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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증보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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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님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제목만 들어도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책이다저자는 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정치적 망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 이유와 프랑스에서 택시 운전사로 지내며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책에 담아냈다하지만  책은 단순히 이방인의 경험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속엔 당시 대한민국의 권위주의와 억압적인 사회 구조그리고 그것이 개인에게 끼친 영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록이 빼곡히 담겨 있다.  


특히,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던 군부독재 시절 대한민국 사회와, 타인의 다름을 존중하는 프랑스 사회가 대비되는 장면들이 유독 마음에 깊이 남는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문화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여러 차례 이야기하면서, 사랑보다 증오를 먼저 배우게 만드는 대한민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힌다. 군부독재가 끝난 지금, 과연 한국은 그때보다 더 나은 사회가 되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띨 수밖에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혐오와 대립이 너무 쉽게 소비되고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증오 문화가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차이와 다양성을 받아들이기보다는이를 공격하거나 적대시하는 태도가 점점  심화되고 있음을 느낀다이런 사회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똘레랑스라는 메시지는 참으로 절실하게 다가온다책의 개정판이 다시 나올  있었던 이유도 어쩌면 이러한 안타까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 속에서 저자는 경쟁과 효율을 강요하고, 권위주의 사고방식을 내면화하던 당시의 군대식 조직 문화를 비판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개인의 존엄성과 진정한 자유를 침해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조국을 사랑했지만, 그곳에서 살 수 없었고, 프랑스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프랑스에 살면서 그는 또 다른 이방인으로 머물렀다. 한국에 돌아갈 수 없는 망명자이자, 프랑스에서도 완전한 시민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그는 자신을 이중 삼중의 이방인으로 표현한다.


그렇다고 프랑스 사회가 완벽했다고는 할 수 없다. 저자가 경험한 프랑스에서도 택시비를 떼어먹고 달아나거나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 속에서 똘레랑스, 즉 관용의 문화를 읽어낸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힘을 확신한다.


저자가 말하는 똘레랑스는 단순히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다름을 존중하고 그와 함께 살아가는 태도를 뜻한다. 이는 단순한 관용 정신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꼭 갖춰야 할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자세처럼 느껴진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사회라면, 당연히 절대 정답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핍박하거나 억압할 수도 없다.


저자가 꿈꿨던 다양성과 공존이 뿌리내린 사회라는 이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더 절실하다. 이 책의 초판이 처음 출간된 지 거의 30년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다양성을 포용하기엔 너무 경직되어 있다. 혐오로 얼룩진 대립구조를 넘어서, 정말로 공존을 이야기하는 한국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은 저자의 이야기인 동시에, 한국 사회를 향한 메시지이고 미래를 향한 질문이다.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지만, 과연 이 책이 주는 똘레랑스의 메시지를 삶 속에서 성찰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진정한 공존과 다양성을 배우고자 한다면, 이 메시지를 마음 깊이 새기고 각자의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

 

#나는빠리의택시운전사 #홍세화 #똘레랑스 #빠리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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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국가의 위대한 민주주의 - 국가의 미래, 어떻게 만들 것인가
윤비 지음 / 생각정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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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국가의 위대한 민주주의』 를 읽고


『위험한 국가의 위대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가 걸어온 역사와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도전들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책이다. 저자는 국가의 기원부터 민주주의의 발달 과정,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민주주의의 역할을 다양한 나라의 역사적 사례와 함께 설명하며 독자들에게 이 체제가 가진 장단점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은 민주주의를 이상화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리스 시대부터 민주주의가 갖고 있던 중우정치의 위험성, 도편추방제도가 악용된 사례 등 체제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정치 체제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과 복지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민주주의가 독재, 권위주의와의 지속적 투쟁 과정에서 진화해 왔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평한다.


