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리아 1 - 갈레노의 귀환 사이보리아 1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지음, 김효정 옮김 / 웅진주니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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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란 사전적으로 생물과 기계장치의 결합체 즉 생물도 기계도 아니며 생명체라고도 기계장치라고도 말할 수 없는 존재를 지칭 한다

사이보리아라는 작가의 상상 속 나라도 사이보그에서 기인한 걸로 유추해 보면 과거에 존재했거나 미래에 존재하게 될 상상 속 세계를 그린 환타지 이야기에는 인간과 기계사이의 중간자적 존재가 자주 등장함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현재의 고도로 발전해온 물질문명과 그 물질문명에 의해 상처받는 정신세계와 서서히 물질에 의해 상실 되어져 가는 인간성에 대한 반작용에서 기인한 것임으로 보여 진다.

이 작품에서도 작가가 할아버지께 물려 받은 낡은 자전거와 오토의 관계 그리고 할아버지의 유품인 상자로 인해 이야기가 시작되는 점을 보면 오래된 것들에게 많은 의미를 부과하여 대부분의 독자인 어린이들에게 인간에 대한 감수성을 잊으며 안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이 요즘 흔히 쏟아지는 환타지 소설과 다른 점은 오토와 메데아가 사이보리아로 안내하게 될 로봇 갈레노와의 조우 장면에서 묘사하고 있는 혼천의와 프리즘의 변형, 천왕성 해왕성 등 먼 행성에서 지구까지 등장시키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이들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환타지를 묘사하고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재미를 부과하는 기차여행과 그 기차여행의 끝에 실존하는 도시인 파리를 등장시켜 어린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이런 장치는 어린이와 어른이 같이 읽고 서로 얘기도 나눌 수 있는 교육적 측면도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허구 속에 정체 모를 생명과 괴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환타지 소설보다 비교우위를 점하는 것 같다

또 간헐적으로 짧은 본문 내용과 함께 소개 되는 소설 속 이미지들은 아이들에게 너무 막연하게만 그려지는 머릿속 이미지를 정리하여 주는 역할을 하여 작가가 의도한 소설 내용과 너무 동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해준 것 같았다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는 교묘한 구성은 읽는 동안 내내 흥미로울 수 있도록 하여주었고 작가는 독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흥미로운 반전을 작품 마지막에 설정하였다

사이보리아를 지키는 로봇인 테오는 그동안 자신이 겪은 일들을 적어서 문자로 남기려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바로 그 글들은 이 작품 사이보리아의 시작 되는 부분과 같고 다시 말하면 이 소설 사이보리아는 로봇인 테오가 쓴 글이 되고 마는데 이것은 완전히 열린 결말도 아닌 동시에 퍼즐과도 같은 애매한 결말을 소설의 끝에 장치해 놓아 작가는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들에게 혼란스런 상황을 직면하게 하는 동시에 정말이지 환타지 여행을 하고 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하고 있다

국내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작가의 전작인 ‘율리시스 무어’를 읽어 보지 못했는데 이번 작품을 읽고 나서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끝으로 작가의 빛나는 상상력을 상징하고 있어 보이는 바 본문 내용중 사이보리아로 가는 통행권에 기입하기 위한 주의사항을 적어 놓은 부분을 옮겨 놓으며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 사이보리아 시민들은 동일성을 믿지 않고, 그와 정반대로 차이를 믿는다. 모든 부분에 당신의 차이 카드를 작성하라. 확실하지 않은 사항은 뛰어넘어라. 당신의 이전 국적도 당신의 나이도 정확히 기입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가지게 될 유일한 국적은 국적이 상관없는 국적이 상관없는 도시의 국적이 될 것이고, 우리에게 중요한 유일한 나이는 나이와 상관없는 지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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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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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소녀인 주인공 헤이즐에게 주어진 삶은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다

 

죽음에 맞서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마지막으로 해야 하고 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힘든 일인데 그 뿐만 아니라 헤이즐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기까지 한다 과연 우리가 이런 십 대 소녀의 심정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극한 설정을 한 작가는 오히려 그 소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슬프지도 않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도 않는 쿨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으로 그려내고 있다 헤이즐은 항상 유쾌하고 오히려 자신 보다 부모님을 더 걱정하는 등 십대 소녀가 지니기 힘든 멘탈을 보여준다 아마도 그렇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 내지 않으면 독자가 읽기에 더 힘들었을 거란 것을 작가도 알고 작정한 듯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냈으리라 짐작 된다

 

