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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기획, 살아남는 브랜드 - 대한민국 식탁을 바꾼 30년 차 F&B 기획자의 노하우
이주은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스토리 기반 브랜딩의 중요성
오늘날의 시장은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형태로 ‘개인’과 ‘브랜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SNS·유튜브·커뮤니티 중심의 디지털 플랫폼은 개인 서사와 취향을 시장의 언어로 가공하며,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기획하고 외부 세계에 제시해야 하는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획·브랜딩 분야의 담론은 더 이상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는 어떤 이야기로 기억될 것인가’, ‘나의 선택과 삶의 방식은 어떤 경험을 전달하는가’라는 질문이 모든 개인에게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수십 년 동안 F&B 산업에서 기획을 업으로 삼아온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하는 기획과 지속가능한 브랜드의 조건을 실례 중심으로 분석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의미는 식품 산업을 벗어나 훨씬 넓은 지평으로 확장된다. 그것은 이 책이 다루는 핵심이 ‘상품’이 아니라 ‘기획의 본질’, ‘경험의 구조’, ‘브랜드의 기억’ 같은 더 근원적인 개념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은 “시대 변화 속에서 개인과 조직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움직여야 하는가”라는 인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기획을 ‘본질을 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한 조언처럼 들리지만, 사실 현대의 소비 환경에서는 가장 어려운 과제다. 모든 상품은 ‘잘 만든 것처럼’ 보인다. 기술적 완성도는 상향평준화되었고, 패키지·광고·유통 구조는 빠르게 복제된다. 이때 브랜드를 구분 짓는 것은 표면이 아니라 출발점, 즉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본질을 찾는 과정은 철학적이다. 본질은 시장조사만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소비자의 말 그대로를 받아 적는다고도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실제 예시들을 통해 본질을 찾지 못한 브랜드가 얼마나 쉽게 실패하고, 반대로 본질을 견고히 잡은 브랜드는 어떻게 시장 구조를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사례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성공은 ‘잘 만들어진 상품’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올바른 문제’를 찾는 데서 태어난다. 이는 소비자조차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말하지 못하는 시대일수록 한층 더 유효한 방식이다. 좋은 기획은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삶은 어떤 순간에서 멈추고, 어떤 순간에서 움직이는가”를 읽어내는 감각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제시되는 기획의 철학은 인문학적 성찰과 깊게 연결된다.
현대의 기획자는 변화를 읽지 못하면 뒤처지고, 변화를 너무 빨리 읽으면 무시된다. 시장은 늘 ‘적절한 속도’를 요구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반 걸음’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위치 개념이 아니라, 변화와 안전의 균형점을 뜻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불안해한다. 진화 심리학적으로도 낯선 자극은 위협으로 인식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다고 변화 자체를 회피하면 시대에 뒤쳐진다.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의 인지 구조와 사회적 흐름의 중간 지점을 탐색해야 한다. 이 ‘중간의 예술’은 F&B 기획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가·강사·창작자·프리랜서 등 자신의 이름으로 일하는 개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너무 빠르면 독자는 따라오지 못하고, 너무 느리면 시대가 먼저 떠나간다. 결국 ‘반 걸음 앞서 있다’는 말은 변화의 방향은 읽되, 사람의 보폭은 고려하라는 조언이다. 이는 기술·교육·예술·출판 등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원칙이며, 기획자들이 가장 자주 놓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저자가 가장 강하게 강조하는 메시지는 “브랜드는 말이 아니라 기억될 감정으로 설계된다”는 점이다. 인간의 기억 구조를 보면 이것은 단순한 비유나 감정적 수사가 아니다. 학습심리학·인지과학·마케팅 심리학 모두 아래의 사실을 반복적으로 증명한다. 사람은 정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감정이 동반된 경험’을 기억한다. 예컨대 수학을 가르치는 강사인 내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학생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공식이나 풀이가 아니라, 문제를 풀었을 때 느꼈던 성취감이다. 음악을 배우는 사람에게 선명하게 남는 것은 음표가 아니라 연주 직후의 떨림일 것이다. 소비자에게 남는 것도 제품의 기능보다 사용 경험에서 생긴 감정이다.
저자는 F&B 현장에서의 수많은 경험을 예시로 들며, 성공한 브랜드들은 감각 경험, 즉 향, 온도, 질감, 빛, 공간을 통해 감정을 디자인해왔다고 설명한다. 이 지점에서 책의 논조는 단순한 실무의 차원을 넘어, 경험론적 인문학에 닿는다. 브랜드는 결국 ‘삶의 한 장면’으로 소비자에게 들어가고, 그 장면이 감정과 결합될 때 비로소 기억, 그리고 충성이 만들어진다. 이 구조는 개인 브랜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들은 당신의 기술보다 당신에게 받았던 느낌을 더 오래 기억한다.
현대의 브랜드는 짧은 성공을 얻는 데는 능숙하지만, 오래 남는 데에는 서툴다. 저자는 “성공은 운일 수 있다. 그러나 지속성은 철학이다”라고 말한다. 변화의 파고가 아무리 커도 무너지지 않는 브랜드에는 다음의 공통점이 있다. 명확한 지향점이 있다. 그리고 모든 의사결정이 그 지향점의 연장선에 있다. 또 시간이 흘러도 서사적 일관성이 유지된다. 저자는 한국의 대표 브랜드 오설록을 저자는 그 예시로 든다.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지만 ‘섬의 찻잎’이라는 오설록의 중심 서사는 변하지 않는다. 브랜드의 철학은 시대보다 오래가야 한다. 지향점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브랜딩 역시 “나는 어디를 향해 가는 사람인가”라는 질문 없이는 파편화될 뿐이다.
표면적으로 이 책은 마케팅과 기획에 대한 실무적 조언을 담고 있다. 그러나 책이 실제로 독자에게 열어주는 공간은 훨씬 더 깊다. 이 책은 결국 ‘삶을 기획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본질을 찾는 일은 자기 탐구와 닮아 있다.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일은 자기 보폭을 인식하는 과정과 같다. 감정을 설계한다는 말은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지향점을 유지한다는 것은 인생의 중심을 잃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단순한 산업 실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기획하며 살아가야 하는 시대의 모든 개인을 위한 인문서라고 보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살아간다. 직업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는 방식은 결국 우리가 남긴 서사로 결정된다. 이 책이 말하는 스토리 기반 브랜딩은 기업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구현하는 방법론으로 확장될 수 있다.
본질을 찾고,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고, 감정의 기억을 설계하며, 지향점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하나의 브랜드, 하나의 이야기로 오래 남을 것이다. 이 책은 그 길을 탐색하는 데 좋은 안내서다. 단지 성공을 위한 책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사유의 도구가 되어주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