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낭독용 대본화 작업을 할 수도 있어서 열심히 읽어야만 했던 책. 

복선을 사방에 깔아 놓아 글의 진행을 방해한다. 심지어 불쾌하다. 

왜 이렇게 쓸까? 

 처음 펼치는 순간부터 어떤 내용이 될지 너무 뻔하다. 이는 텔레비전 뉴스에서의 사건을 소재  

삼아 그저 뻔하게 짜낸 기분 나쁜 아는 체로, '우행시'를 봤을 때와 비슷하게 역겹다. 

참고로, 107쪽의 끝줄처럼 쓰려면 이런 주제는 택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너는 그렇게 쓰지도 못하는 못생긴 독자면서 왜 그렇게 작가를 비난하냐' 고 해도  

내 독후감은 달라지지 않는다. 

소재만 보고 달려들고 그 소재를 제대로 엮어내지 못해 그 소재들에게 마음의 상처만 줄지도 모르는 그런 작가는 밉다. 잘 써서 가슴을 제대로 울려줘야 한다, 그런 소재를 선택할 것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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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이어령 창조학교 Creative Thinking Academy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마음이 아픈 친구에게 늦은 밤 달려갔다가

'나 지금 갖고 있는 책 거의 다 읽었어,책 좀 빌려 줘.' 했다가 얻은 책.

참 고맙고 좋은 게 자꾸자꾸 생각나던 그녀의 아버지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어서.

그 연세에 아직도 책의 빈 공간에 그림과 자신의 생각을 시로써 표현하시는

그분이 아버지인 니가 부러운 게 먼저고,

아주 오래된 습관이실 이런 생각을 '생각'이란 책에 끄적이셨는데

그동안 하셨던 생각이 어떤 정도인지 상상도 할 수 없고, 다가갈 수도 없어 아쉽고,

책을 읽는 내내 보이는 흔적이 외로움의 증거라는 생각에 어서 어느 날엔가

찾아가서 친구 몰래 아버지와 술 한 잔 해야지 하는 나도 모르는 싸한 마음이 드는 게 다음.

 

아버지는 책에 쓰시지만 나는 A4에 쓴 글들을 언제나 이렇게 타자의 공간에 옮긴다.

이상하다.

 

여러 방면에 대해서 큰 흐름 없이 그저 쓰인 정말 생각들인데,

남겨두면 좋을 것들을 추린다.

 

'후세인 제거와 문화'

이슬람교도들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생겼을 땐 밖에서 천막을 치고 자는 풍습

-알라에게 구원을 청하는 아주 오래된 문화-을 알지 못해 침실을 공격했다가

후세인 제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좋은데 예가 조금 싫다.

미제국주의의 공공의 적임을 알겠는데 어쩐지 다른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지도

않는 바보 멍청이 얘기를 쉽게 전한 게 아닌가 싶어서.

 

'뽀빠이와 신화'

처음으로 했던 식품성분 분석에서 실수로 소숫점 한 자리가 잘못 찍혀

시금치의 철분 함류량이 10배로 불어나게 된 것을 확인한 지금도,

아니 80년이 지난 지금도 시금치를 많이 먹으면 근육질이 솟아난다는

이상한 뽀빠이 신화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과도하게 먹으면 신장에 결석증이 생긴다는 의학적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사람들의 첫생각을 버리기 싫어하는 경향인 듯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세상은 '5대양 6대륙'인 것처럼 말이다.

 

'낙타와 바늘구멍'

나는 종교를 갖지 않아 모르지만 많은 종교인이 교감하는 말 중 하나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우니라'

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것은 앞뒤가 안 맞는 말로 원래는 낙타가 밧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뭐 물론 근거가 정확하니까 뭐라 따질 말은 없지만,

밧줄보다는 낙타가 더 굵은 건 사실이니까 그냥 낙타로 인정하고 싶은 사람도 많겠다.ㅋㅋ

 

서울대 인문학 강의(기억이 어렴풋)에서 이어령과 어떤 화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거기서 들은 말이 이 책에서 이미 출판된 것이었는데 이는 글에 대한 어원.

 

긁는다, 글, 그리움의 어원이 모두 같다는 것.

다음 시는 너무 좋아서 여기 옮긴다.