저자는 특히 현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양극화, 팬덤 정치, 포퓰리즘, 갈등과 배외주의 등 다양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요소들은 민주주의를 훼손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나, 그럼에도 한국 민주주의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발전해 온 배경에는 국민의 높은 시민 의식이 존재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를 근거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며, 국민들이 이러한 도전을 현명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저자는 특히 콘라드 헤세의 헌법에의 의지를 발췌하면서 성숙한 법치주의와 헌법준수 의지를 강조한다. 이를 읽으며 나는 개인과 사회 모두가 법적 절차를 준수하고, 정치적 사법화에 대한 시민의 감시를 강화하며, 공직자의 책임과 투명성을 요구해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또한, 특정 정당이나 편향된 언론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정보 제공을 위한 언론 개혁이 필요하며, 정치 체제 내 권력이 균형 있게 분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뿐만 아니라 정치적 대립을 중단하고 정당 간 협력을 통해 극단적 양당제를 완화해야 하며, 지도자의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을 면밀히 검증하는 과정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나는 저자의 생각에 덧붙여서 시민들이 국가를 견제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국민발안권, 국민탄핵권, 위헌정당 해산권 등―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느꼈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시민 참여를 기반으로 저자가 꿈꾸는 위대한 민주주의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위험한 국가의 위대한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정치 제도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책이 제기하는 논의는 민주주의가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는 체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이상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을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며, 더 나은 시스템을 고민하게 만드는 점에서 시대적 의미를 가진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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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얼굴들
강재영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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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영 작가님의 단편집 3의 얼굴들은 표면적인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인간 내면의 날것 그대로를 직면하게 하는 작품들로 구성된 책이다. 삶과 죽음, 욕망과 현실, 죄와 벌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다섯 가지 단편은 각 인물이 지닌 내면의 갈등과 본성을 생생히 그려내며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단편집은 단순히 내면 자아의 탐구라는 공통된 주제를 공유할 뿐, 각각의 작품은 장르와 분위기가 극명히 다르다. 이 점은 독자로 하여금 일정한 예측을 배제하게 하며, 매 단편마다 새로운 시각과 접근법을 경험하게 한다. 평소 선호하지 않던 장르의 글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더욱 흥미로운 독서 경험을 선사했다. 특히 첫 번째 단편과 두 번째 단편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첫 번째 단편은 80년대 대학가를 배경으로, 정치운동과 얽힌 복잡한 심리를 다룬 이야기다. 대학에 잠입한 경관 오영과 그가 사랑하면서도 감정을 외면하려 애쓰는 대학생 선배 미선, 그리고 미선 주위의 또 다른 인물들 간의 얽힌 감정선은 시대상을 배경으로 매우 흡입력 있게 구성되어 있다. 오영이 자신의 본분과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며 겪는 심리적 진통은 독자로 하여금 그의 시선에서 상황을 공감하도록 이끌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하는 여자인 미선의 손에 의해 상처를 입고,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희망과 체념이 교차하는 순간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서정적인 피비린내"라는 표현이 떠오를 만큼, 사랑과 폭력이 얽힌 이 단편의 분위기는 글뿐 아니라 감정을 통해서도 선명히 전달된다.

 

두 번째 단편은 학습지 교사인 세영의 이야기를 다룬다. 교육, 판매, 서비스가 혼재된 그녀의 직업은 외적으로는 점잖아 보일 수 있지만, 현실은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세영은 매출 압박 속에서 양심과 자존심을 포기하며 욕망과 허영에 집착한다. 그녀가 달려가던 목표인 "홍보대사" 자리는 그녀의 탐욕과 위선 끝에서 차갑게 무너지고 만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욕망에 의존해 달려가던 인간의 몰락을 보여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세영의 이 같은 삶은 독자에게 공포를 주기보다는 "무언가에 몰두하며 달리는 삶"의 위험성을 현실적으로 경고하는 메시지처럼 다가온다.

 

이외에도 다른 단편들은 인간 내면의 다양한 자아와 갈등을 집중 조명한다. 각각의 이야기에서 등장인물들이 겪는 심리적 변화를 통해, 독자는 인간 본성의 다층적인 면모와 그것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색다르게 경험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3의 얼굴들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수많은 인간 내면 자아의 이야기로, 때로는 충격적이고 때로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단편들 사이의 분위기와 장르의 차이는 독서의 긴장감을 유발하며, 내용을 깊이 탐구할수록 인간 본성의 복잡한 속성과 그것이 빚어내는 생생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스스로의 내면이나 타인의 감정을 탐구하고 싶은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게 될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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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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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페이지의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이야기의 힘을 통해 인간 내면의 치유와 성장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평범한 중년 청소부 재니스를 중심으로, 말하고 듣는 행위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각자 속으로 간직해온 상처와 열망을 이야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풀어나가는 과정을 차분히 탐구하며, 독자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재니스는 겉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수행하며 만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마치 수집하듯 머릿속에 모아 둔다. 그녀의 행동은 단순한 호기심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의 이야기 수집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조차 숨기고 싶었던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이었다. 작품 초반부에서 재니스는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담담한 태도로 "말할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규정하지만, 점차 그녀의 과거와 속내가 드러나면서 독자는 그녀에게 숨겨져 있던 깊은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재니스의 변화는 B부인과의 만남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B부인은 그녀가 청소하러 다니는 집의 괴팍하고 예민한 주인으로, 책 초반에는 다소 반감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점차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재니스와 B부인은 서로의 상처를 꿰뚫어보고, 서로 치유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관계로 발전한다. 특히 B부인은 재니스가 자신을 '청소부'로만 제한하며 살아왔던 내면을 바라보고, 그녀가 진정으로 고백하고 치유받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지고, 그들 사이에 깊은 연대가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티베리우스라는 또 다른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티베리우스는 B부인의 아들로, 그녀의 집을 대학에 매각해 자신의 재산을 늘리고 싶어 하는 간교한 인물이다. 재니스와 B부인은 그의 계획에 맞서 싸우며 서로를 돕는다. 이 갈등을 중심으로 작품은 긴장감 있게 전개되며, 재니스의 내면 성장 과정도 한층 더 구체화된다. 특히, 그 투쟁 속에서 재니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 폭력적인 양부와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서 비롯된 치명적인 사건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용기를 얻는다. 그녀는 열세 살 때, 양부의 학대를 피해 동생을 지키기 위해 양부를 죽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그녀가 평생 동안 느껴온 죄책감은 동생을 지키기 위해 내렸던 선택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선택이 어머니와 동생의 삶에 남긴 상처를 떠올리며 깊어진 것이었다.


