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1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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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쓰다 신조의 세계는 참으로 잔인합니다. 안전하다 여겼던 것들을 전혀 그렇지 않은 것들로 바꾸어 놓으니까요. 심지어 믿을 수 있었던 것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사소한 것들에게 불안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니 그의 소설들을 피하는 것이 상책일 텐데 마음 한구석의 작은 악마가 책을 마저 끝내라고 부추깁니다.


<기관 호러 작가가 사는 집>은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입니다. 미쓰다 신조의 데뷔작인 이 소설은 꼭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신간들을 접하다 보니 뒤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어차피 읽을 책이라면 일찍 읽어버릴걸. 깨끗하게 소독을 마치고 빌려온 이 책은 저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전에 읽던 누군가가 어떤 알레르겐을 - 자신도 모르는 새에 - 남겨놓은 모양입니다. 책을 읽고 있던 도중 콧물이 나기 시작해, 코감기에 걸린 줄 알았습니다. 읽다가 머리맡에 두고 잤는데 계속 분비되는 콧물 때문에 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을 치워두고 집안일을 하자 콧물이 멈추었습니다. 책을 읽으니 다시 콧물과 재채기가 났습니다. 명백한 알레르기 반응입니다. 책을 펴서 읽으면 고통스러운데,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콧물을 멈추게 하자고 책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일가족 참살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그것도 몇 년 간격으로 계속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집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미쓰다 신조처럼, 이러다가 점점 더 몸이 안 좋아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책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보아도 좋을 이 책 <기관 호러 작가가 사는 집>은 이후 그의 작품들과 닮아있었습니다. 

<흉가>의 쇼타가 그랬듯이 이 책 속의 소설 '모두 꺼리는 집'의 코토히토 역시 불길함을 감지하는 소년입니다. 아버지의 일 관계로 이사한 서양식 집에 들어서면서 '섬뜩'함을 느낍니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것이 왔다. 개미 두세 마리가 등을 기는 듯한 느낌을 받은 바로 그 순간, 몇 십, 몇 백, 몇 천 마리나 되는 개미가 무리 지어 등에 들러붙어 있기라도 한 듯이 한기가 근질근질하게 등을 내달렸다.

오랜만에 '섬뜩' 했다.

-p.48


'모두 꺼리는 집'은 <기관 호러 작가가 사는 집>에 등장하는 미쓰다 신조가 미궁 초자라는 동인지에 연재하던 소설입니다. 미쓰다신조는 인형관이라는 서양식 목조 저택에 기거하면서 그 집을 배경으로 하는, 실제로 그 집에서 벌어졌던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기괴환상 소설을 씁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니 따지고 보면 그 집에 들어가 살기 전부터 기묘한 일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인형관 안에 있던 돌 하우스를 만나는 순간부터 그에게는 더욱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저는 그의 소설과, 그리고 소설 속의 그의 소설에 빠져들며 두통과 콧물을 앓기 시작합니다.


'모두 꺼리는 집'이 연재되던 동인지 '미궁초자'는 미쓰다 신조의 소설 <작자 미상>을 읽으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그 동인지 역시 보통의 잡지는 아닙니다. 그의 작가 시리즈는 <사관장>,<백사당>에서 마무리가 되는데요. <사관장>,<백사당>의 뱀 이야기는 다시 <흉가>로 이어져 <기관 호러 작가가 사는 집>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미쓰다 신조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우리를 올려놓아 마치 정말로 그 세상이 진짜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고 틈을 비집고 기묘한 것들이기어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 말입니다. 


