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 - 우국·한여름의 죽음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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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일본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작가,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의 문학은 일본문학사의 고전적 맥락 속에서 늘 이중적인 위치를 점유한다. 그는 누구보다 일본적인 소재를 집요하게 다루었음에도, 정작 작품이 그려내는 감정적·미학적 효과는 일본적 정서와 어긋나 있다. 바로 이 모순적 균열이 그의 문학을 세계문학으로 확장시키는 지점이며, 동시에 그의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핵심적 이유이다. 이 단편집에서 드러나는 미시마의 문학적 사유와 미학적 전략을 살피는 일은, 일본이라는 공간을 넘어 근대 이후 인간 존재가 겪는 소외·정체성의 파편화·욕망의 균열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일본 현대문학은 종종 정서적 지역성(local affect)”으로 규정된다. 습한 여름의 공기, 소리의 여백, 계절의 시간성, 절제의 미학인 와비, 쇠락의 미학인 사비, 말하지 않은 비극미와 숭고미인 유겐의 미학, 공동체적 억압 등 일본적 감정구조가 작품 전반에 깊이 스며 있다. 그러나 미시마 유키오는 그 틀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일본적 소재를 빈번히 차용하면서도, 그 소재를 문화적 표상이나 장소적 상징으로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인간 존재의 원초적 층위인 육체·욕망·죽음·파국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최소화하여 사용한다.

 

온나가타가 그 대표적 작품이다. 가부키라는 극도의 일본 전통문화는 문화의 무대지만, 미시마는 이를 가면의 구조와 정체성의 흔들림이라는 보편적 문제를 탐구하기 위한 장치로만 사용한다. 이는 일본적 서정성의 특유한 과잉 감정과는 정반대이며, 오히려 사르트르·카뮈의 실존적 불안에 가깝다. 저자는 일본적 풍경을 지우고 존재의 상처를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지역성을 떠나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한다.

 

일본 미학은 본래 감추기·비워두기·쇠락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러나 미시마는 이러한 미학을 충실히 따르는 대신, 그것을 전복시키거나 균열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에서 아름다움은 절정 직전의 긴장이나 절정 직후의 균열에 배치된다. 이는 디오니소스적 충동, 즉 충만한 생의 에너지와 파멸 본능의 결합과 밀접히 닿아 있다.

 

우국은 그 미학의 정점이다. 충성·사랑·육체·국가라는 요소가 모두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지점에서 폭발한다. 전통적 일본미학에서는 죽음의 장면조차도 절제와 여백의 방식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으나, 미시마는 이를 폭력적인 완성, 절정에서의 붕괴로 그려낸다. 이는 고전적 비극미와 연결됨과 동시에 현대적 존재론이 말하는 정체성의 해체 순간을 상징한다. 미시마의 작품에서 절정과 파국은 그저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식인 셈이다.

 

단편집의 인물들은 대부분 자기 인식과 타자 인식의 충돌 속에서 무너진다. 담배속 소년은 타인의 응시를 통해 자기 존재를 처음 자각한다. 이는 라캉의 시선의 이론혹은 푸코의 감시와 규율의 구조와 맞닿는다. 시 쓰는 소년은 창작이라는 내적 세계와 현실적 관계와 감정의 충돌 속에서 믿어온 언어의 확신이 부서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루코는 아름다움 속에 내재된 욕망의 충돌을 다룬다. 온나가타의 만기쿠는 수행된 성(gender-as-performance)이 무너지는 순간 감정의 파국을 경험한다.

 

이 모든 작품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근대 이후 인간은 왜 이렇게 많은 가면을 쓴 채 살아가야 하는가.”

 

저자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가면이 흔들리는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구조적 불안과 근대성의 균열을 드러낸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자기 증명과 소모, 불안과 번아웃 속에서 정체성의 균열을 경험한다. SNS 시대의 자기 브랜딩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가면을 요구하고, 속도와 경쟁은 존재의 허기를 심화시킨다. 그래서 미시마의 인물들은 시대와 문화의 한계를 넘어 오늘의 우리를 그대로 반사하는 거울이 된다.

