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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이어령 창조학교 Creative Thinking Academy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마음이 아픈 친구에게 늦은 밤 달려갔다가
'나 지금 갖고 있는 책 거의 다 읽었어,책 좀 빌려 줘.' 했다가 얻은 책.
참 고맙고 좋은 게 자꾸자꾸 생각나던 그녀의 아버지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어서.
그 연세에 아직도 책의 빈 공간에 그림과 자신의 생각을 시로써 표현하시는
그분이 아버지인 니가 부러운 게 먼저고,
아주 오래된 습관이실 이런 생각을 '생각'이란 책에 끄적이셨는데
그동안 하셨던 생각이 어떤 정도인지 상상도 할 수 없고, 다가갈 수도 없어 아쉽고,
책을 읽는 내내 보이는 흔적이 외로움의 증거라는 생각에 어서 어느 날엔가
찾아가서 친구 몰래 아버지와 술 한 잔 해야지 하는 나도 모르는 싸한 마음이 드는 게 다음.
아버지는 책에 쓰시지만 나는 A4에 쓴 글들을 언제나 이렇게 타자의 공간에 옮긴다.
이상하다.
여러 방면에 대해서 큰 흐름 없이 그저 쓰인 정말 생각들인데,
남겨두면 좋을 것들을 추린다.
'후세인 제거와 문화'
이슬람교도들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생겼을 땐 밖에서 천막을 치고 자는 풍습
-알라에게 구원을 청하는 아주 오래된 문화-을 알지 못해 침실을 공격했다가
후세인 제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좋은데 예가 조금 싫다.
미제국주의의 공공의 적임을 알겠는데 어쩐지 다른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지도
않는 바보 멍청이 얘기를 쉽게 전한 게 아닌가 싶어서.
'뽀빠이와 신화'
처음으로 했던 식품성분 분석에서 실수로 소숫점 한 자리가 잘못 찍혀
시금치의 철분 함류량이 10배로 불어나게 된 것을 확인한 지금도,
아니 80년이 지난 지금도 시금치를 많이 먹으면 근육질이 솟아난다는
이상한 뽀빠이 신화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과도하게 먹으면 신장에 결석증이 생긴다는 의학적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사람들의 첫생각을 버리기 싫어하는 경향인 듯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세상은 '5대양 6대륙'인 것처럼 말이다.
'낙타와 바늘구멍'
나는 종교를 갖지 않아 모르지만 많은 종교인이 교감하는 말 중 하나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우니라'
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것은 앞뒤가 안 맞는 말로 원래는 낙타가 밧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뭐 물론 근거가 정확하니까 뭐라 따질 말은 없지만,
밧줄보다는 낙타가 더 굵은 건 사실이니까 그냥 낙타로 인정하고 싶은 사람도 많겠다.ㅋㅋ
서울대 인문학 강의(기억이 어렴풋)에서 이어령과 어떤 화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거기서 들은 말이 이 책에서 이미 출판된 것이었는데 이는 글에 대한 어원.
긁는다, 글, 그리움의 어원이 모두 같다는 것.
다음 시는 너무 좋아서 여기 옮긴다.
아오모리의 벽화
그림은 긁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글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에 징용온 조선 사람이
아오모리 탄광의 어두운 벽을
손톱으로 긁어 글을 썼대요.
어무니 보고시퍼
고향의 그리움이
글이 되고
그림이 되어
남의 땅 벽 위에 걸렸대요.
아이구 어쩌나 어무니 보고시퍼
맞춤법에도 맞지 않은 보고싶다는 말
한국말 '싶어'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언어
배에 붙으면 먹고 싶어 배고프고
귀에 붙으면 듣고 싶어 귀고프고
눈에 붙으면 보고 싶어 눈고프고
가슴에 붙으면 가슴 아파 가슴 고프고
"마음의 붓으로 그려 바친 부처님 앞에 엎드린 이 몸은......"
[보현십이가]의 한 이두문자처럼 해독하기도 힘든 그리움이 된대요.
옛날 옛적 이 일본 땅에 끌려온 조선 청년이
탄광 벽을 손톱으로 긁어 글을 썼대요.
어무니 보고시퍼
그림은 긁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글에서 나온 말이다.
벽을 긁는 글과 그림과 그리움을 벽을 넘는다.
'넣는 문화와 싸는 문화'
가방은 틀이 먼저 있고 그 속에 넣는 물건은 한계가 있다, 허나
보자기는 물건이 먼저 있고 물건이 없을 때엔
그냥 하나의 천으로 주머니에 들어갈 수도 있다.
침대와 식탁은 먼저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변형도 불가능하지만
이불과 상은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만 그 기능을 다한다.
양복은 우리의 치수를 먼저 재고 나중에 달라질 체형에 대해선 배려가 없지만,
한복은 몸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올 수 있도록 여유가 있다.
저자는 이를 끌어안는 문화라고 말한다.
'나를 따라와라'가 아닌 '너희를 모두 포용해서 따라갈 수 있게 만들게'.
생각이라는 제목을 지닌 책인데 그와 적절한 글귀가 책의 끝무렵에 나와 내 생각을 붙인다.
1,2,3차 산업을 구분 지은 사람이 콜린 클라크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보며 예전 내 수업을 생각했다, 우스운 게 내 학창 시절이 아니라는 사실.
정보만을 얻는 단계는 학창 시절이다. 예를 들면 1,2,3차 산업이 무엇인가.
모든 학습은 심화된다, 1학년의 것은 3학년에, 2학년은 4학년에 이런 식으로.
만약 제대로 된 학습을 원한다면 초등학교 교과의 내용을 샅샅이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내용부터 시작해 스스로 찾아 책으로써 탐구하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생각' 이고 진정한 학습이 될 것이다.
그 책에 나온 정보에 '왜'와 '누가 이런 정리를' 이란 의문이 들 테니까.
다음은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172쪽 4줄과 203쪽 5줄: 아무 것도 -> 아무것도
215쪽 5줄: 다자인 -> 디자인
7줄: 모슨 -> 모순
248쪽 1줄: 간장으로 기본으로 -> 간장을 기본으로
263쪽 6줄: 그 곳 ->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