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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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 문학동네 / 12000원

 

독서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집하는 작가가 있다.

흔하게 사랑받는 작가가 아닌 두 분 (장정일, 배수아)을 지나치게 고집하는 나는

언제부턴가 나도 그들처럼,

사람들에게  '아, 그 작가 알아요' 라며 쉽게 얻을 수 있는 반응과 함께

편하게 그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님에게 마음을 일부러라도 줘 보자는 생각에

김연수를 선택해 몇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있다.

뭐, 결국 자신의 취향이라는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새작가 사랑이라는 희망을 얻지 못했지만.

새작가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이유는 아래 리뷰에 아주 훤히 나타나 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 작품,

 

몇몇 나라를 넘나들며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결국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인물들.

이런 식의 글을 참 많이 봤지만 요놈은 참말 부드럽게,

아무렇지 않게 스윽 연결된다.

 

군사정권 하에서 어쩌면 그다지 어둡지도 않게 진행되는 이야기들.

 

베를린 장벽에 김일성과 노태우가 섹스하는 장면을 그리며

누구를 위에 두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로 싸움 아닌 싸움을 하는 강시우와 레이,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있는 학형은

역사를 순간순간 찍어 만들어내고 있는 자본주의에

어쨌든 살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책 속에서 계속

세계가 하나로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또한 아래와 같은 표현도 두 번이나 겹치기된다.

 

저는 트라벤입니다.

제 가족은 트라벤입니다.

제 나라는 트라벤입니다.

 

내게 조국은 하나입니다, 선생님.

나 자신이죠.

 

글쎄 모두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의미에서 위와 같은 표현을

썼을지 어떨지는 이젠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혼자라는 말과 모두라는 말은 어쩌면 동일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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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살아라 - 신정일이 쓴 조선의 진보주의자들
신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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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의 진보( 고려 말 공민왕부터 조선 태조까지)

 

엄청난 독서가, 올곧은 성품, 조광조와 이율곡에 이르기까지

민본정치를 잇게 한 장본인, 조선초기를 다질 때 이성계의

군사력을 등에 업고 한양천도와 토지정비 등 모든 사상적인 것을 해낸 인물.

그는 재상정치를 이상으로 여겼다는데 해당 내용은

통치자가 민심을 잃었을 땐 물리적 힘으로라도 끌어내야 한다는

길지 않은 문장과 함께 역성혁명이란 내용으로 다뤄지고 있었다.

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어쩐지 연결해 봐도 좋을 듯하다.

 

아래는 그의 일화 중 하나.

정도전이 일찍이 관아에 출근하는데 신 한 짝은 희고 한 짝은

검은 것이었다. 공석에서 서리가 고하니 공이 내려다보며 한 번

웃고는 끝내 바꾸어 신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말을 타고 갈 적에

웃으며 하인에게 말하기를 " 너는  내 신이 한 짝은 검고, 한 짝은

흰 것을 괴상하게 여기지 말라. 왼 쪽에서는 흰 것만 볼 것이요,

오른 쪽은 검은 것만 볼 것이니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했다.

 

그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정면에서 보면?

 

조광조의 진보 ( 중종 )

 

아이들 역사 가르칠 때 읽었던 교재에서 조광조가 죽고 지금의

일인 듯 그가 너무 아쉬워 가슴아파했던 기억이 있다.

중종 멍청이가 조광조의 개혁을 믿고 단행하게 두었더라면

(역사적 가정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이다.

 

썩어빠진 관리들의 풍조를 바꾸고 백성들을 편히 살게 하도록

많은 개혁을 실현하려 노력했던 사림인 그는 너무 직선적이고

올곧은  성격으로 중종의 배신이란 날벼락을 맞는데 사약을

들이켜도 쉬이 죽지 않자 " 사약이 떨어졌으니 더 가져오게."하여

두 번째 사약을 들이킨 후 이불을 쓰고 있었지만 죽지 않자 목을

졸라 죽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여덟.

 

정여립의 진보 ( 선조 )

 

정여립이란 인물을 처음 알았다면 일 년 가량 초등학생 역사수업을

했던 난 부끄러워야 하는 일인가?

역시 선조 멍충이가 나라를 제집 밥먹듯 먹어 치우고 있을 때

선조와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따지곤 했다는

정여립은 기축옥사의 주인공이다.

