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세트 - 전4권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한홍구.jpg
 
 
 
 
 
 
 
 
 
대한민국史 1~4편 / 한홍구
 
책 표지에 나온 카피 문구는,

' 소설보다 재미있고 영화보다 짜릿한 역사 이야기' 입니다~
 
이 카피문구는 과장이 아닙니다~  정말 재미있고, 짜릿한 우리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특히, 우리가 잘 모르는 한국 근-현대사 이야기~
학교 교과서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한국 근-현대사 이야기~
너무 많이 왜곡되고, 감추어진 한국 근-현대사 이야기~
 
이는 정말로 소설보다 재미있고, 영화보다 짜릿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사기는 1년정도 되었지만, 최근에서야 다 읽게 되었는데, 진작 읽을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책의 저자인 한홍구님은, 역사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충실하고 책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극우파(친일파)적인 분위기에서는 극우파가 아닌 것은 다 좌파/빨갱이로 보이겠지만 말입니다~
 
최근에 이 4권짜리 전집이 좀 많이 할인이 되면서 판매되고 있군요~
4권짜리 3질을 사서, 저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줄려고 합니다~
 
한국의 감추어진 근-현대사를 경험하시고, 그 재미와 짜릿함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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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도 과거 한때, 좌파/빨갱이 였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 ㅋㅋ
 
 
다음은, 책 ' 대한민국史 1~4' / 한홍구 저   를 읽고 쓴 글입니다~
 
 
박정희의 인생에서 4번의 큰 전환점이 있다. 그것은
 
1. 초등학교 교사가 된것 / 일제 시대 초등학교 선생은, 일제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첨병이었다. ==> 일제시대 사범학교는 지금의 고등학교 위치였다.
 
2.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편입한 것 / 박정희는 의도적-주도적으로 일제통치에 가담하고자 했다. ( 만주는 일제가 1931년도에 중국 만주 지방-중국 동북부을 침략 후 세운 괴뢰국가이다.)
 
3. 광복군에 가입한 것  / 갑작스런 해방 후, 박정희는 광복군이 출세에 동아줄인 줄 알고 중국에 있는 광복군에 가입하게 되지만, 미국이 광복군을 인정하지 않고, 친일파를 재기용하면서, 광복군은 출세에 썩은 줄이 되고 만다.
 
4. 남노당(남조선 노동당)에 가입 / 해방후 6.25 전쟁전까지, 남한에서 공산당-사회당 활동은 합법적이었다. 그리고 항일투쟁의 주도세력이 좌파세력이기 때문에, 이 당시만해도 좌파세력이 남한에서 우파세력보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미국의 반공정책과 친일파 재기용으로, 남한은 친일파를 처단하는 민족 vs 반민족  전선보다는, 우파 vs 좌파 싸움이 주된 정치상황으로 가게 되는데, 이는 미국과 친일파들이 의도한 것이었다.
 
 
박정희의 형은, 사회주의자/공산당 지지자였고, 그 활동을 하다가 처형이 되었다. 또한 그 형의 딸이 김종필(JP)씨와 결혼한 관계이다.
 
1948년 여순사건이 터지자, 박정희는 군부내 좌파 프락지로 잡히게 되어서, 죽을 수 도 있을 상황이었으나, 자신이 스스로 군부대 모든 좌파활동 인사들을 자백/폭로해서(그들은 대부분 숙군작업으로 죽는다), 겨우 박정희는 살아남게 되었다.
 
1961년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박정희의 과거 좌파활동을 의심하는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베트남 파병도 박정희가 먼저 제안하였고, 또한 정통성이 없는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것이, 정권유지의 필수이므로, 절대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게 되고, 또한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좌파/빨갱이들을 제거하게 된다.
 
 
6.25 전후에, 남한에서는 민간인이 최소 50만에서 많게는 100만명이 학살을 당하게 된다. 대부분, 좌파/빨갱이로 몰려서 죽게 되거나 미국의 무차별 폭격에 의한 것인데, 이로 인해서 남한사회에서 좌파활동은 맥이 거의 끈기게 된다. 참고로 6.25 전까지 남한은 공산당/사회당 활동이 법적으로 합법이었다.
 