큰일입니다. 한 손에 칼을 쥐고 네발로 걷듯이 기어서 뛰어오는, 히히히 웃는 청년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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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4-0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재미있게 쓰셨습니다..^^
최근 작을 읽고 아 .아..뭔가 싱겁지...그랬는데..
언젠가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ㅡ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ㅡ처럼 책꽂이 에 놓고 후부터 그 쪽 은 유독 뒷꼭지를 늘인듯 섬짓 멈칫 하더란 말이죠...가만 보면 ㅡ그리 놀랄 것 없는 이제 흔한 이야기 같은데 슬몃 공포가 찾아오고 하는게 작가의 필력이구나..하는걸 느껴요..
잘 읽고 갑니다..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내 것이었던 소녀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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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일 뉴욕에서는 거짓말 같은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40여 년간 존경받고 사랑받아오던 한 선생님이 과거에 자신의 여학생과 성적으로 부적절한 관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에 한 명 1980년대에 한 명. 가해자는 미국 보딩 스쿨협회장을 지내는 등 학교 외에서도 존경받는 사람이었고, 대다수의 졸업생들은 그를 '어려운 시기에 용기를 주는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피해 학생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게다가 그 당시라면 선생님에게 그런 일을 당했다고 말해보았자 여자에게 문제가 있는 거라며 도리어 손가락질 받을 시기였을 테니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몇 년 전 학교 보건 선생님에게서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선생님의 말을 간추려본다면 남자 선생님들에게 종종 여학생 때문에 곤란을 겪는다는 상담을 받는다. 여학생이 자꾸만 남자 선생님에게 들이대는 데 별수 있느냐, 여학생과 선생님의 부적절한 관계는 - 그분은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 전적으로 여학생에게 있다. 남자는 본능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라는 말을 하더군요. 충격적이었습니다. 보건 선생님은 학생의 성교육 및 성에 관한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하고 대처하는 역할도 해야 하는데, 만일 문제가 생겼을 때 이런 선생님에게 학생이 상담을 받아야 한다니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자신의 남편인 교수가 여학생하고 추문이 있었나 봅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런 이야기까지 나오더군요. 자신의 남편은 잘못이 없는데 학생이 자꾸만 유혹했다. 그러니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시에나가 빌리에게 얼마나 애착을 느끼게 됐는지 알았어야 했는데...... 그리고 고든한테도요. 그 아이는 제 남편을 짝사랑했어요. 어느 날 밤, 고든이 걔를 집에 데려다줬는데 그 애가 남편한테 입을 맞추려고 했어요."

"고든이 그렇게 말하던가요?"

 "실제로 그랬어요." 목소리가 날카롭다. "고든은 무척 속상해했어요. 그 애 부모님하고 학교에 그 일을 말했죠. 그래서 그 애는 우리 애를 봐줄 수 없게 됐어요. 대신 찰리가 그 일을 하고 있죠."

-p.316

사랑이라는 이름의 달콤함에 넘어가면 판단력이 흐려지게 마련입니다. 

실제로는 어땠을지 모르는 남편과 여학생과의 관계에서 무조건 남편을 믿기에 여학생이 잘 못 한 것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데다가 남선생님들과 문제가 생기는 모든 여학생에게까지 그 범위를 넓혔습니다. 남자들은 잘못하지 않는다. 여학생들이 문제다. 그러니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여학생이다.


"그 애는 당신한테 특별했지."

"모든 학생들이 다 특별하죠."

"그래. 그렇지만 어떤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특별하지. 어쩌다 한 번씩 어떤 여자아이가 무리에서 두드러지고, 그러면 당신은 그 아이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지. 가장 뛰어나거나 가장 영리하거나 가장 예쁜 아이는 아니지만,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지. 이용할 만한 어떤 약점이나, 혼내주고 싶은 거만함."

고든이 고개를 젓는다. "짝사랑에 빠진 건 걔지 내가 아니에요."

