인 버클리라는 사람인데, 메리언에 접근을 하던 남자였단다. 하지만 메리언은 비행을 너무 배우고 싶어했고, 돈은 모이려면 한참 걸려야 해서 결국 버클리가 후원하는 돈으로 비행을 배우게 되었어. 버클리와 자주 만나게 되었고, 친구가 되었어.

메리언은 기계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단다. 비행기 운전도 빠르게 배웠고, 이내 단독 비행까지 알 수 있었어. 그런데 어느날 메리언의 스승인 송어가 비행기 사고로 죽고 말았단다. 메리언은 이제 혼자 비행기를 운전했고, 비행기로 버클리가 몰래 만든 밀주들을 수송하는 일을 했어. 시간이 지날수록 버클리의 본색이 드러났단다. 메리언에 대한 집착이 심했고, 그 집착이 심해져 폭행까지 휘둘렀어. 물론 바로 사과를 했지만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언은 돈 때문에 버클리를 떠날 수 없었어. 삼촌 윌리스는 여전히 도박과 술 때문에 큰 빚을 지고 있었는데, 그 돈을 갚기 위해서라도 메리언은 버클리와 결혼하기로 했단다. 제이미가 심하게 반대했으나, 메리언은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

결혼을 한 후에도 메리언은 계속 비행기를 타려고 했으나 시댁 식구들의 반대로 한동안 비행을 하지 못했단다. 더욱이 버클리는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메리언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이 낳을 생각은 없었단다.

한편 결국 삼촌 윌리스는 알코올중독 증상이 심해져 병원에 입원했고, 제이미는 무작정 집을 떠났단다. 시애틀에 가서 아버지를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고 일자리도 구하기 쉽지 않았어. 어렸을 때부터 제이미는 그림 그리는 것에 소질이 있었는데, 제이미는 공원에서 사람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을 해 보았는데, 이것이 인기를 끌어 사람들이 제이미에게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했단다. 그 중에 세라라는 여자도 있었는데, 제이미는 첫눈에 사랑에 빠졌단다. 세라의 아버지는 도축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단다. 세라를 통해 제이미의 그림을 보고, 제이미를 화가 대접을 해주며 집으로 초대했단다.

세라의 아버지는 제이미에게 자신의 미술작품을 정리하는 일을 시켰어. 이게 웬 떡이야.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의 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실컷 보는 일을 하다니뿐만 아니라 세라의 아버지는 제이미의 재능을 보고, 후원해 주겠다고 했단다. 그런데 제이미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단다. 제이미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애호가로 고기도 잘 먹지 않았는데, 세라의 아버지의 직업이 동물들을 마구 죽이는 도축업자라는 거야. 그런 도축업자로부터 후원을 받는다는 것이 마음이 너무 불편했던 거지. 제이미가 동물애호가에 육식도 안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세라의 아버지는 화를 내며 제이미를 내쫓았단다. 제이미가 세라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동물을 죽이고 그것을 먹는 것은 그에게 너무한 힘든 일이었던 거야.

제이미는 다시 고향 미줄라로 돌아왔지만, 그림도 손에 집히지 않고 결국 삼촌처럼 알코올에 빠져 살게 되었단다. 여기까지가 대략적으로 1권까지의 이야기란다. 2권에서는 훌륭한 비행 조종사를 향한 메리언의 꿈이 이루어지고, 제이미도 다시 정신차려 화가로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오늘 이야기를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나는 떠돌이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

책의 끝 문장: “나를 용서해주면 비행할 수 있어.” 그가 말했다.

