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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라서 정말 열심히 안 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느긋하게 앉아서 천천히 책을 넘겨가며 읽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열심히 읽고 있지 뭔가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열심히 읽는다는 건 어쩐지 작가에게 실례인 것 같아서 잠시 두었다가 다시 집어 들고서는 또 열심히 읽고 말았습니다.
저자인 사노 요코는 1938년 생으로 이미 타계하신 분이지만, 그녀가 -아마도- 제 나이 때쯤 쓴 수필이니 시기는 달라도 무언가 좀 상통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하지만 저런, 상통하기는커녕 저의 모자란 점만 한참 깨달았습니다. 그녀의 깊숙한 곳에 깔려있는 바지런함이 적당히 느슨하게 지내는 것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말로 표현한 것 같아, 작가와 저의 '열심히 하지 않는다'라는 기준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근심소멸 에세이라더니, 지나치게 게으른 저에게는 근심이 생기게 하는 에세이였는데요.
작가의 과거, 현재(글 쓰던 시점에서의), 미래, 그리고 상상의 나래까지 함께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함께 맛보았습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일본 이모에게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기도 했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했고, 언니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붓이 가는 대로 쓰인 글이라 그녀의 생각의 흐름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응, 응. 그랬어?" 하고 대답하며 장시간 통화하는 것 같았던 그녀와의 한때가 즐거웠습니다.
나의 독서는 그저 심심풀이다. 나는 따분함을 못 참는다. 하지만 타고난 게으름뱅이라서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마음이 분주한 쪽을 선택하고 만다.
심심풀이로 읽기 때문에 활자는 그저 배경 음악처럼 흘러갈 뿐, 교양으로도 지성으로도 남지 않는다. 오락이니까 그냥 시간을 때우면 되는 거다. 내 안에 축적되어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는 일 같은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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