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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적당히 취할만큼 술을 마신 후에 적은 감상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이 감상을 읽어보면 되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읽어볼 예정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 감상 역시 내리 휘갈린 후 올려 버릴 것이므로.
예고하건데, 이 감상은 몹시 감상적인 감상이 될 예정이므로 감상적인 것을 싫어하는 이는 읽지 말 것을 권함.
책마다 읽는 이유와 목표가 제각각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은 출근과 퇴근 시간동안 읽었기에 거의 일주일 가까이 걸려 읽은 책이다. 시작부터 완독까지는 일주일도 넘게 걸린 책이기도 하다.
<안녕 헤이즐>이라는 영화의 원작으로 알려진 소설이기도 한데 의외로 영화는 알지만 소설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우울한 이야기다. 불행한 이야기이며,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는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우울, 동정, 슬픔은 소설 속 화자의 말을 빌리자면 '죽음의 부작용'일 뿐이다. 그리고 죽음이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이며 필연적인 것이기에 그것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것은 사실 큰 의미 없는 무의미한 일일 뿐이다.
이 책을 다 읽었을즈음 한 편의 글을 편지에 적었다. 어쩌면 인간이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면서 그 죽음이 언제 들이닥칠지 알지 못하는 존재라고 느꼈기에 그런 편지를 적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 적고도 편지를 보내지 못하는 데는 언제 죽음이 닥칠 지 모른다는 막연함이 작용하고 있었다. 10년 혹은 50년을 더 산다면 그 편지가 부끄러워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거다.
이런 생각은 불확실한 내일의 소유자인 나에게는 대단히 사치스러운 것이다.
그런 사치를 아무렇지 않게 거듭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삶이다. 나는 얼마나 방탕한가. 이런 자책을 이해할 수 있는가?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는 아직 10대에 불과하지만 치명적인 암으로 인해 언제 그 생명을 잃어버릴 지 모른 채, 어느 정도의 체념과 어느 정도의 두려움 그리고 어느 정도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소아암 환자들의 우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다르게는 사랑과 세상에 대한 애정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오래 전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던 날이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죽을 병에 걸렸음이 밝혀지면 어쩌지?"
"어느날 갑자기 죽게 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두 가지 상황의 결론은 동일하다.
"어쩔 수 없지. 곧 죽게 될 것이거나 이미 죽어버린 걸."
이외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떠올릴 수 있을까?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아암 환자들의 자기 인식이 슬픔을 안기는 결정적인 이유는 '수용'과 '체념'이다.
이미 모든 고통이나 두려움, 슬픔이나 미련이 '죽음의 부작용'임을 인식하고 있는 아이를 보는 일은 얼마나 슬프고 힘겨운 것일까.
무슨 짓을 해도 언제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장날 지 알지 못하는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두려운 삶은 오히려 끝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곧 죽을 것이기에, 머지 않아 세상을 떠날 것이기에, 내일을 확신할 수 없기에 이들은 절망에게 희망 몫의 자리까지 내놓는다. 온 마음이 절망으로 가득한 동안은 오히려 슬픔이나 설움이 마음을 장악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을 보는 일이란 몹시도, 대단히도 서글픈 일이라 마음으로 울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거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주인공은 고작 열여섯이다. 그리고 그 나이에 이미 모든 희망이 박탈되었다는 것을 태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 앞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좌절이나 슬픔을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되는 필멸자로 세상에 태어났지만 어떤 생명체도 죽음을 자처하지는 않는 법이다. 모두가 생을, 삶을, 시간을 갈구한다. 죽음은 그 모든 것을 완벽하고 철저하게 박탈한다. 거기에는 어떤 희망도 약속도 없다. 그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완결이다.
죽음은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앞에 두고도 사랑을 막지는 못한다.
"돈이 없어서 사랑을 못해요."
"사랑하지만 시간이 모자라요."
"그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어요."
