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괴물이 가득한 바깥과 바닷물이 차오르는 터널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인기 웹툰이자 넷플릭스에 영화화되기도 했던 <스위트홈>의 김칸비 작가가 강력 추천한! 제4회 창비 x 카카오 페이지 영어덜트소설상 대상 수상작인 <터널 103>을 읽어보았다. 선택지가 보이지 않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이 해결해나가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유이제 작가만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 보면 좋을 ‘검은과부거미섬’의 지도

소설을 읽다가 중간중간 앞쪽으로 넘어와서 이 지도를 참고하곤 했다






마을 위가 아닌 해저 터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괴생명체 ‘무피귀’를 피해 사람들은 터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근육과 힘줄, 인대, 뼈가 밖으로 드러나 있어 인간과 다르게 생긴 피부가 없는 괴물인 무피귀로부터 사람들을 지킨 황선태의 손자 황필규가 이곳 해저 터널의 촌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촌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터널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서주필의 손녀 서다형을 더 믿고 의지한다. 황필규는 서다형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점차 차오르는 바닷물의 유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탐사대로 다형을 반강제 투입시킨다. 다형은 아픈 엄마를 지키기 위해 항구로 가서 섬을 빠져나간 뒤 내륙 쪽에서 터널로 들어와 굳게 닫힌 차폐문을 열자는 황필규의 제안에 응한다. 





다형이 항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무피귀로부터 도망치던 다형은 위기에 처했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무피귀의 힘이 빠지고 다형의 몸 아래로 떨어졌다. 무피귀를 물리친 사람은 바로 라승하. 승하는 무피귀에게 다리를 다친 다형을 이끌고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작은 섬으로 향했다. 

바로 검은과부거미의 우측 맨 아래 다리에 해당하는 곳. 간조 시에만 드러나는 모래톱으로 연결되는 부속 섬이었다. 바리섬은 승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다형은 섬의 우두머리에게 터널 사람들의 안전을 부탁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알고 보니 바리섬 사람들은 터널 사람들이 막아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 이장님은 황선태로 인해 승하의 할아버지를 잃었다는 아픈 사연도 들었다.

물론 바리섬도 언제까지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다형은 승하와 함께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났다.




다형과 승하는 검은숲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만난다. 아이는 다형과 승하에게 나하고 똑같이 생겼다는 말을 반복한다. 다형, 승하, 여자아이가 무피귀로부터 위험에 처했을 때 그들을 구한 건 다름아닌 무피귀들이었다. 무피귀를 제압한 무피귀. 그들은 바로 반무피귀였다. 싱아도 반무피귀에 속했다. 

싱아를 구한 반무피귀의 이름은 이준익. 다형과 승하는 준익으로부터 무피귀의 탄생과 현 상황에 대해 듣게 된다. 반무피귀라는 자신들을 ‘언더원’이라고 불러달라는 준익은 지금 현재 마을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무피귀들도 위험하지만 더 위험한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바로 피부가 벗겨지지 않은 괴물 ‘레비아탄’이었다. 레비아탄, 즉 네피림은 웃섬에만 있기에 아랫섬에 사는 다형과 승하는 볼 수 없지만 그들은 무피귀들보다 진화된 생명체였다. 지능은 조금 떨어졌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이다. 




네피림이 아래로 내려올 수 없었던 이유는 검은과무거미섬의 웃섬과 아랫섬을 연결하는 유일한 길인 동쪽의 해안 도로 다리가 끊어졌기 때문. 레비아탄에 비해 덩치가 큰 네피림은 검은숲을 통과해 내려올 수도 없어 웃섬에만 머물렀지만 언제까지나 안전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준익의 부탁으로 싱아까지 여정에 동참하게 된 다형과 승하. 세 명의 주인공은 과연 무피귀와 네피림을 피해 터널에 갇힌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사와 세계사를 뿌리째 뒤흔든 ‘폭발적 지성’의 만남

정확한 업적은 기억나지 않아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인물들의 이야기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매니악의 정의

1. 미치광이, -광

2. 수학 분석기와 숫자 적분기 및 계산기의 줄임말(존 폰 노이만이 만든 컴퓨터)

3. 이 소설의 제목 - new!





그런 ‘척’하는 천재들 말고, 가상으로 만들어낸 비현실적인 천재들 말고 진짜 존재했던 천재들에 관한 이야기는 없을까? 바로 이 책이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사실에 기반한 허구의 작품이기 때문에 책에 적힌 모든 말이 사실은 아니지만 한 인물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탄탄한 소설이다. 세상이 낳은 천재들의 이야기를 주변인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우리가 아는 천재들은 어떻게 자라왔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우리나라 바둑 기사 ‘이세돌’이 마지막에 나와서 더욱 기대됐다. 