 


지금은 나미비아가 된 나라에서 메리언은 이렇게 썼다. 나는 이 밤에 이 발코니의 특별한 각도에서 본 이 특별한 달을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만일 잊는다면, 내가 무얼 잊었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망각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잊었다. 내가 본 거의 모든 것을 잊었다. 체험은 더해나 물결처럼 우리에게 밀려든다. 기억은 병에 담긴 물 한 방울이며, 그 짜고 농축된 물방울은 그것이 속해 있던 신선하고 풍성한 물결과는 다르다. - P425

"왜냐하면 비행은 당신 뼛속에 있으니까." 메리언은 놀라서 희미하게 빛나는 그의 흰 셔츠 위에 그림자 진 얼굴을 빤히 보았다. 자신도 그렇게 믿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입을 열 사이도 없이 그가 덧붙였다. "내가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이 그랬어. 당신은 내 뼛속에 있었지." -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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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 곰탕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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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 2024 부커상 수상작
서맨사 하비 지음, 송예슬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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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아빠가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 서맨사 하비라는 사람의 처음 들어보는 소설 <궤도>라는 책이란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처음 들어보는 소설을 덥석 읽었던 것은 이 책이 작년 2024년 부커상 수상작이었기 때문이란다. 세계 3대 문학상이라고 부르는 부커상은 약 10년 전에 우리나라 한강 작가가 수상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졌는데, 아빠는 그 이전에 부커상 수상작들을 간간히 읽곤 했었단다. 부커상은 원작이 영어로 된 소설 중에 주는 본상이 있고, 영어로 번역한 작품에 주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이 있단다. 이번에 읽은 <궤도>라는 소설은 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란다. 문학상 수상작을 받게 되면 그 작가를 모르는 경우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읽게 되곤 하지.

몇 달 전에 2023년 부커상 본상을 받은 <예언자의 노래>를 재미있게 읽었으니 더욱 2024년 부커상 수상작에 관심을 갖게 보았단다. 너무 기대를 했던 것인지, 일단 아빠 취향의 소설은 아니었단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부커상을 수상하였다고 하는데, 아빠는 공감할 수 없었단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내는 여섯 사람의 일상과 그곳에서 바라보는 지구, 우주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영상을 글로 옮겼다는 것 이외에 신선함 마저 느낄 수 없었단다.

시적 언어를 사용하였고, 국제우주정거장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이들의 고독과 그들 사이의 유대감을 소설로 그리긴 했는데, 결국은 반전이나 극적인 사건 없는 다큐멘터리와 같은 소설이었단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을 글로 표현했는데, 그것을 읽으면서 아빠의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바꿔야 했단다. 그런데 그것이 그냥 유튜브로 찾아보는 영상보다 나은 지 잘 모르겠더구나.  아무튼 아빠의 취향이 아닌 소설을 활자 하나하나 곱씹어 읽으면서 책의 마지막을 펼쳤단다.

그래도 읽는 내내 어떤 극적 사건이나 반전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읽어서, 책 중반까지는 책에 등장한 멋있는 문구들의 페이지를 꽤 적어 두었는데, 그것이 그것으로 그쳐버린 점이 아쉬웠단다. 읽은 이들의 평가를 보면 여운이 깊다거나 잔잔한 울림을 준다고 하는 글도 있는데, 아빠의 감성 그릇에는 절반도 채워지지 못했단다.

 

1.