그러나 한 소녀가 죽음을 앞두고 지나치게 유쾌하고 쿨한 것 같이 보이는 것도 작가는 물론 경계해야 했기 때문에 소설 속 소설로 등장하는 ‘장엄한 고뇌’라는 제목도 무거워 보이는 소설을 액자 형식으로 등장 시킴 으로서 헤이즐이 표현하지 않지만 강한 삶에 대한 의지과 힘겨움을 그 소설에 대한 집착으로 대리 표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은 내내 나뿐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한 독자도 많았으리라 예상되는데 헤이즐과 엄마와의 관계..나는 헤이즐의 슬픔도 슬픔이지만 소설 내내 담담히 딸의 일상을 보살피고 있는 엄마의 심정이 많이 슬프게 다가왔다 특히 헤이즐과 어거스터스가 자신들이 삶 만큼이나 소중히 생각하는 소설 ‘장엄한 고뇌’의 작가 반 호텐을 만나러 암스테르담에 가는 여정과 현지에서의 그들을 살피는 엄마의 담담한 시선에서 나는 깊은 슬픔이 느꼈고 단순한 모정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인간의 희생적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와중에 작가는 헤이즐의 생각을 빌어 ‘아마 다른 사람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의아할 것이다 엄마가 열여섯 살 난 딸을 열일곱 살 먹은 남자애과 단둘이 방탕하기로 유명한 외국 도시에 내보낸다니. 하지만 이것 역시 죽음의 부작용이다..’ 라고 말하며 냉소적으로 그 상황을 다시 설명하며 정작 헤이즐은 그다지 슬프지 않고 엄마의 배려에 쿨하게

대응하는 묘사를 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는 다시금 엄마의 끝없는 희생에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읽는 내내 작가의 유머와 번뜩이는 재치 속에서 과연 내가 죽음을 앞둔 열여섯 소녀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또한 작가의 빛나는 상상력의 산물 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너무나 지나친 유머와 냉소적 화법에서는 작가가 죽음의 슬픔에 대해 작위적인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해내려고 한 노력이 반감되는 측면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끝으로 이 소설에서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은 제목에 함축적으로 다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 해 본다

태어난 이상 죽음으로 향해 갈 수 밖에 없는 생명의 근원적 모순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상상밖에 존재하는 이 우주와 무한한 시간 속에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의 운명자체가 슬픔인 동시에 잘못이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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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 아시아 문학선 1
바오 닌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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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수많은 민족들이 이념,사상, 이해관계 를 달리하는 만큼 한가지 전쟁을 놓고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할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베트남 전쟁역시 어느 편에서서 참전했느냐에 따라 감상과 평가가 다를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수많은 이념논쟁, 과오에 대한 지적을 넘어 전쟁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중 이처럼 애잔하고 슬픈 이야기가 또 있을까.

 

프엉과 끼엔을 보면서 지나간 시간뒤로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않는 미니시리즈 '여명의 눈동자'의 최대치와 여옥이를 떠올릴수 있었다.

물론 다른상황이긴하나 여명의눈동자에서도 전쟁의슬픔에서도 순수한 젊은영혼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전쟁을 겪는동안 안타깝게도 돌이킬수 없이 엇나가게되는 모습을 무척 슬프게 그리고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한걸까.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갈망했지만 왜 오래전 그날들 처럼 온전히 하나가 될수 없었던걸까.

 

이 소설은 10년동안의 전쟁이 그 모든 것들을 바꾸어놓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끼엔은 분명 변했다. 여전히 프엉을 사랑하는 그였지만, 둘사이는 자꾸만 어긋난다.

하지만 굳이 전쟁이 아니라도 1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길지 않을까? 시간의 흐름에따라 성숙해지고 새로운것으로 채워지면서 변할수 밖에 없지 않을까..

 

베드신이 조금더 나왔더라면 좀더 흥미진진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중간중간 느꼈다.

아랫집에사는 이쁜누나가 반공호를 파달라고 했을때 아슬아슬하게 그냥 지나친것도 그렇고

거의 창녀급이 된 친구의 여동생을 구해줬을때 그의 방에서 시작될것같은 야릇한 분위기도 그렇고

전쟁이 시작되기전 호숫가에서 프엉과 보냈던 마지막 저녁씬도 그렇고

아버지의 화실에살던 벙어리 여자와의 관계에서도 그랬고

왜 베드신이 생길듯 말듯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빗겨가는지..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랄까!!

 

이럴때 마광수교수의 상상력을 조금 동원한다면 더욱 멋진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할수있었다.