조니는 고향에서는 야노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연치라고 불렸다. 유진 위그너 또한 그를 ‘연치’라고 언급한다. 그는 세상에는 두 유형에 사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연치 폰 노이만과 우리 나머지. 그런 말을 하는 유진 위그너 또한 유명한 물리학자 아닌가. 

천재가 인정하는 천재. 조니 폰 노이만은 어떤 학생이었을까?

그는 잘 나간다는 성인 수학자들도 쉽게 풀지 못한 문제를 그의 나이 10살에 술술 풀어냈다. 그는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독일어, 영어 등에 능통했으며 여섯 살에 이미 암산으로 여덟 자리 숫자 두 개를 나눗셈할 줄 알았다. 



죄르지 포여는 그가 증명한 식을 보며 아름답고 우아하다고 말했다. 수업 시간에 이뤄지는 토론에 각자 의견을 내며 질문과 논쟁을 반복하고 있을 때도 폰 노이만은 끼어들지 않았다. 그는 그저 눈을 감더니 손을 들고 증명을 쓰기만 했다. 다른 이의 경외를 받았던 사람, 바로 폰 노이만이다.



|암호 절대 금지|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빌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폰 노이만, 리처드 파인만…

작년에 상영된 영화 오펜하이머에도 나온 핵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가 책 중간중간 언급된다. 책에 나온 폰 노이만과 파인만 모두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천재들 사이에서 인정받은 천재들의 이야기. 알쓸인잡에서 들었던 내용들이 언급될 때마다 더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이세돌은 최연소로 바둑 최소 단수인 9단에 오른 기사였다고 한다. 그가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는 표현을 읽었을 때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상대의 자신감을 꺾기 위해 가시 돋친 말들을 했고, 이번 게임에는 질 자신이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세계 최고 바둑 기사가 누구냐는 말에 본인이라며 당당히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났다면. 






인류가 생각해낸 것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도 심오한 게임이라는 바둑. 

앞서 인공지능에게 패배한 유럽 챔피언 판후이를 보며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상대, 이세돌만이 인공지능에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알파고의 대국은 책에 언급되어 있었지만 아마 책에 나오지 않았어도 많은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가 알파고를 이긴 장면은 몇 번이고 기사로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알파고에 대해, 그리고 인공지능에 대해 아는 정보가 적었는데 확실히 책에 적힌 내용을 보니 이세돌의 승리는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틈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우승을 결정짓는 수가 되었다는 것은 다시 봐도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등장할 AI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들의 성장을 예측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인간이 기계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떠올려야 할 차례이다. 

노이만, 파인먼, 이세돌 천재들의 천재는 어떤 삶을 살았고 그들이 한 행동이 역사에 얼마나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는지 알 수 있었던 것도 의미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언급된 인공지능의 성장을 보며 앞으로 천재는 ‘인간’ 앞에만 붙여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방의 밤 -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은유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은유 작가가 5년 만에 펴낸 산문집 <해방의 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이 나오는 책을 한 번쯤 읽어보았을 것이다. 

해방의 밤은 다양한 범주의 주제를 은유 작가만의 문장으로 풀어낸 글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글과 관련한 책들이 짧게 소개되어 있다. 책뿐만 아니라 영화나 프로그램 등 다양한 매체에서 발견한 ‘해방’

해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광복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해방은 넓은 의미의 해방이다.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뜻의 해방. 살아가면서 다양한 형태의 억압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때 이것을 억압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것도 넓은 의미의 해방에 해당되지 않을까. 은유 작가의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때론 해야 한다는 말보다 하지 말라는 말이 더 억압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해야 한다는 것은 귀찮고 싫지만 억지로라도 끝내고 나면 다음부터는 자유라는 느낌이 있는가 하면, 하지 말라는 것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던 하지 말라는 것을 계속 신경 써야 한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다리 떨지 마, 손톱 물어뜯지 마. 이런 말을 듣다 보면 그냥 편하게 앉아 있으면서도 내가 지금 다리를 떨고 있는 건 아닌지 신경 쓰게 되고, 멀쩡해 보였던 손톱도 거슬리는 구석이 생기게 된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예의적인 측면에서는 남에게 피해줄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사소한 ‘하지 마’의 굴레에 갇히면 정말 나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될 것 같다. 실제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고, 이 에피소드를 읽었을 때 깨달았다. 