 

왜 우리는 완벽을 강요받는가? 왜 아름다움은 그토록 덧없게 느껴지는가? 왜 우리는 절정에서조차 불안을 느끼는가? 왜 욕망은 늘 파국의 가능성을 동반하는가?

 

저자는 위 질문들에 대해 심리학적·사회학적 설명을 하지 않는다. 대신 문학적 장면으로 증명해낸다. 그의 문장은 학문보다 서늘하고, 철학보다 더 직접적이며, 이론보다 더 깊이 인간의 심연을 찌른다.

 

이 단편집을 다시 읽으며 확신하게 된 사실이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균열을 가장 예민하게 포착한 세계문학의 작가라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일본의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 정서를 배경으로 밀어낸다. 그의 미학은 일본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그 전통이 품은 균열을 드러낸다. 그의 인물들은 일본 사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근대 이후 인간의 불안이라는 보편적 구조를 보여준다. 미시마의 문학은 다음을 향해 있다. “인간은 절정의 순간에 가장 정확히 드러난다.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은 언제나 파국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오래되었지만 낡아 있지 않다. 일본적이지만 세계적이며, 전통적이지만 현대적이다. 가장 지역적인 소재로 가장 보편적인 비극을 쓴 작가, 그게 바로 미시마 유키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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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들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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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작가의 장편소설 얼굴들은 단순한 범죄 서사를 넘어, 인간의 비가시적 얼굴을 탐구하는 일종의 심리·사회적 해부도처럼 읽힌다. 책을 펼치자마자 느껴지는 압도적인 긴장감과 차가운 서술의 방식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평범한 악이 얼마나 다층적이고 모순적인지 되묻게 만든다.

 

책의 소개 문구는 이 작품의 핵심 세계관을 명징하게 제시한다. “돈과 명예에 눈이 먼 자,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자, 오직 자신의 쾌락에 굴복한 자, 선의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평범한 악인들.” 이 문장은 인간의 악이 특별한 형태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히려 악은 익명적이고, 일상적이고, 때로는 정상성의 얼굴을 하고 우리 곁을 스며든다.

 

한국 속담에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를 면역된 악성(惡性)의 심리또는 평범한 악(Banality of Evil)’로 설명해 왔다. 고전적인 범죄소설의 악인은 선명한 동기와 상징적 이미지를 가진 존재들이 많았지만, 얼굴들이 제시하는 악은 그러한 전형성을 벗어난다. 이 소설의 악인들은 우리와 동일한 언어를 쓰고, 같은 공간을 살아가며, 거의 구분되지 않는 일상성을 지닌 얼굴로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섬뜩하고, 더 현실적이다.

 

소설은 강렬한 사형 장면으로 시작해 독자를 긴장 속으로 끌어당긴다. 그러나 이 장면의 목적은 잔혹성의 표현이 아니다. ‘살인의 죄책을 느끼지 못하는 자라는 존재를 제시함으로써 인간이 도덕적으로 무너지는 방식의 기원을 묻는다. 이후 이어지는 장면들에서는 사건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씩 등장하며, 그들의 욕망·침묵·회피·이기심이 교차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 속 악의 얼굴들이 결코 특별하거나 극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도덕적 무감각을 훈련해온 경찰, 명예와 권력을 위해 윤리를 포기한 교수, 타인을 파괴해도 죄책 없이 사라지는 대학생, 이 모든 삶을 관찰하며 글의 소재로 삼으려는 소설가까지 각자의 얼굴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동일한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특히 여경 광심이라는 인물은 이 소설의 주제를 관통하는 축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그녀의 태도는 단순한 악의 전형이라기보다, 감정의 기능이 마모된 현대인의 초상처럼 읽힌다. 감정이 마모된 인간은 더 쉽게 타인을 도구화하고, 더 쉽게 윤리적 경계를 잃는다. 광심은 그런 의미에서 악의 개인적 형태라기보다, ‘악의 사회적 징후를 상징하는 존재다.

