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조제'라는 이름은 이 책에 담긴 아홉 편의 단편 가운데 한 편의 여자 주인공 이름이다. 동시에 프랑수아즈 사강이 자신의 소설 속에서 종종 주인공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기도 하다. 조제라는 이름을 쓰는 주인공의 본명은 야마무라 구미코다. 하지만 어느 날 '그냥' 자신의 이름을 바꿔버린다. 

별다른 이유나 설명도 없이 이렇게 말한 게 전부다. 

"이유는 없어. 그냥 조제가 내게 꼭 어울리니까. 구미코라는 내 이름, 이제부터 안 쓸래."

정말 엉뚱한 여자다.


 내게도 이름에 얽힌 짤막한 일화가 있다. 지금의 이름이 아닌 '동만'이라고 이름을 지으려고 하셨다는 이야기다. 이름에 따라 사람의 삶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스무 살이 넘은 이후에는 사람들이 나를 무엇이라고 부르든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이유는 '내 이름은 내가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부르고 싶은 사람이 부르기 편한 걸 부르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조제라는 여자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조제는 자신을 '조제라 부르라'고 했고, 나는 '아무렇게나 부르라'고 했으니.


 사실 이름이나 호칭은 무척 중요하다. 그것이 좁게는 관계부터 넓게는 존재까지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쓰레기'니 '도둑'이니 '악마'니 하는 이름으로 불려 온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자신이 그렇게 불렸다고 상상해보자.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이름은 중요하다. 조제가 자신의 이름을 정하고 그렇게 부르겠다고 하는 행동에서는 존재에 대한 갈구가 느껴진다. 사회적인 약자이자 흐릿한 존재로 평생을 살아왔다면 언제나 어떤 위기감에 시달려오지 않았을까? 


조제에게는 소아마비가 있어서 하반신을 거의 쓰지 못한다. 그런 조제에게도 한 가지 소원이 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진짜 호랑이를 보는 것' 

그의 소원이다. 


 연애가 흔한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지만 '진짜 사랑'이란 더 모호하고 불분명해졌으며 희귀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 시대였기에 몸까지 불편한 조제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진짜 호랑이를 보러 가는 것을 꿈으로 간직했다고 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 조제에게 기적처럼 찾아든 인연이 츠네오다.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게 조금 이상하지만 츠네오는 '어쩌다 보니, 그냥, 조제 곁에 머물게 된' 남자다. 물론 조제에 대한 마음의 정체는 분명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하고 있다기보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끌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과 이끌림이 어떻게 다르냐고, 한 번 설명해보라고 해도 솔직히 잘 설명할 자신이 없다. 그냥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조제는 이야기의 말미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66쪽

 '우리는 죽은 거야. 죽은 존재가 된 거야.'

죽은 존재란, 사체다. 

물고기 같은 츠네오와 조제의 모습에, 조제는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솔직히 이 문장은 마음을 끌기에 눈여겨보기는 했지만 다시 읽어봐도 그 의미를 또렷이 떠올릴 수 없었다. 물고기의 어떤 생태가 '죽음'과 연결되고 그 죽음이 행복과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마냥 시간이 흐를 것 같았다'는 이야기와 이어진 걸까? 

분명한 것은 조제가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행복을 만족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 호랑이를 보러 가고 수족관에 들러 사람의 얼굴을 닮은 말간 눈을 한 물고기를 보는 것으로 조제의 삶은 풍부해지는 것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라는 말에는 아직은 동의하지 못하겠다. 죽음은 미지의 영역이므로, 그 상태가 행복한지 어떤지 살아 있는 인간은 알지 못한다. 조제처럼 물고기에 이입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역시 내게는 무리다. 그러나 '곁에 있는 한 행복하'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다. 영원히 소유하는 것, 그 사랑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 것, 행복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보다는 더 현실적이라 마음에 든다. 


 이 책에는 이런 식의 이야기가 아홉 편 담겨 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저마다의 행복과 존재의 의미를 연애, 사랑, 이별 등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거의 모든 이야기가 여성의 입장에서 적은 것이라 쉽사리 공감이 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통하는 것은 있는 법이다. 이 책은 누가 읽으면 좋을까.


 거창한 행복, 완벽한 사랑을 꿈꾸지만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아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권하면 너무한 처사가 될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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