유가족들은 그들이 하는 행동 모두가 전시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퍼도 마음껏 슬퍼할 수 없고 슬픔을 억누르면 그것 나름대로 말이 나오고.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위로해 주면서도 슬픔이 오래 지속되면 관심을 꺼버린다. 우린 세월호를 겪었지만 이태원을 제대로 위로하지 못한 것 같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안쓰러워하는 감정으로 변질되고, 피해자들은 처신 못 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우리는 왜 그런 식으로 밖에 말을 못 할까? 몇 번을 고쳐 말해도 조심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쉽게 내뱉고 난 뒤에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는 가르쳐야 할 것도,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은 것 같다. 






책에서 언급된 책은 생소한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더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책을 찾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간혹 책을 읽다가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 나오면 그거 나름대로 작가와 공감하거나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대표적으로 김진영 작가의 <아침의 피아노>를 참 감명 깊게 읽었는데 작가가 쓴 에피소드를 보며 내가 느끼지 못한 감정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들끓는 꿈의 바다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에서 예측할 수 있듯 이 책은 2019년 호주의 산불 사태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2019년의 호주 산불이라고 했을 때 워낙 큰 사건이라 단편적으로 기억이 나면서도 어딘가 흐릿해졌다. 그 이유는 시간이 꽤 지나서도 있고, 그 후에 코로나라는 큰 질병이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서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 이후에도 발생한 수많은 산불 때문 아닐까. 호주 산불 외에도 하와이, 그리고 우리나라 울진과 삼척 부근에서도 큰 화재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큰 재난 앞에서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어떤 조치를 취해 왔는가.



초대형 산불의 피해를 입은 호주. 건축가 애나는 어머니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고향은 태즈메이니아 섬의 호바트.

불길은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숲도, 푸른빛의 바다도 모두 찬란하던 모습을 잃어버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고작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고 있다. 단편적으로 보이는 카메라 너머의 풍경을 그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애나의 동생 토미는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을 보며 자신도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 붕괴라는 말에 걸맞은 지금 현 상황이 소설 속에서도 펼쳐진다. 어쩌면 큰 산불을 겪은 곳의 사람들에게는 직접 피부로 느낀 이야기일 것이다. 황폐한 그곳에서도 결국 사람은 살아간다. 이 소설은 그들의 이야기다. 




많은 것이 살아있지만 멸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기후 붕괴를 하루하루 실감하며 살아간다. 소설 속 인물들도 그렇다. 믿기지 않는 현실을 살며 정상적인 행동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자식들은 어머니 프랜시의 연명치료를 밀어붙였고, 프랜시는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외눈박이 cia요원이라던가 마녀같은 것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말이다.

변화는 프랜시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애나 또한 자신의 신체 일부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로 시작했지만 무릎, 가슴 한쪽 등 점점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소설은 산불의 위험, 산불로 피해 입은 가족,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속마음 그리고 ‘인간다움’에 대해서 짚고 넘어간다.

애나는 메그에게 자신의 이야기와 속마음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실패한다. 결국 하려던 말을 못 한 애나는 외롭고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막상 입을 열었을 때 메그에게 만족스럽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랑이 사실은 두려움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 나쁜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는 두려움. 사랑을 사랑으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그 사랑을 공개적으로 증명해야 하냐는 애나의 독백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개처럼 살아야 한다면 그것도 사는 것 아닌가?

어차피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등장인물이 내뱉은 한 마디는 책을 덮고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간다움이라는 것. 점점 거대해지는 기후 위기라는 큰 벽을 만났을 때 우리가 정의 내린 인간다움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붉은 행성의 방식


“글쎄, 모래 폭풍이 그치고 나면……”

“그럼 늦어요. 그때까지 기다리면, 공동체가 망가질 거예요.”



소설집의 첫 포문을 연 소설은 바로 ‘붉은 행성의 방식’이었다. 인구 2400의 화성 초기 정착 단계에서 일어난 첫 살인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은 평소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특히 더 기대됐던 소설이었다. 