 

이 작품이 가진 흡입력은 단순한 범죄의 퍼즐을 맞추는 재미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는 서늘한 시선,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어두운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에 있다. 등장인물 각각은 하나의 역할이라기보다, 다양한 인간성이 교차하는 장()이다. 악은 특정 주체에게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전이되며, 서로 다른 얼굴을 쓰고 나타난다. 이 점은 작품을 사회적·철학적 독해로 확장하게 만든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 삶의 결을 드러내는 일이라면 __은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삶과 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무심해지곤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러한 무심함이 어떻게 다른 형태의 악과 연결되는지 보여주며, 독자에게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문학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도 깊은 감정적 긴장 속으로 침잠하게 만든다. 미스터리적 구조 위에 인간학적 질문을 겹쳐놓음으로써, 장르적 매혹과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끌어낸 것이다.

 

__은 범죄소설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본질은 인간의 윤리 구조와 사회적 모순을 탐구하는 인문학적 소설에 더 가깝다. 악은 특별한 존재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잠복해 있는 가능성이라는 점을 환기한다. 우리는 어떤 얼굴로 타인을 대하는가? 우리는 어떤 얼굴로 사회 속에 존재하는가? 작품은 이 질문을 독자의 손에 쥐여주며, 서늘한 여운을 길게 남긴다.

 

얼굴들은 단순한 장르적 재미를 넘어, 인간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깊은 창문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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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아웃(TIME OUT) - 치열한 스포츠 현장에서 발견한 리더십 원칙
구자훈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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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아웃이라는 제목은 스포츠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경기의 흐름을 끊고 작전을 다시 정비하는 짧은 멈춤. 그러나 이 책이 다루는 타임아웃은 경기장 바깥,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과 조직의 조건 속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타임아웃을 단순한 휴식이 아닌 의식적으로 멈추어 관점과 방향을 재정렬하는 내적 기술로 정의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멈춤은 소극적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전략적 개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속도와 성과에 압박받는다. 멈추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강조되고,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삶의 의무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저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멈추지 않는 속도는 정말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책이 제안하는 타임아웃은 속도를 늦추라는 명령이 아니라, 방향성을 회복하기 위한 정교한 사고의 틀이다. 인간은 충분히 멈추고, 자신과 상황을 새롭게 바라볼 때 비로소 효과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인문학적 관점이 흐른다.

 

책은 이 타임아웃의 원리를 바탕으로 현대 리더십을 다섯 가지 요소인 관점, 신뢰, 동기부여, 문제 해결, 성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표면적으로는 리더십 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이끌고 이해하는가에 대한 탐구에 가깝다.

 

먼저 관점은 리더십의 출발점으로 제시된다. 관점은 단순한 시각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상황을 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문제를 다루는 방식도 바뀐다고 말한다. 이는 인문학에서 말하는 해석의 지평과 유사한 개념으로, 타인의 행동이나 조직의 문제도 관점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형태의 의미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두 번째 요소는 신뢰다. 저자는 신뢰를 속도가 아니라 누적된 관계의 결과물로 본다. 신뢰는 기술로 빠르게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리더가 일관된 태도와 책임감으로 구성원에게 남긴 경험의 총합이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신뢰는 기억과 감정의 축적이며, 타임아웃을 통해 리더가 자신의 태도를 돌아볼 때 더욱 단단해진다.

 

세 번째 동기부여에서는 리더의 언어와 관계 맺음의 방식이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다. 저자는 리더가 동기를 주입하는 존재가 아니라, 구성원 안에 이미 존재하는 가능성을 깨워내는존재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 중심의 교육 철학과도 통한다. 동기란 외부에서 강제로 넣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환경과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나는 내적 에너지라는 것이다.

