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씹어 먹는 국어 4 - 설명하는 글 맛있게 먹기 특서 어린이교양 6
박현숙 지음, 박기종 그림 / 특서주니어(특별한서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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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아이들이 글을 읽지 못한다는 말은 교실에서 이제 추상적인 탄식이 아니다. 사교육 현장에서 매일 마주하는 현실은 더 구체적이다. 문장제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가 계산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무엇을 묻고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조건을 읽지 못하고, 상황을 상상하지 못하며, 문장의 논리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읽기 능력의 붕괴가 곧 사고 능력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문제의식, 그리고 그 원인을 설명하는 글을 읽지 못하는 데서 찾겠다는 진단 하에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제안하는 해법은 명확하다. 설명문을 읽는 방식을 구조적으로 훈련하자는 것이다. 중심 내용을 찾고, 단락의 역할을 구분하며, 원인과 결과를 정리하고, 요약과 재서술을 반복함으로써 글의 뼈대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감상이나 느낌 위주의 독해가 아니라, 설명 방식과 논리 구조를 인식하는 읽기를 목표로 삼는다. 이 접근은 방향성 면에서는 설득력이 있다. 뇌과학 연구에서도 정보를 의미 단위로 묶어 재구성하는 과정이 작업기억과 장기기억의 연결을 강화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고, 교육학적으로도 설명문 구조 인식은 읽기 이해도의 핵심 요소다. 특히 수학과 과학, 사회 과목에서 요구되는 읽기 능력은 문학적 감상이 아니라 이런 구조적 이해에 가깝다.

 

실제 현장에서 이 책의 장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일 것이다. 중심 문장이 무엇인지, 중요한 정보는 어디에 놓이는지, 설명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를 반복적으로 훈련하게 하는 구성은 불안한 학습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무엇을 하면 되는지가 분명할수록 아이들은 덜 흔들린다. 예측 가능한 학습 루틴은 정서적 부담을 낮추고, 사고를 시도할 최소한의 여지를 만들어준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사교육 현장에서 충분히 실용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실용성이 동시에 위험 요소로 보이기도 했다. 책에서 제시하는 많은 질문과 활동들이 자칫하면 사고를 유도하는 장치가 아니라, 답의 형식을 외우게 만드는 틀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심 내용을 찾아보세요”, “이유를 정리해 보세요”,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세요라는 지시는 분명 유용하지만, 그 질문이 왜 필요한지, 무엇을 생각하라는 것인지를 함께 다루지 않으면 아이들은 곧바로 형식만 모방한다. 실제로 아이들은 중심 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일 중요한 문장이요라고 답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말이다. 그 문장이 왜 중요한지, 다른 문장과 무엇이 다른지까지 사고가 이어지지 않으면 독해는 표면에서 멈춘다. 이 경우 뇌는 의미를 생성하지 않고, 용어만 저장한다. 메타인지적 언어만 남고 사고의 연결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설명문 훈련이 갖는 정답 지향성이다. 책의 많은 활동은 올바른 중심 내용’, ‘맞는 요약을 전제로 한다. 시험 대비라는 목적에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지만, 사고 훈련의 관점에서는 긴장을 요구한다. 독해력이 약한 아이일수록 틀릴까 봐 말하지 않으려 하고, 스스로 해석하기보다는 답처럼 보이는 문장을 고르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되면 읽기는 점점 안전한 선택의 문제가 되고, 사고는 위축된다. 교육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인지적 위축 상태에 가깝다. 생각을 확장하기보다, 실수하지 않는 전략이 학습된다. 이 상태에서는 독해 연습은 될 수 있어도 사유는 자라기 어렵다.

