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투더퓨처, 역사의 시계를 돌리다 - 뉴스로 읽는 세계사
김상운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상운님의 <빽투더퓨처, 역사의 시계를 돌리다>는 카드 뉴스형 시사서의 외형을 띠고 있으나, 실제로는 한국 현대사를 해석하는 인식 틀을 재배치한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에 입각한 책이었다. 다만 이 책은 정책 제안이나 미래 전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어떤 조건 속에서 판단해 왔는지를 추적함으로써, 한국 현대사가 작동해 온 구조적 좌표를 드러낸다. 이 점에서 이 책의 핵심적 성취는 처방이 아니라 시야 교정에 있다.

 

이 책이 남북 관계를 다루는 방식은 기존의 민족사적·도덕적 접근과 뚜렷이 구분된다. 저자는 남북 분단과 갈등을 민족 내부의 비극이나 선택의 결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북문제를 냉전, 탈냉전, 신냉전으로 이어지는 국제질서 변동의 부산물로 간주한다. 남북사는 독립적인 역사라기보다, 강대국 질서 속에서 형성된 관계사이며, 선택의 역사라기보다 선택지가 제한된 상태에서의 대응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한국 현대사에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온 책임 논쟁을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무엇이 옳았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묻는 대신, 이 책은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조건과 제약을 먼저 분석한다. 이는 행위자의 책임을 소거하기 위한 접근이 아니라, 행위가 발생한 구조적 맥락을 선행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읽는 나는 도덕적 평가 이전에 정치·외교적 환경의 작동 방식을 검토하게 되었다.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은 미··러를 단순한 배경 변수가 아니라 능동적 행위자로 다룬다는 점이다. 한국 현대사는 강대국 간 세력 균형 변화가 가장 밀도 높게 관철된 사례 중 하나였다. 냉전은 이념 대립 이전에 권력 배치의 문제였으며, 오늘날의 미중 경쟁 또한 새로운 형태의 구조적 긴장으로 보인다. 이 책은 한국이 이러한 구조 속에서 언제나 주체이면서 동시에 제약된 행위자였음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저자는 한반도의 위치를 중심이나 주변이 아닌 경계선으로 규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반도는 국제질서의 변동이 가장 먼저 감지되고, 가장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공간이다. 이 경계성은 일시적인 역사적 불운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어 온 구조적 조건이었다는 점에서 분석의 대상이 된다.

 

이 책은 과거 서술에 머물지 않고, 과거의 조각을 모아 현재의 뉴스와 국제정세를 해석하는 인식 틀로 확장한다. 남북 관계, 북핵 문제, 미중 갈등, 러시아의 재등장은 개별 사안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시간축 위에 놓인다. 그 결과 현재를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누적된 구조의 결과로 인식하게 된다.

 

이 책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이 책의 방법론적 선택이다.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는 대신,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한다. 한국 현대사를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국제질서 속 위치의 문제로 재배치함으로써, 이 책은 한국 사회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좌표를 보다 정밀하게 조정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등급을 이기는 생기부 독서법
김수미 지음 / 빅피시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등급을 이기는 생기부 독서법

독서 능력이 어떻게 대학이 원하는 사유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가

 

대입에서 독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독서는 정말로 대학이 판단하고 싶은 능력 을 보여줄 수 있는가.

 

오랫동안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나는 늘 이 질문에 부딪혀왔다. 학교 현장에서 독서는 과목 간의 균열을 잇는 다리처럼 기능하지만, 대입이라는 좁은 문턱 앞에서는 그 의미가 종종 형식에 갇히거나 숫자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1등급을 이기는 생기부 독서법은 매우 현실적인 책이다. 이 책은 입시에서 독서를 왜 강조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전제로, 현행 학생부 구조와 실제 SKY 합격 사례, 전공별 추천 도서 목록을 체계적으로 엮어내며 대입 독서를 전략으로 재구성한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학생부 독서가 실제 대학 평가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입학사정관제의 도입 이후, 대학은 단순히 성적이 좋은 학생이 아니라 지적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학생, 즉 성장하는 두뇌를 지향하는 학생을 원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포착한다. SKY를 비롯한 주요 대학이 요구하는 것은 어떤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가 아니라, 책을 통해 어떻게 사고 구조가 변했고, 그 변화가 다른 교과의 이해와 문제 해결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다.