스승을 배신하는 것이 인륜을 어기는 강상죄로 간주됐던 시절에

이이가 죽자 그를 배신하고 이발과 금세 친하더니 실제의 그를 알고 생전에 절교했다고

당당히 화살을 되받는 그가 선조멍청이를 모실 이유가 없었는지

여타저타한 일들 끝에 대동계를 만들어 왕위세습을 부인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자들을 모아 호남에서 엄청난 세력을 키우며

혁명을 준비하던 중 한 사람의 배신으로 그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고 하지만 

정여립이 도주 후 자결한 뒤에도 두려움을 없애려는 듯

일가나 연루된 자들을 속출하여 없애는 일을 쥐 잡는 듯했다니

그 위력이나 명성이 말로 못할 만큼 엄청났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글의 말미에서 정여립이 죽지 않았다면 임진왜란도 없었을 것이란

소릴 하는데 글쎄 그건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이고,

정여립 당시 너무 호남을 들쑤셔서 뒤로 호남에서 인재가 나오기

힘들었다는 얘기와 함께 온갖 호남설이 나오는데 뭐 그것도

저자가 호남을 너무 좋아하거나 호남인이라 그렇지 않을까 의심이.

 

황진이의 진보 ( 중종 : 명확하지는 않음 )

 

요즘 여자들처럼 사랑하고 자유롭게 살았으며 그림과 글, 노래에

뛰어나고 엄청난 명기로 당대 유명인 중 냉철한 이성으로 여욕에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소문 난 남자는 죄다 찾아 다니며 홀려 원 스트라이크로 자빠뜨렸다는 그녀.

 

당시엔 남자의 몸으로도 산행을 하기 힘들었다는데

금강산 깊숙한 곳 어디도 가지 않은 곳 없이 죄다 유람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자연을 좋아해 늘 자연과 함께 하고 싶어 했던 그녀는

30년 간의 계약 연애를 통해 결혼생활 비슷한 것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끝'하고 돌아섰다는 그녀가,

그녀의 그 맺음이 어쩐지 부럽기만 했다.

 

허균의 진보 ( 선조부터 광해군까지)

 

광해군의 스승이었다는 그는 파직, 등용을 반복하며 평생을

위태위태하게 살았으나 별로 그에 개의치 않는 신기한(?)태도를 보였다고.

여색을 좋아하고 삶을 너무 꾸밈 없이 살아 사림들의 미움을 사

결국 광해군의 두터운 신임에도 불구하고 허씨조선의

새로운 개혁이란 엄청난 반역의 죄와 함께 종말을 맞는다.

 

허균이 종사관이 되어 원접사 유근을 따라 의주에 도착했을 때 영위사 신흠이 날마다 같이 만났다.

허균은 옛 책들을 외우고 있었고 유교, 도교, 불교 등에 관련된 책들에 대해서도 막히는 바가

없어 아무도 당할 사람이 없었다. 신흠이 물러나와 탄식하기를

" 이자는 사람이 아니다. 그  모습도 범상치 않으니 분명 여우나 삵괭이, 뱀이나 쥐 같은 짐승의

정령일 것이다."라고 했다.

 

꼭 뭐 위인전에 삽화를 겸비해 나오는 글귀 같아 그냥 한 번 적어 봤다.

사실 허균이 이정도로 대단한 사람인 줄은 몰랐으니까. 

그는 지금의 내 표현으로 지적인 것을 통달해 천박의 경지에 이른 사람으로 보인다.

괜히 멋부리지 않고 '보지는 보지다'라고 진실을 어떤 거리낌 없이 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이중환의 진보 ( 숙종부터 영조까지 )

 

택리지로만 알려져 있는데 역시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를

택리지 하나로 진보에 쏘옥 넣어 주셨다.

국사시간에 칠판에 갈기듯 배웠던 사실이 마음에 닿기까지는

이렇게나 긴 시간이 필요했나보다.

조만간 택리지 구입해서 꼭 읽어봐야지.

 

서른일곱부터 예순일곱까지 30년의 긴 유배 기간 동안

전국을 돌며 백성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저 논 것이 아니라

깨닫고 정리해서 그것을 택리지로 완성.

전국을 팔도로 나눠 역사적 배경을 살피고 지리와 형세, 인물

전해오는 이야기를 서술하며 각 지역의 풍속과 명승지 토지의

비혹도와 토산물, 물자의 유통과 국제무역, 수리(水利)와 사람이

살 만한 곳, 거주지와 피난처, 군사요충지 등을 다루었단다.

