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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들의 중국사
사식 지음, 김영수 옮김 / 돌베개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이 책을 산지는 6개월정도가 되었는데, 이제서야 보게되었습니다.
이 책을 살 때, -50%할인인가 ? -30%할인인가 ? 어째든 싸게 산 기억이 있다.
저자는 승자의 역사가 아닌, 객관적인 역사/숨겨진 역사를 쓴다고 하고 있으나, 그 역시 중세 유교인 성리학(주자학)적인 대의 명분 역사관이 아무 깊게 박혀있다.
그래서 저자는 항우를 위인으로, 유방을 졸부로 본다.
그래서 저자는 명나라를 세운 농부 출신 주원장을 비하한다.
그래서 저자는 송나라를 세우고, 기초를 세운 조광윤을 위인으로 본다.
유방과 주원장은 실력/사람됨으로 천하를 얻은 것이 아니라, 음모와 술수, 그리고 운으로 천하를 잡았다고 폄하한다.
물론, 유방과 주원장은 그런 면이 있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고 세상이다. 세상이 교과서처럼 항상 선/이성이 이기고 축복받는 세상이 아님을 알면 말이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4각의 링이라는 권투에서, 두 선수는 그냥 간단하게 치고 박고 빨리 끝내는 게 정답이다.
그러나 현실은, 권투는 인파이터도 있고, 아웃 파이터도 있고, 4각의 링을 활용하는 선수도 있고, 12회를 장기전으로 생각하고 뛰는 선수도 있다. 즉, 서로 처음부터 치고박고 빨리 결정을 내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역도에서 그냥 무거운거 드는 사람이 이기면 된다.체급도 필요없고 아주 단순하게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역도는 체급도 있고, 또한 3번의 기회만 주어서 현실은 작전이 필요요 한다.
저자가 그렇게 칭송하는 조광윤은, 훗날 송나라가 군대를 가볍게 보고, 문화/경제만 강조하여, 결국 송나라는 거란/여진/몽골 족들에게 나라가 망하고 세금을 바치는 결과가 도래한다. 이게 선이고 좋을 것인가 ?
저자의 솔직하고, 숨겨진 역사,패자의 역사를 볼려고 하는 의도는 좋으나, 그렇다고 승자를 폄하하는 과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세상은 교과서대로만/원리원칙대로만/위선을 가진 종교의 말처럼만 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p.s.
저자의 대의명분 역사관만 고려해서 읽으면, 그런대로 시간 보내고 싶을 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함. 그러나 아주 좋은 책이라고는 볼 수 없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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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의 삼고초려는 없었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천하의 제갈량을 얻기 위해 3번이나 자세를 낮추고 제갈량의 집을 찾아갔다는 삼고초려가 조작/가짜라고 합니다. ㅋㅋ
제가 초등학교 때, 삼국지를 5번 정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명장면 중에서 유비의 삼고초려는 명장면 중의 하나였는데, 그것이 조작/가짜라니~ ㅋㅋ 정말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그 많던 모든 것이 어째 이리 우상화/조작/왜곡이 많을까요 ?
그럼 무슨 근거로 유비의 삼고초려가 조작/가짜냐 ? 다음에서 밝힙니다. 물론 2천여년전의 일이라 100% 답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것이죠
책, '황제들의 중국사' / 돌베개 출판 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1. 삼고초려가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제갈량이 위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출사표에서 처음 제갈량 자신이 밝혔다.
2. 즉, 유비와의 삼고초려의 그런 인연 때문에, 그 은혜를 갚고자 위나라를 친다는 것이었다.
3. 즉, 제갈량이 삼고초려를 밝히기 전까지 20여년간(유비,관우,장비,제갈량,조자룡이 함께 활동했던 시기)은 전혀 그런 기록이 없다가, 갑자기 출사표에서 제갈량이 밝힌 것이다.
4. 유비의 삼고초려를 정사로 만든 것은, 촉한 사람 진수가 쓴 '삼국지'인데, 이것은 오나라와 촉한을 멸망시킨, 진(晉)나라에서 만들어졌다.
5. 위나라의 역사학자 어환이 저술한 '위략'과 '구주춘추'라는 역사책에는 유비의 삼고초려는 없었고, 제갈량이 유비를 찾아가서 스스로 출세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6. 즉, 진수가 삼국지를 쓸 때, 진수는 유비의 삼고초려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나타내는 역사 자료가 2가지가 있었는데, 있었다는 자료(제갈량의 출사표)를 없었다는 자료(위략,구주춘추)를 대신해서 역사책인 '삼국지'에 선택해서 쓴 것이다.