 

또 다른 우려 요소는 읽기의 목적이 지나치게 기능적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설명하는 글을 읽으면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왜 이걸 해야 하는지가 몸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훈련은 쉽게 소진된다. 뇌는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반복에 빠르게 저항한다. 설명문을 읽는 이유가 점수나 수행 과제로만 남아 있을 때, 학습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설명하는 글 읽기가 살아 움직이려면, 아이 자신의 언어로 말해보고, 자신의 생각이 글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경험하는 과정이 함께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해답이라기보다, 잘 정리된 도구에 가깝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고를 키우는 장치가 될 수도 있고, 또 하나의 암기 과제가 될 수도 있다. 사교육 현장에서 이 책을 사용할 때 중요한 것은 정답을 묻기 전에 반드시 생각의 경로를 말하게 하는 훈련일 것이다. 왜 그렇게 읽었는지, 다른 선택지는 왜 배제했는지, 그 판단의 과정을 언어로 풀어내게 해야 한다. 중심 내용을 고르게하기보다 만들게하고, 틀린 요약을 지우기보다 왜 그렇게 이해했는지를 함께 분석해야 한다. 설명문 훈련을 수학·과학 문제와 연결해, 글의 구조가 실제 사고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체감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분명 독해력 붕괴를 막고 싶었을 것이다. 사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의 문해력에 대한 공포를 늘 느끼는 내게 그 문제의식은 진지하고, 방법 또한 상당 부분 타당하다. 다만 설명하는 글을 가르친다는 일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그것이 사고를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사고를 대신해 주는 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의 성패는 교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어떤 질문이 던져지는가에 달려 있다. 읽기를 가르친다는 것은 글을 이해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아이의 생각이 움직이도록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양면을 인식한 채 조심스럽게 다루는 사람에게, 이 책은 제 가치를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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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 - 기후 붕괴 현장에서 마주친 인간과 비인간동물들
남종영 지음, 불키드 그림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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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의 조건이다. 그럼에도 이 위기는 좀처럼 실감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후 변화는 느리게 진행되고, 원인은 복잡하며, 결과는 불균등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느린 속도와 복잡성은 인간에게 사유의 공백을 허락했고, 그 자리를 단순화된 분노와 혐오, 혹은 무기력한 체념이 채워 왔다. 이 책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는 바로 그 공백을 문제 삼는다.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기후 위기를 환경 문제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기후 위기를 둘러싼 인간의 태도, 즉 선택적 공감, 단편적 정의감, 그리고 책임을 외주화하는 사고방식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북극곰, 비둘기, 명태, 투발루 시민 등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례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우리는 이들을 언제나 상징으로 소비해 왔지, 구체적인 관계의 당사자로 상상해 본 적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북극곰은 기후 위기의 대표 이미지로 호출되지만, 실제 정책의 장에서는 관리 대상혹은 위험 요소로 분류된다. 아이슬란드에서 표류해온 북극곰이 사살되는 장면은 이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호해야 할 존재이면서 동시에 제거해야 할 존재라는 이중적 위치는, 인간 중심적 사고가 기후 담론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드러낸다. 비둘기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통신 수단이자 전쟁의 도구였던 비둘기는, 기술 발전 이후 도시의 해로운 잉여로 전락했다. 이 책은 이러한 전환이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 변화에 따른 가치 재분류였음을 상기시킨다.

 

이 지점에서 책은 독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자연과 공존하려는가, 아니면 공존이라는 말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가. 소고기 대신 닭고기를 먹는 선택, 명태 인공수정 후 방류, 기후 난민을 이민 정책으로만 다루는 태도는 모두 선의로 포장되지만, 그 이면에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도덕적 선택으로 축소하려는 경향이 깔려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축소가 결국 기후 위기를 더 보이지 않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책의 사유를 한 단계 확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도나 해러웨이다. 해러웨이는 기후 위기를 단순한 과학적 데이터나 윤리적 선언으로만 다루는 방식에 회의적이다. 그녀가 말하는 사변적 우화실뜨기는 과학을 부정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라, 과학이 포착하지 못하는 관계와 맥락을 드러내기 위한 사유의 도구다.