 

아오모리의 벽화

 

그림은 긁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글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에 징용온 조선 사람이

아오모리 탄광의 어두운 벽을

손톱으로 긁어 글을 썼대요.

 

어무니 보고시퍼

고향의 그리움이

글이 되고

그림이 되어

남의 땅 벽 위에 걸렸대요.

아이구 어쩌나 어무니 보고시퍼

맞춤법에도 맞지 않은 보고싶다는 말

한국말 '싶어'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언어

배에 붙으면 먹고 싶어 배고프고

귀에 붙으면 듣고 싶어 귀고프고

눈에 붙으면 보고 싶어 눈고프고

가슴에 붙으면 가슴 아파 가슴 고프고

 

"마음의 붓으로 그려 바친 부처님 앞에 엎드린 이 몸은......"

[보현십이가]의 한 이두문자처럼 해독하기도 힘든 그리움이 된대요.

옛날 옛적 이 일본 땅에 끌려온 조선 청년이

탄광 벽을 손톱으로 긁어 글을 썼대요.

어무니 보고시퍼

 

그림은 긁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글에서 나온 말이다.

 

벽을 긁는 글과 그림과 그리움을 벽을 넘는다.

 

'넣는 문화와 싸는 문화'

가방은 틀이 먼저 있고 그 속에 넣는 물건은 한계가 있다, 허나

보자기는 물건이 먼저 있고 물건이 없을 때엔

그냥 하나의 천으로 주머니에 들어갈 수도 있다.

침대와 식탁은 먼저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변형도 불가능하지만

이불과 상은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만 그 기능을 다한다.

양복은 우리의 치수를 먼저 재고 나중에 달라질 체형에 대해선 배려가 없지만,

한복은 몸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올 수 있도록 여유가 있다.

저자는 이를 끌어안는 문화라고 말한다.

'나를 따라와라'가 아닌 '너희를 모두 포용해서 따라갈 수 있게 만들게'.

 

생각이라는 제목을 지닌 책인데 그와 적절한 글귀가 책의 끝무렵에 나와 내 생각을 붙인다.

 

1,2,3차 산업을 구분 지은 사람이 콜린 클라크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보며 예전 내 수업을 생각했다, 우스운 게 내 학창 시절이 아니라는 사실.

정보만을 얻는 단계는 학창 시절이다. 예를 들면 1,2,3차 산업이 무엇인가.

모든 학습은 심화된다, 1학년의 것은 3학년에, 2학년은 4학년에 이런 식으로.

만약 제대로 된 학습을 원한다면 초등학교 교과의 내용을 샅샅이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내용부터 시작해 스스로 찾아 책으로써 탐구하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생각' 이고 진정한 학습이 될 것이다.

그 책에 나온 정보에 '왜'와 '누가 이런 정리를' 이란 의문이 들 테니까.

 

다음은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172쪽 4줄과 203쪽 5줄: 아무 것도 -> 아무것도

215쪽 5줄: 다자인 -> 디자인

        7줄: 모슨 -> 모순

248쪽 1줄: 간장으로 기본으로 -> 간장을 기본으로

263쪽 6줄: 그 곳 ->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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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남혜현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산다는 것은' 과 '결혼 3년' 두 편으로 구성된 책.

<산다는 것은>
노동을 무시하는 사회의 계급층 아버지가 자신의 태생을 벗어나려는 행동을 하려는
아들 미사일을 이해 못하고 열렬히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고,
조금도 훌륭해 보이지 않는 건축물을 지어내는 아버지의 납득되지 않는 부와 명예를
무시하고 연극판을 떠돌거나 노동판을 드나드는 미사일 역시 이해가 간다. 

