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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남혜현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산다는 것은' 과 '결혼 3년' 두 편으로 구성된 책.
<산다는 것은>
노동을 무시하는 사회의 계급층 아버지가 자신의 태생을 벗어나려는 행동을 하려는
아들 미사일을 이해 못하고 열렬히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고,
조금도 훌륭해 보이지 않는 건축물을 지어내는 아버지의 납득되지 않는 부와 명예를
무시하고 연극판을 떠돌거나 노동판을 드나드는 미사일 역시 이해가 간다.
지적인 쾌락과 지적인 노동에 대한 글이 나오는데,
어쩌면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욕심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그저 좋은 회사에 가서 지적 노동을 하면서 돈 따위나 벌며 세월을 허송할 것인가에 대해
결정을 하기 위해 고민하는 성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도 한때 선생이나 의사, 작가를 꿈꾸며 정신적인 노동을 해볼 생각도 있었지만,
꿈은 그저 꿈으로 남았다. 지적인 쾌락에 대한 나의 선호는 열정적이기까지 했지만,
과연 지적인 노동에 재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학교에 다닐 때 나는 지독하게도 그리스어가 싫었다.
그래서 결국 4학년에서 유급되고 말았지만.
가정교사들을 불러가며 5학년으로 진급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기도 했다.
그 후 나는 여러 관청에서 근무했지만, 대부분 허송세월만 했다.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지적인 노동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했던 공부와 직장은
정신적인 긴장이나 재능, 개인적인 능력, 창조적인 영감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그저 기계적인 일일 뿐이었다.
나는 소위 그러한 지적인 노동은 육체노동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경멸한다.
그런 일은 사기나 무위도식과 다를 바 없으므로,
그런 일로 잠시라도 시간을 무익하게 쓰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아마 난 진정한 의미의 지적인 노동은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59쪽에 나오는 블라고보와 미사일의 대화는 명확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자들이 뜬구름 잡는 헛소리로밖에 안 보인다.
번역이 이상했거나 작가가 의도했거나.
다음과 같은 미사일의 얘기는 아마 지금도 그 미래에도 들어맞는 얘기가 될 것이다.
나는 선악의 문제는 모두 각자가 결정하는 것이며 전 인류가 점진적인 발전을 통해
문제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점진성이라는 것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인문학적 사상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동안에 또 다른 류의 사상도 발전할 것이다.
농노제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라는 것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해방주의 사상의 최고점에서는 옛날 몽고의 바투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게 될 것이다.
정작 그들 자신은 굶주리고 헐벗고 외부의 공격에 무기력 하면서 말이다.
그러한 사회질서는 어떤 사조 속에서도 훌륭히 살아남아왔고,
그렇기 때문에 속박의 기술도 점진적으로 발전해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인들을 마구간에 재우지 않지만,
그 대신 농노제에 아주 교묘한 껍질을 씌워서 매번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이념은 이념일 뿐이고,
19세기 말인 이 시기에도 가장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노동자들에게 뒤집어 씌우려 들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위대한 사상가나 학자들이 자신의 황금 같은 시간을 이런 일에 쓴다면
인류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를 가져올 것이라며 변명할 것이다.
지금까지 적어둔 가족과 사회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잡는 일,
사회를 바로 보는 어떤 눈,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고통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그것만 있다면
작품의 제목인 '산다는 것은'이 모두 표현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보아왔던 소리없는 고통들이 떠올랐다.
나는 이곳의 6만 시민들이 무엇을 하며 사는지, 무엇을 위해 성서를 읽고 기도하고,
무엇을 위해 잡지와 책을 읽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백 년 전, 아니 3백 년 전에 그들을 지배하던 정신적 암흑과 자유에 대한 혐오가
아직도 그대로라면, 지금까지 씌어지고 말해졌던 모든 것들은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준 것일까?
평생을 바쳐 집을 지어온 목수가 죽기 직전까지 '화랑'을 '호랑'이라 발음하는 것처럼,
6만 시민들 역시 세대를 갈아가며 진실과 자유에 대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지만
죽는 순간까지 거짓말만 지껄이며, 서로를 괴롭히고, 자유를 두려워하며 적처럼 증오한다.
<결혼 3년>
이는 '산다는 것은'보다 더 구체적인 마음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대놓고가 아니라 은유적으로.