-p.336


마이클 로보텀의 <내 것이었던 소녀>에도 그 보건 선생님처럼 남편을 굳게 믿는 아내가 등장합니다. 남편이 여학생과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고 의심받는 데도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짝사랑하던 자신의 남편을 유혹하려다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남편은 존경받는 선생님이니까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 고든이라는 이름을 부르라고 하고 마음을 잘 읽어줍니다.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주인공 조 올로클린의 딸 찰리도 그녀의 친구 시에나도 선생님을 좋아했습니다. 시에나는 그 집의 베이비시터를 하러 다니며 자고 오는 날 도 있을 정도로 선생님과 매우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에나는 온몸을 아버지의 피로 적신 채 찰리의 집에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죽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누군가를 보호하려는 듯이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시에나의 언니는 아버지가 자신과 시에나를 건드려왔다고 이야기합니다. 헛간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아동 포르노물들이 그녀들이 그간 겪은 성적 학대를 증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아버지를 죽이지는 않았을 거라 주장합니다. 시에나의 정신감정을 자발적으로 담당한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은 그녀가 보호하려는 것이 다름 아닌 고든이라는 것을 알고 혐의를 그에게 돌리지만, 그 역시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경찰은 시에나가 범인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조는 그녀가 아니며 누군가가 분명 - 고든이 아니더라도 - 있을 거라며 사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갑니다. 파킨슨병이 그를 때때로 힘들게 하며 그의 육신을 조종하지만  실은 정신적인 면이 더 힘들었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서 아내 줄리안과 딸 찰리가 위험에 처했던 일로 비 온 뒤에 땅이 굳기는커녕 늪으로 변해버리는 바람에 벌써 2년째 별거 중이고 다시 회복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약간의 애정결핍 증세를 보이는 조는 상당히 예민해져 있습니다. 냉철하게 판단하기는 하지만 감정을 조절하는 데에는 실패합니다. <산산이 부서진 남자> 편에서보다 좀 더 부서져 있습니다. 저는 그를 알기에 그를 응원하지만, 주변 인물들은 그에게 푹 빠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번번이 어려움에 처하거든요. 다른 소설들 같으면 주인공이 어려움에 빠져도 지인들이 척척 구원해주더구먼, 이 소설에는 주인공 버프가 없습니다. 버프는커녕 약이나 제시간에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약 먹기도 참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에나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기억이 트라우마적인 과거 사건들의 저장소라고 말했지만, 그 사건들은 실제라기보다는 단순한 망상일 때가 많다. 현실 세계가 아니라 오로지 마음속에서 일어난 사건인 것이다. 우리 마음은 존재하지 않은 것들과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의 망대한 저장고다. 나는 가끔 내 기억들이 진짜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것들에 집중해서 너무 가까이 들여다보려고 애를 쓰면, 기억이 내 목을 틀어막아 나는 숨을 쉬려고 발버둥을 치게 된다.

-p.120


책은 연속으로 읽기 힘들었습니다. 자꾸만 치밀어 오르는 무엇 때문에 잠시 덮어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소녀의 판단력을 흐리고 욕심을 채우려는 인간들. 소녀가 한 것은 사랑이지만 그들이 한 것은 유린이었습니다. 어째서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소설 속에 숨어서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지 세상으로 튀어나와 소녀들을, 여자들을 괴롭히는 것일까요. 그런 생각들이 저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사건은 끝났지만, 시에나는 모든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파킨슨병을 치료할 수 있는 특효 신약이 나왔다는 뉴스를 본 것 같습니다. 조 올로클린에게 알려주고 싶네요. 아니, 이미 알고 있겠군요. 의대 동기들이 이야기해주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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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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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백스페이스를 몇 번이나 눌렀는지 모릅니다. 한 줄 쓰고 지우고, 또 한 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글쓰기 책을 읽고 나서 이 정도 밖에 못 쓰는 건가 하는 생각에 자꾸만 지우게 되네요. 

하지만 마음을 편하게 먹고 글을 써보겠습니다. 서민적 글쓰기란 어렵게 쓰는 게 아니니까요.


.... 저 윗부분까지 쓰고서 또 몇 번을 지웠습니다. 글쓰기 책을 읽고 나서 쓰는 글이라 그런지 너무 어렵네요. 이 책을 통해 배운 게 참 많은데 그것들이 오히려 제 손가락을 옭아맵니다. 편안하게 쓰면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안돼요. 잘 해야 한다,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저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거의 매일 한 편씩 포스팅을 하면서 글쓰기가 조금은 편안해지고 나아졌나 싶었는데,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게다가 지금 건방지게 초고도 하지 않고 바로 글을 쓰고 있으니 더 힘들 수 밖에요. 

생각을 따라 그냥 흘러가듯이 쓰는 글도 참 좋지 않은가 싶었는데, 오늘따라 그런 글이 아니라 기승전결이 있는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책을 재미있게 읽고 나서 막상 글을 쓰려니 이게 뭡니까. 글이 안 풀립니다. 