지적인 쾌락과 지적인 노동에 대한 글이 나오는데,
어쩌면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욕심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그저 좋은 회사에 가서 지적 노동을 하면서 돈 따위나 벌며 세월을 허송할 것인가에 대해
결정을 하기 위해 고민하는 성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도 한때 선생이나 의사, 작가를 꿈꾸며 정신적인 노동을 해볼 생각도 있었지만,
꿈은 그저 꿈으로 남았다. 지적인 쾌락에 대한 나의 선호는 열정적이기까지 했지만,
과연 지적인 노동에 재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학교에 다닐 때 나는 지독하게도 그리스어가 싫었다.
그래서 결국 4학년에서 유급되고 말았지만.
가정교사들을 불러가며 5학년으로 진급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기도 했다.
그 후 나는 여러 관청에서 근무했지만, 대부분 허송세월만 했다.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지적인 노동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했던 공부와 직장은
정신적인 긴장이나 재능, 개인적인 능력, 창조적인 영감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그저 기계적인 일일 뿐이었다.
나는 소위 그러한 지적인 노동은 육체노동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경멸한다.
그런 일은 사기나 무위도식과 다를 바 없으므로,
그런 일로 잠시라도 시간을 무익하게 쓰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아마 난 진정한 의미의 지적인 노동은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59쪽에 나오는 블라고보와 미사일의 대화는 명확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자들이 뜬구름 잡는 헛소리로밖에 안 보인다.
번역이 이상했거나 작가가 의도했거나. 

다음과 같은 미사일의 얘기는 아마 지금도 그 미래에도 들어맞는 얘기가 될 것이다. 

나는 선악의 문제는 모두 각자가 결정하는 것이며 전 인류가 점진적인 발전을 통해
문제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점진성이라는 것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인문학적 사상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동안에 또 다른 류의 사상도 발전할 것이다.
농노제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라는 것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해방주의 사상의 최고점에서는 옛날 몽고의 바투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게 될 것이다.
정작 그들 자신은 굶주리고 헐벗고 외부의 공격에 무기력 하면서 말이다.
그러한 사회질서는 어떤 사조 속에서도 훌륭히 살아남아왔고,
그렇기 때문에 속박의 기술도 점진적으로 발전해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인들을 마구간에 재우지 않지만,
그 대신 농노제에 아주 교묘한 껍질을 씌워서 매번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이념은 이념일 뿐이고,
19세기 말인 이 시기에도 가장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노동자들에게 뒤집어 씌우려 들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위대한 사상가나 학자들이 자신의 황금 같은 시간을 이런 일에 쓴다면
인류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를 가져올 것이라며 변명할 것이다. 

지금까지 적어둔 가족과 사회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잡는 일,
사회를 바로 보는 어떤 눈,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고통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그것만 있다면
작품의 제목인 '산다는 것은'이 모두 표현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보아왔던 소리없는 고통들이 떠올랐다.
나는 이곳의 6만 시민들이 무엇을 하며 사는지, 무엇을 위해 성서를 읽고 기도하고,
무엇을 위해 잡지와 책을 읽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백 년 전, 아니 3백 년 전에 그들을 지배하던 정신적 암흑과 자유에 대한 혐오가
아직도 그대로라면, 지금까지 씌어지고 말해졌던 모든 것들은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준 것일까?
평생을 바쳐 집을 지어온 목수가 죽기 직전까지 '화랑'을 '호랑'이라 발음하는 것처럼,
6만 시민들 역시 세대를 갈아가며 진실과 자유에 대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지만
죽는 순간까지 거짓말만 지껄이며, 서로를 괴롭히고, 자유를 두려워하며 적처럼 증오한다. 

<결혼 3년>
이는 '산다는 것은'보다 더 구체적인 마음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대놓고가 아니라 은유적으로. 

이 작품에는 커다란 산업적 회사를 이끄는 라프쩨프의 아버지가 나오는데
'산다는 것은'의 아버지보다 더 잘 속이고 무섭게 길들여서 더 큰 공장을 세우는 무서운
사회적 인간이다. 그의 '아시아식 정책'이라고 불리는 다음과 같은 대목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었다. 뭐 거의 좋지 않은 의미로써의 공산주의 같은데
그것이 '아시아식'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라프쩨프 일가의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들은 대단히 어렵게 살았으며,
주변 가게들의 평판도 옛날부터 그랬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표도르 스쩨파노비치 노인이 자기 일꾼들에 대해 '아시아식 정책'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노인의 총애를 받는 포차트킨과 마케이체프가 얼마를 받는지 몰랐다.
그들은 보너스와 연간 3천 루블을 받았으나, 노인은 그들에게 7천 루블씩 지불하는 척했다.
보너스는 매년 모든 일꾼들에게 지불되었으나 이 역시 비밀스럽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적게 받은 자는 자존심 때문에 많이 받은 척했다.
소년들은 언제 그들을 점원으로 정식 고용해줄지 알지 못했다.
일꾼들은 주인이 자기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무엇 하나도 명확히 금지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일꾼들은 무엇이 허락되는지,
무엇이 금지되는지도 알지 못했다.
결혼하지 말라는 말도 없었으나 아무도 결혼하지 않았다.
자신의 결혼이 주인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혹시 일자리라도 잃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들은 친구에게 놀러갈 수도 있었지만, 매일 저녁 9시가 되면 벌써 문이 닫히고 아침마다 주인은
그들 모두를 의심스러운 듯 노려보고 혹시 술냄새가 나지 않는지 시험해보았다.

