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정진영 지음 / 무블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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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정진영

 

엄마라는 말이 들어간 책은 잘 손대려고 하지 않는 편이다.

뭔가 예상되는 바가 있고 누구보다 책 보다 눈물 흘리는 일이 많은 편에 속하는 나라서... 울다가 진이 빠지고 싶지 않아서... 의식적으로 피한다.

특히 이 책은 진작에 눈에 띄었지만... 우연히 책소개와 스쳐 지나가는 서평을 살짝 보니 모두... 엄청 울었다고 하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또 너무나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서 결국 읽게 되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눈물이 앞을 가릴까봐 늦은 밤 침대에서 조용히 읽기 시작했는데... 첫 부분은 전혀 예상과 다른 전개였다.

나는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의 주인공이 막연히 여자일거라 짐작했었는데... 남자다. 오래도록 사시를 준비하다 십년 사기던 연인에게 그녀의 합격 후 매정하게 차였고 방황하던 차에 우연히 선배의 권유로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후, 작가가 된 이범우... 운 좋게 데뷔작으로 상금 1억원 문학상을 받으며 천재신인작가로 불려졌지만 화려한 데뷔가 화려한 미래를 보장하지 못 했다. 일거리가 없어 힘들 때 우연히 대필작가를 하게 되고 그 때 이후로 근근히(?) 꾸준히 대필작가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HT회사 창업주 자서전으로 인연을 맺게 된 회장님으로부터 HT의 홍보실 영입 제안을 받게 된다. 드디어 40에 처음으로 괜찮은 인생을 맞으려던 찰나 입사를 위해 20년 만에 하게 된 건강검진에서 대장암판정을 받게 되고 앞길이 막막했던 그는 인생 첫 차로 마련한 흰색 미니 쿠퍼 컨버터블을 타고 생을 마감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그조차 녹록치 않다.(이 이야기의 목차 중 처음이 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작가의 을 보려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13년 전 스스로 떠나버린 어머니의 이기도 하다.) 결국 차만 날리고 (이 대목에서 이 남자 인생이 너무 안쓰러웠지..)... 괴로워하던 때 HT회장님은 다시 한번 회사 인공지능(AI) 연구소의 연구개발원이라는 직책과 여러가지 회사복지 등 다시 없는 기회를 주신다. AI연구소에서 사산했던 아이를 되살려 대화하는 연구원을 보고 범우는 자신의 어머니를 AI로 되살리기 위해 어머니의 자료를 모으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 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마지막 시신을 수습하였기에 항상 악몽과 죄책감, 원망과 슬픔 등을 가지고 살던 그는 어머니를 되살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책임이 아님을 확인받고 싶었기에 떠난 지 오래된 옛 집을 찾는다. 그 곳에서 장례식 당식 추려 놓았던 어머니의 초라한 짐 속에 남아있던 몇 권의 연습장을 찾아냈다. 일기와 가계부가 섞여있던 글...그곳엔 어머니의 스무살 시절부터의 이야기가 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꿈과 희망으로 서울에 왔을 엄마는 봉제공장에서 시다를 하던 중 우연히 아버지 의용을 만나 동거를 하게 된다. 동갑이었던 둘은 물론 좋아서 시작한게 맞겠지만 아버지 의용이 일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엄마가 갑자기 임신을 하면서 의용의 고향인 대전으로 가게 되고 낯설고 가난한 타지에서 결혼으로 인정도 받지 못 한 채, 임신한 엄마는 그 누구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 하는 상황에서 첫 애를 미숙아로 낳았지만 돈이 없어 바로 잃게 된다. 철이 없는 남편은 임신 이후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돈이 없어 옷도 없고 제대로 먹지도 못 한 상태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첫 아이 유산한 엄마.... 어렸던 그녀는 애를 낳고 왔지만 그 누구도 미역국 하나 끓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엄마 기껏해야 이십대 초반의 아기같은 그녀의 일기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그냥 화가 났다. .... ? 아버지가 미웠고 시댁식구도 모두 미웠고 그런 상황에 있는 엄마가 속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 태어난 범우와 범재... 이후 남편의 주사와 폭언... 이후 아이들에게 화풀로를 매를 드는 엄마.... 범우와 범재의 어린시절도 ... 일기를 보면서 엄마의 마음이 힘들었었다는 걸 화자 범우도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당시 아이들은 얼마나 무섭고 엄마가 원망스러웠을지 그 부분도 화가 났다. 그 이후 이어진 엄마의 무기력... 그리고 외로움...어머니의 글에서 그녀의 외로움과 절망을 알게 되는데.... 그는 정말 어머니에 대해서 아는게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금 더 알아가기 위해 아버지를 만나고 이모와 외삼촌을 만나고 어머니의 고향을 찾는다. 엄마는 어릴 때 재능도 능력도 꿈도 많던 똘망똘만한 아이였다. 공부도 잘 하고 그림도 잘 그리던 꿈 많던 아이.

<작품읽기>에서 인용하자면 사랑과 헌신의 표상으로서의 어머니라는 경계를 넘어 갈등과 좌절과 고뇌와 슬픔의 삶을 살아온 한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를 탐구하고 있다는 이 이야기는 일반적인 엄마의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더욱 큰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어머니의 삶이 너무 안타까웠지만 그렇다고 어린 아들들을 매질하고 매정하게 군 것이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녀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다. 나쁘지 않은 아버지같지만 한 여자에게 크나큰 상처와 괴로움을 안긴 아버지를 용서할 수도 없을 것 같고(물론 내가 용서할 대상도 아니지만) 능력있던 아이를 딸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눌러 앉히고 그나마 위안으로 그리던 그림을 태워버려 꿈꾸는 것도 막은 외할머니에게도 화가 났다. 자기 좋아 떠나놓고 아쉬우니 연락을 해오는 옛 연인 유민도 아이구 짜증나고....(난 어서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겠는데... 난 왜 이렇게 매정하지?) 남들은 이 작품을 보다가 그리 많이 울었다는데....눈물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지만 뒷부분에서 눈 코가 먹먹해졌을 뿐.. 다른 작품보다 많이 울지는 않았다. 전체적인 감정이라면 슬픔보다는 안타까움이랄까, 아니 좀 화가 났디고 할까...아무튼... 이 책의 <작품읽기>에서는 그런 말을 하더라...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고, 누군가와 제대로 이별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사랑하고 또 원망했던 어머니의 흔적을 쫓는 여정, 그 구원의 서사,,,, 그래도 글속에서 범우가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부디 그의 치료가 무사히 잘 되길.... 모든 것을 제대로 이별하고 새롭게 시작하길.. 바래본다.

 

책을 펼치고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처음 뵙는 작가 님도 필력이 좋으신 것 같다. 그리고 책 속의 AI 기능은 현재는 판타지이지만 곧 그렇게 될 것 같다.

사람들은 이런 AI가 생기면 더 외로워질까? 덜 외로워질까?

가장 인간적이고 따뜻한 것이 AI가 되는 세상이 올 것 같다. 그럼 인간적인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여러 가지 정보를 넣어 복원하는 AI는 지나간 상황이 아닌 새로운 상황에서 제대로 독립적인 사고를 하고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선택은 정말 본체의 생각과 같을까... 생각해 보던 그런 날..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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