사랑하기를 그만두거나 포기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에게 이런 이유들은 모두 사치스러운 투정처럼 들릴 것이 분명하다. 이들이야말로 내일을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하고 또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이 이야기는 스스로의 존재의 마지막인 죽음과 죽음을 앞두고 소중한 사람을 만들려는 시도에 대한 성찰, 남겨질 지 모를 사람에게 안길지 모를 상처까지를 염려하며 자기 안에 갇혀 마지막을 기댜리는 소녀의 이야기다. 그러나 암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도 모든 인간은 내일의 삶을 확신할 수 없는 불확실한 존재다. 병이 있고, 암에 걸렸기에 먼저 죽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삶을 위협하는 죽음은 암 하나가 아니다. 삶의 부작용이 죽음이라면 죽음은 삶의 어디에나 웅크리고 있다가 삶을 거꾸러뜨릴 수 있게 되는 게 당연한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삶은 사랑하면서 죽음은 두려워하고 또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피하려고 애쓰는 동안 흘러가버리는 삶은 두려움의 부작용으로 삶의 어느 부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술에 취한 상태라는 것을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횡설수설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의 상태다. 거기에 이 시간이다. 술에 취한데다 잠까지 부족하다면 도대체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나부터 궁금할 지경이다.
앞에서 책마다 읽는 목표나 이유가 제각각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처음부터 목적이나 이유를 정하고 읽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책 역시 처음에는 아무 목적 없이 읽기 시작했었다. 그러다가 하나의 목표가 생겼는데, 그 목표란 이 책의 제목인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라는 문장에 숨겨진 의미를 밝히는 거였다.
결론부터 적자면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일단 무슨 '잘못'인지 알 수 없고, '우리'가 누군지도 불분명 하며, '별'이란 어디인지 확실하지 않다.
셰익스피어의 "잘못은 우리 별에 있지 않다"는 의미의 문장이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누구인지, 무슨 잘못인지, 어느 별 이야기인지에 대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역시 오리무중인 거다.
이야기가 끝나갈즈음에는 이 문제를 푸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그저 인간이라는 '필멸자'의 존재를 좀 더 확실히 각인시켰을 뿐이다.
우리는 어떻게 내일이 '반드시' 시작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인가?
죄가 없으면, 순수하다면 그 삶은 죽음으로부터 우선적으로 보호받게 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내일? 내일은 내일이 오기 전까지 확신할 수 없는 인간의 의지를 벗어난 선형적인 흐름 속의 한 지점에 불과하다. 그 지점의 어떤 부분을 떼어내어 재생시켰을 때 그 시간에 내가 있을 지 없을 지도 알 수 없다. 온통 불확실한 것 뿐인 것, 그것이야 말로 삶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삶이다. 죽음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부작용이다.
이 책은 '사랑'의 속성을 일깨워준다.
사랑은 '영원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느끼고 공유하는 것이다. 그 사랑이 언제 끝날 지, 어떤 이유로 파괴될 지 염려하는 동안에는 사랑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이성에 대한 사랑 뿐 아니라 가족, 친구와의 사랑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보통의 사람과 암 환자의 삶이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랑도 다르지 않다. 혹 남겨질 사람에게 상처가 될 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이 소설 속의 '헤이즐'처럼 마음을 여는 것을 망설인다면 또다른 의미로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의 작가는 어떤 '상징'에 얽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내가 '나' 혹은 '자아'라는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것에 얽매이는 것처럼 어떤 완벽하고도 완전한 '상징'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를 거듭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다.
삶, 사랑, 죽음.
이 셋은 언제나 충돌하지만 항상 함께 한다. 잊혀지는 것은 두려운 것이다. 잊어버리는 것은 슬픈 것이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과 슬픔은 모두 저마다의 의미를 갖는다. 아무 것도 아닌,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어떻게 마무리를 하면 좋을지 떠오르지 않는다.
실컷 삶과 죽음, 사랑과 두려움에 대해 떠들었지만 그 가운데 무엇하나 제대로 알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될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그 다음은 그 다음에 생각하면 되는 거다. 죽음은 염려나 걱정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오로지 삶만이 걱정과 미련을 남기는 거다. 그러므로 삶의 부작용을 마음껏 즐기자. 그 부작용은 걱정일 수도 있고, 미련일 수도 있으며, 후회일 수도 있고, 슬픔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픔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삶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잘못이 어느 별에 있는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어느 별에도 잘못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머뭇거리고 망설이다 기회를 잃어버리는 잘못은 나에게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 감상이 엉망진창이 된다면 그 잘못은 확실히 내게 있다. 역시 어느 것 하나는 확실한 게 좋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