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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 ㅣ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1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미쓰다 신조의 세계는 참으로 잔인합니다. 안전하다 여겼던 것들을 전혀 그렇지 않은 것들로 바꾸어 놓으니까요. 심지어 믿을 수 있었던 것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사소한 것들에게 불안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니 그의 소설들을 피하는 것이 상책일 텐데 마음 한구석의 작은 악마가 책을 마저 끝내라고 부추깁니다.
<기관 호러 작가가 사는 집>은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입니다. 미쓰다 신조의 데뷔작인 이 소설은 꼭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신간들을 접하다 보니 뒤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어차피 읽을 책이라면 일찍 읽어버릴걸. 깨끗하게 소독을 마치고 빌려온 이 책은 저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전에 읽던 누군가가 어떤 알레르겐을 - 자신도 모르는 새에 - 남겨놓은 모양입니다. 책을 읽고 있던 도중 콧물이 나기 시작해, 코감기에 걸린 줄 알았습니다. 읽다가 머리맡에 두고 잤는데 계속 분비되는 콧물 때문에 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을 치워두고 집안일을 하자 콧물이 멈추었습니다. 책을 읽으니 다시 콧물과 재채기가 났습니다. 명백한 알레르기 반응입니다. 책을 펴서 읽으면 고통스러운데,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콧물을 멈추게 하자고 책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일가족 참살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그것도 몇 년 간격으로 계속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집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미쓰다 신조처럼, 이러다가 점점 더 몸이 안 좋아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책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보아도 좋을 이 책 <기관 호러 작가가 사는 집>은 이후 그의 작품들과 닮아있었습니다.
<흉가>의 쇼타가 그랬듯이 이 책 속의 소설 '모두 꺼리는 집'의 코토히토 역시 불길함을 감지하는 소년입니다. 아버지의 일 관계로 이사한 서양식 집에 들어서면서 '섬뜩'함을 느낍니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것이 왔다. 개미 두세 마리가 등을 기는 듯한 느낌을 받은 바로 그 순간, 몇 십, 몇 백, 몇 천 마리나 되는 개미가 무리 지어 등에 들러붙어 있기라도 한 듯이 한기가 근질근질하게 등을 내달렸다.
오랜만에 '섬뜩' 했다.
-p.48
'모두 꺼리는 집'은 <기관 호러 작가가 사는 집>에 등장하는 미쓰다 신조가 미궁 초자라는 동인지에 연재하던 소설입니다. 미쓰다신조는 인형관이라는 서양식 목조 저택에 기거하면서 그 집을 배경으로 하는, 실제로 그 집에서 벌어졌던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기괴환상 소설을 씁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니 따지고 보면 그 집에 들어가 살기 전부터 기묘한 일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인형관 안에 있던 돌 하우스를 만나는 순간부터 그에게는 더욱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저는 그의 소설과, 그리고 소설 속의 그의 소설에 빠져들며 두통과 콧물을 앓기 시작합니다.
'모두 꺼리는 집'이 연재되던 동인지 '미궁초자'는 미쓰다 신조의 소설 <작자 미상>을 읽으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그 동인지 역시 보통의 잡지는 아닙니다. 그의 작가 시리즈는 <사관장>,<백사당>에서 마무리가 되는데요. <사관장>,<백사당>의 뱀 이야기는 다시 <흉가>로 이어져 <기관 호러 작가가 사는 집>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미쓰다 신조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우리를 올려놓아 마치 정말로 그 세상이 진짜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고 틈을 비집고 기묘한 것들이기어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 말입니다.
큰일입니다. 한 손에 칼을 쥐고 네발로 걷듯이 기어서 뛰어오는, 히히히 웃는 청년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