 

독서는 곧 지적 이동성이다. 이 책은 그 이동성을 학생부 독서 기록 속에서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예컨대 단순 감상문이 아닌, ‘문제의식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떤 지적 갈증이 생겼는지’ , ‘그 갈증이 다음 독서와 학습에 어떤 연쇄를 일으켰는지를 실제 합격생의 글을 통해 제시한다. 이런 흐름을 기록하는 방식은, 대학이 입학 후 성장을 예측하는 데 큰 단서를 제공한다.

 

 

책의 또 다른 강점은 전공별 추천 도서 목록의 풍부함이다. 생명과학, 공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 전공별로 탄탄한 서지들을 제시하며 학생이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명료하게 안내한다. 특히 주요 합격생들이 실제로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식으로 학생부에 녹여냈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은 현장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매우 실질적인 참고점이 된다. 학생부 독서가 추상적인 조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서류에서 어떻게 점수를 만들어내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책의 한계 역시 드러난다. 이 책은 분명 생기부 독서를 성공시키는 전략서로서는 뛰어나지만, 평범한 학생이 현실적으로 완독하고 소화할 수 있는 책인가?라는 질문에는 조금 다른 답을 준다. 제시된 추천 도서들은 전반적으로 난이도가 높다. 입문 동기나 배경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학생들, 혹은 기초 학습이 흔들리는 중위권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책이 강조하는 지적 이동성과 학습 간 전이 효과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독서 능력 자체가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 이 책은 명확하게 상위권 또는 상위권을 지향하는 학생을 위한 책이다. 전공별 도서 목록이 실질적으로 활용되려면 높은 독해력과 사유력이 필요하고, 합격 사례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강렬하지만 동시에 일반 학생이 그대로 따라 하기엔 다소 올라야 할 계단이 많아 보인다.

현장에서 학생을 지도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평균적 학습자의 실제 독서 역량은 대학이 기대하는 수준보다 훨씬 불안정하다. 이 책이 제시하는 리스트는 이 방향으로 성장하면 좋다는 이정표라기보다는, “이 정도는 읽어야 SKY에서 먹힌다는 기준선에 가깝다. 따라서 현실적 격차를 충분히 감안하여 독서를 계단식으로 설계하고,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는 분명하다. 독서를 입시 전략의 일부가 아니라 대학이 바라는 인재상과 직접 연결된 핵심 역량으로 설명한다는 점이 그렇다. 최근 대학들은 융합적 사고’, ‘문제 해결능력’, ‘전공 적합성을 강조하는데, 이 세 가지는 결국 깊이 있는 독서 경험 없이는 형성될 수 없다. 학생부 독서는 텍스트를 읽었다는 사실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사고 구조를 가시화하는 장치다. 대학이 보는 것은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가”, “그 생각이 어떤 탐구로 이어졌는가.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명확히 포착한다.

 

현실의 입시는 점점 더 정량에서 정성으로, 기록에서 구조로, 결과에서 과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 독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사고의 디딤돌 역할을 하는 필수 능력이다. 학생부 독서를 잘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학생이 지적 성장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일이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유용한 지도와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결국 1등급을 이기는 생기부 독서법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진 책이다. 상위권 학생에게는 입시 지형을 정확히 읽게 해주는 나침반이고, 중하위권 학생에게는 도전적인 안내서 혹은 지나치게 높은 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기준선이다.

 

그러나 이 양면성은 오히려 이 책의 필요성을 반증한다. 독서의 위상이 입시에서 얼마나 중요해졌는지, 대학이 지적으로 살아 있는 학생을 얼마나 찾고 있는지, 그리고 입시가 단순 서열 게임이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을 선발하려는 방향으로 구조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입시독서는 곧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고, 자기 사고를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작업이다. 그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한 기술서가 아니라,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구축하려는 학생들에게 깊은 프레임을 제공하는 사회학적 문서에 가깝다. 독서는 점수로 환원되지 않는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며, 대학이 진짜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그 성장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매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할매를 읽으며 - 팽나무가 인간의 역사를 바라볼 때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특정 인물의 비극도, 극적인 사건도 아니었다. 600년을 살아온 팽나무가 마지막 장면에서 내뱉는 단 한 문장이었다.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이 말은 위로도, 고발도, 교훈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자연이 인간을 부르는 방식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이 건조하고 감정 절제된 소설이 놀라울 만큼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역사를 자연의 시간 속에 다시 배치하기 때문이다.