 

해러웨이의 관점에서 보면, 기후 위기는 인류 전체의 문제라는 추상적 문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 누가 더 많이 배출했고, 누가 더 많이 피해를 입고 있으며, 누가 말할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는지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그녀가 철폐주의적 이상 대신 부분적 회복함께 잘 지내기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완전한 순결이나 급진적 단절이 아니라, 이미 얽혀버린 세계 속에서 책임을 나누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해러웨이의 사유를 빌려, 기후 담론 속 혐오의 작동 방식을 해부한다. 혐오는 대상을 단순화한다. 북극곰은 불쌍한 피해자나 위험한 맹수로, 비둘기는 더럽고 성가신 존재로, 기후 난민은 부담스러운 타자로 재현된다. 이러한 재현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감정을 배출하는 통로로 기능한다. 분노는 잠시 해소되지만, 구조는 유지된다.

 

결국 이 책이 제안하는 태도는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사유의 전환이다. 기후 위기를 누가 잘못했는가의 문제로만 묻는 대신, ‘어떤 관계 속에서 이런 결과가 만들어졌는가를 질문하자는 것이다. 이는 혐오에서 책임으로, 선언에서 성찰로 이동하자는 요청이기도 하다.

 

중립적으로 보자면, 이 책은 명확한 정책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점이 이 책의 한계이자 장점이다. 기후 위기가 총체적 난국이라면, 단일한 해법 역시 환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신 이 책은 독자에게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보이는 것만 믿지 말고, 선의를 의심하고,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존재의 위치를 상상할 것을 요구한다.

 

기후 위기를 둘러싼 담론이 점점 더 극단화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냉소와 도덕주의 사이의 좁은 길을 제시한다. 혐오를 동력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무책임한 낙관에 머물지 않는 태도. 그것이 이 책이 기후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며, 동시에 독자에게 요구하는 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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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삶 사이에서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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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삶 사이에서는 지식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저자가 겨냥하는 것은 지식 이후의 태도, 다시 말해 앎이 삶을 통과하지 못할 때 벌어지는 윤리적 붕괴들이다. 저자는 수많은 불평등과 불합리 앞에서 멈추어 반복해서 묻는다. 우리는 알고 있음에도 왜 멈추지 않는가. 왜 설명은 넘치는데, 책임은 사라지는가. 이 질문은 오늘의 한국 정치에서 더욱 노골적인 현실이 되었다.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유보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십수 년째 반복되어 왔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합의의 부재가 아니라 결단의 부재이다. 정치인들은 동성애 반대, 소수자 혐오에 기대어 표를 관리하면서도 그것을 표현의 자유혹은 종교적 신념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이때 정치의 EQ는 급격히 붕괴한다. 타자의 얼굴은 사라지고, 군중의 감정만 계산된다.

 

저자의 제목을 빗대어 표현하자면 이러한 현상이야 말로 앎이 삶을 회피하는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알고 있으나, 그 안에서 살지 않는 상태다. 통계와 보고서는 충분하지만, 고통 앞에서 멈추지 않는 상태,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애당초 차별과 계층화를 당연시 했던 지난 정권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국회 다수당 차지에 이어 정권까지 바뀐 소위 진보를 부르짖는 현 정권에서도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은 더이상 무지가 아니다. 오히려 지식을 윤리에서 분리한 상태, 냉각된 앎이며, 선택된 정치다.

 

이 책에서 특히 날카로운 비판은 갯벌 매립 문제에서 드러난다. 갯벌이 어떤 생태적 가치를 지니는지, 탄소 흡수와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정부도 알고 있다. 연구 자료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매립은 강행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경제성이라는 이름의 탐욕 때문이다.

 

개발이 가능한 평지, 산업단지, 항만 확장이라는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 갯벌은 생명 공간이 아니라 미래 수익이 된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단호하다. 이는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우선순위가 붕괴된 정치라고. 환경 파괴보다 경제적 이익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정권의 단기 성과 욕망이 공동체의 장기 생존을 압도하는 구조다.