 

택리지의 발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살 만한 곳들을 가리려 했으나 살 만한 곳이 없음을

한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활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문자 밖에서 참 뜻을 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는 곧 이 땅을 그렇게 돌아다녀 보았으나 진실로 살 만한 땅은

찾지 못했으며 결국 살 만한 땅은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란 저자의 말이 강하게 뇌리에.

 

박지원의 진보 ( 정조 )

 

40이 되도록 줄을 못타 가난뱅이 선비로 살다가 우연한 계기로

청에 가서 열하일기를 써 유명세와 부를 얻으신 지원님.

고미숙과 장정일의 책을 읽고 그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해

어디서건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난 죽음의 게으름으로 그동안

그의 글을 골라 읽을 생각을 못했다.

꼭 이 책을 접으면 택리지와 그의 글들을 찾아 구입해야겠다.

그가 조선의 진보주의자임은 굳이 강조할 필요 없는 사실이다.

 

다음은 박지원의 소단적치인.

글을 잘 쓰는 사람이면 전쟁하는 법을 알 것이다.

비유하자면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이다. 제목이란 적국이고,

고사의 인용이란 전장에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글자를 묶어서

구절을 만들고, 구절을 모아서 장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이루어

행군하는 것과 같다. 운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다.

앞뒤의 조응이란 봉화를 올리는 것이고,

비유란 기병이 기습 공격을 하는 것과 같다.

 

정약용의 진보 ( 정조 )

 

얼마 전 마무리 된 이산에서 그를 너무 괴짜로만 표현하려고 해

짜증이 다 났었는데 이것으로써 다시 새길 수 있을까.

 

정조의 총애를 받아 평생을 관리로 지냈을 것이란 생각이 자연히 들겠지만

실제 그가 관리로 지낸 시기는 겨우 1789년부터 1799년 정도의 약 십년이다.

나머진 대부분이 유배생활인데 유교 중심의 조선에서 천주교를 대놓고 믿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거기다 당시는 신유사옥으로 300이 넘는 사람을 죽이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릴 버젓이 해내는 시기였다.

 

다음은 유배지에서의 편지.

 

폐족의 자제로서 학문마저 게을리 한다면 장차 무었이 되겠느냐.

과거를 볼 수 없는 처지가 됐지만 이는 오히려 참으로 독서할 기회를 얻었다 할 것이다.

너희들이 만일 독서하지 않는다면 내 책들은 쓸모가 없어질 것이고,

내 글이 전해지지 못한다면 후세 사람들이 다만 사헌부의 탄핵문과 재판 기록만으로

나를 평가할 것이다. 

 

최제우의 진보 ( 고종, 실제로는 대원군  )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를 굉장히 신성한 무엇으로 그렸다.

나라의 시조에게도 신성한 신화가 필요한데 조선 말기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동학농민혁명의 뿌리인 그를 표현하기 위해선

아마도 신화의 어머니 정도는 필요했으리라 본다.

 

동학의 내용은 천주교와 거의 같지만 무속적 접신이 있다는 것이

조금 다르고 그는 주술적 효험이 없음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한다.

동학은 전래의 유교, 불교, 도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동학의 일부분이라 했으며 유교의 윤리와 불교의 각성,

도교의 기를 기르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품성이자 동학에 포용되는 것이라고,

이는 곧 동학 아래 또는 속에 유불선이 있다 이거다.

 

다음은 최제우 처형의 일화.

최제우는 1864년 3월 10일 대구 장대에서 유교의 가르침을 어지럽히고

나라의 정치를 문란케 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됐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최제우의 목을 아무리 칼로 내리쳐도 목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다.

경상감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자 최제우가 이렇게 말했다.

" 나에게 맑은 물을 한 그릇 가져오라."

그렇게 최제우가 청수淸水를 마신 다음에야 순조롭게 형이 집행됐다.

이 때문에 천도교에서는 지금까지도 청수가 교주의 맑은 피를 의미하고 있다. 

그 때 최제우의 나이 41세였으니 깨달음을 얻고 동학을 전파한 지 햇수로 불과 4년만이었다.

 

김개남의 진보 ( 고종 )

 

동학 2대 교주였던 최시형 대의 사람인데 전봉준, 손화중과 더불어3대 지도자로 불리는

인물임에도 전봉준은 많이 알려져 있는 한편 농민군 최정예부대 김개남은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고.

저자는 그 이유를 국문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온전히 남아 있는 전봉준과 달리 즉결처형 됐고,

한 사람을 영웅화 하는 시대적 풍조로 인해 전봉준의 그늘에 가린 탓도 있고,

김개남을 급진주의자 또는 강경파로만 몰아붙였기 때문이라 말하고 있다.