 

1. 왜 하필 팽나무여야 했는가

 

팽나무는 한국의 생태·문화사에서 매우 특이한 위치를 점한다. 수백 년을 사는 장수목이자, 마을 어귀에 서서 사람의 출입과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는 존재. 서낭신으로 모셔지며 인간의 삶과 죽음, 탄생과 이주를 모두 보아온 나무다. 저자가 팽나무를 화자로 선택한 것은 단순한 토속적 상징 때문이 아니다. 팽나무는 인간보다 훨씬 긴 시간 단위로 세계를 인식하는 존재다. 인간의 왕조 교체, 종교의 흥망, 전쟁과 학살은 팽나무에게 하나의 계절 변화처럼 지나간다. 이 소설에서 팽나무는 기억하는 신이 아니라, 지켜보는 자연이다. 그래서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더 잔혹하고 정확하다.

 

2. 끊임없는 탄생과 죽음의 순환고리

 

이 소설은 개똥지빠귀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새의 죽음으로 그 뱃속의 씨앗인 팽나무가 탄생한다. 팽나무의 탄생은 버려진 아이 몽각의 생과 사로 이어진다. 몽각은 자신의 사체를 자신이 먹고 살게 해준 대자연에 보시한다. 몽각의 사체 위로 기어오르는 게는 수많은 새들의 먹이가 되고, 팽나무에 깃든 도요새 무리의 번식과 죽음은 생합의 탄생의 기반이 된다. 생합으로 대표되는 갯벌 위에서 다시 인간의 역사가 쓰여진다. 이렇게 자연과 인간의 이 교차 구조는 인간이 특별할 것 없는 존재임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작품 속에서 몽각의 죽음에 감정적 서술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몸에 바닷물이 밀려들고, 칠게들이 몰려드는 장면은 애도 없는 죽음이 아니라, 자연으로의 회귀 그 자체다. 이는 <사피엔스><, , >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자연주의적 관점과 맞닿아 있다. 인간은 자연의 정점이 아니라, 그 일부일 뿐이라는 인식 말이다. 이 소설은 그 명제를 서사로 구현한다.

 

3. 특별할 것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

 

이 소설에서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몽각은 수행자도, 영웅도 되지 못한다. 당골네, 춘삼, 경순, 경수, 동수로 이어지는 계보 역시 위대한 진보를 이루지 않는다. 그들은 떠나고, 속하고, 배신하고, 믿고, 죽는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을 거부하려는 인간의 태도다. 갯벌을 막고, 바다를 죽이고, 새떼를 몰살시키는 행위는 생존의 전략이 아니라 오만이다. 이 소설이 인간을 비판하지 않고 연민하는 이유는, 인간이 악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어리석은 존재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저자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4. 다양한 종교, 하늘과 연결되려는 인간의 몸부림

 

이 소설 속에는 참 많은 종교인이 등장한다. 불교, 무속, 천주교, 동학. 이 소설에 종교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종교는 모두 하늘과 연결되려는 인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절에서 자란 몽각, 서낭신을 모시는 당골네, 박해 속에서도 신을 선택한 유 도사공, 하늘님을 품고 죽어간 동학군 경수. 그러나 어떤 종교도 소설 속에서 인간을 구원하지 않는다. 대신 종교는 시대마다 소외된 인간들의 선택지로 등장한다. 이는 초월을 향한 믿음이라기보다, 구조적 폭력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다. 흥미로운 점은 마지막에 신부가 마주하는 존재가 신이 아니라 팽나무라는 사실이다. 구원은 하늘에 있지 않고,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 곁에 머물던 자연에 있었다.

