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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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행성의 방식


“글쎄, 모래 폭풍이 그치고 나면……”

“그럼 늦어요. 그때까지 기다리면, 공동체가 망가질 거예요.”



소설집의 첫 포문을 연 소설은 바로 ‘붉은 행성의 방식’이었다. 인구 2400의 화성 초기 정착 단계에서 일어난 첫 살인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은 평소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특히 더 기대됐던 소설이었다. 

이 소설뿐만 아니라 <화성과 나>에서는 화성 초기 정착 단계, 이미 거주민이 자리 잡은 시점의 화성 등 우리가 지금은 상상만 해본 공간과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직은 지구가 아닌 곳에서는 우주복을 입어야 한다는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처음에는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다가 점점 어떤 장면에서는  마치 지구와 같은 환경의 커다란 스노볼에서 사람이 사는 모습이었다면? 그 공간에서 이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면? 하며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위대한 밥도둑’에서 잠깐 그 장면이 나왔다)

작가는 화성에서의 첫 살인을 언급하기 전, 지구에서 보내오는 부고에 대해 주인공이 생각하는 장면을 넣었다. 화성과 지구. 결코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없는 이 거리에서 부고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라 흥미로웠다. 지요는 장례식장 위치와 발인일을 그대로 적어 부고를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무신경은 무신경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마음에 상처가 남는다. 

지구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을 때 화성에서의 첫 살인이 일어났다. 


인구 500을 훌쩍 넘은 이 시점에서 갑자기 발생한 살인 사건에 놀랐지만 일단 사건 보고서를 읽고 있는 행성 관료이자 정치인 희나가 있다. 정치가가 있으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 때문에 행정관료가 극히 드문 화성에서 희나는 그냥 그런 일을 하도록 파견된 사람이었다. 

화성에서의 살인.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매우 큰 범죄이지만 화성에서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반드시 처벌해야 할 이 문제를 어떻게 처벌하느냐. 그 제도가 필요했다. 

어떤 법으로 처벌할 것인지, 어느 나라 법으로 처벌할 것인지………그러다 마지막에는 그건 화성이 아닌 지구의 법이잖아.라고 했을 때 희나가 내놓을 답변이 필요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회복할 붉은 행성. 

그 붉은 행성에서 발생한 사건을 붉은 행성의 사람들이 어떻게 처리하게 될까

사건보다, 방식보다 더 중요하게 바라봤던 것은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이자 마음가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소설이었다.



강렬한 대사가 나오기 전, 우리는 위대한 밥도둑을 간절히 원하게 될 위대한 주인공 이사이를 알아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입이 짧은 우리의 주인공 이사이. 많이 먹지도 않았고, 먹고 싶은 것도 별로 없던 이사이는 고모가 말한 ‘너 같은 애가 합성 단백질이나 영양제만 주는 화성에 가서 살아야 하는데’의 화성에 진짜로 가서 살게 된다. 물론 입 짧음 특혜가 아닌 이사이의 뛰어난 공간 조형 기술 때문에!


그런 그녀는 갑자기 간장게장이 먹고 싶어졌다. 




이사이는 선배 김파랑과 함께 먼 길을 떠나게 된다. 오직 간장게장을 위해 6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주거형 정착지 ‘문케이크 타운’. 이곳 문케이크 타운에서는 제1회 행성 음식 식량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이사이의 구원자 유유송도 이었다. 먹을 것 없는 화성에서도 거대한 풍채를 자랑하는 그는 대체재 요리의 최고 권위자였다. 그런 유유송에게 건넬 단 하나의 질문은 간장게장의 대체재 여부였다. 질문을 받은 이사이는 외마디 탄식을 내뱉은 유유송의 눈빛과 단호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대답은 ‘없어요’




여기서 포기할 이사이가 아니다!

이사이는 마르테로 향했다. 투명한 돔으로 덮인 도시. 그곳에서 열리는 미래식량자원 구성위원회에 출석을 준비할 계획인 것이다. 식용 도입을 요청하는 동물 ‘꽃게’, 목적은 ‘간장게장용’

그리고 예상한 대로 위원회는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연구도 아닌 순수 식용 목적으로 도입하자는 말이 얼토당토않게 느껴진 것이다. 이 힘든 싸움에서 이사이가 간장 게장을 위해 내뱉은 말은 바로 ‘밥도둑’이다. 한국인만 있는 화성이 아니었기에 라이프 시스라는 공용어로 사용해 한층 더 요상한 의미가 되어버린 우리의 밥도둑.. 그렇게 이사이는 위대한 밥도둑을 화성에 데려올 수 있을까???



<화성과 나>에 수록된 소설 2편을 소개해보았다.(무크지에 나온 소설 소개도 읽는다면 총 3편!) 

정말 소설마다 다른 매력이 있었고 그걸 하나로 이어주는 화성이라는 존재에 나도 모르게 애착이 갔다. 아주 미지의 공간이 아닌 우리 곁에(조금 멀리 떨어진) 있는 이 행성에서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살아가며 생기는 이야기들은 ‘붉은 행성의 방식’처럼 큰 사건일 수도, ‘위대한 밥도둑’처럼 위대한 첫걸음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조금 더 사소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앞으로 작가님이 이런 이야기들을 더 풀어주셨으면 좋겠다. 작가님이 말하는 화성, 그리고 인물들을 너무 사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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