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 식물 이야기
장 앙리 파브르 지음, 추둘란 옮김, 이제호 그림 / 사계절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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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파브르 곤충기를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집에는 책이 많지 않았지만 친척 댁에 놀러갔을 때 책장에 꽂혀 있던
파브르 곤충기를 발견하고는 눈이 휘둥그레 커져서는 망설임 없이 두 손에 들었으니까.
정확히 몇 권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꽤 여러 권으로 구성되어 있어
(재미있는 부분만 발췌출간 하기도 했다고 하니 출판사마다 달랐을 것이다.)
결국은 집에 파브르 곤충기를 빌려와 읽고 돌려주었던 생각이 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사실 곤충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구더기가 나오는 부분에선 비위가 상해 욱하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매우 싫어한
거미가 나올 때에는 부들부들 떨면서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충기를 내려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정말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파브르 곤충기만큼 재미있고 빠져들게 한 과학책은 본 기억이 없다.

장 앙리 파브르. 이 이름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프랑스 남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학으로 공부를 해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독학으로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의 분야에서 학사자격과 박사 학위를 받은 대단한 사람.
30여년에 걸쳐 곤충과 식물, 동물을 연구한 학자로 그가 쓴 파브르 곤충기가
꽤 많은 사랑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에선 곤충기로 유명했던 파브르가 식물이야기를 썼단다.
파브르 식물기? 생소하지만 어찌 보면 그의 이력으로는 당연한 것. 
이 책이 얼마나 반갑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꼭, 반드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완벽한 인테리어 전문가 혹은 디자이너, 식물
학교를 다니면서 생물학 시간에 식물의 종류와 구조 등에 대해 배웠다.
물관이니 관다발이니, 외떡잎식물이니 쌍떡잎식물이니 하는 것 말이다.
파브르는 식물을 일컬어 대단한 인테리어 전문가라고 했다.
별거 아닌 듯 보이는 식물이지만 작은 나무의 새끼 손가락만한 어린 줄기는
큰 나무가 되기 위해 그 안에서 부지런히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 중이라는 것.
사람의 눈에는 봄이 오면 싹이 트고 가지가 자라고 나무의 키가 커지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무는 그 과정을 위해 수백 년, 수천 년을 일한다.
새로운 생명을 틔우기 위해 가지마다 눈을 달고, 그 눈이 겨울을 잘 버티게 하기 위해
겹겹이 보호막을 씌우며, 그 작은 눈 안에 새로 날 잎사귀며 꽃봉오리 등을
차곡차곡 접어 넣은 솜씨를 보면 파브르의 말처럼 식물을 정말이지 완벽한
인테리어 전문가 혹은 디자이너가 맞다. 식물을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낀다.

식물의 세계에서 사람의 인생살이를 엿보다
이 책은 분명 과학책이고 식물도감이다. 그런데 책에서 인생이 보이고 철학이 보인다.
팍팍하고 힘든 일상을 벗어나 푸른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은 위안과
안식을 얻지만 사실 또 돌아서면 잊고 마는 것이 자연이다.
안 그래도 바쁜 세상에 풀이나 나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파브르는 식물의 세계에서 사람들의 인생살이를 발견했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무를 보며 포기하지 않는 인생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사실과, 돌려나기나 어긋나기로 수많은 잎이 공평하게
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점은 인간사회에서의 배려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사실 때로는 쑥 뽑아 버릴 만큼 하찮게 여기는 풀 한 포기일지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식물은 위대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책을 읽는 내내 파브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곤충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파브르는 곤충은 물론 동물, 식물을 모두 아끼고 사랑한 자연학자이다.
그래서 이 책도 탄생한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인자하고 친절한 선생님처럼 조근 조근 식물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내가 읽어도 푹 빠져 버릴 만큼 절대 지루하지 않다.
곤충기만 기억했던 내 모습이 안타깝고, 파브르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끝없는 관찰을 통해 이런 큰 선물을 안겨준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내용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 책을 더욱 맛깔스럽게 한 요소가 있다면 유기농 벼농사로
자연과 함께 하고 있는 추둘란 작가가 풀어쓴 것과, 세밀화로 유명한 이제호 화가가
일러스트를 담당했다는 점이다. 중간 중간 실제 사진도 있지만 정감 느껴지는 
세밀화가 책보는 맛을 더한다. 각 장마다 커다란 잎맥이 초록빛으로 빛나는 걸 보면 
마음까지 싱그럽다. 정말 마음에 쏙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파브르가 살았던 연대가 연대이니만큼 혹여 있는 오류는 수정하고 한국 실정에 맞게
식물을 대체한 것도 사려 깊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는 어떤 식물이었는지 좀 궁금하기는 하다.)

이전부터 아이들에게 나뭇잎 하나라도 함부로 따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식물을 이전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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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2-19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예인들한테 자주 하는 소리 있죠. "실물이 훨씬 낫네~" 또는 그 반대.
이 책은 정말 실물이 백배 천배 이뿌고 사랑스러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물은 제가 직접 봤고, 내용은 오후햇살의바흐님이 리뷰로 확인해주셨고, 이제 남은 건 주문하는 일 뿐이군요. ㅎㅎ

비움 2011-02-19 17:15   좋아요 0 | URL
^^ 개인적으로 파브르 곤충기를 참 좋아하는데 식물기 역시
절대 실망시키지 않더라구요. 소장가치 충분합니다.
저도 고이 간직했다가 아이들이 더 크면 보여주려고 해요.
곤충기도 다시 보고픈데 어린이를 위한 책이 대부분이네요.
사계절에서 곤충기를 풀세트로 만들어준다면 그것도 마련하려구요.
메리포핀스님 감사합니다. 즐겁고 축복 가득한 주말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