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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뒤에 숨겨진 사랑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6년 11월
평점 :
루 살로메. 자신이 정신분석학자이자 작가로 활동하면서 당대의 지성들과 사랑을 나눈 여성이다. 그중에서도 니체, 릴케, 프로이트와 사랑이 유명하다. 니체는 그녀와 헤어지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집필했고, 릴케는 르네라는 이름을 라이너로 바꿨다. 프로이트와는 오랜 교제를 했고, 당시엔 그녀와 만나면 대작을 남긴다는 풍문이 돌 정도였다고 한다.
루 살로메 일화를 접한 이후로 예술가, 그들이 남긴 명작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검색하기도 했다. 신작 <명작 뒤에 숨겨진 사랑>이 눈에 띄었다. 책은 저자 이동연 씨가 KBS 라디오 프로그램 <그곳에 사랑이 있었네>를 100회 넘게 진행하면서 다룬 일화를 선별하여 엮었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콥스키, 쉰베르크,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루벤스, 피카소, 살럿 브론테 자매, 생텍쥐베리, 헤밍웨이. 불멸의 이름을 남긴 예술가들. 그들이 남긴 명작과 그 속에 숨겨진 사랑을 담았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6촌 누나 바르바라를 사랑해서 당대의 음악 대가 북스테후데가 제안한 혼사를 마다한다. 바흐는 사랑을 위해서 출세 제의를 뿌리쳤지만, 바르바라는 음악밖에 모르는 바흐를 대신에 내조에 힘썼다. 일곱 자녀를 낳았으며 장남과 차남은 아버지 명성을 이어 뛰어난 음악가가 되었다.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 첫사랑 부인이 작고한 뒤, 그를 동경하던 막달레나와 재혼을 했다. 바흐는 처복이 있었다. 평생 금슬이 좋았던 탓에 슬하에 20명의 자녀를 가졌다. "흥부처럼 곤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막달레나는 불평 한마디 없었고, 부부는 평생 한 번도 다투지 않고 지냈다." (p.45)
심지어 전처의 첫째 딸 카타리나 도로테아와 막달레나는 7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는데, 둘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가족 음악회를 열 정도로 자녀들이 음악적 재능에 탁월했다. 당시엔 유럽엔 커피 열풍이 불었고, 의사들이 여성에게 불임의 원인이 된다고 금지했고 바흐도 커피를 마시는 딸들을 나무랐지만, 결국 딸바보 바흐는 커피 애호가 딸들을 위해서 "커피 칸타타"로 유명한 <칸타타 BWV 211>을 작곡했다.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클라비아 소곡집>을 남기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에는 현모양처들과 화목한 가정의 뒷받침이 있었다.
베토벤은 작품 속 러브 스토리로 유명하다. 줄리에타를 위해 <월광>을, 절친 글라인텐슈타인 남작의 소개로 만난 테레제를 위해 <엘리제를 위하여>를 작곡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그보다 한 살 위인 나폴레옹에게 <영웅>을 헌정하려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청각이 마비되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녀를 흠모했던 여성들은 나름 모성애를 주거나, 치유자 역할로 그를 위로했고, 베토벤은 사랑을 동력으로 명작을 완성했다.
다빈치. 슬픈 사랑이다. 사춘기가 되자 자신을 살뜰히 보살피던 20살 연상의 하녀 카테리나에게 연정을 품는다. 할아버지 댁에서 조부모의 애정을 받았지만, 어머니가 주는 모성이 결핍되었던 다빈치에게 카테리나는 모성애를 찾을 수 있는 안식처였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할머니는 둘 사이를 엄하게 갈라놓았고,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스무 살이 된 다빈치는 카테리나의 남편을 만나서 비밀을 듣는다. 바로 그녀가 다빈치의 생모였던 것이다. 그리스 비극인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가 왕비이자 아내가 바로 자신의 생모임을 알고 두 눈을 찔렀듯, 다빈치에겐 출생의 비밀과 연관된 첫사랑의 아픔이었다. 그 후로 다빈치는 동성애로 인하여 두 번이나 곤욕을 치른다. 당시엔 동성애는 끔찍한 죄였다. 그런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생전에 경쟁의식을 불태운 일. 미켈란젤로가 교황과 다투고 <천지창조>에 신성부재적인 장면을 집어넣은 일화. 역사적 사실이면서도 호사가의 입담을 듣는 듯하다.
그뿐 아니라 다양한 염분을 뿌리고 다녔던 피카소와 생텍쥐베리. 피카소는 여성들과 교제하며 영감을 얻고 심지어 화풍이 바뀌기도 하였다. <명작 뒤에 숨겨진 사랑>. 이미 인류에게 고귀한 유산이 된 명작 속에 숨겨진 러브 스토리와 흥미로운 일화들이 펼쳐진다. 명작을 남긴 대가들은 역사에 불후의 명성을 남겼다. 그러나 그 명성 뒤에는 사랑을 나누고 영감을 준 연인이 있었다. 작품을 감상하고 그 값어치를 제대로 매기기 위해선 명작 뒤에 숨겨진 사랑과 연인들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작품 속 직접적인 모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녹아 들었던 연인들. 명작 속에 숨겨진 사랑과 영감을 발견한다면, 살아 있는 작품으로 감상하게 되지 않을까. 작품이 다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