그래도 소설의 내용은 몇 자 긁적여 봐야겠구나. 국제우주정거장에 여섯 명이 머무르며 근무하고 있었어. 선장인 로만과 안톤은 러시아 출신이고, 숀은 미국, 피에트로는 이탈리아, 넬은 영국, 치에는 일본 출신의 연구자들이란다. 로만, , 넬은 3개월 전에 합류했단다. 지구를 돌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하루라는 개념은 24시간으로 정의하고 있단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열여섯 번의 일출과 열여섯 번의 일몰을 볼 수 있단다. 멋진 일출과 일몰을 보려고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하루에 열여섯 번씩 볼 수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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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들은 우주가 날짜 감각을 없애려 한다는 것을 느낀다. 우주는 말한다. 날이 대체 뭔데? 스물네 시간의 하루를 지키려 하고, 지상 근무원들도 계속해서 그 점을 일깨워 주지만, 우주는 스물네 시간을 열여섯 번의 낮과 밤으로 돌려준다. 그래도 이들은 악착같이 스물네 시간을 산다. 시간에 매여 사는 허약하고 작은 몸이 아는 게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에 맞춰 잠을 자고 변을 누고, 모든 게 거기 묶여 있다. 하지만 첫 주가 지나기도 전에 마음은 시간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진다. 하루 개념이 없는 기이한 영역으로 풀려나가 질주하는 지평선 위를 타고 넘는다. 분명히 낮인데 밀밭에 몰려드는 먹구름처럼 밤이 찾아오는 것을 본다. 그러다 45분이 지나면 또 낮이 찾아와 태평양이 깔린다. 과거에 생각했던 전혀 다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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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구를 하루에 열여섯 번씩 관찰을 하다 보니, 지구의 아름다움 곳곳을 볼 수 있단다. 그런 지구의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해주고 있는데, 읽는 이는 다시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변환시켜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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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처음에 이들은 밤 풍경에 매료되었다. 화려한 도시 불빛을 외피에 두른 지구는 인간이 만든 것들 것 황홀하게 빛난다. 도시 태피스트리가 두껍게 수놓인 밤의 지구는 또렷하고 선명하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유럽 해안지대에는 1마일이 멀다 하고 사람이 산다. 유럽 대륙 전체가 도시 별자리들과 황금빛 도로 실들로 아주 정교하게 엮여 윤곽을 드러낸다. 황금 실들은 눈이 내려 가의 언제나 회청색으로 보이는 알프스산맥까지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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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태풍이 발생하면 태풍의 정보를 지상으로 전해주어 태풍의 피해를 막아보려고 노력하기도 해.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자신들이 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지구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을 우주 속에서 바라봐 보면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단다.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티끌 같이 작은 지구 안에서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겠냐 말이야.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아빠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우주를 생각하곤 한단다. 이 광활한 우주의 공간과 시간을 생각하다 보면 아빠의 스트레스는 너무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리니까 말이야. 그런 것들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생활하다 보면, 금방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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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130)

그러다 어느 날 변화가 찾아온다. 이들은 지구를 보다가 진실을 마주한다. 정치가 정말로 촌극인 게 아닌가. 정치는 그저 터무니없고 어리석고 가끔은 정신 나간 쇼일 뿐이며, 그걸 제공하는 인물들은 어느 구석이라도 혁명적이거나 혜안이 깊거나 현명한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목소리가 크고 힘이 세고 과시에 능하고 뻔뻔하게 권력 싸움을 갈망했기에 그 자리까지 오른 자들 아닌가.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해 여기서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들은 정치가 촌극이 아님을, 촌극에만 그치지 않음을 서서히 깨닫는다. 정치는 아주 거대한 힘이어서, 우주에서 봤을 때는 인간의 힘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지상의 모든 것을 일일이 다 결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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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

인간의 욕망이라는 실로 놀라운 힘이 지구를 형성한다. 그 힘이 모든 걸 바꿨다. , 극지방, 저수지, 빙하, , 바다, , 해안선, 하늘을, 욕망에 따라 윤곽이 그려지고 조경된 행성을.

===============

….

이런 식의 글로 소설은 끝을 맺는단다. 초반부에는 내심 우주정거장 내에서 한 사람이 피살당하고 다섯 명 사이에서 범인을 찾는 심리스릴러를 기대했다가, 중간을 넘어 가면서, 그들이 생활하던 곳은 사실 작은 원자 속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이었다는 반전을 기대하면서 책장을 넘겼지만, 끝내 다큐멘터리로 끝이 났단다. 아빠가 SF 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을 너무 많이 봤나 보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영화 <그래비티>가 많이 생각났단다. 우주정거장에서 사고가 나서 살아남은 한 명의 우주의 생존 투쟁을 그린 영화로 스토리 상으로는 이 소설과는 상관성이 전혀 없지만, 우주에서 바로 본 지구의 영상들이 많이 등장하여 그런 생각이 든 것 같구나. <그래피티>라는 영화를 너희들과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조만간 한번 같이 보자꾸나.

그러면 오늘은 여기서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돌다 보면 너무 함께이고 또 너무 혼자여서 생각과 내면의 신화조차 이따금 한데로 모인다.