 

아직 김훈소설을 읽어본적이 없지만 모든이들이 찬탄을 보내는 그의 묘사력과 필력을 상상해보건데, 바오닌과 거의 견줄만하지않을까싶으며 간만에 번역이 훌륭한 소설을 읽은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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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달 1 - 세 명의 소녀 고양이달 1
박영주 지음, 김다혜 그림 / 아띠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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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전 맨 마지막 작가의 말을 살펴 보면, 작가는 이 소설이 자신의 이십대시절 회고록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고양이 달 1권의 배경인 가상의 아리별을 만들어 그 안에 자신과 만났던 이들을 모두 불러들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오직 한상대만을 찾아 온 우주를 헤매는 노아의 간절한 마음으로 나타내고자 한걸까.

마치 한편의 판타지 애니메이션같은 한권의 소설을 읽는 내내 등장 캐릭터의 성격을 관찰하고 대사 한마디에 치중해서 읽게 된 이유는 작가의 경험이란 말에 큰 영향을 받은것같다.

 

'우리 모두는 우주 어딘가에 자기의 별을 두고 있어. 글로리아처럼 자기별에 태어나 살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떠도는 이들이 더 많아. 그건 마치 고양이달을 찾는것과 같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알고 거기에 있기란, 완벽한 상대를 찾아 곁에 있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니까' - 50p

 

1권의 내용은 바라별에서 만난 고양이달 소녀를 찾기위해 우주를 여행하다 신고있던 별신에 문제가 생겨 일시적으로 아리별에 머무는 노아가 링고, 린, 빅스몰, 마레, 루나 , 모노 등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얘기들로 채워져있는데, 길을 떠나 여행에서 겪는 이야기인 만큼 기본적인 플롯의 마지막은 성장이 아닐까 싶다.

읽는 동안 상상력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잊었던 순수를 느낄수 있었다.

나역시 나의 별과 내가 있어야할 곳이 어디인지 노아의 여행을 따라가며 마음이 성숙해가는걸 느낄수 있었다.

초등3학년 딸아이가 이틀만에 읽어버린후 읽고 또읽고 펼쳐보고 찾아보면서 2권은 언제 나오냐고 벌써부터 기다리는 참 따뜻한 판타지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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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55
파트리크 라페르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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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수많은 해석들중 이 소설 속에 담긴 세사람의 이야기는 어디쯤 놓여있는 걸까.

그들의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할수는 없지만 이 이야기도 그저그렇고 그런 구태의연한 신파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난 이 세사람중 어느 한사람도 나와 동일시 되는 느낌을 받진 못했다.

그보다는 소설을 읽을수록 자꾸만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온다고 해야할까.

처음에는 노라라는 여자에게 화가 났다.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상대방의 긴 시간의 고통을 외면한채 한 몇년 연락두절했다가 어느날 문득 나타나는 노라가 참 미웠다.

너무도 일방적인 사랑.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블레리오와도 머피와도 감정교류가 느껴지지않는 사랑이라고나 할까.

그건 어쩌면 불운한 환경에서 성장한 그녀가 할수있는 일종의 사랑법, 사랑을 갈망하지만 늘 방어기제가 앞서는 그녀의 안타까운 사랑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던거다.

오히려 블레리오나 머피중 누군가 더 세게 더 강하게 꽉 그녀가 흔들리지 않도록 깊은 사랑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노라는 왜 그렇게 밖에 살수 없었던 걸까.

어떤 사람들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 노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대의 나였다면 분명 노라를 부러워 했을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좌지우지 하면서 때론 기쁨에 들뜨게도 때론 아프게도 할수 있는 그녀의 능력을 부러워했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20대를 지나는 동안 노라보다는 사빈의 입장에서 많은 아픔을 겪었고, 그런 경험을 통해 누군가의 기쁨은 다른 누군가의 슬픔이 될수 있다는것을 알았다.

결국 노라의 만족은 끝이 없고, 모든것들이 파국으로 치닿는 가운데 그녀 마저도 스스로를 무너뜨린 꼴이 되지 않는가.

내생각에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싶은 말은 이 소설의 제목 '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에 모두 나타나 있는것같다.

어쩌면 루이 블레리오, 머피 블룸데일, 노라 이 세사람이 욕망했던건 서로에 대한 사랑이 아닌 욕망 그 자체를 욕망한게 아닐까 싶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오히려 더 허하고 쓸쓸할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욕망이 짧은 인생속에 너무나 큰 파국을 가져다 준다는걸 이 소설을 통해 느낄수 있었다.

보통 책 한권을 잡으면 일주일 이내에 읽었던 반면, 이책은 참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것 같다.

줄거리 보다는 파트리크 라페르 라는 작가의 글솜씨, 인물과 배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유독 마음에 와닿아 한줄 한줄 가슴으로 느끼며 읽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던것같다.

줄거리만 건진다면 단 몇줄에 요약이 가능한 내용이지만, 이 소설이 무척 쓸쓸하게 재생산 될수 있었던건 작가의 글솜씨 덕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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