 

이 구조는 잼버리 사태에서 반복되었다. 갯벌을 매립한 땅 위에 그늘 없는 야영지를 조성하고, 국제행사를 유치하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 효과를 이야기했다. 결과는 탈진한 아이들의 몸이었다. 그러나 정치의 언어는 끝내 그 몸을 향하지 않았다. 대신 예산, 책임 주체, 전 정부 탓이 오갔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EQ 붕괴를 목격한다. 고통을 감지하지 못하는 권력, 혹은 감지해도 반응하지 않는 권력,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정치적 리더들의 한심한 민낯이다.

 

앎과 삶 사이에서는 이런 상태를 설명은 가능하지만 응답하지 않는 사회라고 진단한다. 차별금지법 유보도, 혐오 발언도, 행정 무능도 같은 뿌리를 가진다. 그것은 타자의 고통을 정치적 비용으로 계산하는 태도다. 소수자는 표가 되지 않기에 미뤄지고, 환경은 당장 성과가 되지 않기에 매립되며, 아이들의 안전은 행사 성공이라는 숫자 뒤로 밀린다.

 

이는 단지 정책 실패가 아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정치권은 반복적으로 감정적 공백을 드러낸다. 사과는 형식이 되고, 공감은 연출이 되며, 책임은 법적 책임 여부로 축소된다. 이것이 바로 EQ 붕괴 정치다. 감정이 과잉된 정치가 아니라, 감정이 제거된 정치라고 해야 할까.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음이 악을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 날 대한민국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는 상태로 말할 수 있을까? 내 눈에 비친 이 사회는 느끼지 않음에 가까워 보인다. 레비나스의 언어를 빌리자면, 타자의 얼굴이 더 이상 명령하지 않는 사회다. 갯벌의 생명, 소수자의 존엄, 아이들의 안전이 모두 관리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 정치는 기술 행정으로 퇴행한다.

 

프리모 레비가 말했듯, 증언은 살아남은 자의 특권이 아니라 남겨진 자의 의무다. 앎과 삶 사이에서는 그 의무를 독자에게 넘긴다. 알고 있는 것을 삶으로 옮길 것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잘 아는 실패로 남길 것인가.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도 더 이상 몰랐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미루는 정치, 혐오를 방치하는 권력, 갯벌을 매립하는 개발 논리, 아이들의 안전을 관리 실패로 축소하는 국가가 하나의 연속선 위에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은 탐욕의 정치이며, 동시에 공감 능력을 상실한 권력의 초상이다.

 

앎과 삶 사이에서는 그래서 불편하다. 저자는 행동의 무거움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는 우리에게 행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더 잔인한 선택지를 준다. 이제는 알면서도 외면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그 질문 앞에서 독자는 더 이상 중립일 수 없다. 앎은 이미 삶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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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씹어 먹는 국어 5 - 다양한 글 맛있게 먹기 특서 어린이교양 7
박현숙 지음, 이영림 그림 / 특서주니어(특별한서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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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못하는 아이들 앞에서, 읽기를 다시 설계한 책

사교육 현장의 수학강사가 바라본 독서교육 실천서의 한 사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순수한 독서 취향이라기보다 현장의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10년 넘게 수학을 가르치며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두드러지게 느끼는 변화는, 많은 아이들이 더 이상 문제를 풀기 전에 문제를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읽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무엇을 묻는지 파악하지 못한다. 조건과 질문을 구분하지 못하고, 문장을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며, 무엇보다 이 문제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묻지 않는다. 이 현상은 계산 능력이나 공식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히 문해력과 사유 능력의 문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문해력의 위기를 통계나 이론으로 압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초반부에서 글을 잘 쓰는 아이 보라를 질투하는 동우와 성민이라는 서사 장치를 배치한다. 이 구성은 단순한 흥미 유발을 넘어, 독자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이동시킨다. 성취한 아이가 아니라, 뒤처졌다고 느끼는 아이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는 독서교육서로서 의외로 중요한 선택이다. 많은 교육서는 이미 읽고 쓰기를 잘하는 독자를 전제로 삼는다. 그러나 실제 교육 현장에서 마주하는 다수의 아이들은 못해서 싫어진 상태에 가깝다.