 
남한에서는 미국의 비호와 냉전으로 인해, 친일파들이 다 살아남게되고 게다가 다시 정권/기득권을 잡게된다. 그들은 좌파/빨갱이 잡는 전문가로 변신을 했는데, 특히 경찰/군대는 친일파들이 그대로 남아서 수뇌부를 차지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게 된다.  ==> 군대와 경찰의 그 무식함/폭력은 일제시대의 잔재지요~ ㅋㅋ
 
 
 
 
한국 근-현대사를 압시다~  너무 흥미롭습니다~ 
학교 교과서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를 필수과목에서 제외하는 현실~ ㅋㅋ
 
책, ' 대한민국史 1~4권' / 한홍구 저  ==>  이 책은 2008년 국방부 불온도서 23에 선정된 책입니다. ㅋㅋ
 
 
 
한홍구의 현대사 강의 동영상 보기 : http://www.hanitv.com/edu/sub_index.php?movie_idx=970&depth1_idx=21&info_idx=81&pagesize=10&gotopage=1
 
 

p.s.
개인적으로 빨갱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한국 현실에서 정치-사상적 반대파를 공격할 때 쓰는 극우파/친일파 들의 상투적인 수법이므로 그냥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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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세트 - 전4권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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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과 함께, 한국 모든 집에 있어야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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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역사
구본창 지음 / 채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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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적이 없다~ ㅋㅋ

 
우리는 신라가 3국을 통일했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진짜로 그럴까요 ?
그 반론을 여기 제기 합니다.
 
 다음은 책,'패자의 역사' , 구본창 저. 를 읽고 쓴 것입니다.

 
신라의 3국 통일은 왜곡이고 과장된 것이다.

근거,

1. 신라는 660년 백제 멸망 시, 단지 계백의 5천 결사대와의 전투만 있었을 뿐이다. 그 이외의 주력 전투는 당나라 군대가 단독으로 했다.
 
2. 668년 고구려 멸망 시, 신라는 고구려와 전쟁을 한차례도 하지 않고, 단지 당나라의 후방 병참 기지,보급 부대 역할만 했다.
 
3. 백제 멸망과 고구려 멸망후,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에 각각 도독부를 설치하나, 신라는 이에 대해 이의제기를 못하고, 인정했다.

4. 676년 당나라가 이제는 신라까지 직접 통치하기 위해, 신라땅에 계림도독부를 설치할려고 한다. 이에 대항하여 신라가 전쟁을 일으켜서 결국에는 승리해서 대동강 이남과 원산만까지 땅을 차지한다.

5. 698년에 발해가 고구려의 옛땅을 다시 다 회복하여, 우리의 역사는 발해와 신라의 2국체제가 된다.
 
6. 19세기 후반, 유득공은 '발해고'에서 신라 3국통일론을 회의적으로 보았고, 김정호는 '대동지지'에서 신라 삼국통일론을 전면 부정하였고, 신채호 역시 신라 3국통일론을 체계적으로 비판했다.
 
7. 신라의 의한 3국통일이 최초로 나온 책은 1145년 고려시대 김부식의 '삼국사기'인데, 김부식은 경주김씨 출신의 신라귀족 후예였다. 즉 김부식의 주장을 객관적을 볼 수는 없다.
 
8. 일제 시대, 일본총독부는 조선의 고대사 문헌 약 20만권을 불태워 없앴는데, 이때 '삼국사기'는 살려두었다. 그 의도는 만주를 지배했던 '발해'를 조선의 역사에서 떼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9. 일제시대 친일 역사학자들이(이병도,국사편찬위원회-교육부 등을 장악함) 해방후에도 그대로 받아 드려서, 현재까지 오고 있다.
 
10. 박정희 시대에는, 신라가가 경상도의 조상이라는 식으로, 지역감정을 일으켜서, 의도적으로 신라의 3국통일을 강조한 것도 있다.

결론,
신라는 고구려 멸망 시에, 한번도 고구려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고, 백제 멸망 시에도, 단지 계백의 5천 결사대만을 상대하였다. 즉, 나-당연합은 신라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당나라가 고구려를 치기 위하여, 신라를  후방 병참고로 이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라와 연합 한 것이었고, 당나라 주연에 신라는 조연이었다.
 
 
p.s.
의자왕의 3천 궁녀 역시, 터무니 없는 왜곡/거짓의 역사라고 이 책은 주장합니다.