재니스가 이야기를 털어놓는 장면은 이 작품의 핵심적인 순간이다. 그녀는 자신의 고백을 통해 비록 물리적 환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조금 더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 변화를 통해 이야기가 가지는 본질적인 힘을 명명한다. 즉,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를 치유하고 타인과의 공감을 통해 연대하게 하며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야기를 열망하는가? 이는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결핍과 상처를 메꾸어주는 본질적이고 인간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단순히 감동적인 서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이야기의 힘이 단순히 개인적 치유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개인들을 연대하게 하고 사회 속에서 관계를 재구성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동시에, 독자인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이야기를 돌아보게 만들고, 타인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며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


 이 소설은 이야기란 단순히 삶의 조각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더 풍부하게 하고, 중요한 관계를 세우는 연결고리라는 점을 일깨우는 데 성공한다. 샐리 페이지는 자신의 섬세한 문체를 통해 독자들에게 따뜻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졌으며, 재니스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행위'에 담긴 가치와 힘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으며, 특히 우리의 삶에 소소하지만 중요한 이야기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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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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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이며 소설가인 앨런 라이트먼의 <아인슈타인의 꿈>은 아인슈타인이 1905년 그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기 직전에 꿨을 법한 상상 속의 꿈을 기반으로 하여 시간의 개념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은 이색적인 소설이다. 이 책에는 각 장마다 시간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독특한 세계가 펼쳐진다. 저자가 만들어낸 짧은 이야기 속에서 시간은 거꾸로 돌아가기도 하고, 원처럼 순환하기도 하며, 느리게 가기도, 빠르게 가기고, 완전히 정지되기도 한다. 이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우리와 똑같이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불행해 보이기도 한다. 이는 인간이란 존재가 시간과 불가분의 연관이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 다루면서 두 개념의 통합적 성질을 강조하는데, 왜 저자는 공간을 상당부분 배제하고 시간에 집중하게 되었을까? 내가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의문은 바로 그것이었다. 찬찬히 소설 속 장면을 하나씩 음미하면서 나는 저자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통해서 그에 대한 답을 구현할 수 있진 않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간은 인간 경험의 본질적인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공간은 배경으로 존재하며, 시간과 분리할 수 없는 속성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많은 예술 작품에서 공간은 고정되어 있어도, 그 안의 시간 흐름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곤 한다. 반면 시간은 공간에 비해서 독집적인 존재로 인정받곤 하는데, 실제로 우리는 언어 생활에서도 시간은 독립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쏜 화살 같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 느리게 흐른다, 빨리 흐른다 등등. 아마도 저자도 그런 인식론 속에서 인간에게 시간이 갖는 존재론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영원히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저자는 표현한다. 영원히 살 수 있으니 언제든 해도 돼, 굳이 지금일 필요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원히 살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체험을 다 하며 현재를 향유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두 부류의 생각 모두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이렇듯 인간은 동일한 공간에 있어도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물리적 시간 왜곡을 심리적 상대성으로 확장한 저자의 예술적 창의성이 너무 잘 드러난 에피소드여서 이 부분이 내게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하여 나는 시간은 그를 경험하는 사람의 주체적이고 감정적인 체험의 핵심이라는 걸 배웠다. 




또한 저자는 시간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힘이며, 인간은 시간을 바탕으로 자신의 선택에 의해 삶을 살아간다고 본다. 이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에피소드는 위대한 시계탑 외에는 그 어떠한 시계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일 것이다. 해당 에피소드 속에서 인간은 일상을 살다가 순간순간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시간의 손길을 느끼고, 그럴 때마다 거대한 시계탑에 가서 절을 하며 경배를 한다.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설정이긴 하지만,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우리는 공간이 아닌 시간이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시간이 흐름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고 싶어한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이어진다. 우리는 시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지만, 참으로 어리석게도 시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흘러간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후회하거나 하는 감정은 인간의 이러한 우매한 집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저자는 시간이 되돌아가는 세계나, 시간의 축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흐름이 늦어지다가 멈추는 세계 등을 등장시켜서 시간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풀어놓는다. 이 부분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장악하고 지배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심이, 얼마나 현실의 의미를 약화시키는지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라떼(나 때는 말이야)는 이란 꼰대 발언은, 이런 욕망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과학에 문외한인 일반 대중에게도 상대성 이론은 공간보다 시간 개념이 더 직관적이다. 시간 팽창이나 왜곡 같은 것은,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에서도 다루어지듯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개념이다. 그래서 저자는 어쩌면 대중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기에, 난해한 공간보다 친근한 시간 개념을 빌려와 우리 삶을 반추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세계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세계도 아닌 나의 세상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에 미안해 하지 않으려면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좋을까. 내 삶의 불가분의 존재인 시간에 대해 탐구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이 던지는 철학적 사유는 깊은 울림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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