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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10가지 방정식
데이비드 섬프터 지음, 고현석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7월
평점 :
데이비드 셤프터의 <세상을 움직이는 열 가지 방정식>은 스웨덴의 응용 수학자인 저자가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중요한 결정들에 대해 다양한 방정식으로 설명을 시도한 대중 교양서이다.
이 책은 인생의 비밀 코드를 해석하는 열 개의 열쇠란 부제 아래, 베팅 방정식, 판단 방정식, 신뢰 방정식, 기술 방정식, 인플루언서 방정식, 광고 방정식, 보상 방정식, 학습 방정식, 보편 방정식 등, 열 개의 챕터로 나누어 독자로 하여금 수학적 사고로 연실을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이와 같은 방정식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개인 수준에서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방정식의 변수들을 스포츠 배팅, 금융 트레이딩, SNS 추천시스템, 곤충의 행태 조사까지 전방위적인 예시를 통해 설명, 증명해내는 논리적인 구조가 몹시 흥미진진하였을 뿐더러, 방정식으로 삶의 판단 근거를 수식으로 정량화 가능하다는 점을 책을 통해서 보여주려는 시도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간 파트는 단연 보상 방정식이었다.
나는 올해로 12년차 사교육 수학 강사이다. 매년 많게는 수 백명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적게는 수십 명의 학생들을 보곤 한다. 그 가운데에는 재수생도, 검정고시생도, 외고 과고의 수재들이나 소위 수학을 포기한 수포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시대가 바뀌며 공부와 입시의 성공이 인생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수학 공부의 중요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작금이지만, 내가 매년 공통적으로 절감하게 되는 깨달음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수학은 보상이 보이지 않으면 반복하기 유난히 어려운 과목이라는 점'과 아이들이 수포자의 길로 접어드는 까닭은 '수학이 어렵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인식' 때문이라는 점이다. 상위권을 주로 대상으로 하는 대형 학원에서 이례적으로 하위권 반을 맡아 재수 없이 몇 년 연속으로 소위 서울 명문대라고 하는 대학에 성공적으로 진학시키는 이례적인 커리어로 사교육계에서는 수포자의 동앗줄이 되어온 내가 오랜 회의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직업을 놓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저 깨달음 때문이기도 하다.
강화 학습에서 말하는 보상 방정식을 줄글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 그에 따라 보상을 얻으면, 그 행동을 다시 선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저자는 이 간단 명료한 진리를 Qt+1=(1-α)Qt+αRt 이런 방정식으로 표시한다. 저자는 책에서 게임과 곤충의 생태를 중심으로 이 방정식에 접근했지만, 나는 이를 수험생의 학습과 관련하여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입시 수학을 다루는 내 입장에서 이 방정식의 변수는 다음처럼 치환할 수 있다. Qt는 현시점의 공부상태, Qt+1은 미래시점의 기대(즉 학생이 오늘 풀었던 문제 상태에서 내일 또 문제를 시도할 가능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R은 학습자가 받을 보상으로, 점수 향상, 내지는 교사의 칭찬, 성공체험 등이 될 것이고, 미지수 알파는 보상의 질을 좌우하는 매개변수이다. 사람의 만족도에 관여하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은, 예측보다 더 나은 보상 사건이 발생할 때만 활성화되는 까다로운 특징이 있기 때문에, 저자는 방정식에서 만족의 질을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감가상각되는 빌딩처럼 조절하는 매개변수 알파가 필요함을 설파한다.
나는 직업 특성 상 자동으로 방정식을 치환하여 읽었지만, 물론 학생들은 본인의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이렇게 복잡하게 계산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어떤 문제를 접근하여 스스로 풀었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보상 시스템이 작동하고 학습 루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초 학력이 낮은 학생일수록 본인에 대한 기대치가 낮거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때의 보상을 크게 느끼는 경향이 많았고 이 방정식의 흐름이 내가 수많은 수포자를 더이상 수학이 무섭지 않은 과목으로 이끌게 된 가장 강력한 유인책이 되었음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모든 케이스가 이렇게 간단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학습 결손이 발생한 수많은 학생들은 문제에 도전해도 풀지 못한다. 교재의 개념을 정리해도 전혀 문제에 적용할 수가 없다. 그들 스스로는 열심히 했노라 주장하나, 모의고사 성적은 변화가 없다. 방정식 상의 종속 변수인 보상기대치 Qt+1가 점점 하락한다. 이 상태가 위험한 까닭은 이와 같은 시점이 반복 시행될 때, 우리의 뇌는 해당 학습을 '비효율적인 선택'으로 간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수학 숙제, 수학 문제풀이를 기피하게 되고, 그 결과는 절망적이게도 또 한 명의 수포자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악순환을 방비하기 위해 내가 설정한 강사로서의 나의 역할은 보상 설계자였다. 개념설명 과정에서도, 문제풀이 과정에서도 내가 가장 집중하여 노력하는 바는 '수학 학습으로부터 배신감을 느끼지 않도록 단계별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언제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전부리를 제공하여 수학학원에 오는 것 자체의 진입장벽을 낮춘다. 개념 이해 단계에서 본인의 말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무비판적인 암기가 아닌 이해를 유도하고, 즉각적인 칭찬 피드백으로 응한다. 가장 쉬운 문제부터 풀게 하고, 문제의 정답과 무관하게 풀이의 논리성을 강조하며, 아이의 긍정 강화를 위한 섬세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숙제의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숙제 완성도와 수업 참여도에 따라 칭찬 스티커를 발급하여 성취도에 따라 스터디 플래너를 포함한 각종 학습 도구를 선물로 제공하여 수학 학습과 보상 간의 시간 간극을 최대한 좁힌다. 그렇게 것 봐, 너도 할 수 있잖아! 라는 인식을 끊임없이 심어주는 것, 그렇게 공식 암기와 기본 예제 풀이부터 유형 학습을 거쳐 최종적인 모의고사와 기출 문제 확장까지, 촘촘히 보상 루트를 설계하여 끊임없이 작은 성공 체험을 경험하게 만든다.
보상 강화 학습은 인공지능에 쓰이는 학습 모델이라고 듣기도 했지만, 이 단순한 방정식은 뇌가 특정 행동을 반복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뼈대이기도 하다. 입시 수학 강사로서 내 사명은, 아이들이 수학에 배신을 당한 채 수학을 외면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수학이 힘든 이유는 보상이 지연되는 대표적인 과목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수학 학습은 결국은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수학 학습의 성공 경험은 문제 해결 결과를 뇌가 보상으로 인식하게 하여, 이를 학습에 대한 긍정적 감정으로 치환하고, 지속적인 학습 동기를 유도하는 매커니즘으로 작용한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접한 한 문제의 성공 체험이 사람의 감정을 건드려서 문제풀이라는 선택을 지속하게 한다면, 어찌 감정이 공식보다 먼저 학습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지 보상 방정식, 한 파트만이라도 모든 교육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수학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교육 현장에서 본 방정식은, 내 방식에 대한 확신을 더해주었다.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수학화 시키는 이 교양서는, 다만 수치의 정량화 뿐만 아니라 수학 도구가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는 윤리적 책임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짚고 간다. 과도한 정보와 편향에 기댄 알고리즘으로 인하여 사고의 편협한 강화가 보편화된 분열의 시대에 편견 없는 판단을 위한 필수 사고법을 제시하는 이 책은 현대인에게 귀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