"자, 숨을 내쉬어보라고!"

축제마다 일꾼들은 아침 일찍 예배에 참석해서, 교회에서 주인이 그들 모두를 잘 볼 수 있도록
서 있어야 했다. 금식일은 철저히 지켰다.
주인의 명명일이나 그 식구들의 명명일 같은 잔칫날에는 선물을 사기 위해 누가 얼마의 돈을
냈는지를 기록한 쪽지와 함께 단 과자나 앨범을 가져와야 했다.
그들은 퍄트니츠카야에 있는 집의 아래층이나 별채에 살았는데, 한 방에 서너 명씩 살았다.
식사 때에는 각자 앞에 접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대접에서 퍼먹었다.
만약 식사 도중 주인이 들어오면 모두 일어섰다.

297쪽에 나오는 디프테리아는 그들을 연결할 유일한 고리, 곧 아이를 빼앗아 갔다.
곧 결혼3년이 마무리될 기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그를 사랑하는지 안정과 보살핌을 사랑하게 된 것인지 그녀 자신도 모를 일이지만.

아, 그리고 빠뜨릴 뻔했는데,
274쪽에 장정일 아저씨의 책 제목이기도 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나온다.
물론 아주 잘 어울리는 대사였고, 정일 아저씨의 그 책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정일 아저씨는 체홉을 패러디한 것일까? 
 

315쪽에는 라프쩨프가 말하는 장사꾼이 나온다.
요즘 같으면 철저히 망해먹겠지만 어쩌면 아직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장사꾼. 

특별한 두뇌와 재능이 없는 인간이 우연히 장사꾼이 되고, 부자가 되고,
매일매일 아무런 체게도 목적도 없이 심지어는 돈에 대한 욕심도 없이
기계적으로 장사를 하는 거죠.
그렇지만 돈이 직접 그에게 찾아온다는 겁니다. 그가 돈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는 평생 일만 하지만, 그가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점원들 위에 군림하며
손님들을 비웃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교회에서 그가 집사직을 맡는 이유는 성가대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복종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학교를 후원하는 것은 학교 선생들이 자신의 아랫사람인 양
위세를 부릴 수 있는 게 좋아서죠.
장사꾼은 장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위세 부리는 것을 좋아하는 겁니다. 

다음은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27쪽 6줄: 폴레즈네프에요 -> 폴레즈네프예요
45쪽 끝줄: 미쳐 -> 미처 (어린 시절에는 정신이 미쳐서가 맞다면 오탈자가 아니겠지만 ㅡㅡ)
116쪽 밑에서4줄: 그녀가 -> 그녀의
126족 5줄: 누이는나와 -> 누이는 나와
235쪽 밑에서2줄과 300쪽 8줄: 그리고는 -> 그러고는
275쪽 밑에서2줄과 330쪽의 끝줄: 하오체를 쓰려면 계속 그렇게 써야 한다.
사람이요 -> 사람이오, 설명해주십시요 -> 설명해주십시오
318쪽 밑에서5줄: 쐬야 -> 쐐야
333쪽 2줄: 노예 근성에 -> 노예 근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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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에게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현진 옮김 / 한길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남자들에게]란 제목을 가지고 있어 무슨 지침서 같은 분위기인가 하겠지만
책의 내용은 무척이나 그녀스럽게도 아주 역사적이다.
특히 42쪽에 나오는 피렌체와 베네치아에 사는 남성들의 수염이야기가 그런데
너무 우습게도 머릿속에 있는 사상이 수염에까지 나와서 서로를 구별지어야 했던
역사가 우습기까지 하다. 

