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불장군 상대하기 - 집과 직장에 꼭 있는
가타다 다마미 지음, 황선종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을겁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데요, 새 학교의 새 친구들이 낯설어 서먹서먹한 시기였었고 심지어 반에서 한 번도 말을 안 해본 친구가 있던 그런 때니.. 3월 말이나 4월 초순이었을 것 같습니다. 제주는 그때쯤 연둣빛 새싹들이 돋아나고 노란 개나리와 분홍의 벚꽃이 피어나는 그런 때였죠. 지금과는 달라서 교실 창문을 내다보면 한라산이 멀리서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다른 옷을 입는 아름다운 시절, 교내 사생대회가 열렸습니다. 특정한 사람이 참가하는 게 아니라 전교생이 참가하는 대회였는데요. 저는 휴대용 이젤을 조립하고 4절 스케치북에다가 4B 연필로 창밖에보이는 풍경을 스케치하고서 투명하게 수채화를 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행복했습니다. 맑고 푸른 창밖의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생각에 뿌듯했었죠. 그리고 며칠 후, 미술 선생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얼굴은 좀 길고, 머리는 단발머리인 남자 미술 선생님께서는 누가 봐도 예술가 타입이십니다. 선생님이 찾는다는 말만 들어도 긴장하던 때라 저와 함께 호출된 같은 반 친구에게 무슨 일인지 짐작 가느냐고 물었지만 그 애도 전혀 짚이는 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사생대회 심사 결과 저희 둘 중 한 명의 그림에 대상을 주기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사실대로 말해야 상을 주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 둘이 친하니?"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되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괜찮은 그림이 있어 뽑아놓고 보니 두 그림이 거의 일치한다면서 분명 두 그림은 한 사람이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우리는 친하기는커녕 지금 이곳에 오면서 처음 말을 섞은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같은 화실에 다니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친구는 화실에 다니는 친구였지만 저는 어릴 때 누구나 다닌다는 미술학원에 다녀본 이후로 화실 같은데 구경 간 적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리고선 사용하는 물감이니 종이니.. 자질구레한 것을 물으시더니 분명 같은 물감을 사용했으며 같은 자리에서 그렸다고 계속 우기시더군요. 그 친구는 알파 물감, 저는 엄마께서 일본에서 사다 주신 물감을 사용했는데, 당신께서는 척 보기만 해도 아신다며 우기시는 겁니다. 붓 터치, 필압까지 같다면서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아니라고 계속 부정해보았지만, 들을 생각이 없으신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리 없다면서요. 마지막으로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계속 그렇게 거짓말하면 상을 줄 수 없다고.

"저는 애초에 상을 받으려고 그린 것도 아니고, 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인사를 하고서 미술실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억울함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 망했구나.. 이제 선생님에게 찍혔으니 앞으로 3년간 미술 성적은 큰일 났구나... 하는 슬픔도 버무려졌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그날 그 사건 이후로는 정당하게 평가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 그 사건도 선생님 입장에서는 정의였을지도 모릅니다. 자기 안에 갇힌, 자신의 권위에 갇힌 정의 같은 것 말입니다. 


저의 에피소드를 늘어놓았지만, 세상에 이런 사람들 참 많습니다. 자신이 이렇다고 생각하면 남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소신 있는 모습일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독불장군으로 으르렁거리는 거라는 걸 알지 못 합니다. 그들은 도대체 왜? 왜 그러는 걸까요?


  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걸까?


 

  1.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2.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3.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4. 사실 자신감이 없다
  5. 모 아니면 도다
  6. 독선적인 성격 때문에 
  7. 유연성이 없다
  8. 변화에 대한 불안감

 

<독불장군 상대하기> 목차 中

 

자기주장과 확신이 있는 건 바람직하지만 남의 말은 절대 듣지 않으며 자기 목소리만 내는 사람이라니! 의외로 우리 주변엔 이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가부장적인 태도로 가족을 대하는 아버지 일수도 있고, 무조건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면 행복할 수 있다며 현재의 불행을 강요하는 엄마일 수도 있고, 강압적인 태도로 부하직원을 대하는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카페 회원님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며 결국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밀어붙이는 매니저일 수도 있으며, 정치권에 계시는 나으리일 수도 있습니다. 대인 기피를 하는 저조차 종종 만나는 이런 이들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퍼져 있다는 걸까요.



이런 사람들, 이를테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은 사실 꽤 많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도 망상이나 강박관념이 자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기애가 강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뇌리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p.171




이런 독불장군들에 대해 정신과 의사 가타다 다마미가 원인과 증례, 대응 방법에 대해 낱낱이 이야기하는 책, <독불장군 상대하기>는 사회생활하며 겪게 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처받지 않는 법을 알려줍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니 자기가 아무리 장군이어도 그는 어차피 나에 대해 모르니 잘 알고 있는 내 쪽이 유리하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읽은 자기계발 도서였습니다. 어쩌면 저 역시 독불장군일지도 모릅니다. 독불장군이 자기 스스로 독불장군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습니까? 내 눈은 못 속이지. 암. 하고 말하지 나는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천하무적 독불장군일세!라고 선언하는 사람을 좀처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살짝 걱정됩니다만, 그래도 저는 이렇게까지 꽉 막힌 사람은 아닐 거라...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독불장군 상대하기>는 주위의 독불장군 때문에, 혹은 나 자신이 그런 꽉 막힌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이었습니다.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었기 때문에 100% 우리의 인간관계와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고 상대를 이해하거나 대처할 때 도움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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