 

5. 허무주의가 아닌, 관계의 윤리

 

이 소설은 어떤 면으로 봐도 희망적이지 않지만, 놀랍게도 그 결말이 허무주의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저자는 감정의 고조를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저자는 삶과 자연의 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글 속에 그려지는 인간의 고통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다만 그것이 자연의 질서를 거스를 때 비극이 구조화될 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팽나무가 유신부를 부르는 목소리는 심판이 아니라, 오래 기다린 존재의 확인이다. “인제 오냐라는 말에는 분노보다 시간의 무게가 실려 있다.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은 너무 많은 것들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쳐왔으나, 자연은 늘 그 자리에서 그 자신의 회복력으로 기다리고, 스스로를 달래며 인간을 품어준다. 오래된 팽나무 할매처럼 말이다.

 

이 소설은 인간에게 묻는다. 우리가 자연을 정복했다고 믿는 동안, 자연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느냐고. 사피엔스가 인간의 허구를 해체하고, , , 가 환경의 힘을 드러냈다면, 할매는 그 모든 사유를 한 그루 나무의 시선으로 내려놓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고, 울리지 않는다. 대신 독자를 자연의 시간 속으로 잠시 끌어당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에 내 안에 남은 것은 감동이 아니라, 먹먹한 인식의 전환이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였는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사실까지 후회 한편으로는, 팽나무 할매가 쓰러지지 않은 아직은, 조금 더 제대로 살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다짐이 고개를 든다.

 

인간의 문제를 인간 존재에 국한하지 않은 장구한 서사 속에서 나는, 그리고 이 소설을 접하는 모든 독자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지구를 살아가는 운명 공동체로서의 우리의 한계를, 그리고 공존의 지혜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후엔 모두 남남이 되기로 해
오영은 지음 / 김영사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후엔 모두 남남이 되기로 해

: 감각·주의·자기조절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 일상의 회복 기술

 

오영은님의 오후엔 모두 남남이 되기로 해는 표면적으로는 일상의 소소한 장면을 기록한 에세이지만, 인지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감각 조절, 주의 전환, 자기조절(self-regulation)이라는 핵심적인 인간 정신 기능을 다루는 흥미로운 텍스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독자의 감정적 위로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로, 과부하, 성취 압박, 창작적 공백 등 현대인이 공통적으로 겪는 심리적 현상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우리가 매일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정신적 조절의 메커니즘을 탐구하도록 안내한다.

 

책에서 저자는 종종 글을 쓰고 싶은데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이는 단순한 작가의 고민이 아니라, 인지과학에서 말하는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 과부하의 대표적 현상과 닿아 있다.

 

실행 기능은 작업 전환, 계획 수립, 억제 조절, 지속적 주의 등을 담당하는데, 이 기능이 피로하거나 감각 자극으로 과도하게 소모될 경우 실제 능력보다 훨씬 낮은 퍼포먼스를 보인다. , “꾸준히 하고 싶은데 되지 않는다는 경험은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에너지 배분 실패에 가깝다.

 

책은 이를 명확히 설명하진 않지만, 저자의 일상 묘사는 이러한 현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창작의 공백을 자책하는 대신, 몸과 마음의 여유가 회복되었을 때 다시 문장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꾸준히 하지 못함을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인지적 리듬의 일부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책 전반에 흐르는 중요한 정조는 아날로그적 감각이다. 저자는 현금 결제의 촉감, 종이의 질감, 오프라인 쇼핑의 천천한 리듬 등 디지털 환경에서 사라진 감각적 경험을 자주 언급한다.

 

인지과학에서는 이를 감각 통합(sensory integration) 혹은 감각 조절(sensory modulation)의 영역으로 설명한다. 특히 디지털 환경은 주의 자원을 빠르게 소모시키는 반면, 아날로그 환경은 예측 가능하며 느린 감각 자극을 제공한다. 이런 자극은 뇌의 생리적 각성도를 낮춰 안정감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저자가 조용한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유난히 소중하게 묘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과정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과부하된 신경계를 재조정하는 안전 신호(safety cue)’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계획을 모두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은 금요일이니 쉬어도 된다이런 메시지는 자기 완화(self-soothing)의 언어이다. 이 문장들은 단순한 감성적 위로가 아니라, 심리학적 분류로 보면 인지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 전략에 가깝다. 목표 실패를 실패로 규정하지 않고 전략적으로 조정 가능한 목표로 재해석하는 것, 이는 감정 조절 연구에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며, 스트레스 반응을 줄이고 자기 효능감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의 에세이는 생활의 실패를 정당화하는 대신, “실패를 조정 가능한 변이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제시한다. 그 결과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자기자비(self-compassion)를 학습하게 된다.

