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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평점 :

과학사와 세계사를 뿌리째 뒤흔든 ‘폭발적 지성’의 만남
정확한 업적은 기억나지 않아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인물들의 이야기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매니악의 정의
1. 미치광이, -광
2. 수학 분석기와 숫자 적분기 및 계산기의 줄임말(존 폰 노이만이 만든 컴퓨터)
3. 이 소설의 제목 - new!
그런 ‘척’하는 천재들 말고, 가상으로 만들어낸 비현실적인 천재들 말고 진짜 존재했던 천재들에 관한 이야기는 없을까? 바로 이 책이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사실에 기반한 허구의 작품이기 때문에 책에 적힌 모든 말이 사실은 아니지만 한 인물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탄탄한 소설이다. 세상이 낳은 천재들의 이야기를 주변인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우리가 아는 천재들은 어떻게 자라왔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우리나라 바둑 기사 ‘이세돌’이 마지막에 나와서 더욱 기대됐다.

조니는 고향에서는 야노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연치라고 불렸다. 유진 위그너 또한 그를 ‘연치’라고 언급한다. 그는 세상에는 두 유형에 사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연치 폰 노이만과 우리 나머지. 그런 말을 하는 유진 위그너 또한 유명한 물리학자 아닌가.
천재가 인정하는 천재. 조니 폰 노이만은 어떤 학생이었을까?
그는 잘 나간다는 성인 수학자들도 쉽게 풀지 못한 문제를 그의 나이 10살에 술술 풀어냈다. 그는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독일어, 영어 등에 능통했으며 여섯 살에 이미 암산으로 여덟 자리 숫자 두 개를 나눗셈할 줄 알았다.
죄르지 포여는 그가 증명한 식을 보며 아름답고 우아하다고 말했다. 수업 시간에 이뤄지는 토론에 각자 의견을 내며 질문과 논쟁을 반복하고 있을 때도 폰 노이만은 끼어들지 않았다. 그는 그저 눈을 감더니 손을 들고 증명을 쓰기만 했다. 다른 이의 경외를 받았던 사람, 바로 폰 노이만이다.
|암호 절대 금지|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빌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폰 노이만, 리처드 파인만…
작년에 상영된 영화 오펜하이머에도 나온 핵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가 책 중간중간 언급된다. 책에 나온 폰 노이만과 파인만 모두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천재들 사이에서 인정받은 천재들의 이야기. 알쓸인잡에서 들었던 내용들이 언급될 때마다 더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이세돌은 최연소로 바둑 최소 단수인 9단에 오른 기사였다고 한다. 그가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는 표현을 읽었을 때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상대의 자신감을 꺾기 위해 가시 돋친 말들을 했고, 이번 게임에는 질 자신이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세계 최고 바둑 기사가 누구냐는 말에 본인이라며 당당히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났다면.
인류가 생각해낸 것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도 심오한 게임이라는 바둑.
앞서 인공지능에게 패배한 유럽 챔피언 판후이를 보며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상대, 이세돌만이 인공지능에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알파고의 대국은 책에 언급되어 있었지만 아마 책에 나오지 않았어도 많은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가 알파고를 이긴 장면은 몇 번이고 기사로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알파고에 대해, 그리고 인공지능에 대해 아는 정보가 적었는데 확실히 책에 적힌 내용을 보니 이세돌의 승리는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틈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우승을 결정짓는 수가 되었다는 것은 다시 봐도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등장할 AI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들의 성장을 예측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인간이 기계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떠올려야 할 차례이다.
노이만, 파인먼, 이세돌 천재들의 천재는 어떤 삶을 살았고 그들이 한 행동이 역사에 얼마나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는지 알 수 있었던 것도 의미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언급된 인공지능의 성장을 보며 앞으로 천재는 ‘인간’ 앞에만 붙여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