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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 - 기후 붕괴 현장에서 마주친 인간과 비인간동물들
남종영 지음, 불키드 그림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평점 :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의 조건이다. 그럼에도 이 위기는 좀처럼 실감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후 변화는 느리게 진행되고, 원인은 복잡하며, 결과는 불균등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느린 속도와 복잡성은 인간에게 사유의 공백을 허락했고, 그 자리를 단순화된 분노와 혐오, 혹은 무기력한 체념이 채워 왔다. 이 책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는 바로 그 공백을 문제 삼는다.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기후 위기를 환경 문제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기후 위기를 둘러싼 인간의 태도, 즉 선택적 공감, 단편적 정의감, 그리고 책임을 외주화하는 사고방식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북극곰, 비둘기, 명태, 투발루 시민 등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례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우리는 이들을 언제나 ‘상징’으로 소비해 왔지, 구체적인 관계의 당사자로 상상해 본 적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북극곰은 기후 위기의 대표 이미지로 호출되지만, 실제 정책의 장에서는 ‘관리 대상’ 혹은 ‘위험 요소’로 분류된다. 아이슬란드에서 표류해온 북극곰이 사살되는 장면은 이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호해야 할 존재이면서 동시에 제거해야 할 존재라는 이중적 위치는, 인간 중심적 사고가 기후 담론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드러낸다. 비둘기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통신 수단이자 전쟁의 도구였던 비둘기는, 기술 발전 이후 도시의 ‘해로운 잉여’로 전락했다. 이 책은 이러한 전환이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 변화에 따른 가치 재분류였음을 상기시킨다.
이 지점에서 책은 독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자연과 공존하려는가, 아니면 공존이라는 말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가. 소고기 대신 닭고기를 먹는 선택, 명태 인공수정 후 방류, 기후 난민을 이민 정책으로만 다루는 태도는 모두 ‘선의’로 포장되지만, 그 이면에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도덕적 선택으로 축소하려는 경향이 깔려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축소가 결국 기후 위기를 더 보이지 않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책의 사유를 한 단계 확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도나 해러웨이다. 해러웨이는 기후 위기를 단순한 과학적 데이터나 윤리적 선언으로만 다루는 방식에 회의적이다. 그녀가 말하는 ‘사변적 우화’와 ‘실뜨기’는 과학을 부정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라, 과학이 포착하지 못하는 관계와 맥락을 드러내기 위한 사유의 도구다.
해러웨이의 관점에서 보면, 기후 위기는 인류 전체의 문제라는 추상적 문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 누가 더 많이 배출했고, 누가 더 많이 피해를 입고 있으며, 누가 말할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는지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그녀가 철폐주의적 이상 대신 ‘부분적 회복’과 ‘함께 잘 지내기’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완전한 순결이나 급진적 단절이 아니라, 이미 얽혀버린 세계 속에서 책임을 나누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해러웨이의 사유를 빌려, 기후 담론 속 혐오의 작동 방식을 해부한다. 혐오는 대상을 단순화한다. 북극곰은 불쌍한 피해자나 위험한 맹수로, 비둘기는 더럽고 성가신 존재로, 기후 난민은 부담스러운 타자로 재현된다. 이러한 재현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감정을 배출하는 통로로 기능한다. 분노는 잠시 해소되지만, 구조는 유지된다.
결국 이 책이 제안하는 태도는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사유의 전환이다. 기후 위기를 ‘누가 잘못했는가’의 문제로만 묻는 대신, ‘어떤 관계 속에서 이런 결과가 만들어졌는가’를 질문하자는 것이다. 이는 혐오에서 책임으로, 선언에서 성찰로 이동하자는 요청이기도 하다.
중립적으로 보자면, 이 책은 명확한 정책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점이 이 책의 한계이자 장점이다. 기후 위기가 총체적 난국이라면, 단일한 해법 역시 환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신 이 책은 독자에게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보이는 것만 믿지 말고, 선의를 의심하고,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존재의 위치를 상상할 것을 요구한다.
기후 위기를 둘러싼 담론이 점점 더 극단화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냉소와 도덕주의 사이의 좁은 길을 제시한다. 혐오를 동력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무책임한 낙관에 머물지 않는 태도. 그것이 이 책이 기후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며, 동시에 독자에게 요구하는 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