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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다 2 - 역사의 변곡점을 수놓은 재밌고 놀라운 순간들 ㅣ 역사를 보다 2
박현도 외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7월
평점 :
<역사를 잃으면 미래를 잃는다>
나는 박물관 덕후이다. 유물 앞에 서면 그 시대를 상상하며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좋아한다. 깨진 토기 조각은 그 시대에 살았던 한 사람이 만든 쓸모 있는 생활용품이었을 테고, 녹슨 청동검은 누군가가 손에 쥐고 자신의 운명을 걸었던 무기였을 것이다. 유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가 현재의 우리에게,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나는 그 메시지를 읽고 싶어서, 박물관에서 유리 진열장 너머에 있는 유물의 설명문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곤 한다. 이 작은 조각에서 역사의 숨결과 사람들의 흔적을 느끼고 싶어서다.
<역사를 보다 2>를 읽으면서 나는 마치 책으로 만들어진 박물관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역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선보인 흥미로운 역사적 순간들을 풍부한 시각 자료와 함께 풀어낸 작품이다. 역사적 사건과 그 맥락을 풀어내면서도, 단순한 사실 나열에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유물이나 사건 자체보다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있다.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가? 그리고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박물관에서 유물 앞에 서 있던 나 자신을 떠올렸다. 단지 오래된 물건을 눈으로 보며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이 물건은 왜 만들어졌을까? 어떻게 사용되었을까?”를 상상하던 순간들. 그 상상은 과거 속 사람들과 나를 연결 시켰고, 유물은 생명력을 띤 채 내게 말을 걸어왔다. <역사를 보다 2>는 그와 비슷한 경험을 책 속에서 느끼게 만들어준다. 각 사건의 맥락과 자세한 해설은 독자로 하여금 단순히 재미를 넘어, 역사적 책임과 성찰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또 하나의 감정은 ‘안타까움’이었다. 이것은 과거의 메시지를 통해 현재를 배우고, 미래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히 깨닫게 하는 책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학교 교육에서 세계사와 같은 과목은 선택 과목으로 밀려나 있고, 청소년들은 역사가 “외울 것이 많고 시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다. 한때 나는 역사와 박물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를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 차이로 치부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교육 현실의 문제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오늘날 한국의 교육 현실을 직시해 보면, 세계사 교육은 이제 필수 과목이 아니다. 선택 과목으로 축소된 결과, 많은 학생들이 세계사를 배우지 않고도 학업을 마칠 수 있다. 물론 교사와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면 선택 과목으로 만든 정책적 이유는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세계사는 외울 것도 많고, 교과서 한 권에 축약된 세계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입시에 빨리 답을 써야 하는 시험 구조 속에서는 역사를 깊이 알려고 하기보다 외워서 ‘통과’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세계사는 가장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과목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세계사적 관점 없이 어떻게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 기후 위기, 난민 문제, 신자유주의로 인한 빈부격차, 지정학적 갈등 같은 문제들은 모두 국경을 초월한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채 이 문제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금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조차 우리는 역사를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고려 대장경판의 사례를 통해, 세계사와 한국사의 연결성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고려의 대장경판은 단순히 한 민족이 남긴 위대한 성취로만 볼 수 없다. 그 판을 제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동아시아 불교 네트워크를 통한 지식 교류와 중세 인쇄술의 발전이라는 커다란 맥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것이 역사의 본질이다. 역사는 단절되지 않는다. 우리 주변의 한 사건은 곧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으로 얽혀 있다. 이를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현재를 더 정확히 읽고,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갈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외울 게 많아서 싫어요.” 하지만 역사는 시험 과목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살아갈 길을 안내하는 지침서와 같다. 역사를 아는 것은 단순한 상식이 아니라, 인간됨을 배우고, 더 나은 길을 선택할 힘을 기르는 일이다. 과거의 시간들을 단순히 ‘옛날 이야기’로 묶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현재를 이해할 틀을 잃고 만다.
제국의 흥망을 이해하면 오늘날 초강대국의 부상과 쇠퇴를 설명할 수 있다. 고대 종교와 사상의 흐름을 배우면 현대의 갈등과 연대의 뿌리를 이해하게 된다. 한국사의 작은 장면조차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재조명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와 의미가 드러난다.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한 사회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놓아야 할 필수적인 초석과도 같다.
다행히도 이 책은 역사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희망이 된다. 이 책은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면서도 어렵지 않게 읽히며, 마치 박물관에 걸어 들어가 유물의 설명을 읽는 것 같은 흥미를 준다. 학교에서 모든 역사 교육이 축소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대중은 여전히 박물관과 책을 통해 역사와 만나고자 한다. 여전히 역사에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더 깊은 성찰로 이끄는 힘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역사란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했다. 역사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도구이다. 과거는 우리에게 생생한 메시지를 남긴다.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 번영과 쇠퇴, 평화와 갈등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가르쳐 준다.
이제는 역사를 배울 기회를 되찾아야 한다. 역사를 외면하는 사회는 현재를 오해하고 미래를 잃는다. 역사를 보다 2는 박물관처럼 열린 교실로,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잃지 않을 때, 우리의 미래도 올바르게 만들어질 것이다.