머릿속에서 대 혼란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이러다간 <서민적 글쓰기>라는 책은 대혼란을 야기하는 책이라는 오해를 하실지 모르겠는데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글을 잘 썼던 것도 아닌, 책을 많이 읽었던 것도 아닌 그가 시행착오를 겪고 자만심 같은 것을 버리고 열심히 꾸준히 읽고 쓰면서 터득해간 글쓰기 비법이 고스란히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의 비법에 동의합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책입니다. 책을 읽고 느끼고 글을 쓰고. 제가 잘 하고 있다는 걸 알고서 기뻤고, 지금처럼 계속하면 더 잘 쓸 수 있게 될 거라는 희망도 보았습니다. 

...단, 오늘만 빼고요. 



*** 오늘은 정말 최악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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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자전거 1 - 김동화 만화 에세이 빨간 자전거 1
김동화 글 그림 / 열림원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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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김동화라고 하면 저는 요정 핑크가 생각납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왔던 것 같은데요. 그린우드 나라의 공주 핑크가 이 세상에 내려와서 겪게 되는 좌충우돌 스토리에다가 빈과의 러브스토리가 버무려져서 콩닥콩닥 두근대며 만화를 읽곤 했었죠. 

귀엽고 아름다운 소녀를 그렸던 만화가 김동화가 지금은 감성적인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서양인을 떠올리게 했던 그의 그림체가 이젠 무척 동양적으로 변해버려서 갑자기 어색해졌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오히려 무척 친근하고 포근하게 다가오네요. 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빨간 자전거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저에겐 말이죠.)


어쩌다 한 번씩 볼 수 있었던 빨간 자전거의 이야기는 3분이라는 시간 동안 마음을 훑고 지나갑니다.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처럼요. 

빨간 자전거의 주인공인 우체부는 꽁지머리를 한 것이 김동화를 닮았습니다. 작가보다는 젊은 총각이지만, 마음만큼은 김동화와 똑같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아버지의 빨간 자전거를 타고 임하면 야화리의 우체부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한다는 말이 틀릴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이 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거든요. 그가 배달하는 것은 편지가 아니라 낭만과 사랑, 그리고 인생인 것 같습니다. 

임하면 야화리 감나무집, 들꽃 나무 울타리 집, 숲 속의 노란 집, 미루 나무길 하얀 집... 야화리 398번지 같은 숫자 대신 자연으로 말하는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 마을의 우편물을 틀리지도 않고 잘도 찾아다니며 우편물을 전합니다. 

예전엔 손글씨 우편물이 오갔었기에 두근대는 마음으로 우체부를 기다렸던 사람들도 이제는 전기 요금 고지서 같은 것이나 우편물로 오기 때문에 시큰둥 할 수도 있지만, 자식들이 모두 도회지로 나가 젊은이를 보기 힘든 노인들은 그를 우체부이자 자식처럼 여기기도 하는가 봅니다. 


 



가을걷이를 하고 나면 우편물보다도 노인들의 심부름 물건으로 행낭이 가득 차버리지만 그가 배달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정이기에 그의 자전거는 날아갈 듯합니다. 



이 만화를 보면서 가끔씩 찌잉하게 울리는 것이 두통을 잊게 하지만 가슴은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예쁜 꽃들을 보며 행복해지지요. 참 예쁩니다. 산, 나무, 풀, 꽃, 집, 개구리.... 뭐하나 버릴 것이 없이 정말 예쁩니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든 모습들이 그렇습니다. 험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예쁜 것들이 돋아나는 법이니까요.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성치 않잖아. 그래서 살아온 길, 걸어온 길, 잊지 않으려고 얼굴에 하나하나 약도를 그려놓은 건데, 뭐... 즐겁게 웃으며 간 길은 눈 옆에 그려 넣고, 힘들어 이를 악물고 간 길은 입 옆에 그려 넣고, 먼 길은 긴 주름을, 가까운 길은 짧은 주름을..."

"야화리만 뱅뱅 도는 저는 어떤 주름이 생길까요?"

"미리 알면 그게 무슨 재민가? 자네가 한 줄 한 줄 그려 나가 봐."

