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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른 차일드
키스 도나휴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스톨른 차일드(the Stolen Child), 바꿔친 아이.
제목에서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끼면서도,
표지에 그려진 나무기둥 가운데 서있는 아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책을 들었다.
나무의 위에는 보일 듯 말 듯 요정이 그려져 있는데
이제껏 살아오면서 요정이란 fairy tale에 나오는 것처럼
순수하고 맑은 이미지의 정령이라고 믿어왔던
내 생각을 깨뜨려 주었다.
스스로를 파에리라고 부르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산도깨비들.
그들은 자신의 삶과 바꿔치기 할 7~8세 정도의
아이들을 염탐하며 다닌다. 마땅한 아이를 찾게 되면
1여년의 시간동안 스토킹을 해서 그 아이의 말투, 목소리,
그리고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익힌 후, 마침내 적절한 때를 맞춰
어떠한 사건을 통해 그 아이와 가장 위의 서열에 있던
파에리가 그 자리를 바꾸게 된다.
물론 뒤바뀔 아이의 의사는 전혀 존중되지 않은 채.
간혹 아이가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부모가 알아차리게 되면
파에리는 곤경에 처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될 수도 있지만
생김새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파에리들은 대부분 들키지 않고 바뀐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간다.
스톨른 차일드는 요정들이 아이를 바꿔치는 유럽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헨리 데이와 애니 데이.
헨리의 삶을 살게 된 파에리 역시 1세기 전에 삶을 바꿔치기 당한
가련한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세기 후 헨리는 애니 데이라는
이름의 파에리로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
삶은 뒤바뀌었지만 그들의 얽힌 운명처럼 각 장마다 헨리와 애니의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 안에서 그들이 찾고자 하는 자신의 정체성, 자아.
각자의 삶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
잃어버린 기억의 끈을 잡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처음에 책장을 넘기며 느꼈던 격한 감정은 마지막에 연민으로 바뀌었다.
음악을 통해 낯선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한 돌파구를 찾은 새로운 헨리,
잊혀져가는 자신과 가족의 모습을 찾기 위해 애쓰는 새로운 애니.
그들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은 음악과 문학 외에 사랑과 우정이었다.
키스 도나휴의 데뷔작이라는 것과 실로 오랜만에 소설을 읽게 된 사실이
꽤 신나는 일이었지만 그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분명 문학적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이 소설은 굉장히 뛰어나고 놀랍다.
그러나 아이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는 고약한 상상이다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그만큼 세밀하고 생생한 표현에 심장이 죄여오는 듯 떨리기도 했다.
연유는 사실 어둠 속 너머의 존재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다 큰 어른이 무슨 소리냐 웃어버릴지도 모르겠지만
난 천사와 악마가 존재하는 것도, 숲 속에 요정이 있다는 것도,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기 먼 어딘가에서
산타가 썰매를 타고 날아다닌다는 것도 믿는다. 순진한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가 적잖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만...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문득 든 생각은
혹시나 아직까지 남아있는 파에리들이 자신의 삶과 바꿔치기 할
아이를 찾아다니는 것 아닌가였다.
그나마 안심할 수 있는 사실은 애니 데이가 떠날 무렵
남은 파에리들이 땅속의 아이들로 남는 것에 만족했다는 것과
바꿔치기할 아이들은 아무 아이가 아닌, 짧은 인생살이에서
어려움을 겪었거나 파에리 세계의 눈물 나는 괴로움과 맞아 떨어지는
소수의 아이들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향해 행복을 증명해 보이는 내 아이들의 환한 미소.
소설을 읽는 내내 나 또한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가지는 중
자꾸만 헨리 엄마의 마지막 한 마디가 귓전을 맴돈다.
나는 줄곧 알고 있었단다, 헨리.
자신의 진짜 아들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걸까.
뒤바뀐 아이를 아들로 받아들였어야 하는 엄마의 심정은.
엄마만이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숲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한줄기가 스산하고 애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