 

저자는 일상의 사소한 지점을 오래 들여다보는 방식을 사용한다. 예컨대 카페 직원의 표정 변화, 쇼핑을 하며 느끼는 촉각, 자동차의 진동 등이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이것은 주의의 방향성과 깊이(attentional style)를 보여주는 사례다. 산만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러한 집중 방식은, 실제로는 감정 회복의 중요한 요소다.

 

심리학에서 명상(mindfulness)이 그러하듯,현재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행동은 전전두엽의 활동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 지표를 낮춘다. 저자가 천천히 관찰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일상을 정교하게 살기 위함이 아니라, 주의를 세밀하게 조절함으로써 자기 감정을 재정렬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책은 기록의 역할에 대해 깊이 언급하지 않지만, 저자의 글 전체가 보여주는 바는 명확하다.글쓰기는 감정 표현의 도구를 넘어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을 보조하는 외부 저장장치로 기능한다. 일상의 감정·감각·판단을 텍스트로 외부화함으로써 저자는 인지적 부하를 줄이고 자기 정체성을 재구성한다. 이 과정은 인간의 뇌가 원래 수행하기 어려운 기능을 글이라는 외부 도구가 대신하는 사례다.

 

따라서 이 책은 일상의 감정 기록이라는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감정 조절·주의 전환·자기 이해를 학습하는 인지적 도구로도 읽힌다.

 

오후엔 모두 남남이 되기로 해는 견고한 논리로 조언을 제공하는 심리서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힐링 에세이이라는 감성적 장르를 넘어, 내게는 지쳐 있는 개인이 자기조절 능력을 회복하는 과정의 사례집으로 보였다. 읽고 나면 큰 위로를 약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의 신경계는 분명히 조금 더 조용해지고, 머릿속의 혼탁함은 약간 사라지며, “오늘 하루는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감각이 다시 돌아온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현대적 피로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형태의 따뜻함을 제공하는 텍스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테의 신곡 읽기 5 - 구약역사 : 사무엘서 단테의 신곡 읽기 5
진영선 지음 / 메이킹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침묵의 정치학, 기억되지 않은 몸들, 현대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사무엘서, 단테의 신곡읽기

 

 

구약 사무엘서는 흔히 이스라엘의 왕정 수립과 국가 형성이라는 역사적 전환기를 기록한 문헌으로 읽혀 왔다. 그러나 현대 여성이, 그리고 여성 주의적 관점으로 이 성서 속 여성 인물들에게 눈길을 돌릴 때, 사무엘서는 단순한 고대 종교 서사를 넘어 여성의 목소리가 어떻게 지워지고, 침묵이 어떻게 제도화되었는지를 폭로하는 고고학적 텍스트가 된다. 단테의 신곡 읽기 사무엘서를 읽으면서 내가 주목한 건 바로 성서 속에 스치듯이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이었다.

 

사무엘서 속 여성은 드물게, 그것도 매우 짧게만 등장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등장할 때조차 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나, 밧세바, 미갈, 다말 등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서사 전개의 핵심적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이들을 이야기의 주체로 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은 사건을 일으키는 배경’, ‘남성 주인공의 영적·정치적 전환의 매개’, 혹은 도덕적 교훈의 장치로 기능한다. 그들의 몸은 서사를 움직이지만, 그들의 의지·감정·판단·세계관은 거의 기록되지 않는다.

 

이 침묵은 우연한 서술적 결함이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 구조가 여성의 욕망과 경험을 삭제하는 방식을 반영한다. 사무엘서를 여성주의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바로 이 억압의 구조를 해체하고, 기억되지 않은 여성의 존재를 다시 드러내는 작업이다.

 

사무엘서의 첫 장면은 난임으로 고통받는 여인 한나의 침묵이다. 그녀의 입술은 움직이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이는 여성의 고통이 제도로부터 어떻게 침묵으로만 승인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한나는 분명 자신의 삶에 대한 요구를 표현하지만, 그의 기도는 사회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그녀는 어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으나,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녀의 소망은 개인적 욕망이 아니라 신을 위한 아이’, ‘국가의 지도자 탄생이라는 종교적 목적을 통해서만 정당화된다.