 

네 번째 문제 해결은 리더십의 실질적 영역이다. 저자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가 리더의 핵심 자질이라고 말한다. 타임아웃의 개념이 여기서 실질적 역할을 한다. 상황을 멈추어 보고, 감정과 판단을 분리하고, 문제의 본질을 다시 묻는 과정은 인문학에서 말하는 성찰의 과정과 동일하다. 리더는 이 과정을 통해 문제를 단순히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마지막 요소인 성장은 리더 개인의 내적 확장을 뜻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성장의 관점은 더 빨리, 더 많이가 아니다. 성장의 핵심은 깊어지는 것, 즉 자기 자신에 대한 통찰이 깊어지고 관계에 대한 이해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루틴과 복기를 성장의 도구로 제시한다. 이는 인문학적 성찰과 정확히 연결되는 지점으로, 리더는 먼저 자기 자신을 다듬어야 타인을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전체적으로 타임아웃은 리더십을 보다 인간적이고 성찰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한 책이다. 단순한 실무 지침서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관계·행동을 정교하게 다루는 책에 가깝다. 변화의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른 시대에 저자가 말하는 멈춤의 기술, 조직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꼭 필요한 작업이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잘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더 멀리 간다.”

 

그리고 이 멈춤의 기술은 리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속도에 지친 모든 현대인이 익혀야 할 지적·정서적 스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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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대체되지 않는 나 - AI 혁명에도 대체되지 않는 사람의 조건
김재광 지음 / 문예춘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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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들기 위한 전략

 

올해 우리는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은 전문가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지만, 1년 사이에 일상은 급격하게 변했다. GPT라는 도구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인간의 사고 과정과 노동 방식, 심지어 감정의 구조까지 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변동 속에서 출간된 <AI 시대, 대체되지 않는 나>는 기술을 넘어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 방식을 다시 묻는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은 단순한 위기의식을 자극하는 표현이 아니다.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해석하라는 요청이다. AI는 인간의 반복적이고 계산적인 능력을 빠르게 넘어섰다. 정보 검색, 요약, 정리, 패턴 분석 등 인간의 인지 노동 상당 부분이 기술로 치환 가능한 영역이 되었다. 저자는 이 현상을 회피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명확히 구분해 논의를 시작한다.

 

책은 AI 시대의 생존 방식을 다섯 가지 축으로 정리한다. 첫째,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 역량을 강화할 것, 둘째, 감정·관계·서사로 구성된 인간적 깊이을 만들 것, 셋째 AI와의 협업 역량을 기를 것, 넷째 개인 브랜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만들 것, 마지막으로 평생 학습을 통해 정체성의 갱신을 추구할 것이 바로 핵심 메시지이다.

 

이 다섯 축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둔 시각이다. 저자는 AI를 위협으로 보기보다 인간다움의 본질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로 읽을 것을 제안한다. 인문학이 늘 물어온 질문인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다움을 찾을 것인가AI 시대에 재점화된 것이다.

 

AI가 가장 어려워하는 영역은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감정과 이야기의 층위이다. 인간의 감정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생애 경험·기억·욕망이 축적된 결과다. 기술은 이러한 맥락의 결을 완전히 모사하기 어려워한다. 물론 최근의 GPT 모델이 보여준 대화 능력과 감정적 공명은 매우 고도화되었고, 인간이 받는 위로의 한 형태를 대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경험은 데이터로 치환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감정의 깊이, 상처의 맥락, 관계 속 신뢰의 형성 과정 등은 기술이 수월하게 접근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세계다. 저자는 바로 이 영역이 AI 시대에도 인간을 고유하게 만드는 핵심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인간만이 가진 능력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 고유성만을 강조하는 전통적 인문학적 관점은 기술의 속도 앞에서 불완전한 위안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오히려 기술과 협업하는 능력을 미래의 핵심 역량으로 제시한다. 반복적이고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기술에 위임하고, 인간은 사고·창의·관계·결정이라는 고차원의 영역에 집중하는 새로운 노동 구조를 제안한다. 이는 기술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가 아니라, 인간의 시간과 정신을 보다 인간답게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다.

