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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의 시선 ㅣ 창비청소년문학 12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평점 :
첫 문장부터 예상을 뒤집었다. 강강약약이 아닌 강약약강임을 당당하게 말하는 주인공. 이런 삶이 비열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꼬집으며 정작 본인들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냐는 말을 한다. 자신은 그들보다 솔직하다고, 적어도 인정은 할 줄 안다면서.
주인공인 안율은 15살 중학생이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있지만 깊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눈 맞추기를 어려워하는 율은 공부를 잘하고 자존심도 센 김민우, 수다스러운 김동휘, 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서진욱과 함께 지내고 있다.
율은 비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 하굣길에 자신과 똑같은 교복 셔츠를 입고 두 손엔 죽은 고양이를 안고 있는 학생을 발견한다. 노란색 명찰에 적혀 있는 이름은 '이도해'
대뜸 자기가 죽였다고 말하는 이도해를 본 여름, 끝일 줄 알았던 도해와의 만남은 이제 시작이었다.
체육시간에 율은 도해를 만난다. 자기도 모르게 도해에게로 향하는 발걸음. 도해와 율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아하는 것이 있냐는 도해의 물음에 율은 망설인다. 서진욱과 친구일 때는 축구를, 김동휘와 친구일 때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게 안율이었으니까. 그래서 율은 하늘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도해에게 '나도 하늘 좋아해'라는 답변을 남긴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거짓말이네. 그 말을 남기곤 도해는 몸을 일으켰다. 다음에는 거짓 없이 만나자는 말을 남기곤 사라졌다.
그다음에 만난 도해는 이도해라고 부르는 율에게 자신은 이도해라는 이름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 이름 뒤에는 항상 안 좋은 단어들이 붙기 때문에. 가령, 죽어와 같은. 멈칫하는 율에게 도해는 북극성이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북극성. 이름으로 부르기엔 어색한 그 단어로 불리기를 바라는 도해에게 율은 종종 그 이름을 불러준다.
이도해 뿐만 아니라 반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고 했던 서진욱을 통해서도 율은 성장한다.
도해가 나올 때면 불리고 싶은 이름처럼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는 것 같고 파악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면, 진욱은 현실적이었다. 돈이 많고 잘 사는 줄 알았던 서진욱은 슈퍼 가게 아들이었다. 매일 축구 영상을 보고 있는 아버지를 보며 자신이 축구를 한다면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하는 어린 마음에 축구를 시작한 진욱. 그 나이대 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 같아 마음이 더 아팠다. 율과 싸워 부상을 당한 모습을 보았을 때도 친구끼리는 그럴 수 있다며 넘기는 아버지를 보며 오히려 다리를 혹사시켰던 진욱. 그런 진욱과 아버지 사이에 묘하게 엇갈린 선을 율이 이어주는 역할을 한 것 같다. 항상 진욱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아저씨. 율이 할 수 있는 말은 한 마디였다. 매일 폰만 보고 계시던데요. 아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걸 왜 하게 되었는지 모르시잖아요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는 말이었다.
소설에서 복선처럼 언급되는 도해의 가정사가 하나씩 베일을 벗을 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도해가 사라진다.
자신을 북극성이라고 불러달라는 도해, 항상 어느 순간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도해 때문에 독자인 나는 정말 도해가 살아있는 인간인가 의심했었다. 끝까지 읽으면 그 의심을 해결할 수 있지만!
누구와도 눈 마주치지 않고 항상 발을 향했던 율의 시선이 점점 올라갈 때 스며들듯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가 율 속으로 들어올 때, 마지막으로 율이 진욱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도해에게 자신이 쓴 글을 건넬 때 완벽한 결말을 맺는 것 같았다.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 이제 율의 제2막이 펼쳐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