책의 끝 문장: 짧은 순간에 모여 하나가 되고는, 거칠고 경쾌한 세상의 잡음 은하계 목관 악기 트랜스 음악으로 요란하게 뒤죽박죽 다시 흩어진다.

 


외계 문명이 본다면 아마도 의아할 것이다. 저것들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어디로 가지도 않고, 왜 맴돌기만 하는 거야? 모든 질문의 답은 지구다. 지구는 환희에 찬 연인의 얼굴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구가 잠들었다 깨어나고 자기 버릇에 푹 빠져 사는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지구는 이야기와 기쁨과 그리움을 잔뜩 안고서 아이들이 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다. 이들은 뼈의 밀도가 조금 낮아지고 팔다리가 조금 가늘어진다. 눈에는 뭐라 말하기 힘든 광경들이 가득하다. - P10

몽골이나 러시아 동쪽 끝 황무지에 사는 사람이라거나 이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 누구도, 싸늘한 오후인 지금 비행기가 다니는 길보다도 더 높은 하늘에 우주선 한 대가 지나고 있으며, 거기 타 있는 인간이 무중력의 유혹에 굴복해 근육을 잃지 않기 위해, 새처럼 떠다니며 뼈를 다 소실하지 않기 위해 다리 힘으로 열심히 리프트 바를 들어 올리고 있다고는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렇게 힘쓰지 않으면 가엾은 우주여행자는 지구로 되돌아가 다리라는 게 다시 중요해졌을 때 온갖 문제를 겪게 된다. 열심히 들어 올리고 땀을 흘리고 밀어내지 않으면, 재진입할 때의 맹렬한 열기와 충격은 이겨 내더라도 캡슐에서 내릴 때는 한 마리 종이학처럼 맥을 못 춰 끌어내려질 것이다. - P24

우주에서 6개월을 보내고 나면 엄밀히 말해 지구에 있는 사람보다 0.007초 덜 늙는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5년, 10년은 더 늙는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이해할 따름이다. 시력이 약해지고 뼈가 삭을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는데도 근육이 위축될 것이다. 피가 엉기고 뇌액의 흐름이 달라진다. 척추가 늘어나고 T세포는 재생에 애를 먹는다. 신장 결석이 생긴다. 이곳에서는 입맛도 잘 돌지 않는다. 부비강은 죽을 맛이다. 고유감각이 흐려져 눈으로 보지 않고는 신체 부위가 어디 달렸나 알기 힘들다. 몸이 이상하게 생긴 체액 자루가 된다. 체액이 상체에는 너무 쏠리고 하체에는 부족해진다. 안구 뒤쪽에도 몰려 시신경을 압박한다. 수면이 반란을 일으킨다. 장내미생물군이 새로운 박테리아를 키운다. 암 발병 위험이 올라간다. - P49

50년 넘도록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곳, 우리의 달은 인간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그리운 마음에 지구를 향해 밝은 면을 내보이고 있는 걸까? 우리의 달 그리고 다른 모든 달과 행성과 태양계와 은하계도 알려지기를 갈망하고 있을까? 떠난 지 사흘이 채 되지 않은 내일이 오면, 이 이상한 집착에 사로잡힌 인간 존재들이 가루로 덮인 달 표면에 귀환할 것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세상에 나부끼는 깃발을 꽂고 싶어 하는 존재들, 집요한 마시멜로들, 두둥실 하늘을 떠다니는 선원들은 자기네 깃대가 쓰러지고 성조기가 해진 것을 발견하리라. 50년 동안 자리를 비우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 세상은 당신 없이 계속 돌아간다. 우주비행사 네 명은 그렇게 해변 막사에서 잠을 청했다. 눈을 뜨면 새 시대가 도래하리란 것을 알고서. - P57

그리고 우리는? 우리는 하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재사용하고 공유한다. 우리는 갈라질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진실이다. 그럴 수 없으므로 그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오줌을 재활용해 마신다. 서로가 뱉은 숨을 재활용해 숨 쉰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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