의자왕은 40세 이후에 즉위하여 60세경에 백제 멸망까지,  20여년동안 신라를 10여차례 침공합니다. 이렇게 정복에 힘쓰던 의자왕이 계집질하기 위해 3천명이나 궁녀가 있었다는 것은 상직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죠.
 
백제가 멸망한 이유는, 당나라의 제휴(고구려 침공 시에 병참 기지를 해달라는 연합)를 거부한 것인데, 의자왕이 이를 거부한 이유는,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유력을 되찾기 위해 신라와 계속 전쟁을 해야 하였고(당나라는 고구려를 치기 위해 백제-신라가 연합하기를 원함)
또한 고구려가 백제와 연합하면 충분히 당-신라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으나, 고구려가 이미 내분과 장기간의 전쟁으로 힘이 많이 약해졌는데, 이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백제 멸망의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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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변절과 꽁무니 빼기~ ㅋㅋ


1919년 3.1 운동의 발기인으로 알려져있는 민족대표 33인들~  이들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아십니까 ? ㅋㅋ

다음은, 책-'패자의 역사' / 구본창 저에 나온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 3.1운동은 당시 종로경찰서 조선인 고등계 형사였던 '신철'님이 모의를 눈감아 주지 않았다면, 3월1일 당일에 운동으로 시작도 할 수 없었다.
 
2. 신철님은,2월말에 3.1운동의 모의를 알았으나, 모른체 해주었고 일본에 이를 알리지 않았고, 또한 3개월간 만주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왔으나,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일본에 의해 발각이 나서, 문책을 받다가 자살을 하고 만다.
 
3. 유림(유교)은 당시 가장 큰 조직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도부가 모두 평민이라는 이유로 불참했다.
 
4. 33인의 대표들은, 3월1일 당일에 파고다 공원에 나타나지 않았고, 나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학생/시민들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5. 33인의 대표들은, 이완용의 별장이었다가 요정(지금의 룸싸롱)으로 바뀐 태화관에서 있다가, 파고다 공원의 5천여 학생/시민들이 독립선언을 한 직후에 곧바로 일본경찰서에  전화를 걸어서 자신들을 체포해가라고 알려주고 일본경찰에 연행이 되었다.
 
6.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을 벌여 놓은 채 33인 그들은 차후에 전개된 상황에 대한 아무런 대비나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종로 경찰서에 스스로 체포되는 비상식적인 행보를 한 것이다.
 
7. 3월1이 파고다 공원에는 학생/시민 5천명이 모였고, 일본은 행진을 하는 조선인을 바로 총을 쏘는 무장 진압을 한다.
 
8. 3개월간의 걸쳐 무려 200만명(당신 남북 합 인구 1500~2천만)이 참가한 3.1운동에서, 일본은 시위 초기부터 무자비한 진압으로 일관해 7,500명이 사망하고, 15,000명이 부상당했으며, 약 50,000명이 투옥되었다.
 
9. 33인 중에서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사람은 불교를 대표한 한용운만이 그랬고, 33인 대다수가 일본 경찰의 요구대로 일종의 반성문 성격의 해명서를 쓰고 풀려났고, 선언문을 작성한 최남선을 비롯하여 최린, 정춘수,박희도 등은 친일파로 변절했다.
 
10. 원래 독립선언문은, 한용운님이 썼으나, 너무 과격하다고 하여 최남선(친일파로 변절)이 다소 부드럽게 고쳐썼다.
 
제 생각에는 세상 물정 잘 모르고, 목숨 걸고 시위를 하다가 죽은 유관순님 처럼, 윗대가리들은 이리 빠지고 저리 빠리고 지 살길 마련해서, 후일에는 대부분 친일파로 잘 먹고 살고, 순수하거나 의협심 강한-그래서 세상 때가 덜 묻은 사람들은 그냥 죽어가고~ ㅋㅋ
 
이런 세상은, 현재도 진행 중인데,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놈/년들(2mb, 정운찬, 안상수 등)의 80%이상이 군대 면제이고, 순진한 군인들은 수십명이 개죽음 당하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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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친일파의 보호자-지원자 ~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친일파를 지지세력으로 대통령이 된 자입니다. 그는 친일파를 보호하고 적극 채용하여 그들의 기득권을 이어가게 해주었고, 또한 독재정권을 유지했습니다.
게다가 민족주의자 정적들을 빨갱이라는 명목으로 숙청과 사형을 시킵니다. ㅋㅋ
 