이 소설뿐만 아니라 <화성과 나>에서는 화성 초기 정착 단계, 이미 거주민이 자리 잡은 시점의 화성 등 우리가 지금은 상상만 해본 공간과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직은 지구가 아닌 곳에서는 우주복을 입어야 한다는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처음에는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다가 점점 어떤 장면에서는  마치 지구와 같은 환경의 커다란 스노볼에서 사람이 사는 모습이었다면? 그 공간에서 이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면? 하며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위대한 밥도둑’에서 잠깐 그 장면이 나왔다)

작가는 화성에서의 첫 살인을 언급하기 전, 지구에서 보내오는 부고에 대해 주인공이 생각하는 장면을 넣었다. 화성과 지구. 결코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없는 이 거리에서 부고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라 흥미로웠다. 지요는 장례식장 위치와 발인일을 그대로 적어 부고를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무신경은 무신경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마음에 상처가 남는다. 

지구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을 때 화성에서의 첫 살인이 일어났다. 


인구 500을 훌쩍 넘은 이 시점에서 갑자기 발생한 살인 사건에 놀랐지만 일단 사건 보고서를 읽고 있는 행성 관료이자 정치인 희나가 있다. 정치가가 있으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 때문에 행정관료가 극히 드문 화성에서 희나는 그냥 그런 일을 하도록 파견된 사람이었다. 

화성에서의 살인.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매우 큰 범죄이지만 화성에서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반드시 처벌해야 할 이 문제를 어떻게 처벌하느냐. 그 제도가 필요했다. 

어떤 법으로 처벌할 것인지, 어느 나라 법으로 처벌할 것인지………그러다 마지막에는 그건 화성이 아닌 지구의 법이잖아.라고 했을 때 희나가 내놓을 답변이 필요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회복할 붉은 행성. 

그 붉은 행성에서 발생한 사건을 붉은 행성의 사람들이 어떻게 처리하게 될까

사건보다, 방식보다 더 중요하게 바라봤던 것은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이자 마음가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소설이었다.



강렬한 대사가 나오기 전, 우리는 위대한 밥도둑을 간절히 원하게 될 위대한 주인공 이사이를 알아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입이 짧은 우리의 주인공 이사이. 많이 먹지도 않았고, 먹고 싶은 것도 별로 없던 이사이는 고모가 말한 ‘너 같은 애가 합성 단백질이나 영양제만 주는 화성에 가서 살아야 하는데’의 화성에 진짜로 가서 살게 된다. 물론 입 짧음 특혜가 아닌 이사이의 뛰어난 공간 조형 기술 때문에!


그런 그녀는 갑자기 간장게장이 먹고 싶어졌다. 




이사이는 선배 김파랑과 함께 먼 길을 떠나게 된다. 오직 간장게장을 위해 6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주거형 정착지 ‘문케이크 타운’. 이곳 문케이크 타운에서는 제1회 행성 음식 식량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이사이의 구원자 유유송도 이었다. 먹을 것 없는 화성에서도 거대한 풍채를 자랑하는 그는 대체재 요리의 최고 권위자였다. 그런 유유송에게 건넬 단 하나의 질문은 간장게장의 대체재 여부였다. 질문을 받은 이사이는 외마디 탄식을 내뱉은 유유송의 눈빛과 단호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대답은 ‘없어요’




여기서 포기할 이사이가 아니다!

이사이는 마르테로 향했다. 투명한 돔으로 덮인 도시. 그곳에서 열리는 미래식량자원 구성위원회에 출석을 준비할 계획인 것이다. 식용 도입을 요청하는 동물 ‘꽃게’, 목적은 ‘간장게장용’

그리고 예상한 대로 위원회는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연구도 아닌 순수 식용 목적으로 도입하자는 말이 얼토당토않게 느껴진 것이다. 이 힘든 싸움에서 이사이가 간장 게장을 위해 내뱉은 말은 바로 ‘밥도둑’이다. 한국인만 있는 화성이 아니었기에 라이프 시스라는 공용어로 사용해 한층 더 요상한 의미가 되어버린 우리의 밥도둑.. 그렇게 이사이는 위대한 밥도둑을 화성에 데려올 수 있을까???



<화성과 나>에 수록된 소설 2편을 소개해보았다.(무크지에 나온 소설 소개도 읽는다면 총 3편!) 

정말 소설마다 다른 매력이 있었고 그걸 하나로 이어주는 화성이라는 존재에 나도 모르게 애착이 갔다. 아주 미지의 공간이 아닌 우리 곁에(조금 멀리 떨어진) 있는 이 행성에서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살아가며 생기는 이야기들은 ‘붉은 행성의 방식’처럼 큰 사건일 수도, ‘위대한 밥도둑’처럼 위대한 첫걸음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조금 더 사소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앞으로 작가님이 이런 이야기들을 더 풀어주셨으면 좋겠다. 작가님이 말하는 화성, 그리고 인물들을 너무 사랑하게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