7. 그러면 왜 진수는 삼고초려가 있었다는 역사자료를 선택했을까 ? 이미 삼고초려가 없었다는 역사책인 '위략'과 '구주춘추'가 있었는데 말이다.
8. 그 이유는 정사 '삼국지'를 쓴 진수의 출신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제갈량의 부하였고, 진수 역시 촉한에서 관리로 생활하다가, 위나라에 투항한 개인사가 있기 때문이다.
9. 또한 위나라를 멸망하고 쿠테타로 진나라를 설립한 , 사마씨의 진나라의 이해관계때문이기도 하다. 즉, 위나라에 대해 우호적인 '위략'을 채택하기에는 현재의 세력 진나라의 눈치가 보인 것이다.
10. 실제로 진수의 '삼국지'가 정사로 인정되기는 하지만, 중국의 여러 정사중에서 가장 조잡한 것으로 인정이 된다. 즉, 정사 '삼국지'는 본편이 허술하여, 그 보정/보완설명이 거의 같은 한자수/글자수를 가지고 있는 좀 조잡한 역사책인 것이다.
그러면, 제갈량은 실제 상황은 어떠했나 ?
우선 제갈량은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혼자 공부만 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즉, 제갈량은 지방 중견 세력의 후원을 받고 있던 일종의 엘리트였다.
제갈량의 친인척 중에는 방통이 있었고, 제갈량의 부인은 비록 천하의 못생긴 박색이기는 했지만, 재능이 출중했고, 또한 부인의 집안이 그 지역의 명망있는 가문의 딸이었다.
제갈량은 주변의 인재들과 공부와 교류를 했는데, 그들은 방통,서서,최주평,맹공위,석광원 등이 그 대표적이다. 즉, 제갈량은 시골에서 11년을 농사나 지으면서 공부만한 그런 철부지가 아니라, 지방 토호의 후견을 받는 엘리트였고, 주변 엘리트들과 교류를 한, 지금으로 말하면 수준 높은 연구소의 연구원 쯤 되었다. 이러니 그가 바로 현실정치에 뛰어 들었을 때, 2년만에 바로 적벽대전을 성공시켜 바로 현실에 적응할 수 있었다. 즉, 그는 준비된 전략가/야심가였던 것이다.
'위략'과 '구주춘추'에는 제갈량이 유비를 찾아가서 스스로 유비를 설득하고, 자신을 측근으로 써줄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역사로 자세히 나와 있다. 즉, 유비의 삼고초려는 없었고, 제갈량이 스스로 출세를 위해 유비를 찾아간 것이다.
그러면, 제갈량은 왜 출사표에서 가짜로 '삼고초려'를 처음 밝혔던 것일까 ?
그 이유는,
1. 이미 촉한은 힘이 없이 망해가고 있던 나라였다.
2. 즉, 관우의 오만으로 형주를 잃고, 그것을 복수하기 위해 오만을 부려 오나라를 침공했던 유비의 주력군대가 전멸을 당한 이후부터, 촉한의 국력은 완전히 꺽어졌다.
3. 형주를 잃고 익주에서 고독히 있던 약국 촉한은 나라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4. 촉한은 가만 있어도 망하고, 움직여도 망하는 나라였다. 즉, 유비-관우의 오만/허세/판단착오로 이미 촉한의 국력은 완전히 꺽어졌는데, 제갈량은 가만 있어도 망하는 나라를 마지막으로 공격을 해보고 망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혹시나 적의 내분으로 어떤 운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5. 이런 상황에서, 출사표를 낸 제갈량의 입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군사를 일으켜야 했는데, 가장 좋은 명분이 바로 유비와의 인연을 강조하는 것, 즉 '삼고초려'를 지어내어서 그런 인연/운명을 강조해서 군사를 일으키려 했다는 것이다.
조선과 촉한을 세운 이는 이성계와 유비였지만, 그 최고의 협조자는 제갈량과 삼봉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이성계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성계를 선택했다"
제갈량도 아마 무능하지만 인덕/혈통이 있는 유비를 선택해서 중국 통일을 꿈꾸었을 것이다.
제갈량이 출중한 인재임음 분명하지만, 유비의 '삼고초려'는 여러 정황상 가짜임이 확실해 보인다~ ㅋㅋ
참고 서적
황제들의 중국사
사화로 보는 조선역사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