 

AI 시대의 또 하나의 핵심은 개인 브랜드의 중요성이다. 기술이 대부분의 기능을 복제하는 시대에는 직업적 능력만으로는 자신의 가치를 설명하기 어렵다. 저자는 직업보다 브랜드가 먼저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브랜드를 일관된 관점과 세계관의 총합으로 정의한다. 동일한 정보를 다루더라도 누구의 시선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체되지 않는 개인은 기능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자기만의 관점과 이야기 구조를 가진 사람이다.

 

책의 마지막 장은 가장 실천적인 조언을 담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대한 변혁이 아니다. 핵심은 작은 학습의 루틴, 정기적 복기, 글쓰기, 독서 같은 사유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는 정체성의 갱신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학습은 더 이상 지식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계속해서 업데이트하는 과정이다. 기술 혁명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자기 성찰과 성장의 루틴이라는 것이다.

 

AI 시대, 대체되지 않는 나는 얇은 책이지만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기술의 속도가 인간의 존재를 위협한다고 말하기보다, 저자는 기술 덕분에 인간이 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지점을 찾으라고 권한다. 대체되지 않는 인간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변화 앞에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를 다시 정의하는 인간이다. AI 시대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재해석이며,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향해 독자를 조용히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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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기획, 살아남는 브랜드 - 대한민국 식탁을 바꾼 30년 차 F&B 기획자의 노하우
이주은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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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기반 브랜딩의 중요성

 

오늘날의 시장은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형태로 개인브랜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SNS·유튜브·커뮤니티 중심의 디지털 플랫폼은 개인 서사와 취향을 시장의 언어로 가공하며,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기획하고 외부 세계에 제시해야 하는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획·브랜딩 분야의 담론은 더 이상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는 어떤 이야기로 기억될 것인가’, ‘나의 선택과 삶의 방식은 어떤 경험을 전달하는가라는 질문이 모든 개인에게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수십 년 동안 F&B 산업에서 기획을 업으로 삼아온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하는 기획과 지속가능한 브랜드의 조건을 실례 중심으로 분석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의미는 식품 산업을 벗어나 훨씬 넓은 지평으로 확장된다. 그것은 이 책이 다루는 핵심이 상품이 아니라 기획의 본질’, ‘경험의 구조’, ‘브랜드의 기억같은 더 근원적인 개념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은 시대 변화 속에서 개인과 조직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움직여야 하는가라는 인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기획을 본질을 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한 조언처럼 들리지만, 사실 현대의 소비 환경에서는 가장 어려운 과제다. 모든 상품은 잘 만든 것처럼보인다. 기술적 완성도는 상향평준화되었고, 패키지·광고·유통 구조는 빠르게 복제된다. 이때 브랜드를 구분 짓는 것은 표면이 아니라 출발점,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본질을 찾는 과정은 철학적이다. 본질은 시장조사만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소비자의 말 그대로를 받아 적는다고도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실제 예시들을 통해 본질을 찾지 못한 브랜드가 얼마나 쉽게 실패하고, 반대로 본질을 견고히 잡은 브랜드는 어떻게 시장 구조를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사례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성공은 잘 만들어진 상품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올바른 문제를 찾는 데서 태어난다. 이는 소비자조차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말하지 못하는 시대일수록 한층 더 유효한 방식이다. 좋은 기획은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삶은 어떤 순간에서 멈추고, 어떤 순간에서 움직이는가를 읽어내는 감각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제시되는 기획의 철학은 인문학적 성찰과 깊게 연결된다.