 

이상 사회를 건설한다는 의지로 개남開南으로 이름까지 고친 그를 진보의 대열에 넣은 것과

저자가 앞에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고 싶어 했던 정여립과 허균을  소개한 것으로 보아

저자는 썩은 세상을 뒤집어 엎는 인물에게 점수를 좀 많이 주는 편인 듯싶다.

그게 바로 책의 뒤에 말한 죽음 앞에서도 똑바로 살아라 인가.

 

김옥균의 진보 ( 고종 )

 

조선 보수주의 입장에서 그는 일본에 조선을 팔아 먹은 개아들놈에 불과하고

진보주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도움을 받아 자주개혁을 하려 했다가 당한 불쌍한 사람에 속할 것.

어차피 근대화 된 나라를 따라 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을 진대, 그게 청에 붙고

일본에 붙는다 해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개혁'보다는 ' 자주'가 더 중요한 단어니 말이다.

일제 강점기 때문에 더 큰 욕을 먹을 수밖에 없던 비운의 정치 혁명가들의 삼일은

그래서 더 의미가 깊다.

도대체 순수한 의도에서 도움을 주는 이나 나라는 없는 것인가?

 

다음은 저자가 생각하는 갑신정변.

 

갑신정변의 의미: 지식인층, 즉 위로부터 시작된 최초의 개혁운동이었지만

근대 한국사에 한 획을 그은 민중운동.

 

갑신정변이 높게 평가 받는 이유

1. 한민족이 새로운 개혁을 단행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체계적이고 열정적으로

봉건 체제를 청산하고 자주적 근대 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시도.

2. 한국 근대사에서 개화 운동의 위상을 정립한 사건, 갑신정변이 지향했던 자주적인 근대국가,

시민 사회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경제, 근대적 문화와 자주적 국방 등은

이후 모든 개화 운동과 민족 운동들이 추구한 바.

3. 반침략 독립운동에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냈다.

갑신정변은 당시 중국의 조선 속국화 정책에 대한 과감한 도전.

4. 근대 민족주의 운동의 발전에 하나의 이정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근대사에서 이후의 모든 민족주의 운동은 갑신정변을 계승, 비판하면서 이루어짐.

 

강일순의 진보 ( 고종 )

 

동학농민혁명에 진하게 가담하지 않았지만 동학을 제대로 이해했고

실패를 미리 예견했다는 분으로 저자의 마지막 진보 내용을 채워주기에 적절한 인물 같다,

역시 새로운 사상과 세상을 부르짖고 도인들을 만나며 민중을 억압 속에서 구출하고 싶어

연구하는.

끝까지 잘 읽고도 작가에게 짜증이 나버리고 말았다ㅡㅡ;

어쩐지 진보에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듯해서, 조선 역사 속에서 진보란 주제에 끼워 맞출 인물을

찾자면 더 많이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새로운 세상을 열고 싶던 진보들은 그냥 같이 한 인물처럼

엮어서 구별했으면 좋았을 텐데, 흠, 만날 쓰지도 못하면서 주둥일 놀리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쉽다고.

 

다음은 이런 인물을 진보에 넣으시는 건 좀 심하단 생각에.

" 내가 서천 서역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와서 삼계三界를 둘러보고 천하에 돌아다니다

이 곳 동쪽 땅 모악산 금산사 미륵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에게

천명과 신교神敎를 내려 큰 도를 세우게 했다.

그런데 수운이 유교의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 진정한 법을 펼치고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세우며 도의 참 빛을 열지 못했다.

하여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스스로 세상에 내려왔노라.....

나는 삼계 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의 선경을 열어

고해에 빠진 중생을 건지려 하노라."

 

이런 강일순이 주장한 것 중엔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 시속에 남조선 사람이라 하나니 이는 '남은 조선 사람'을 이름이다.

동서 각 교파에 빼앗기고 남은 못난 사람에게 길운이 있다는 말이니라...

선량하다보니 괄시받고 소외되고 뿌리 뽑히고 수탈당하고

남은 절대 다수의 민중 속으로부터 남조선 사상이 나타날 것이다."

아마도 이 사람을 증산교의 사이비 교주가 아니라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예언가로 보고 싶은 게 작가의 솔직한 마음이 아닐까.