* 당시의 좌파, 우파, 중립파 구분법

1. 좌파-일부러 손질하지 않은 구레나룻에 장발.
복장은 청바지에 모자 달린 점퍼 모습으로 지저분한 인상.

2. 우파-속칭 카이저 수염이라 불리는 끝이 올라간 콧수염으로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음.
머리는 짧고 뒷덜미는 깎아올린 듯한 느낌을 준다.
복장은 가죽점퍼에 청바지. 그러나 청결.

3. 중립파-스웨터에 양복바지. 수염 없음. 머리도 보통 길이. 

우습다고 표현했지만 당시에 이 차이는 꽤 중요한 것으로,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파의
아지트로 잘못 찾아들어가 몰매를 당하곤 했으니 당시로서는 심각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이분 말을 너무 맛있게 해서 읽어나가며 끝을 맞이하는 게 아까울 정도. 

122쪽에서는 징을 박지 않으려는 말을 길들이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것은 아이들의 교육에도 통하는 이야기다.

징을 박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말이 한 마리 있었다.
그 말은 암컷이었기에 나는 M씨가 어떻게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하는지 흥미있게 지켜보았다.
규슈의 카우보이들은 보스의 명령에 따라
그 암말의 고삐를 좌우로 쥔 채 앞다리에 밧줄을 감아 버렸다.
그때까지도 버둥거리던 암말은 어찌 해보지도 못하고 앞으로 퍽 하고 쓰러져서는 그 자세로 헉헉댄다. 그래도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써보다가는 그 뒷발질을 해보기도 한다.
말이란 동물은 잠도 서서 자는 만큼 옆으로 누운 자세는 불안했을 것이다.
서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카우보이들은 필사적으로 밧줄을 당겨 옆으로 눕혀 버린다.
이런 장면을 혹시나 동물애호협회의 아줌마들이 보았다면
시끌벅적하게 엄중한 항의문을 작성했을 테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어린 외아들을 종아리를 때려가며 키운 어미이니 이 정도는 꼼짝도 않는다.
옆에서 보고 있던 열 살 되는 아들에게도
"한 번의 잔혹함은 백 번의 방임보다 더 저 말을 위한 길이란다" 하고 설명을 하고는
미쳐 날뛰는 채로 그냥 두어서는 불고기밖에 될 길이 없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M씨는 조금만 더 있으면 말 눈에서 눈물이 흐를 것이고,
그러면 말을 잘 듣게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아직도 힘이 넘쳐 날뛰는 말이 제 힘에 머리라도 부딪혀서 상처라도 날까봐
말 옆얼굴과 땅바닥에 담요를 깔아 주었다.
그는 말이 몸을 뒤틀 때마다 담요도 따라 옮겨 주며 눈물을 흘리는지 확인한다.
반항 정신이 너무도 강한 이 암말은 그 누구로부터도 지금까지 채찍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가끔 뒷발을 살짝 때린다.
이것은 이제 얌전해질 마음이 생겼는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 시험해 보는 것이다.
실제로 처음에는 채찍을 살짝 갖다 대기만 해도 금방 뒷발질로 반항한다.
그런데 그 암말은 무척이나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지
담요 위치를 옮겨 주거나 얼굴을 들여다 보는 M씨를 콧등으로 들이밀어 버린 모양이다.
하필 그때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느라 그 장면을 놓쳐 버렸다.
아무튼 M씨는 허벅지를 세게 받혔는지 절뚝거렸다.
그러나 보고 있던 우리들뿐만 아니라 말도 놀랐는지 얼마 있지 않아 얌전해졌다.
우스웠다.
그후 이전의 말괄량이가 어디로 갔는지
거짓말처럼 얌전한 레이디가 되어 징을 박기 위해 따라갔다. 

269쪽부터는 머리 좋은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남자' 란 말을
'여자' 로 바꾸어 갈무리 해도 좋을 만큼 맞는 말이다.
이것은 여자와 남자가 아닌 사람에 대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니까.