이 작품에는 커다란 산업적 회사를 이끄는 라프쩨프의 아버지가 나오는데
'산다는 것은'의 아버지보다 더 잘 속이고 무섭게 길들여서 더 큰 공장을 세우는 무서운
사회적 인간이다. 그의 '아시아식 정책'이라고 불리는 다음과 같은 대목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었다. 뭐 거의 좋지 않은 의미로써의 공산주의 같은데
그것이 '아시아식'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라프쩨프 일가의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들은 대단히 어렵게 살았으며,
주변 가게들의 평판도 옛날부터 그랬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표도르 스쩨파노비치 노인이 자기 일꾼들에 대해 '아시아식 정책'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노인의 총애를 받는 포차트킨과 마케이체프가 얼마를 받는지 몰랐다.
그들은 보너스와 연간 3천 루블을 받았으나, 노인은 그들에게 7천 루블씩 지불하는 척했다.
보너스는 매년 모든 일꾼들에게 지불되었으나 이 역시 비밀스럽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적게 받은 자는 자존심 때문에 많이 받은 척했다.
소년들은 언제 그들을 점원으로 정식 고용해줄지 알지 못했다.
일꾼들은 주인이 자기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무엇 하나도 명확히 금지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일꾼들은 무엇이 허락되는지,
무엇이 금지되는지도 알지 못했다.
결혼하지 말라는 말도 없었으나 아무도 결혼하지 않았다.
자신의 결혼이 주인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혹시 일자리라도 잃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들은 친구에게 놀러갈 수도 있었지만, 매일 저녁 9시가 되면 벌써 문이 닫히고 아침마다 주인은
그들 모두를 의심스러운 듯 노려보고 혹시 술냄새가 나지 않는지 시험해보았다.
"자, 숨을 내쉬어보라고!"
축제마다 일꾼들은 아침 일찍 예배에 참석해서, 교회에서 주인이 그들 모두를 잘 볼 수 있도록
서 있어야 했다. 금식일은 철저히 지켰다.
주인의 명명일이나 그 식구들의 명명일 같은 잔칫날에는 선물을 사기 위해 누가 얼마의 돈을
냈는지를 기록한 쪽지와 함께 단 과자나 앨범을 가져와야 했다.
그들은 퍄트니츠카야에 있는 집의 아래층이나 별채에 살았는데, 한 방에 서너 명씩 살았다.
식사 때에는 각자 앞에 접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대접에서 퍼먹었다.
만약 식사 도중 주인이 들어오면 모두 일어섰다.
297쪽에 나오는 디프테리아는 그들을 연결할 유일한 고리, 곧 아이를 빼앗아 갔다.
곧 결혼3년이 마무리될 기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그를 사랑하는지 안정과 보살핌을 사랑하게 된 것인지 그녀 자신도 모를 일이지만.
아, 그리고 빠뜨릴 뻔했는데,
274쪽에 장정일 아저씨의 책 제목이기도 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나온다.
물론 아주 잘 어울리는 대사였고, 정일 아저씨의 그 책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정일 아저씨는 체홉을 패러디한 것일까?
315쪽에는 라프쩨프가 말하는 장사꾼이 나온다.
요즘 같으면 철저히 망해먹겠지만 어쩌면 아직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장사꾼.
특별한 두뇌와 재능이 없는 인간이 우연히 장사꾼이 되고, 부자가 되고,
매일매일 아무런 체게도 목적도 없이 심지어는 돈에 대한 욕심도 없이
기계적으로 장사를 하는 거죠.
그렇지만 돈이 직접 그에게 찾아온다는 겁니다. 그가 돈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는 평생 일만 하지만, 그가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점원들 위에 군림하며
손님들을 비웃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교회에서 그가 집사직을 맡는 이유는 성가대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복종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학교를 후원하는 것은 학교 선생들이 자신의 아랫사람인 양
위세를 부릴 수 있는 게 좋아서죠.
장사꾼은 장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위세 부리는 것을 좋아하는 겁니다.
다음은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27쪽 6줄: 폴레즈네프에요 -> 폴레즈네프예요
45쪽 끝줄: 미쳐 -> 미처 (어린 시절에는 정신이 미쳐서가 맞다면 오탈자가 아니겠지만 ㅡㅡ)
116쪽 밑에서4줄: 그녀가 -> 그녀의
126족 5줄: 누이는나와 -> 누이는 나와
235쪽 밑에서2줄과 300쪽 8줄: 그리고는 -> 그러고는
275쪽 밑에서2줄과 330쪽의 끝줄: 하오체를 쓰려면 계속 그렇게 써야 한다.
사람이요 -> 사람이오, 설명해주십시요 -> 설명해주십시오
318쪽 밑에서5줄: 쐬야 -> 쐐야
333쪽 2줄: 노예 근성에 -> 노예 근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