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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한국사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3월
평점 :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서 한가지 잣대로 세상을 보는 것은 편협하고 맹목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그래왔고요~
실제로, 한국에서는 좌파란 용어와 친일파란 용어는 극단의 세력이 서로서로 미워하고 저주하는 대표적인 문구일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좌파나 친일이 무조건 나쁘고 무조건 배척받아야할 것일까요 ? 최근의 역사서는 이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낍입니다~
밖에서 본 한국사
역사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나 한국같이 역사적 질곡이 있고, 현재도 그 후유증이 있는 나라에서는 더 그렇겠지요.
한국 역사는 크게 일제에 의한 식민사관과 이에 과대하게 대응하는 민족사관이 주류가 되 온것이 사실로 보입니다.
즉 너무 한국역사를 비하하거나 아니면 너무 과장하는 그런 역사관이 주류였다는 것이고 진정한 객관적인 역사는 쉽지 않았던 것이 진실이 아닌가 합니다.
다행히 최근에 객관적으로 한국사를 볼려는 시도가 많아서 긍정적인 방향은 되고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이번에 본 책, '밖에서 본 한국사'는 그런 시도의 책이고, 꽤 좋은 책이라 평가하고 싶군요~
물론, 제 자신이 꽤 진보적이라서 평소 제가 알고 있던 사회의식이나 한국사가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앞선 평가라, 이 책의 내용이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나,
한국사를 기존 중-고교 학교에서 배운사람 정도의 수준이라면, 상당히 쇼크하고 진보적인 내용이라고 감히 말하고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조선시대 이후의 내용이 60%가 된다는 점입니다. 즉, 근-현대사에 대해서 과감하게 상황을 쓰고 있어서, 고리따분한 내용이 주로 있는 타 역사책과는 차별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 고대사나 중세사 역시, 기존 역사책보다는 재미있고 의미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우리가 기존에 배웠던 중고교 역사책의 그 무의미하고 건조하고 재미없는 역사책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현실/현재과 연관시키는 역사책이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재의 초중고교 역사책이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이 책과 함께 비교하면서 공부한다면 좋을 듯합니다. 중-고-대학다니는 제 조카들에게도 사줄 예정입니다. 현재 40%할인 중이라 부담도 없네요~ ^
무미건조한 외우기식의 중고교 때 역사책을 기억하고 있는 분이라면은, 이 책은 역사가 이렇게 재미있고, 현재와 이렇게 연관시킬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몇가지 제가 그동안 잘 몰랐던 부분을 적어 볼까 합니다.
1. 가야(임나 일본부 )와 일본 왜와의 관계는 밀접한 관계(공동체)로 보고 있으며, 초기에는 가야쪽에 비중이 크고, 후기 때는 왜쪽에 비중이 컷을 것으로 본다.
2. 몽골 지배시의 고려는, 나라를 아예 몽골제국(원나라)과 합치기를 원해서, 병합청원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몽골정부의 거부로 원나라(중국)와 고려가 통합되지는 안됐다고 합니다.
3.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때, 신라의 역할은 아주 미미했었다고 합니다. 당나라 입장에서는 방해만 안해주면 좋을 정도로 신라의 역할은 미미했으나, 백제-고구려가 망한 후에는 신라와 당나라가 대결을 몇십년간
전쟁을 벌여서, 여기서 극복한 신라가, 백제땅 모두와 고구려 땅 일부(지금의 황해도)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4. 중국을 점령했던 민족, 즉 돌궐,거란,여진,몽골 민족이 지금은 나라도 없고, 그 세력이 거의 없어진데 반해, 한국은 살아남고 고유한 문화를 지킨 것은, 화이부동(和而否同)- 중국 문명과 교류는 하나, 중국과 같지는 않게 하는 정책. 때문이라고 합니다.
5. 변한(가야) 지방이 철산업이 발전한 것은, 철(철광)이 많이 생산이 되기보다는, 철 제조기술이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6. 신라는 백제-고구려에 비해 국력이 형편없이 약한 나라였는데, 6세기 초, 즉 520 전후로 부터 고대국가로 발전하여(고구려-백제보다 200여년이 늦음) 150여년만에 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즉, 신라의 나당 연합은,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상황에서 나온 신라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7. 조선 건국 시에, 시행된 토지조세제도인 과전법은, 현재 기준으로 하면 거의 공산주의 식의 개혁이었다. 즉, 모든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고 과세를 하는 것이었다.
8. 정약용등의 실학자들은 학문적으로 서학을 접했지, 종교적으로 접한 것은 아니었다.
9. 보통 민족주의는 우파의 역할이 큰데, 한국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민족주의는 주로 좌파쪽의 역할이 컸다.
10. 이승만 정권은, 민족-국가의 발전보다는, 자신들의 권욕독점 욕심이 더 강했던 기회주의 집단이었다.
11. 민비(명성황후) 세력은 집권을 위한 집권에 집착할 뿐, 국가 진로를 능동적으로 열어 나가려는 노력을 보인 바 없었다.
12. 1876~1985년까지는, 이 무렵 조선에서는 '독립'의 주장은 '친일'과 그리 멀지 않은 것이었다. 독립문 현판을 '매국노' 이완용이 쓴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독립협회의 독립이란 이미 패퇴한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확인하는 것이지, 당시 늘어나고 있던 일본과 러시아의 힘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13. 독립 무장 투쟁의 본산이었던 만주의 경우는 일본의 조종을 받는 만주국이 들어선 후 국민당의 외면으로 인해 공산 세력과의 연결 없이는 독립 활동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 즉, 한국에서는 좌파가 독립운동 세력의주체였다.
14. 과거 청산의 지체에 대한 반발은(친일파의,미 군정에 의한 복귀로 인한 과거 청산 지체 및 불이행은) 친일을 무조건 죄악시하고 항일을 무조건 영웅시하는 흑백론의 분위기를 낳았다. 이것이 또한 균형잡힌 성찰을 어렵게 해왔다. ==> 친일파들의 대한 긍정적인 면도 살 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15. 고려 무신정권이 내부 모순이 아니라 몽골 침략이라는 외적 요인으로 인해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금까지의 통념과 달리 정상적 정치 현상으로 해석할 여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6. 이승만 정권은 일본 경찰 출신 경찰요원을 앞세워 빈미특위를 습격하는 등 탄압 끝에 1949년 8월까지 반민특위를 무력화했다. 결국 반민족행위 혐의를 조사받던 680 여명 중 1950년 3월까지 단 7명이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이들도 1년내에 모두 풀려났다.
17. 일본은 조선 개항 때부터 만국공법체제를 조선에 강요하며 전통적 사대관계를 부정했다. 만국공법 체제는 허구의 평등으로 현실의 불평등을 가림으로써 제국주의 시대의 약육강식 정당화에 이용된 논리였다. 오늘날의 시장만능주의와 같은 틀이다.
18. 자원의 한계를 의식할 수 없던 19세기에 시장 기능을 강조한 자유주의는 하나의 이념이었다. 그러나 자원의 한계가 분명해진 21세기에 시장 만능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는 일부 세력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