이미 30년 전쯤의 일이다.
스트립쇼를 주로 하는 뮤직홀의 주인으로 있어, 그 때문에 여자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모두들 생각했는지 그런 곳에는 구경도 못 가본 나라도 그 이름은 알고 있는 모씨가 있었다.
그가 어느 때,
[문예춘추] 수필란에 기고한 한 문장이 기묘하게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여자란 결국 머리 좋은 것이 최고다."
늘상 정신적인 여성론이나 휘둘러대는 요즘 부지기수로 깔린 자칭 페미니스트가 한 말이 아니라, 나체의 여자라면 부지기수로 보아왔을 모씨 입에서 나온 말이니 그 무게가 단연코 다르게 여겨졌다. 여자를 남자로 바꾸면 내가 늘상 생각하고 있는 것과도 같아진다.
그 모씨와 내가 대담회라도 가진다면 당장 동감하게 될 것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머리 좋다는 것은 수다 떨기 위해서 챙기는 정도가 아니다.
침대 위에서든 어디에서는 모든 행동을 견제하는 이른바 '기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유명대학의 경쟁률 높은 학과를 졸업하여 일류기업이나 관청, 대학에 근무하고 있다고
머리 좋은 남자와 이퀄이 되지 않는 예도 종종 일어난다.
정말고 교육은 있으나 교양이 없는 남자(이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지만)란 쓸어내 버릴 만큼 많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머리 좋은 남자'란 무엇이든 제 스스로 생각하고,
그것에 의해 판단하고, 그 때문에 편견을 갖지 않고, 무슨무슨 주의 주장에 파묻힌 사람에 비해
유연성이 있고, 더욱이 예리하고 깊은 통찰력을 가진 남자다.
또한 자기 자신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다.
철학이라고 해서 무슨 어려운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대처하는 '자세' (스타일) 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말이다. 따라서 연령도 관계없고 사회적 교육의 고저도 관계없고,
그저 그것을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옳고 또 옳고 옳은 말이다.
장정일 아저씨는 남자들과 동등하게 설 수 있는 여류작가라고 인정한 그녀의 여느 출판사 편집장의 말에 공감한다고 그의 독서일기에 밝혔는데 여류고 남류고 뭐 따질 것 없이 그냥 그녀는 좋은 작가다.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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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마를 기준으로 해서 인맥이 넓어지며 표현되는 빈곤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
그동안 보아 왔던 배수아의 인물들처럼
성별이 헷갈린다거나 서로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거나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엮이고 엮이면서
각자의 빈곤과 그 빈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끊임없이 이어져가고 있다. 

전주 영화제를 가기 전 기분 좋게 읽을 책이 한 권 더 필요했을 찰나 눈에 들어온 배수아의 이 책. 

예전 독서모임의 대장인 녀석의 소개로 처음으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녀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를 샀고 예전에는 직업상 지겹게 읽을 수밖에 없었던 그 잡지에서
그녀의 인터뷰 기사 부분만을 절개해 책상 위에 놓은 뒤 지나치게 크고 부유해 보이기만 하는 보그지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집 앞 대문 곁에 뉘여 놓고 들어와 차분하게 읽어본, 분량이 생각보다 많은 그녀의 인터뷰.

그 속에서 개인적으로 아끼는 작품이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이란 이야기를 보고
조금은 유치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십원어치의 망설임도 없이 꺼내들어,
시오노 나나미의 남자들에게를 덮고 읽기 시작했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구체적으로 독후감을 남기지 않던 시절에 읽은 작품이라 부분부분만 기억날 뿐인 이 책은
시기적으로 매우 적절하게 내게 다시 나타나 주었다.
불편하게만 들이닥칠 그 지독한 빈곤에 대해서,
전주로 가는 무궁화 안, 평소 잘 쓰지 않는 인상을 옴팡지게 쓰며
내 그 무서운 빈곤과 맞서보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곱씹고 또 곱씹으며, 
집에서 읽다가 남은 적지 않은 분량을 읽어 치웠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는 듯 느껴지는 이 작품은 결국 빈곤 한 가지 인상밖에 남겨 주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의 문체는 [붉은 손 클럽]에서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남자와 헤어지지 않겠다고 악다구니 쓰고 있는 여자의 손을
끓는 기름에 집어 넣은 채 꼭 잡고 있던 그 남자.
인간의 감정에서의 끔찍함과 세상 살이에서의 끔찍함을 표현하려면
비슷한 느낌의 말이나 행동이 필요하다는 요상한 억지가 다가온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억지여도. 

 

다음은 오탈자.

83쪽 밑에서10줄: 되요 ->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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