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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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마음이 어지럽고 머릿속이 복잡해 무엇을 제대로 읽는 것도, 가지런하게 옮기는 것도 못한 채 시간만 보냈다.

어제도 감상을 적어야지 하고 자리에 앉아 한 시간은 멍하니 있다 횡설수설해둔 것을 버려두고 잠들어 버렸다. 


 오늘 문득 감상을 적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불쑥 질투심이 마음 틈을 파고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두 도시 이야기> 속,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평화를 차지한 남자, 시드니 카턴에게 부러움을 넘어 질투를 느꼈던 거다. 어제까지만 해도 카턴의 희생을 숭고하게만 느꼈던 걸 생각하면 변덕도 보통의 변덕이 아니다. 그러나 부러웠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그의 희생의 기회가, 누구보다 평화로운 얼굴로 마치 구원이라도 얻은 것 같은 얼굴로 마지막에 웃었던 그 남자가 그저 부러웠다.


 고전 속 인물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 일이 처음은 아니다. 

카턴과는 정반대로 분노를 이끌어낸 인물도 있었다. 

 그 인물의 이름은 파우스트 박사다. 메피스토 펠레스와 함께 다니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향락을 누리다 결국 구원받은 남자, 파우스트 박사 말이다. 여러 번 읽는 동안 파우스트 박사가 왜 구원받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납득할만한 단서를 얻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파우스트 박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 왜 신이 그를 구하기 위해 메피스토 펠레스의 정당한 몫을 가로챘는지 이해하고 싶지 않다. 

 타락한 인간이, 고작 '애썼다'는 이유 하나로 구원을 받다니.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두 도시 이야기> 속 카턴 역시 어떤 의미에서 파우스트 박사와 몹시 닮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신념, 스스로 의미를 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모든 것을 잃더라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있다. 

 그러므로 나의 분노나 질투는 이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한다. 오히려 스스로의 작은 그릇을 들키게 하고 부끄러움을 자처할 뿐인 거다.


혼란과 광기의 시대에 더 빛나는 사랑이 있다. <두 도시 이야기>는 그런 사랑이야기이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사랑이 삶의 의미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담겨있다.


 19년, 아무런 예고도 징조도 없는 상태에서 사라진 한 의사가 바스티유의 북탑에 갇혀 있던 시간이다. 이야기는 그 의사가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에서 시작된다. 멈추었던 시계가 돌아가듯이, 정체되었던 역사가 나아가듯이, 이 의사의 삶과 맞물려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의사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이성을 잃어버린 듯하던 의사를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이들은 찰스 다네이라는 이름의 남자를 알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뻔한 전개다 싶을 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으로 발전한다. 

 의사의 이름은 알렉상드르 마네트다. 딸 이름은 루시 마네트이다. 마네트 부녀와 찰스 다네이 외에 중요한 인물이 두 명 더 있다. 한 사람은 자르비스 로리라고 하는 은행의 사무원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시드니 카턴이다. 그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실패한 인생 정도일까.


 이 이야기는 의사 마네트 씨가 바스티유에서 나와 영국으로 옮겨간 후로부터 프랑스 혁명군이 바스티유를 습격하고, 로베스 피에르가 이끄는 자코뱅 파가 집권하던 시기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기요틴'이라는 여자의 이름을 붙인 단두대가 가장 왕성한 활약을 벌였던 시절이자, 공포와 혼란의 시대, 광기의 폭풍 속에서 무수한 생명이 흩어지던 시절이었다. 

 마네트 씨의 사위인 찰스 다네이는 본래 프랑스의 후작 가문의 후계자로 지위와 재산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해 나가던 남자였다. 그러나 혁명의 광기는 그의 의지나 뜻과 무관하게 그를 '도망자'로 취급해 감옥에 가둬버린다. 감옥에 가뒀을 뿐 아니라 간단히 그 생명을 박탈하려고 일을 꾸며나간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그의 가문에 대한 원한과 증오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원한과 증오는 언제나 사랑 앞에 완벽히 패배하고 만다. 