-p.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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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 2 - 시크릿 스피치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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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2월 25일, 스탈린 사후 처음으로 열렸던 소련 제20차 당대회에서 니키타 흐루쇼프는 스탈린 및 그의 체제에 대한 강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개인숭배, 권력남용, 비밀경찰에 의한 무자비한 체포와 고문, 재판도 없이 행해진 수많은 처형들에 대해 비인간적이라며 무려 4시간에 걸쳐 비난합니다. 당시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이날의 연설문은 모두 비공개 처리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러나 흐루쇼프는 은근히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 자기가 제일 먼저 이런 말을 했다는 걸 남기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 비밀리에 이 비공개 문서를 공개하게 만듭니다. 대량으로 인쇄된 이 문서는 세상 곳곳에 번져나가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연설문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든든한 공산주의 체제 - 사실은 스탈린 체제 -가 흔들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을 해쳐왔던 사람들은 비난받고 공격당할까 두려워 자살을 선택하기도 하고 아니면 김일성처럼 흐루쇼프를 비난하며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시키기도 했습니다. 헝가리나 동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대규모의 자유화 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소련의 탱크에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차일드44 시크릿 스피치>의 주인공 레오는 전직 MGB(옛 소련의 비밀경찰)로써 많은 사람들을 체포했습니다. 친구라고 여겼던 레오에게 체포당한 사람들 중에는 강제수용소에 보내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죽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레오는 MGB에서 나와 살인 조사과에 근무 중입니다. 스탈린 시대에는 너무나 완벽해서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스탈린이 없으니 살인도 있겠죠. 과거의 잘못을 어깨에 둘러메고 그는 아내와 입양한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양한 딸들은 자신의 손으로 체포했던 남자의 아이들입니다. 동생인 엘레나는 몰라도, 언니인 조야는 알고 있습니다. 조야는 끝없이 반항합니다. 입양되어 함께 산 지도 3년, 레오와 라이사의 사랑을 받아들여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자기 손으로 레오를 죽이고 싶어 합니다. 라이사와는 가족이 될 수 있어도 레오와는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날도 변함없이 잠들어 있는 레오에게 다가가 칼을 움켜쥐고 겨누는 의식을 하던 중 갑자기 들려온 전화벨 소리에 놀라 방으로 달아납니다. 그 벨 소리는 앞으로 일어날 수많은 고통들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습니다. 

레오의 상관이었던 니콜라이가  두툼한 우편물을 받고 나서 괴로워하며 자신의 아내와 딸들을 죽이고 자살한 날, 레오에게도 우편물이 도착합니다. 흐루쇼프의 연설문이 담긴 그 우편물은 어디에서 배달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운명을,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의 운명을 뒤흔들어버립니다. 

7년 전엔 신부의 아내였지만 잠입해서 함께 생활하던 레오에 의해 배신당해 남편과 아이를 모두 잃은 프레이아는 강하고 차가운 여자로서 이 지역의 브로이(갱단) 두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야를 납치하고 강제수용소에 있는 남편과의 교환을 원합니다. 물론 그 일은 반드시 레오가 해야만 했지요. 레오는 딸을 위해 강제수용소에 죄수로서 잠입합니다.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알아본 전직 신부 때문에 모진 고문을 당하지요. 그리고 계속되는 사건들이 독자로 하여금 한시도 방심할 틈을 내주지 않습니다. 

어떡하지, 큰일이네... 걱정 끼쳤다가 괜찮아진 것처럼 위장한 후 다시 한 방 때리는 기법으로 스릴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합니다. 


전편의 <차일드 44>를 읽을 때도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선과 악을 분명하게 가르지 못하겠는 겁니다. 주인공인 레오는 무척 매력적이고 호감이 가는 캐릭터입니다만, 악행을 저질러 온 것은 분명합니다. 아무리 명령을 따랐다고는 하지만 그가 저지른 일들은 지금의 도덕적 기준으로 보아 옳지 못한 일이거든요. 당시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러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바꾸고 착하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윗선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니 이 사람은 옳은 사람인가 아닌가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우리 편, 남의 편... 가를 수가 없어요. 심지어 10대 어린 소년 소녀들의 경우에도 말이죠. 

그들이 모두 시대의 희생양들이라고 생각해도 좋을까요. 선과 악을 따지기 전에 생존이 우선이었던 시대였으니까요. 모두가 차갑게 얼어붙은 냉전시대.

스릴 넘치게 읽고 나서 잠시 우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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