 

" 하늘이 일을 꾸미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은 인간이다"라는

사상이 당시로써 앞선 생각임은 사실이지만,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나고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조선 민중들에게 꿈을 진하게 심어 주었고 한 종교의 교조이자 사상가로서

오늘날에도 일부(무시할 수 없는 숫자)에게 영향을 준다지만,

이상하게 그것을 종교로 승화하려는 것은 내게 매우 고까운 일로만 온다.

어쩌면 작가가 증산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아, 위험하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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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변화 - 상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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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변화에 대해 (다른 단어들을 찾아 조합해 보고 싶었지만 찾지 못했다, 아니 내가 게을렀다.)

여자 측 화자와 남자 측 화자가 나타나 당시의 상황과 심정을 친구에게 말하듯 쓰여졌다.

친구라는 존재는 그저 쓰기 위해 필요할 뿐 구체적이지 않고,

편지체를 벗어나기 위한 방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장소나 상대방에 대한 묘사가 완전히 빠져 있다는 뜻이다.

 

남편 입장에서의 글이 잘 읽히지 않는다.

명확하지 못하고 자꾸 명확함 주위를 뱅뱅 돈다는 느낌이 든달까?

아무튼 상권의 느낌은 그랬다.

계속되는 남편 이야기가 있는 하권을 기대해 보자.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식스센스 정도의 반전이라고나 할까.

그것도 독자에게 속하는 반전일뿐 책 속 인물에게는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사실에 불과한 것이 반전으로 느껴질 수 있을 줄이야.

 

3부에서 이어지는 유디트(남편이 두 번째로 결혼한 하녀)의 부분,

특히 자신이 겪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침대에서, 드럼을 친다는 애인에게 들려주는데

아주 지루하기 짝이없다.

남은 분량을 꽤나 자주 확인하게 만드는 책은 드물었는데 아주 슬픈 일이다,

또한 책의 끝에서 그 부분을 극찬하는데

쓰여진 해가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닌데 이 정도의 글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지들끼리의 잔치는 역겹기까지 했다.

 

책이 거의 끝날 무렵 페터의 생의 증인

(작가는 인간에게는 꼭 단 한 명 자신을 모두 이해하는 상대가 있는데 그것을 증인이라 불렀다),

작가와 유디트가 함께 지낸 시절의 얘기가 있는데,

지갑 없이 돈다발을 안주머니에 넣고 계산할 때는 돈다발을 몽땅 꺼내 값을 치르는

그가 꼭 신문지에 현금을 둘둘 말아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한꺼번에 꺼내

술값을 치른다는 장정일과 닮은 것으로 보아 어쩌면 장정일이 작가의 캐릭터를 좇은 게

아닐까란 신기한 생각을 하게 했다.

 

다음은 유디트의 이야기.

여자들은 노년에 접어들면 마음의 중심을 잃고서 호르몬제를 삼키고

두껍게 화장을 하고 젊은 남자들을 낚으려 드는데,

그와는 반대로 나이 들어가면서 미소를 머금는 남자들이 있어.

미소를 지으며 늙어가는 남자가 여자들한테는 원기 왕성한 남자보다 더 위험할 수 있어.

영원히 변함없으면서도 영원히 긴장감 넘치는 남자와 여자의 싸움에서 그런 경우에는

남자가 더 이상 욕망에 휘몰리지 않기 때문에 더 강자일 수밖에 없지.

그의 육신이 좌지우지하는 게 아니라 그가 자신의 육신을 마음대로 다루거든.

짐승들이 사냥꾼을 감지하듯이, 여자들은 그걸 느끼기 마련이야.

우리 여자들은 남자들을 고통에 시달리게 할 수 있는 동안에만 지배할 수 있어.

우리가 남자들에게 달콤한 빵과 채찍을 내밀었다가 다시 거두어들여서 남자들이 울부짖으며

편지를 쓰고 협박을 하는 동안에만, 우리는 마음 편하게 동네를 산책할 수 있어.

우리에게 아직 힘이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남자들이 더 강자야.

하긴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아.

나이를 먹는 것과 노년은 별개의 일이야.

결국 남자들이 어린아이처럼 되어서 우리 여자들을 다시  필요로 하는 시기,

노년이 오기 마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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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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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500쪽수가 넘는 두터운 책.
이런 책은 보기만 해도 너무 부담스러워서, 가볍게 들기가 무섭다,

특히나 요즘처럼 지하철서 말고는 딱히 읽을 시간이 없을 시엔 더더욱.
이럴 경우에 책을 두권으로 나누어서 출판하면 더 좋다는 것을,
출판사는 알아야 한다, 이건 필시 내 얕은 생각이지만 ㅡㅡ;

은영이네 집에 갔다가 책장에서 발견했던 책.
유명 작가의 유명 작품인 것은 이미 알았지만,
책 주문시에 딱히 생각나지 않는 그런 작품 중 하나였는데,
은영인 단순히 고양이가 제목에 쓰여서 샀다고 했다.