다음은 책, '패자의 역사' / 구본창 저 있는 부분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승만은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반민특위 해산은 대통령인 내가 직접 경찰에 지시한 것" 이라고 밝히며 막가파식 배짱으로 맞섰다. / 참고, 반민특위 = 친일파 색출을 위한 국회지정단체
 
1949년 6월6일 새벽에는 무장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여 반민특위 직원과 특별경찰을 모두 체포했다.
 
그런데, 1948년 10월에 악랄한 친일 경찰 출신으로 수도청 경찰 간부였던 최란수,홍택희,노덕술이 테러리스트 백태민을 사주해 반민특위 관련자 15명을 암살하려는 음로를 꾀했다가 백태민의 자수로 사전에 발각되어 모두 구속되었다. 물론 이들은 얼마 안 있어 석방되었다.
 
 
1949년 6월 26일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안두휘에 의해 암살되었다. 이런 공포 분위기 속에 이승만이 또 다시 낸 반민특위개정안(실제로는 반민특위를 없애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의 길이 거의 영영 막히게 되어 버렸다.
 
 
P.S.
2MB와 한나라당이 이승만을 그렇게 정통으로 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ㅋㅋ 그들이 바로 친일파들의 후손 & 그로인해 기득권을 획득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ㅋㅋ

  그리고 이런 역사가 , 역사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것은, 이들 친일파들이 정치/교육계등을 다 장악했었기 때문이었다~ ㅋㅋ
 
또한, 이런 기득권을 이어간 친일파들은, 자식교육에 돈을 쏟아부어 다시 사회 기득권세력(판사,검사)이 되나, 독립운동가 자녀들은 교육을 받지 못해서 하층민으로 전락하게 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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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역사
구본창 지음 / 채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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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승자가 아닌 패자~, 아니 더 정확히는 객관적이고 왜곡 안된 역사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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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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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07659.html 

다음은 한겨레 신문에 실린,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한 칼럼의 일부입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또 두 가지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전에 한국 사회의 정치이념 지형을 수구적 보수, 자유주의 보수, 진보로 나누어 앞의 둘 사이의 구분선을 국가보안법, 뒤의 둘 사이의 구분선을 신자유주의라고 했는데, 앞으로 진보세력은 신자유주의라는 어려운 말 대신 ‘삼성’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게 그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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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용철 변호사와의 '저자와의 만남에서' 느꼈던 후기입니다~ 

 

김용철 변호사를 만나다~ ㅋㅋ

화요일 밤에 명동에서 책, '삼성을 생각한다'의 저자 김용철 변호사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좁은 지하 회의실에 약 25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꽉 찼다는 말이죠~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도 오시고, 프레시안 사장도 오시고, 여기저기 기자들도 많이 오고~
2시간동안 진행된 포럼에서 나온 것을 요약해 보면,
 
1.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될 줄은 몰랐다.
2. 처음에는 책이 3만권 정도 팔렸으면 했는데, 이제는 100만권이 목표다~ ㅋㅋ  / 발행 10일만에 3만부는 벌써 돌파했다 ㅋㅋ
3. 책 값이 좀 비싼데, 본인은 좀 싸게 팔려고 했는데, 출판사가 가격을 그렇게 정했다고 함.
4. 책 쓰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다. 후편은 없다.
5. 책 발행하는 것도 좀 힘들었다. 출판사들이 대부분 거절했다. 사회평론이라는 회사가 이 책을 발간해주었다.
6. 책 발행을 금요일 밤에 했는데, 이는 삼성 수뇌부가 쉬는 날로, 이들이 조직화되기 전에 책을 풀어버린 것이다.
7. 책 발행 준비할 때, 삼성측에서 인지를 했으나 이런 저런 이유(옛 동지 포섭 등)로 발행을 하게 되었다.
8. 자신은 정치를 할 생각이 없다. 즉 이정도(삼성 내부 고발과 책 발행) 했으면 자신의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당신들이 몫이다.
9. 자신은 그동안 잘 살았던 인간이다. 인정한다. 그리고 회사 다닐 때 돈도 많이 받았으나 대부분 헤프게 써버려서 현재 큰 돈은 없다.
10. 자신과 자기 자식들이 한국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취업생활을 할 수 없게 된 것을 안다.
11. 검사생활할 때도, 정치권과 타협해서 수사할 것과 안할 것을 윗선에서 정한다.
12. 책이 100만권 정도 팔리면, 한국사회도 어느정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3. 이 책은 30세 이하는 안봤으면 한다.
14. 본인은 삼성의 수뇌부(이건희 일가 포함)를 비난하는 것이지 삼성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15. 삼성 수뇌부란, 50~ 250여명을 일컷는다.
16. 자신이 수뇌부로 일한 것은 1년6개월 정도였다. 이정도를 회사 기밀을 알 수 있었다.
17. 당뇨가 있어서 건강은 그리 좋지 않지만, 요즘 의학이 발전해서 오래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DJ도 당뇨병 발현이후로 30년을 더 살으셨다.
18. 비리를 할지 안할 지 결정할 정도라면, 그사람은 어느정도 성공한 위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여기 오신 분들 대부분은 그런 고민을 안해도 될 것이다. / 장내 웃음~ㅋㅋ

