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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허벅지 ㅣ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 여자를 알게 되었을 때 가장 깜짝 놀랐던 게 뭐예요? 가르쳐 주세요."
나는 졸라 댔다.
"그럽시다."
기타노 씨는 장확성을 기하기 위해 다시 심각하게 고심한 뒤 대답했다.
"허벅지였습니다."
"허벅지?"
"아, 여자의 허벅지가 이렇게 굵은 것이로구나. 처음에 깜짝 노라랐습니다. 굵고 하얬어요."
"그건 그러니까,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비만인 여자를 만나셨다는?"
"아니, 날씬한 아가씨였는데 밖에서 만나 보면 바로 옆에서 봐도 잘 모릅니다. 다리를 들어 올렸을 때 정면에서 봤는데 어찌나 굵고 하얗던지......"
나는 그 후 열심히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상상해도 어떤 그림인지 도무지 명확하지가 않았다. 한편 내가 남성의 몸을 처음 보고 놀랐던 건
"그...... 흔들리는 것이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여자 몸에는 흔들리는 부분이 없잖아요."
"이런 바보, 그게 숙녀가 할 말입니까?"
결국 옛날 사람 기타노 씨한테 혼나고 말았다.
서점에 들렀다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일부를 옮겼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야한 것을 무척 좋아한다.
어쩌면 인생은 끈임 없이 야한 것을 찾아 헤매는 과정일지 모른다.
내가 평생 찾아낸 야한 것들은, 대부분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이유를 알았다.
야한 것들은 대부분 끈적하다.
끈적함을 사랑할 수 있을까.
끈적한 것들은 한순간 해갈은 되어도 사랑을 주지 않았다.
내가 평생 찾아 헤맨 '야함'은 사랑할 만한 '야함'이었지만,
너무 귀해서 내 눈에 띄지 않았다.
다나베 세이코 씨가 40대에(1970년대)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중년의 작가가 중년의 남자 이웃(가모카 아저씨)과 펼치는,
야하지만 사랑스러운, 만담으로 읽었다.
너무 좋아서 아끼며 읽었다.
발췌한 부분은 이 책의 성격을 가늠하기에 맞춤할 듯 싶어서 골랐다.
야하면서 뽀송뽀송하다.
사랑스럽다.
행운인 것이, '사랑스러운 야함'을 만났다.
슬픈 것이, 내겐 그것이 부족했다.
남수단의 저항 시인 살람 잉게잉게의 '그때 그 방향' 중 일부를 옮긴다.
"그리움이 고될 때
보고싶다
내가 깨문 그때 그 허벅지
깜짝 놀라던 그때 그 사람
문득 회가 먹고 싶어 전화했는데
안 받네"
허벅지가 조국을 상징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렇게 안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