 파리의 광기가 극에 치달았을 때의 상황을 보며 문득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떠올랐다. 그 피리를 불고 다니며 쥐와 아이들을 함께 홀려서 데리고 사라지는 남자 말이다. 이 사나이의 피리 소리는 쥐를 불러서 바다로 뛰어들게 만들 뿐 아니라 아이들을 이끌어 자신을 따라오게 만든다. 아이들의 의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사나이가 피리를 부는 대로 따라다닐 것이기에. 

 혁명 당시의 프랑스가 그렇게 보였다. 미워하는 자, 원한이 있는 자는 고발하여 교수대 혹은 단두대로 보낸다. 재판은 공정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오직 피를 부르는 전야제나 다름없는 형식적인 과정으로 전락해버린다. 제정신인 사람들은 자신들까지 그 피의 축제에 말려들까 두려워하며 광기를 흉내 낸다. 모두가 멈추기 전까지는 그치지 않는 무질서 속의 혼란. 그것이 혁명의 정체처럼 보였다. 

 이런 살풍경이 과거 프랑스만의 일일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이 세계는 어떤가? 

좀 더 이성적인가?

대단히 합법적인가?

특별히 공평한가?

두려워하게 만들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이 자유로운가?

누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한 순간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마치 '그런 것처럼' 보이게 했고, 그런 것처럼 보려고 애써왔을 뿐이다. 

엄혹한 현실은 다수의 대중을 침묵시킨다. 소수의 목소리 내는 자를 매장해 버린다. 

어느 시대나 그래 왔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그래 왔다. 

 이 시대가 특별히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도 다르지 않은 것뿐이라는 이야기다.


 아니다, 달라진 것이 하나는 있는 것 같다.

이 시대는 순교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순교자가 태어날 수 없는 불임의 시대인 셈이다. 

희생자는 무수하지만 순교자는 없다는 것은 얼핏 이상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이 시대의 특징이다. 

순교자의 제 1 조건은 목적이 순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목적이 아무리 순수해도 그를 순수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마치 때가 묻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혹은 때 묻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카턴과 같은 숭고한 희생이 있을 수 없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이 소설 속 '두 도시'는 프랑스의 파리와 영국의 런던이다. 

구체적으로 이 두 도시가 18세기 후반 서로의 도시에서 무엇을 꾸몄는지는 알지 못한다. 관심도 없다. 다만 비슷한 나이였던 빅토르 위고의 작품들을 통해 두 도시 모두 사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는 것만을 예상해 볼 뿐이다. 


 체제와 주의의 충돌은 언제나 희생을 동반한다. 이상한 것은 이 희생의 대가를 가장 많이 누려야 할 사람들에게 거의 어떤 이익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언제나 '협조'와 '도움'을 구하며 '양보와 기다림'을 청한다. 인내심이 강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들은 언제나 얌전히 기다린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기다림의 대가로 받는 것은 이전과 다름없는 생활이거나 더 나빠진 생활이다. 


 <두 도시 이야기> 이후의 이야기는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혁명을 일으켜 왕과 귀족을 숙청했던 세력이 반대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키요틴 아래서 무수한 피를 다시 흘리게 된다는 것이다. 민중은 여기저기 끌려다니고 죽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느라 시달렸을 뿐 처음과 다름없는 생활, 혹은 더 나쁜 생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만 바뀌었을 뿐, 피리 소리는 여전하고 그 피리 소리에 이끌리는 어린 백성들 역시 여전하다.

<두 도시 이야기>는 한 남자의 깊은 사랑과 놀랍도록 숭고한 희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희생은 분명 의미를, 실감할 수 있는 무게감과 살아있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 의미는 몹시 여리고, 위태로운 것이기에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 도시 이야기>는 세 번은 읽어봐야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생각이 났으니 말이지만, 내년 봄, 추위가 풀릴 때쯤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오늘도 횡설수설이 그치지 않는걸 보니, 이번엔 제법 중증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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