19. 간혹, 변호사 윤리(의뢰자 비밀 보호)로 자기가 다닌 회사를 비판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자신은 삼성 다닐 때 직원이었지 변호사로 삼성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었다. ㅋㅋ
20. 자신은 아직도 삼성 제품을 좀 쓰고 있으며, 자기 가족들은 삼성 주식도 사고 있다.
21. 책을 준비할 때는, 자신이 삼성에게서 린치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책이 이렇게 성공하는 것을 보니, 린치 걱정을 별로 안한다.
22. 과거에는 책을 서점에서 다 수거해서 사회에 풀리는 것을 막았겠으나, 이젠 인터넷 때문에 그렇게도 못한다. 세상이 완전히 변했다는 증거다
23. 한창 잘나갈 때, 주변 인척들에게 아파트도 사주었고, 백화점에서 한벌에 천만원이 넘는 양복도 사고 그랬다.
24. 룸싸롱에 가면, 예쁜 여자들이 너무 많다.(검사 시절, 삼성 시절 등)
25. 검사/판사 들도 여기 저기서 돈(뇌물)을 받는다.
 
26. 삼성 특검 때, 제대로 수사를 할려면 검사 50명 정도가 2~3년을 해야할 내용인데, 정작 특검은 몇달만에 끝내버렸고, 그나마 자신(고발자)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ㅋㅋ
 
27. 피의자들이 대검에 출석하면, 사실 30분 정도면 끝났다. 근데 하루정도 하고 나온다. 다 show다. 안에서는 잠도 자고 검사와 농담도 하고, 밥도 시켜먹으면서, 저녁에는 괜히 사무실 불도 여기저기 켜놓는다. 실제는 거기서 자기도 한다. ㅋㅋ  그리고 나올 때는 괜히 피곤한 척 한다. 수건으로 땀을 딱는 척하면서~ ㅋㅋ
 
28. 핸드폰은 i-phone이 나오자  애니콜에서 바로 바꾸었다. 
29. 삼성이 스스로 변할 가능성은 없다.


 
전체적인 느낌은, 평생을 성공 가도를 달려온 한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나락(?)으로 떨어졌다. 검사부터 삼성 수뇌부까지 인생의 달콤한 맛은 다 맛보았다. 그래서 자신이 그렇게 깨끗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신을 너무 좋게 바주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은 전사 또한 아니다. 삼성은 그 수뇌부들의 문제이지 전체 삼성가족의 문제는 아니다. 또한 자신은 정치를 비롯하여 어떤 사회운동을 할 생각도 없다. 자신은 이정도만 해도
자신의 역할은 어느정도 했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우리들엑 맡기면서 말이다.
김용철님은 이 책을 30세 이하들은 안봤으면 한다고 했다. 너무 세상을 더러운/어려운 것으로 알까봐 좀 염려스럽다고 했다. 일단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서 성공하고, 그 이후에 이런 세상의 어두운 면을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님, 내부고발을 해주셔서 그나마 더러운 한국사회/위선의 사회를 조금이나마 좋게 만들려고 한 그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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