 

여성의 욕망은 신의 계획안에서만 승인된다. 이것이 고대의 일만은 아니다. 현대 여성 또한 여전히 결혼·출산·육아 같은 사회적 틀 속에서만 여성의 선택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사무엘서 속 한나의 침묵은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구조적이다.

 

사무엘서에서 가장 논쟁적인 여성은 밧세바다. 왕 다윗은 자신의 권력을 기반으로 그녀를 소유한다. 이후 밧세바의 남편은 왕의 명령에 의해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성서는 이 사건을 다윗의 죄라고 규정할 뿐, 밧세바의 피해 경험을 한 번도 서술하지 않는다.

 

밧세바는 철저히 객체화된다. 그녀의 몸은 권력이 사용하는 도구이며, 그녀의 감정은 역사 서술 밖으로 완전히 추방된다. 이 침묵은 단지 성서적 서술 방식의 특성일까? 그보다는 성폭력을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권력의 정치적 사건으로만 다루는 오래된 전통의 일부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미투 운동이 폭발적이었던 이유도 여기 있다. 너무 오랫동안 여성의 고통은 사건 뒤의 공백으로만 남아 있었다. 밧세바의 침묵은 텍스트의 불완전성이 아니라, 여성에게 왜 우리는 이렇게 늦게까지 말할 수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말은 사무엘서에서 거의 유일하게 스스로 말하는 여성이다. 동침을 요구하는 이복오라비 암논에게 그녀는 이렇게 선을 긋는다.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고대 문헌에서 보기 드문, 여성의 분명한 경계 설정이다. 그러나 결과는 비극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무 힘도 갖지 못한다. 성폭력은 일어나고, 텍스트는 곧바로 다말의 목소리를 삭제한다. 이후 서사는 다말의 슬픔을 앗살롬의 복수라는 남성 영웅 서사로 전환시켜버린다.

 

여성의 고통은 남성의 분노로 전유된다. 이 구조는 현대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다. 여성의 피해가 남성의 정치적 논쟁으로 대체되거나, ‘가족의 명예사회적 파장으로 환원되는 경우는 여전히 많다. 다말은 그 원형이다.

 

미갈의 서사는 여성에게 주어진 감정 노동의 고전적 사례다. 사울의 딸인 그녀는 다윗을 사랑하여 목숨을 걸고 그를 돕지만, 이후 그녀의 감정은 다윗의 종교적 권위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을 받는다. 미갈의 불임은 흔히 신적 심판으로 해석되었으나,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비판적 여성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상징적 장치다.

 

여성이 남성을 비판하면 사랑의 실패로 해석되고, 여성이 공적 영역을 비판하면 오만함으로 규정된다. 미갈의 침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여성 혐오의 오래된 구조를 비춘다.

 

사무엘서의 여성들은 모두 말을 빼앗긴다. 그러나 이 침묵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가 여성의 말하기를 어떻게 제한하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신곡 읽기 사무엘서가 내게 준 가장 큰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누가 기록을 작성하는가? 여성은 텍스트의 중심에 있음에도 기록의 중심에는 없다. 이는 오늘날 뉴스, 정치, 직장에서 여성의 경험이 종종 통계나 사건으로만 환원되는 구조와 맞닿아 있다.

그 다음은 누구의 고통이 정의의 기준이 되는가? 이다. 밧세바와 다말의 고통은 주류의 고민거리가 되지 못한다. 대신 남성 인물의 회개, 복수, 권력 정당화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오늘날에도 피해자보다 가해자와 사회적 파장에 더 초점을 맞추는 보도 방식이 반복된다.

마지막은 여성은 어떻게 존재는 있지만 주체는 아닌위치로 배치되는가?이다. 한나와 밧세바는 이야기의 중심을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은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현대 여성도 종종 비슷한 위치에 놓인다. 여성은 가정, 직장, 사회에서 기능적 핵심이지만, 구조적 권한은 남성에게 있다.

 

우리가 해설서의 이름을 빌려서 성서, 사무엘서를 다시 읽는 의의는 무엇일까. 내게 이 책은 단순히 성서의 내용을 알고 싶기 때문도 아니었고, 역사서나 고대 문학으로 읽히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사무엘서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지워진 여성의 자리를 복원하는 역사적·윤리적 시도로 기억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