 

현대의 기획자는 변화를 읽지 못하면 뒤처지고, 변화를 너무 빨리 읽으면 무시된다. 시장은 늘 적절한 속도를 요구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반 걸음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위치 개념이 아니라, 변화와 안전의 균형점을 뜻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불안해한다. 진화 심리학적으로도 낯선 자극은 위협으로 인식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다고 변화 자체를 회피하면 시대에 뒤쳐진다.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의 인지 구조와 사회적 흐름의 중간 지점을 탐색해야 한다. 중간의 예술F&B 기획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가·강사·창작자·프리랜서 등 자신의 이름으로 일하는 개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너무 빠르면 독자는 따라오지 못하고, 너무 느리면 시대가 먼저 떠나간다. 결국 반 걸음 앞서 있다는 말은 변화의 방향은 읽되, 사람의 보폭은 고려하라는 조언이다. 이는 기술·교육·예술·출판 등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원칙이며, 기획자들이 가장 자주 놓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저자가 가장 강하게 강조하는 메시지는 브랜드는 말이 아니라 기억될 감정으로 설계된다는 점이다. 인간의 기억 구조를 보면 이것은 단순한 비유나 감정적 수사가 아니다. 학습심리학·인지과학·마케팅 심리학 모두 아래의 사실을 반복적으로 증명한다. 사람은 정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감정이 동반된 경험을 기억한다. 예컨대 수학을 가르치는 강사인 내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학생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공식이나 풀이가 아니라, 문제를 풀었을 때 느꼈던 성취감이다. 음악을 배우는 사람에게 선명하게 남는 것은 음표가 아니라 연주 직후의 떨림일 것이다. 소비자에게 남는 것도 제품의 기능보다 사용 경험에서 생긴 감정이다.

 

저자는 F&B 현장에서의 수많은 경험을 예시로 들며, 성공한 브랜드들은 감각 경험, 즉 향, 온도, 질감, , 공간을 통해 감정을 디자인해왔다고 설명한다. 이 지점에서 책의 논조는 단순한 실무의 차원을 넘어, 경험론적 인문학에 닿는다. 브랜드는 결국 삶의 한 장면으로 소비자에게 들어가고, 그 장면이 감정과 결합될 때 비로소 기억, 그리고 충성이 만들어진다. 이 구조는 개인 브랜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들은 당신의 기술보다 당신에게 받았던 느낌을 더 오래 기억한다.

 

현대의 브랜드는 짧은 성공을 얻는 데는 능숙하지만, 오래 남는 데에는 서툴다. 저자는 성공은 운일 수 있다. 그러나 지속성은 철학이다라고 말한다. 변화의 파고가 아무리 커도 무너지지 않는 브랜드에는 다음의 공통점이 있다. 명확한 지향점이 있다. 그리고 모든 의사결정이 그 지향점의 연장선에 있다. 또 시간이 흘러도 서사적 일관성이 유지된다. 저자는 한국의 대표 브랜드 오설록을 저자는 그 예시로 든다.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지만 섬의 찻잎이라는 오설록의 중심 서사는 변하지 않는다. 브랜드의 철학은 시대보다 오래가야 한다. 지향점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브랜딩 역시 나는 어디를 향해 가는 사람인가라는 질문 없이는 파편화될 뿐이다.

 

표면적으로 이 책은 마케팅과 기획에 대한 실무적 조언을 담고 있다. 그러나 책이 실제로 독자에게 열어주는 공간은 훨씬 더 깊다. 이 책은 결국 삶을 기획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본질을 찾는 일은 자기 탐구와 닮아 있다.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일은 자기 보폭을 인식하는 과정과 같다. 감정을 설계한다는 말은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지향점을 유지한다는 것은 인생의 중심을 잃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단순한 산업 실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기획하며 살아가야 하는 시대의 모든 개인을 위한 인문서라고 보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살아간다. 직업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는 방식은 결국 우리가 남긴 서사로 결정된다. 이 책이 말하는 스토리 기반 브랜딩은 기업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구현하는 방법론으로 확장될 수 있다.

 

본질을 찾고,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고, 감정의 기억을 설계하며, 지향점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하나의 브랜드, 하나의 이야기로 오래 남을 것이다. 이 책은 그 길을 탐색하는 데 좋은 안내서다. 단지 성공을 위한 책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사유의 도구가 되어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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