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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장의 고백
조승리 지음 / 달 / 2026년 3월
평점 :
<용궁장의 고백>을 읽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숨을 들이켜야 했다. 화자인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가 너무도 익숙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이 아닌 내 기억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차별, 당연하게 여겨지는 책임의 전가, 그리고 끝내 한 사람에게만 쏠리는 삶의 무게는 내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작중 주인공의 태도가 못내 갑갑했다. 70살이 넘도록 모든 것을 감당하려는 주인공의 태도, 누군가는 그것을 숭고한 '희생'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 이면의 구조가 보인다. 더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끝까지 버티고, 더 해낼 수 있는 사람이 계속해서 짐을 짊어지는 방식. 하지만 그 구조의 끝에는 오직 한 사람의 처절한 소진만이 남는다. 소설은 그 과정을 집요할 만큼 사실적으로 추적하는 느낌이었다.
맨 처음에는 내가 죽어야만 이 고통이 끝날 것 같기에 죽기를 소원하고, 그 다음에는 고통의 직접적인 원천인 모친이 죽기를 희망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나는 슬프도록 여실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칠 길이 없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결국 가족이란 이름의 천형을 벗고 스스로 살기를 선택하는 그 아프고 처절한 선택마저도 이해한다. 아니, 내 자신이 그 과정을 겪었기에, 아니 아직도 그 굴레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했기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주인공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하고 싶다. 나를 죽이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족은 이 세상에 없노라고 말이다.
주인공은 남편과 함께 하며 인연을 끊었던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평생토록 가족에 얽매여 살아왔지만, 나는 주인공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로 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책임을 감당해왔지만, 더 이상 타인의 삶을 위해 나를 지우는 것이 당연한 존재로 남지 않기로 했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내가 선택한 것’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가족은, 나의 탄생은 결코 내 의지가 들어 있지 않는 결과였다. 이 단순하고도 엄중한 원칙을 깨닫기까지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돌아왔다.
작중 주인공은 고통스러울 때마다 교회로 가 신에게 기도한다. 그를 둘러싼 교회의 지인들은 주님이 믿음에 응답할 것이라고 응원하며, 실제로 주인공이 요양원에 보낸 모친이 화재로 죽음으로써 그의 기도가 응답 받은 것 같은 장면이 나오나, 나는 여전히 기도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화자의 모친의 죽음은, 기도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결국 모친과 떨어져 자신의 길을 걷기로 택한 행위의 결과였다. 어머니를 끝까지 모셨다면, 용궁장의 화재가 그녀를 구원하지 못했을 것이므로. 그러하기에 이 소설의 구조는 내게 여실히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이 삶을 바꾸는 것은 막연한 염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선택과 행동이란 사실을.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 나는 내 삶의 크기를 스스로 키우고, 그것을 다시 나눈다. 나눠주어 작아지면 다시 키우면 그만이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삶의 문법이다.
<용궁장의 고백>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과연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는가. 이 책을 읽은 지금은 단호하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책임지고, 그 경계 밖에서는 멈출 것이라고. 나를 무너뜨리는 책임은 더 이상 책임이 아니라 폭력일 뿐이란 걸 알기에. 그 멈춤의 자리 위에서, 온전한 나를 다시 만들어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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