 

동우와 성민의 서사는 글쓰기나 독서가 타고난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과 훈련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이들이 처음부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어색함과 반감을 거쳐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과장되지 않게 묘사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독서교육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글을 싫어하는 이유를 성격이나 태도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어떻게 실패해왔으며, 어떻게 극복해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들은 독서의 목적을 잘 쓰기정답 맞히기가 아니라, 생각을 구조화하는 경험으로 재정의한다. 그리고 이 정의는 후반부에 제시되는 다양한 독후활동 템플릿을 통해 구체화된다. 요약, 인터뷰형 글쓰기, 찬반 토론, 질문 만들기, 감정과 생각 구분하기 등으로 구성된 활동들은 단순한 예시가 아니라, 실제 수업이나 가정 학습에서 바로 활용 가능한 형태로 제시된다.

 

이 책의 독후활동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심에 둔다는 점이다. 활동 대부분은 하나의 정답을 향하지 않는다. 대신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다른 선택지는 무엇이 있는가”, “처음 생각과 지금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는가와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요구한다. 이는 수학 교육에서 말하는 사고 과정 평가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문제를 맞혔는지 다, 어떤 경로로 접근했는지를 되묻게 하는 방식이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 책이 아이들에게 잘 말하라거나 논리적으로 써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문장 틀이 먼저 주어지고, 그 틀 안에서 생각을 채워 넣도록 유도한다. 이는 글쓰기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크게 낮춘다. 현장에서 느끼는 바로는, 아이들이 글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부터 써야 할지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 책의 템플릿은 그 막막함을 구조로 해소한다.

 

하지만 중립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이 책이 모든 독서교육 문제의 해답을 제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활동 중심의 구성은 지도자나 보호자의 개입을 전제로 하며, 완전한 자기주도 학습서로 사용하기에는 한계도 있다. 또한 템플릿 기반 활동이 자칫 형식화될 경우, 사고가 틀에 갇힐 위험도 존재한다. 다만 이 책은 그러한 위험을 인지한 듯, 활동 이후의 되돌아보기다시 질문하기를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이는 형식을 목적이 아니라 도구로 한정하는 장치로 읽힌다.

 

수학 강사의 시각에서 특히 주목한 분은, 이 책이 문해력을 국어 과목의 전유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읽고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은 모든 학습의 기초이며, 수학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메시지가 곳곳에 드러난다. 실제로 문장제 문제에서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계산 이전에 조건 해석과 질문 파악에서 발생한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독후활동, 질문 만들기, 주장과 근거 구분하기, 관점 바꾸기는 그대로 수학 수업에 이식해도 무리가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유익함은 독서교육을 잘하는 아이를 더 잘하게 만드는 기술에 있지 않다. 생각하는 경험을 다시 설계하는 작업으로 다루었다는 점에 있다. 초반의 서사적 접근으로 독자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후반의 실전형 템플릿으로 교육 현장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높인 구성은 의도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의도는 충실하게 구현되었다.

 

읽고 쓰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 무엇을 묻는지도 모른 채 문제 앞에 멈춰 서는 아이들을 마주하는 교육자라면, 이 책은 하나의 참고 가능한 실천 모델로 기능할 수 있다. 과도한 처방이나 낙관 없이, 현재의 문제를 직시한 뒤 어떻게 다시 시작할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분명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서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나 강사, 보호자에게 하나의 현실적인 자료집이자 사고 훈련서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서재 #신간평가단13#도서제공 #서평단 #꼭꼭씹어먹는국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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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먹어치우는가 - 초가공식품과 식품산업이 만들어낸 게걸스러운 인류의 탄생
헨리 딤블비.제미마 루이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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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먹어치우는가>를 읽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여러 번 무너졌다. 환경 문제를 다룬 책은 많았지만, 이 책은 나를 설득하거나 가르치려 않았다. 대신 내가 서 있던 바닥 자체를 흔들었다. 문제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아니라, 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온 풍요라는 개념이 무엇을 갈아 넣어 만들어진 결과였는지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