지적인 척 게으른 선생님 댁 아는 것 많은 고양이.
그는 의사소통을 주고 받는 대상이 아닌, 단순한 관찰자로서만 등장한다.

학교 선생질을 그냥 저냥 큰 뜻 없이 하는 선생님 댁에는 갖가지 성격의 지성 덩어리들,

그것도 남자들만이 오간다.

그들의 대화는 주로 철학, 과학, 문학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1905년에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여느 훌륭한 문학 작품이 그런 것처럼,
현대인들이 읽어도 지나치게 공감할만큼의 이야깃 거리들이 주로 등장하고,

당시에 말한 미래들이 이미 우리의 현재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째 조금은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뭐,,예지 예언, 이런 차원이라기 보다는 훌륭한 작가에 의해 예상될 수 있는

미래의 사회"란 것이 지금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현재..현재..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기만 하다.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 그들의 대화중에서

미래의 사회에선 죽음을 개인이 선택한다는 말이 나오고,
"자살도 못하는 바보 같은 인간" ? 정확친 않지만 이런 뉘앙스의 말이 나온다.
이제 인간은 삶도 죽음도 선택한다.
그가 점친 미래는 맞아 떨어지는가?
그들의 모습은 현실적 사회에선 아마도 겨우 10%도 안되는 그런 모습이겠지,

심한 비약일지 몰라도 우리가 보며 아,,저것은 낯설고 멋진 모습이야~라고 말하던

공상 과학영화의 그런 모습, 또는 독립을 논하던

우리 나라 옛 독립투사들의 모임 속에서의 진지한 토론 모습 정도?

그렇게나 지적인 고양이 그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물에 빠져 죽음을 맞이한다.
어이없는 죽음이지만 삶을 받아들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그 부자연스럼을 천천히 천천히 맞이하는 것이다.

그가 죽는 마지막 장면은 갖고 싶다.
책속에서,,의 게시판에 남겨 놓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슬프게도, 이 리뷰를 싸이 뭐에서 퍼왔는데 그때는 있었을 '책속에서'란 게시판이 지금은 없다.  

성격상 조만간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더 읽고 해당 내용이

현재에도 그때처럼 마음에 든다면 옮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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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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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 윌리엄 셰익스피어 / 문학동네 / 8000

 

곤잘로가 말하는 세상, 책 50쪽.

 

' 그 공화국에서 저는 만사를 보통과는 정반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어떤 종류위 상거래도 저는 허용하지 않고,관리도 두지 않고,

글을 가르치지지도 않고, 빈부도 고용도 전혀 용납지 않겠습니다.

계약, 상속, 경계, 토지 경계표, 경작지, 포도원은 두지 않겠습니다.

금속, 곡식, 술, 혹은 기름을 일절 사용하지않을 것이며,

직업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남자들은 모두 무위도식하며, 여자들도 역시 그렇게 하는 동시에

순진하게 만들 것이며, 통치권도 갖지 않겠습니다.'

 

작가가 평소 생각했던 이상적인 세상에 대해 곤잘로의 입을 빌어서

전한 게 아닐까!

 

햄릿을 읽었을 때 그의 표현법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었는데

역시 두 번 보는 비슷한 계열의 표현은 처음보다는 그저 그런 듯.

새로운 문체, 새로운 표현법! 어렵다.

 

캘리밴의 대사,,주인님, 안녕하세요?

당신의 구두를 핥아드릴까요?,,,ㅋㅋㅋ 보자마자 한다는 말이

아주 비굴하고 종다워 좋구나.

또한 푸로스퍼로가 습관처럼 지껄이는 말,

'혀를 머릿속에 잘 간수하게'

옳은 말이다.

나와서 좋을 게 없는 혀는 그냥 머릿속에 간수하면 될 일인데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그게 참으로 어렵다.

 

복수와 피가 그득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용서와 미덕을 말하는 푸로스퍼로가 나오다니,

아직은 결론을 보지 못했으니 모를 일이지만,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 작품' 이기 때문일까?

'자비'라는 이름으로 또는 '마술'로 모든 불화를 화해시킨 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푸로스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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