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현진 옮김 / 한길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남자들에게]란 제목을 가지고 있어 무슨 지침서 같은 분위기인가 하겠지만
책의 내용은 무척이나 그녀스럽게도 아주 역사적이다.
특히 42쪽에 나오는 피렌체와 베네치아에 사는 남성들의 수염이야기가 그런데
너무 우습게도 머릿속에 있는 사상이 수염에까지 나와서 서로를 구별지어야 했던
역사가 우습기까지 하다. 

* 당시의 좌파, 우파, 중립파 구분법

1. 좌파-일부러 손질하지 않은 구레나룻에 장발.
복장은 청바지에 모자 달린 점퍼 모습으로 지저분한 인상.

2. 우파-속칭 카이저 수염이라 불리는 끝이 올라간 콧수염으로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음.
머리는 짧고 뒷덜미는 깎아올린 듯한 느낌을 준다.
복장은 가죽점퍼에 청바지. 그러나 청결.

3. 중립파-스웨터에 양복바지. 수염 없음. 머리도 보통 길이. 

우습다고 표현했지만 당시에 이 차이는 꽤 중요한 것으로,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파의
아지트로 잘못 찾아들어가 몰매를 당하곤 했으니 당시로서는 심각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이분 말을 너무 맛있게 해서 읽어나가며 끝을 맞이하는 게 아까울 정도. 

122쪽에서는 징을 박지 않으려는 말을 길들이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것은 아이들의 교육에도 통하는 이야기다.

징을 박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말이 한 마리 있었다.
그 말은 암컷이었기에 나는 M씨가 어떻게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하는지 흥미있게 지켜보았다.
규슈의 카우보이들은 보스의 명령에 따라
그 암말의 고삐를 좌우로 쥔 채 앞다리에 밧줄을 감아 버렸다.
그때까지도 버둥거리던 암말은 어찌 해보지도 못하고 앞으로 퍽 하고 쓰러져서는 그 자세로 헉헉댄다. 그래도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써보다가는 그 뒷발질을 해보기도 한다.
말이란 동물은 잠도 서서 자는 만큼 옆으로 누운 자세는 불안했을 것이다.
서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카우보이들은 필사적으로 밧줄을 당겨 옆으로 눕혀 버린다.
이런 장면을 혹시나 동물애호협회의 아줌마들이 보았다면
시끌벅적하게 엄중한 항의문을 작성했을 테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어린 외아들을 종아리를 때려가며 키운 어미이니 이 정도는 꼼짝도 않는다.
옆에서 보고 있던 열 살 되는 아들에게도
"한 번의 잔혹함은 백 번의 방임보다 더 저 말을 위한 길이란다" 하고 설명을 하고는
미쳐 날뛰는 채로 그냥 두어서는 불고기밖에 될 길이 없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M씨는 조금만 더 있으면 말 눈에서 눈물이 흐를 것이고,
그러면 말을 잘 듣게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아직도 힘이 넘쳐 날뛰는 말이 제 힘에 머리라도 부딪혀서 상처라도 날까봐
말 옆얼굴과 땅바닥에 담요를 깔아 주었다.
그는 말이 몸을 뒤틀 때마다 담요도 따라 옮겨 주며 눈물을 흘리는지 확인한다.
반항 정신이 너무도 강한 이 암말은 그 누구로부터도 지금까지 채찍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가끔 뒷발을 살짝 때린다.
이것은 이제 얌전해질 마음이 생겼는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 시험해 보는 것이다.
실제로 처음에는 채찍을 살짝 갖다 대기만 해도 금방 뒷발질로 반항한다.
그런데 그 암말은 무척이나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지
담요 위치를 옮겨 주거나 얼굴을 들여다 보는 M씨를 콧등으로 들이밀어 버린 모양이다.
하필 그때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느라 그 장면을 놓쳐 버렸다.
아무튼 M씨는 허벅지를 세게 받혔는지 절뚝거렸다.
그러나 보고 있던 우리들뿐만 아니라 말도 놀랐는지 얼마 있지 않아 얌전해졌다.
우스웠다.
그후 이전의 말괄량이가 어디로 갔는지
거짓말처럼 얌전한 레이디가 되어 징을 박기 위해 따라갔다. 

269쪽부터는 머리 좋은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남자' 란 말을
'여자' 로 바꾸어 갈무리 해도 좋을 만큼 맞는 말이다.
이것은 여자와 남자가 아닌 사람에 대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니까.

이미 30년 전쯤의 일이다.
스트립쇼를 주로 하는 뮤직홀의 주인으로 있어, 그 때문에 여자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모두들 생각했는지 그런 곳에는 구경도 못 가본 나라도 그 이름은 알고 있는 모씨가 있었다.
그가 어느 때,
[문예춘추] 수필란에 기고한 한 문장이 기묘하게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여자란 결국 머리 좋은 것이 최고다."
늘상 정신적인 여성론이나 휘둘러대는 요즘 부지기수로 깔린 자칭 페미니스트가 한 말이 아니라, 나체의 여자라면 부지기수로 보아왔을 모씨 입에서 나온 말이니 그 무게가 단연코 다르게 여겨졌다. 여자를 남자로 바꾸면 내가 늘상 생각하고 있는 것과도 같아진다.
그 모씨와 내가 대담회라도 가진다면 당장 동감하게 될 것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머리 좋다는 것은 수다 떨기 위해서 챙기는 정도가 아니다.
침대 위에서든 어디에서는 모든 행동을 견제하는 이른바 '기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유명대학의 경쟁률 높은 학과를 졸업하여 일류기업이나 관청, 대학에 근무하고 있다고
머리 좋은 남자와 이퀄이 되지 않는 예도 종종 일어난다.
정말고 교육은 있으나 교양이 없는 남자(이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지만)란 쓸어내 버릴 만큼 많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머리 좋은 남자'란 무엇이든 제 스스로 생각하고,
그것에 의해 판단하고, 그 때문에 편견을 갖지 않고, 무슨무슨 주의 주장에 파묻힌 사람에 비해
유연성이 있고, 더욱이 예리하고 깊은 통찰력을 가진 남자다.
또한 자기 자신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다.
철학이라고 해서 무슨 어려운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대처하는 '자세' (스타일) 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말이다. 따라서 연령도 관계없고 사회적 교육의 고저도 관계없고,
그저 그것을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옳고 또 옳고 옳은 말이다.
장정일 아저씨는 남자들과 동등하게 설 수 있는 여류작가라고 인정한 그녀의 여느 출판사 편집장의 말에 공감한다고 그의 독서일기에 밝혔는데 여류고 남류고 뭐 따질 것 없이 그냥 그녀는 좋은 작가다.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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