 

우리들은 늘 성과만 배워왔다. 질소비료는 인류를 먹여 살렸고,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렸으며, 기근을 해결한 기술로 흔히 설명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아산화질소의 온실효과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었다. 이 선택적 무지는 개인의 태만이라기보다 시스템의 구조에 가깝다. 효과는 명시되고, 대가는 지워진다. 그렇게 인간은 풍요를 축적하면서도 파괴의 비용을 감각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 책이 보여주는 환경 파괴는 누군가의 악의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모두가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결정들의 축적이다. 효율을 따지고, 생산성을 높이고,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놓여 있는 이 시스템은 더 무섭다. 책임은 분산되고, 결과는 누적되며, 시스템은 감정 없이 작동한다. 그 안에서 개인은 점점 작아지고,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너무 쉽게 반복된다.

 

이탄 습지에 대한 서술은 특히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비옥한 토지라 여겨 개간되었을 자리들이 사실은 수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저장고였다는 사실을 나는 미처 몰랐다. 이탄습지는 고유명사가 아닌 분류명이지만, 그 개념이 주는 무게는 특정 장소의 이름처럼 또렷했다. 이탄은 한 번 산소에 노출되면 되돌릴 수 없다. 수천 년의 시간이 수십 년 만에 공기로 흩어진다. 우리는 땅을 쓸모로만 평가하면서,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을 갈아버렸다.

 

우리 나라의 새만금은 이탄습지는 아니지만, 파괴의 방식과 결과는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갯벌 역시 블루카본을 저장하는 탄소 저장고이고, 방조제와 배수로를 통해 산소가 유입되자 그 역할을 잃었다. 건드리지 않았을 때는 가치가 보이지 않던 공간들이, 사라진 뒤에야 무엇이었는지를 말해 준다. 우리는 그간 완성된 생태를 늘 미개발로 오해해왔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이 무서워졌다. 인간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너무 영리해서 자기에게 불리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지워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풍요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보지 않기로 선택해왔는지, 무엇을 배우지 않기로 합의해왔는지를 깨닫는 순간, 누구라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절망을 강요하는 건 아니다. 시장에 맡길 것인가, 규제할 것인가, 개인의 윤리에 기대야 하는가 같은 질문들은 모두 불완전한 해답을 품고 있다. 어설픈 개혁은 위험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복잡함을 견디는 일 자체가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태도임을 이 책은 말없이 보여준다.

 

개인은 이 무서운 파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행동 지침을 주지 않는다. 대신 감각을 바꾼다. 이전처럼 먹고, 소비하고, 선택할 수 없게 만든다. 풍요를 누릴 때마다 그 비용을 떠올리게 하고, 싸고 편한 선택 앞에서 한 번 더 멈칫하게 만든다. 이는 세상을 구하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더 이상 덜 보며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자각에 가깝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자주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무력감에 화가 나고, 슬퍼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감각을 외면하지 않고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환경 문제는 숫자와 보고서로만 존재할 때 쉽게 잊힌다. 그러나 누군가의 몸과 선택, 일상 속 감각으로 내려올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이 책이 남긴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이전보다 느리게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완벽하게 살겠다는 다짐도,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결심도 아니다. 다만 풍요의 이면을 알고 살아가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우리는 지구를 갈아서 먹고 살아왔다. 이제 적어도, 그 사실을 알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 인식 변화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존재 가치가 충분하다.

 

이 책이 더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서 함께 읽고 함께 걱정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무서워하면서 어제보다 나은 선택을 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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